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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2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21화

121화

 

 

청안도장이 손을 들어서 그를 막고 고개를 저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니라. 다 늙은 엉터리 도사가 자칫했으면 죄 없는 제자들을 사지로 내몰 뻔했지 않느냐. 사방 천지에 무당을 지켜보는 눈과 귀가 있거늘…….”

그제야 청안도장의 말뜻을 깨달은 허중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시험이 시험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약 혁무천 일행이 마도인이라면, 살아서 나간다면 마도에 무당의 힘이 알려질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럴 경우 피의 폭풍이 무당을 집어삼킬지도 몰랐다.

허중이 입을 꾹 다문 채 물러서자, 청안도장이 두 손을 맞잡고 혁무천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 어떤 책망도 받아드리리다. 노도가 그동안 도를 닦는답시고 가슴에 욕심만 가득 채웠나 보오.”

혁무천은 뜻하지 않은 청안도장의 행동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의외였다.

무당을 이대로 떠나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작정하고 심하게 말했거늘. 칠순의 노도인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허리를 숙이다니.

문득, 자신의 손에 죽어가면서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진영진인이 떠올랐다.

당시 그를 죽이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아무래도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앙금을 마저 털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고도 아무런 욕심이 없다면 도장께선 이미 신선이 되셨을 겁니다.”

혁무천은 무심하게 말하며 포권을 취했다.

청안도장의 숙여졌던 몸이 자연스럽게 펴졌다.

사람들은 청안도장이 스스로 몸을 세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기에 청안도장의 노안에서 경악이 출렁거렸다.

“오늘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뜻을 전할 때가 있을 것이니, 오늘은 그만 가보겠습니다.”

혁무천이 몇 마디 말을 덧붙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청안도장이 급히 말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 어리석은 말코가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자 하오. 거부하지 마시구려.”

그때였다.

혁무천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쳐들고 우측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구름이 살짝 걸쳐 있는 봉우리 쪽이었다.

“아무래도 차는 나중에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주……?”

“무당에 진짜 신선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본 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가 봅니다.”

“……?”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 표정들이었다.

혁무천은 그들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동대안에게 말했다.

“도장님과 차 한잔 마시면서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오.”

“어? 왜?”

“잠시 다녀올 데가 있소.”

혁무천은 잔뜩 의문만 남겨 놓고 우측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고는 두세 번 도약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

“아! 혹시……?”

청안도장이 뭔가를 눈치 챘는지 눈을 크게 떴다.

“사숙, 왜 그러십니까?”

허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청안도장은 대답 대신 눈을 감고 도호를 외었다.

“원시천존. 그분이… 그분이 나오셨구나.”

“……?”

 

***

 

경공을 펼쳐서 무당산의 험준한 산을 단숨에 관통한 혁무천은 십 리를 달린 후에 멈추어 섰다.

험준하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곳이었다.

수십 장 치솟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건물이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낡은 암자가 하나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사람의 집념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암자 앞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부르셨습니까?”

조금 전에 전음이 들렸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나 도통한 사람만이 펼칠 수 있다는 혜광심어였다.

 

<무당의 아이들은 놔두고 나와 이야기해보지 않겠느냐?>

 

달려온 거리는 십 리였으나, 암자에서 태사파까지의 직선거리는 오 리 정도 되었다.

혁무천도 어떤 이가 이 먼 곳에서 혜광심어를 쓰는지 알고 싶었다.

“헐헐,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노인이 이 빠진 웃음을 흘렸다.

나이를 짐작하기조차 힘든 노인은 색 바랜 낡은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당파의 복장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이 늙은 말코가 백 년을 넘게 살아 왔다만, 너처럼 희한한 놈은 처음 본다.”

무아의 상태에서 도를 닦던 중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느낌은 보거나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하면서도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운의 존재가 초감각에 잡혔다.

아마 무아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간 그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그를 고뇌의 늪에 빠지게 했던 신비의 기운을 품은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그 기운의 주인에게 호기심이 생긴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혜광심어를 사용해서 기운의 주인을 암자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해서 앞에 두었는데, 그 무엇 하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제가 희한하다는 말은 처음 듣는군요.”

담담한 혁무천의 말에 노도인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귀신은 아닌 것 같고,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끄응,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군.”

노도인도 구요처럼 자신에게서 뭔가를 보았나 보다.

하지만 혁무천은 모른 척하고 말했다.

“앞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되지, 뭐 하러 쓸데없이 고민하십니까?”

“보이는 것만 믿으라? 하긴…… 헐헐헐.”

“제 관상을 보려고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노도인은 진물이 나올 것 같은 눈을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작년 가을이었을 게다. 혼돈의 힘이 천지의 기운을 깨뜨리며 하늘에서 떨어졌느니라. 모두 아홉 줄기였지.”

노도인의 말을 듣고 있던 혁무천은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 힘이 지옥의 힘인지, 천상의 힘인지는 알 수 없었느니라. 다만…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노인이 말을 멈추고 시선을 내려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천지사방에 떨어진 그 힘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노도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그 중 하나가 너라는 것이지.”

생각지 못한 말에 혁무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제가 그 힘의 주인 중 하나다?”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니라.”

“어찌 그걸 자신하십니까?”

순간, 노도인이 빙그레 웃었다.

“너에게서 그때 느꼈던 그 기운의 흔적이 느껴지니까.”

기운의 흔적?

“그래서 부른 것이니라. 도대체 그 기운이 어떤 괴물인지 궁금했거든.”

혁무천은 노도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문득 우문척을 만났을 느꼈던 기이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우문척 만이 아니군.’

우문척 외에도 기이한 느낌을 받았던 자들이 있었다.

그저 느낌이 조금 기이하다 생각했거늘, 그들이 정말 노도인이 말한 혼돈의 기운을 얻은 걸까?

아직은 모른다. 노도인이 말한 기운이 실체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고.

“그래서 궁금증은 해결하셨습니까?”

노도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분명 네 속에 그 기운이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말이야.”

“저는 제 안에 무엇이 들었든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노도장 말씀대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든, 아니든 신경 쓴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요.”

“하긴…….”

고개를 주억거린 노도인이 다시 눈을 들었다.

“만약 노도의 말대로 혼돈의 세상이 온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할 거냐고?

혁무천은 미간을 좁히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장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어차피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만 건들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원하는 것이 하나밖에 없다고?”

“함께하고자 하는 이를 얻고 싶을 뿐입니다. 아주 귀여운 아이지요.”

노도인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쭈글쭈글한 입술을 살짝 벌렸다.

“설마…….”

“아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허어…….”

노도인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뒤이은 혁무천의 말을 듣고 표정이 다시 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어쩌면 많은 피를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도인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담담한 목소리에서 평생 처음 대하는 지독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고요를 되찾고 나직이 말했다.

“얻고 싶으면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니라. 본디 사람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 얻고자 하면 그만한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혁무천은 노도인의 말뜻을 어렴풋이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가 되면 고민해보지요. 지금으로선 그렇게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군요.”

“무량수불.”

노도인이 나직하게 도호를 외고 말했다.

“인연이 한 번쯤은 더 있을 것 같구나. 나중에 만났을 때는 너의 몸에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져 있길 바라마.”

“저 역시 다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도장께서 말씀하신 그 기운이 뭔지 저도 궁금하군요.”

 

***

 

동대안 등 일행은 모두 서암에 있었다.

혁무천이 서암에 가자 청안도장이 물었다.

“무곡진인(无曲眞人)을 만나셨소?”

아마도 암자의 그 노도인을 말하는가 보다.

“암자의 노도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허어, 이십 년 간 사람을 만나지 않으신 분이 어쩐 일로 소시주를 만나셨는지 모르겠구려.”

귀신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만난 거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혼돈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무당의 어른이십니까?”

“무당의 제자는 아니나, 무당의 제자나 다름없는 분이라 할 수 있지요.”

무당산에는 무당파 외에도 백여 개의 도교 종파가 존재했다.

무곡진인 역시 그러한 종파 중 하나인 무원파(無冤派)의 제자였다.

또한 무당의 살아 있는 신선 셋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무당삼선(武當三仙).

무곡진인, 우원진인, 그리고 우헌진인.

강호에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무당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신선이었다.

“오늘 중요한 예식이 있다 들었습니다.”

“원시천존. 그에 대해서는 노도도 드릴 말씀이 없소이다.”

“만약 그 예식이 무당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중에 또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청안도장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뿐,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자허궁에 오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군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혁무천은 여운을 남기고 서암을 나섰다.

무당파 제자들은 혁무천 일행이 태자파를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개중에는 입을 굳게 다문 허중도 있었다.

그는 혁무천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이백여 장 떨어진 바위 위에서 언젠가부터 태자파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제 서른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도인과 칠순의 노도인이었다.

“어찌 보았느냐?”

“세상은 역시 넓은가 봅니다.”

“허운, 산을 내려가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을 밑거름 삼아 너를 키우도록 해라.”

“예, 스승님. 세상에 무당의 검이 아직 건재함을 알리겠습니다.”

무당칠성 중 일좌인 청은도장은 젊은 제자의 대답에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려가면 되돌릴 수 없는 수레바퀴가 돌게 될 것이다. 원시천존이시여, 무당을 굽어 살피소서.’

청은도장이 눈을 감고 무당의 안녕을 기원할 때, 허운은 여전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누군지 모르나, 곧 세상에 천외천의 힘이 존재함을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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