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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2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24화

124화

 

 

노인은 흠칫했지만 곧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북현문의 무사들을 물리치고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욕심내려 했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힘으로 빼앗았을 것이다.

“그렇소이다.”

천구문은 태백산 남단의 천구산 자락에 위치한 중소문파다.

그럼에도 혁무천이 아는 것은, 그곳의 과거 주인이 바로 천붕십이마 중 천구일마(天球一魔) 한등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어린 친구는……?”

혁무천의 말에 소년이 즉시 포권을 취했다.

“천구문 칠대 제자 한유림이라 합니다. 전대 문주께서 제 아버님 되십니다.”

전대 문주?

그럼 소년의 부친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들인 소년이 왜 이곳까지 온 것일까?

그 의문을 풀어주듯 노인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 문은 석 달 전 백원방의 공격을 받아 대다수의 제자를 잃었소이다.”

장안 북쪽에 똬리를 튼 백원방은 마도십문 중 하나로, 방도의 숫자만 해도 삼천이 넘었다.

다만 그렇게 많은 무사가 있음에도 팔대마세에 들지 못한 것은 절정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원방의 무사 상당수는 본래 황군이었다가 무림에 뛰어든 자들이었던 것이다.

“천구의 보물이라는 물건 때문입니까?”

“그렇소.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 물건을 원했소.”

“그래서 그 보물을 들고 이곳에 왔나 보군요.”

“맞소이다. 그 물건을 다른 곳으로 보내 보관하게 할 생각이오.”

“다른 곳으로 보낸다 함은……?”

“사천으로 보내려 하오. 더는 말씀드릴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시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송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 북풍표국을 통해서 내일 보내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노인의 눈이 커졌다.

“맞소만… 그걸 어떻게?”

묘한 인연이었다.

천구의 보물이 바로 송비가 말한 정체불명의 표물인 듯했다.

“제가 그 일에 나설 표사 중 한 사람입니다. 비록 임시표사입니다만.”

 

혁무천은 한유림과 구원 일행을 북풍표국으로 데려왔다.

표국에 있던 사람들은 혁무천이 늦은 밤에 뜬금없이 사람들을 데려오자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곧 그 네 사람이 바로 사천 표행의 표주라는 걸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북현문의 공격을 받았다는 걸 알고 긴장했다.

북현문이 노리고 있다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목량이 의견을 말했다.

“표물이 일찍 들어왔으니 출발시간을 앞당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송비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좋아, 그럼 아침식사를 일찍 먹고 출발하는 걸로 하자.”

혁무천으로선 나쁠 것 없었다. 빨리 가면 그만큼 빨리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천구문 무사 둘은 부상이 심해서 표국에 남기로 했다.

구원도 어깨의 상처가 깊었지만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린 한유림을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했다.

결국 표행에 나설 사람들은 동이 트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표국을 나섰다.

 

***

 

태양이 하늘을 향해 반쯤 솟구친 사시 초.

한중을 떠나온 표행은 촉산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한중에서 사천으로 가려면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협곡 사이의 길을 통과해야만 했다.

무려 천 리에 이르는 그 길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험한 길 중의 하나인 촉도(蜀道)였다.

혁무천은 일행과 함께 앞서가는 송비와 북풍표국의 표사들 뒤를 따라갔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광천곡은 촉산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히 왕래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일반인은 아예 발길도 들이지 못했다.

그러한 곳에서 십수 년을 보낸 그였다.

물론 옆에서 걷는 동대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혁무천보다 더 오랫동안 광천곡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는 촉산을 구경할 정신이 없었다.

촉산에 들어오니 목 안의 가시 같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씨바, 오늘 저녁에 한번 물어볼까?’

그는 혁무천을 힐끔거리며 머리를 굴렸다.

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망설이다 보니 여태껏 물어보지를 못했다.

아니, 망설였다기보다는… 겁이 났다.

만약 저 인간이 배신자들과 관련되어 있다면 어떡하지?

자신의 실력으로는 머리카락 하나 자르기도 쉽지 않은데…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언제까지 가슴 속에 품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확인해보고 죽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한편, 구원은 도무지 이 표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북풍표국이라는 곳이 그를 머리 아프게 했다.

한중에서도 말단에 위치한 작은 표국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소문이 나지 않을 테니까. 엉뚱한 욕심을 부리면 자신이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가 몇 명이나 있었다.

나름대로 비밀유지를 위해 시세보다 세 배나 되는 운송비를 줬는데, 이제는 그것도 많이 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원래 북풍표국이 실력을 감춘 곳이었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엉뚱한 욕심을 부리면 자신이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기만 바라야 했다.

‘후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촉산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오십 리쯤 전진하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왔다.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인 듯, 그들보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숫자가 오십여 명쯤 되었는데, 일반 상인과 표행 중인 표사들이 섞여 있었다.

표사들 무리 옆에 표기가 꽂혀 있어서 그들의 정체를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리표국(萬里鏢局)]

 

만리표국은 장안의 삼대표국 중 하나로 표사만 해도 삼백 명이 넘는 대규모 표국이었다.

이번 표행에 나선 자들은 표사가 이십여 명, 쟁자수가 열 명쯤 되는 듯했다.

그들은 나타난 사람들이 표행 중인 표사라는 걸 알고 호기심이 깃든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북풍표국?”

“어디에 있는 표국이지?”

“아, 한중에 그런 표국이 있다는 말을 들었네. 표사라고 해봐야 십여 명밖에 안 된다고 하더군.”

“그럼 이번 일에 전부 나섰나 보군.”

북풍표국 표사들은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지금까지 표행을 하며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었기에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만리표국 표사 중 두어 명이 혁무천 일행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도 표사인가? 저 친구는 덩치가 진짜 크군.”

“덩치가 아무리 커봐야 칼 맞으면 끝이지 뭐.”

“저 친구는 눈이 진짜 작군. 앞이 보이기나 하는지 모르겠네.”

“크크크, 꼭 쥐 눈 같군.”

동대안이 그들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하도 많이 들은 욕이어서 속으로만 씹고 말았다.

‘자식들이 창의성이 없군.’

 

북풍표국 표사들은 서둘러서 식사준비를 했다.

돌을 쌓아 만든 화덕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붙였을 때, 만리표국 쪽에서 두 사람이 다가왔다.

그들 중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만리표국의 종화승이오. 어느 분이 책임자이신지?”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송비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가장 많은 그를 수장으로 본 듯했다.

송비가 고개를 돌리고 답했다.

“북풍표국을 맡고 있는 송비네. 만나서 반갑군.”

“아, 국주셨군요.”

“제법 큰 표행인 것 같은데, 어디로 가는 길인가?”

“성도까지 가는 표물이오. 귀 표국은 어디로 가시오?”

“우리는 면양까지만 가면 되네.”

“아, 그럼 그곳까지 함께 가지 않겠소?”

촉도를 지나는 길은 험난함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산적으로 인한 어려움도 많았다.

때문에 표행 중 만난 표국들이 힘을 합쳐서 촉도를 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저 친구들도 귀 표국의 표사요?”

종화승이 턱짓으로 혁무천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렇다네. 임시표사라고 할 수 있지.”

“믿을 수 있는 자들이오?”

“자네들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

송비가 씩, 웃으며 말하자 종화승이 이마를 찌푸렸다.

송비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 조카 일행이네.”

“그랬군요. 부디 표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만한 실력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종화승이 냉랭히 말했다.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한 듯 마지막에는 살짝 비꼬았다.

그러자 그와 함께 왔던 임근도 한마디 했다.

“임시표사나 하는 무명지배들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

그러고는 혁무천 일행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표사들조차 어디서 개가 짖냐는 듯 신경을 끄고 자기 할 일만 했다.

완벽한 무관심.

은근히 짜증이 났다.

‘저 건방진 놈들이……!’

정식표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임시표사 애송이들이 감히 대 표국의 표두께서 말씀하시는데 들은 척도 안 해?

그뿐이 아니다.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는 놈도 있다.

“거기! 눈 쥐똥만 한 놈! 들창코! 내 말이 그렇게 웃기나?”

속닥거리며 낄낄거리고 있던 동대안과 강탁이 고개를 쓱, 돌렸다.

“웃기니까 웃지.”

“지미, 자기가 웃겨놓고 웃지도 못하게 하네.”

“뭐야?”

임근이 발끈해서 화를 내자, 동대안도 일어났다.

“눈 쥐똥만 한 놈한테 이마빡에 쥐똥만 한 구멍 뚫리는 기분이 어떤지 알게 해줄까?”

“이 자식이……!”

그때였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송비가 빽 소리쳤다.

눈을 치켜뜨고 잔뜩 인상을 쓰자 정말 장비가 따로 없었다.

“서로 돕자고 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싸우는 건가?”

마치 대호가 포효하는 듯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드센지 종화승과 임근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자네도 그만하게.”

송비가 동대안에게도 자제를 권했다.

동대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린 후 본래의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송비가 종화승을 향해 말했다.

“우리 북풍표국이 비록 이름도 없는 작은 표국이지만 자존심까지 없는 곳은 아니네. 합력하기 싫다면 지금 말하게.”

종화승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자신이 뱉은 말을 철회할 수도 없었다.

임근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고.

“임 표두가 말을 심하게 한 것 같소. 협력은 그대로 하지요.”

“알았네. 그만 가서 쉬시게.”

 

다행히 말다툼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곧 식사를 준비하던 표사가 소리쳤다.

“자! 식사 다 되었습니다. 오시죠!”

북풍표국 표사와 혁무천 일행은 화덕 쪽으로 모여들었다.

걸쭉한 죽과 만두, 육포가 전부였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때였다.

한중으로 향하는 길 쪽에서 수많은 무사들이 나타났다.

좁은 길을 메우고 빠르게 달려오는 자들은 얼핏 봐도 백 명이 넘을 듯했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어? 북현문 무사들이잖아?”

“무슨 일이지?”

긴장했던 만리표국 표사와 쟁자수들은 나타난 자들의 정체를 알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북풍표국 쪽 사람들은 그릇을 내려놓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곧 공터에 도착한 북현문 무사들은 공터를 반원형으로 에워싸고 명령을 기다렸다.

네 사람이 포위망 뒤쪽에서 앞으로 나왔다.

몇 사람이 그들을 알아보았다.

“헛! 육가경 부문주가 직접 오다니.”

“혈귀도 공지응도 왔군.”

만리표국 사람들과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북풍표국 표사들과 혁무천 일행은 무기를 챙기고 일어섰다.

아무래도 자신들을 찾아온 듯했다. 정확히는 구원과 한유림을 찾아온 것이겠지만.

앞으로 나선 북현문 사람들 중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노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 선배, 기껏 도망간 곳이 여기요?”

그가 바로 북현문의 부문주 흑사마도(黑蛇魔刀) 육가경이었다.

“도망가긴 누가 도망갔단 말이냐, 육가야. 나는 도적놈들을 피한 것뿐이니라.”

“어젯밤에는 용케 살아서 도망쳤지만, 오늘은 어려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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