귀환천화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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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34화
134화
“우리가 성도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대가는?”
한쪽에 앉아 있던 중년인 중 눈매가 날카롭고 매부리코인 당치문이 눈을 치켜떴다.
당학문의 동생인 그는 혁무천의 말투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도와주는데 꼭 대가를 따져야겠나?”
“우리가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목숨을 걸고 귀하들을 도와주어야 한단 말이오? 혹여 우리에게 정의니 협의니 말하려 한다면 사람을 잘못 불렀소. 우린 정파의 무사가 아니니까.”
“그건…….”
당치문이 바로 반박을 못하자, 당학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가는 만족할 만큼 주겠네. 전학!”
그가 방문 밖을 향해 말하자,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혁무천 일행이 들어올 때 보았던 골동품점 주인이었다.
그는 탁자 앞으로 오더니 뭔가를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크기가 손바닥만 한 황금패였다.
당학문이 그를 향해 물었다.
“이 패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
“이 패는 과거 촉나라 때 사용했던 왕의 영패입니다. 황금으로 따지면 스무 냥 정도 됩니다만, 골동품적인 가치로 따지면 황금 이백 냥의 가치가 있습니다. 제대로 주인을 만난다면 황금 오백 냥도 받을 수 있지요.”
당학문이 다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대가로 이 패를 주지. 어떤가?”
혁무천이 당학문에게 되물었다.
“만약 우리가 귀하에게 일인당 은자 사백 냥을 줄 테니 마천문과 척을 지더라도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하면 싸우겠소?”
황금 이백 냥. 은자로 사천 냥이다.
혁무천 일행의 숫자는 열두 명. 그럼 일인당 은자 삼백서른세 냥씩 돌아간다고 봐야 했다. 한유림과 구원을 뺀다면 사백 냥이고.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거는 대가로 받기에는 많다고 할 수도 없었다.
“으으음…….”
당학문도 그 점을 생각하고 침음을 흘리더니, 골동품점 주인을 향해 눈짓을 했다.
골동품점 주인이 또 하나의 물건을 꺼내놓았다. 이번에 내놓은 물건은 크기가 더 작았다. 맑은 청록색을 띄고 있는 옥팔찌였는데, 팔찌 전체에 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한나라 황제가 사용했던 것으로, 지니고 있으면 기운이 맑아진다는 청룡빙옥환이오. 단단하기가 쇠보다 더해서 깨지지 않소. 천하 어느 골동품점을 가도 최소한 황금 오백 냥은 받을 수 있소.”
황금 오백 냥. 은자 만 냥이다.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혁무천은 목량을 돌아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목량은 눈앞에 은자 만 냥, 아니 합하면 은자 만사천 냥 가치의 보물이 있는데도 담담하기만 했다.
“만족할 만한 액수는 아닙니다만, 좋은 일 하신다 생각하고 받아들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학문 등은 동시에 목량을 쏘아보았다.
뭐라? 만족할 만한 액수가 아니야?
싸우는 당사자보다 말리는 놈이 더 밉다더니, 얼굴은 순진해 보이는 놈이 무천이란 자보다 더 독했다.
혁무천도 목량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이마를 찌푸리며 답했다.
“그래? 솔직히 배는 더 받아야 하는데, 네 말대로 좋은 일 하는 셈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당학문은 입맛이 썼다.
사실 둘 중 하나만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영부영 하다 보니 두 개를 모두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하나만 고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만사천 냥도 만족할 만한 액수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 하, 하. 고맙네.”
당학문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대신 그는 혁무천 일행을 철저히 부려먹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목숨을 거는 대가로 거금을 내놓지 않았는가.
그런데 혁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탁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탁자 위에 있던 황금영패와 청룡빙옥환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그의 손에 쥐어졌다.
잠깐의 예비동작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허공섭물.
더구나 탁자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바로 옆의 찻잔조차 미동도 없이 보물 두 개만 취했다.
그 광경을 본 당학문은 뭐라 말도 못하고 눈만 부릅떴다.
그도 허공섭물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천이란 자가 펼친 수법의 수준은 차원이 달랐다.
혁무천은 그들이 놀라는 이유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처음부터 놀라길 바라고 한 행동이니까.
“남문 쪽에 변화가 생길 거요. 아마 성도를 수색하던 자들도 수색을 멈추고 모두 남문으로 몰릴 거요.”
“저들이 남문으로 몰릴 거라고?”
“그렇소. 그때 다른 쪽을 뚫고 성을 빠져나가시오.”
아주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너무 단순하게 느껴져서 보물 두 개를 주는 게 아까울 정도.
‘하나는 돌려받아야 하나?’
하지만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혁무천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 방법이 마음에 안 들면 귀하들이 알아서 빠져나가시든가.”
“…….”
“어떻게 하시겠소?”
“으음, 알았네.”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이상은.
혁무천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잠깐만 기다리게.”
당학문이 급히 그를 불렀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소?”
“우리와 장기 계약을 맺을 생각 없나?”
“당가와의 계약을 말하는 거요, 아니면 정은맹과의 계약을 말하는 거요?”
그 말에 당학문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자신들이 정은맹 소속이라는 걸 혁무천이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
하지만 당가기가 알려줬을지도 모르는 일. 의문을 접고 말했다.
“맹과 계약을 했으면 하네만.”
“나중에 황보수를 만나면 나에 대해서 물어보시오. 그럼 왜 내가 거부하는지 알 수 있을 거요.”
생각지 못한 말에 당학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어떻게 황보 기주를……?”
뿐만 아니라 당치문과 명운의 눈도 커졌다.
“썩 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몇 번 만난 적이 있소. 그럼 이만…….”
혁무천은 다시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당학문이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럼 당가와는 계약할 수 있나?”
“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소.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소만.”
혁무천은 묘한 뒤끝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방 안에 남은 당학문은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더니 당치문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황보 기주를 만나봐라. 무천이란 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
“형님, 저자의 능력을 인정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굳이 계약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치문은 여전히 혁무천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다.
젊은 놈이 어디서……!
그런 당학문은 그와 보는 방향이 달랐다.
“만약 누군가와 손을 잡아서 당가의 치욕을 청산하고 과거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다면, 너는 손을 내밀겠느냐, 아니면 쳐다만 보고 말겠느냐?”
“그거야 당연히 손을……. 설마, 저자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너도 가기가 한 말을 들었을 거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언젠가는 무천이란 자로 인해 강호에 바람이 불 거다. 그때 가서는 아무리 큰 대가를 준다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게야.”
***
혁무천은 기분 좋게 객잔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마천문에 가려던 참이었다. 공손두를 만나다 보면 약간의 소란이 벌어질 것은 당연하다.
자신은 그저 그 소란을 조금만 더 키우면 된다.
그 대가로 보물 두 개를 받는 것이니 엄청난 이익이었다.
“그럼 내 몫은 음…… 황금 쉰여덟 냥인가? 맞지?”
동대안이 슬그머니 자신의 몫을 확인해 두었다. 당연히 나누어주겠지만, 사람 마음은 또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사람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황금이 거짓말한다는 말도 있었다.
황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데, 양심 정도야…….
그러니 미리 확인해두어서 나쁠 것 없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나중에 받은 팔찌는 팔지 않을 거요.”
동대안의 입술이 한 자는 튀어 나왔다.
“그런 법이 어딨나?”
“그럼 동 형은 이곳에 있으시오. 우리끼리 갔다 올 거니까.”
“…….”
움찔한 동대안은 입술을 삐죽였다.
혁무천의 말 속에는, 함께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뭐… 꼭 돈이 욕심난다는 게 아니고… 그럼 그 팔찌는 누구 주려고? 아! 혹시…… 은설?”
뒤늦게 혁무천의 속마음을 눈치 챘다고 생각한 동대안은 히죽 웃었다.
혁무천도 피식 실소를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팔찌를 팔지 않으려는 건 은설에게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팔찌를 손에 쥐고 품에 넣는데, 손바닥을 통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팔찌를 품속에 넣은 후로도 계속 느껴졌다. 이번에는 손바닥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슴을 통해서였다.
몸속에 오랜 세월 끼어있던 묵은 때가 씻겨나가는 느낌? 아니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가 바깥세상으로 나와서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 쉬었을 때의 느낌?
명확히 어떤 느낌이라고 정의내리기는 어려웠다. 분명한 것은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지닌 기운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자신이 갖고 다니면서 그 느낌의 정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일행과 함께 객잔을 나온 혁무천은 곧장 남문으로 향했다.
송비가 앞장서서 호패를 보이고 남문을 나서는데 마천문의 무사 이십여 명이 다가왔다.
개중에는 객잔에 갈 때 봤던 중년인도 있었다.
마천문 사경당의 부당주인 하궁 역시 혁무천 일행을 알아보고 눈에 힘을 주었다.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칠 척이 넘는 거구는 천하를 뒤져도 보기 힘드니까.
“또 만났군.”
경험 많은 송비가 그를 상대했다.
“나는 한중 북풍표국의 국주인 송비오만, 무슨 일이오?”
“북풍표국?”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걸로 봐서 삼류표국인 듯했다. 그래도 국주라고 하니 대우를 해주었다.
“그럼 저 사람들도 표사요?”
“그렇소. 임시표사요.”
“표행에 표국 사람은 국주 혼자고, 모두 임시표사라고?”
“그렇소. 이곳까지 오던 중 정식 표사들이 모두 다치고 말았소. 그래서 임시표사만 남은 거요.”
하궁은 혁무천 쪽으로 걸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았다.
그런데 한바탕 싸움을 벌인 터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는 않았다.
동대안이 그 눈빛에 대고 살짝 불을 붙였다.
“지미,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작게 중얼거렸지만, 바로 앞에 있는 하궁이 듣지 못할 리 없었다.
“뭐?”
“우리가 도둑놈이오, 뭐요? 왜 썩은 눈깔로 쳐다보냔 말이오?”
“이놈들이……!”
“아니, 마천문 무사면 사람을 그렇게 도둑놈 보듯 봐도 되는 거요? 내 눈에는 당신들이 더 도둑놈 같은데.”
하궁의 옆을 따라다니던 삼십 대 장한이 버럭 소리쳤다.
“이런 건방진 놈이 감히 어디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건방? 지금 누가 건방을 떠는 건데?”
챙챙!
마천문 무사들이 무기를 뽑고는 당장 공격할 것처럼 살기를 드러냈다.
“오라, 진짜 해보자 이거지?”
송비가 급히 동대안을 말렸다.
“어허! 대안, 그만하게. 개가 사람을 문다 해서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잖은가.”
뒷말이 문제였다. 결국 마천문 무사들을 개 취급한 셈이 된 것이다.
“네놈들이 감히 우리를 농락하려고 하는구나!”
하궁이 발끈해서 다그치자, 송비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농락하긴 누가 농락했다고 그러나? 사람들 이상하구만 진짜!”
어차피 북풍표국은 문을 닫은 판이었다. 마천문의 보복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마침내 하궁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놈들에게 마천문을 우습게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 철저하게 가르쳐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