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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4화

114화

 

 

비틀거리는 걸 보니 중심을 잡고 걷는 것조차 힘든 듯했다.

동대안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우린 자네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없어.”

“에이, 제갈세가에 가려고 온 것 아니오? 꺼억…….”

“제갈세가에 뭐 하러 가?”

“그거야 혼인 때문이지 무슨 일이겠소?”

“혼인?”

“제갈세가 가주의 여식이 내일 혼인하잖수. 내 동생이라서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오.”

혼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눈앞의 취객이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는 것이 더 관심을 끌었다. 더구나 혼인을 하는 가주의 여식이 동생이라지 않는가 말이다.

동대안이 일단 비꼬아서 말했다.

“사돈에 팔촌 동생?”

“무슨 소리! 내 친동생이오.”

“…….”

그 말에는 동대안도 입이 닫혔다.

그렇다면 취객이 제갈세가 가주의 아들이라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 거짓말, 정말인가?”

“이 양반이… 내가 술에 취한 줄 아시오?”

맞다. 취했다.

“지금 비틀거리잖아.”

“그거야 땅이 흔들리니까 비틀거리는 거 아니오.”

“허어… 확실히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비범하군. 술에 취해도 저런 기가 막힌 헛소리나 하고.”

“당신들이 오늘 나에게 술 한잔 산다면, 내가 제갈세가에 들어가게 해주겠소.”

“우린 안 간다니까.”

“거 눈도 쪼끄만 한 분이 인정머리도 없구만.”

“뭐?”

동대안이 작은 눈을 치켜떴다. 최대한 크게.

그래봐야 취객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붕어눈이 힘준다고 잉어눈 되나? 쳇, 당신보다 옆에 있는 분하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

툴툴거린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장대산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아따, 그 친구. 겁나 크네.”

그때 혁무천이 입을 열었다.

“정말 제갈세가에 들어가게 해줄 수 있나?”

그제야 다시 시선을 내린 취객이 헤프게 실실 웃었다.

“당연히 진짜지. 일단 술부터 한 잔 사시오.”

 

혁무천은 동대안이 눈빛으로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취객과 함께 객잔에 들어갔다.

제갈세가는 남궁세가와 함께 팔대세가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던 가문이었다.

남궁세가가 무공으로 우뚝 섰다면, 제갈세가는 병법과 기문진으로 천하제일이라 불렸던 곳이다.

정은맹과 천기회가 정파를 일으키겠다면 나섰는데 그들이 손 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을 터, 한번쯤 내부의 분위기를 파악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아이고, 공자님. 이젠 돈 안 가져오면 진짜 못 드린다니…….”

점소이가 취객을 쫓아내려다가 혁무천 일행을 보고 망설였다.

“걱정 말게. 돈은 우리가 낼 테니까.”

목량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점소이가 미적거리며 일행을 한쪽으로 안내했다.

“그러시다면야… 이쪽으로 오십쇼.”

“이놈아, 가서 연화주를 가져와라.”

취객이 대뜸 술을 주문했다. 점소이가 이번에도 머뭇거렸다.

연화주는 고급주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적선하듯 사줄 수 있는 술이 아닌 것이다.

“가져 오게.”

“알겠습니다요.”

점소이는 혁무천의 말이 떨어진 후에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섰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취객이 이름을 밝혔다.

“나는 제갈위종이라 하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목량은 그 이름을 아는 듯 눈이 커졌다.

제갈세가 가주의 둘째 아들.

몇 년 전만 해도 제갈세가를 지탱하는 세 명의 기재 중 하나로 이름이 높았다.

“정말 노형이 제갈세가의 둘째 공자십니까?”

“다 망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집안의 자식이 뭐 대단하다고 공자는 무슨…… 그냥 형씨라고 부르쇼.”

투덜거리던 제갈위종은 점소이가 술을 가져오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의 연화주는 맛이 정말 끝내주는데, 특히 향기가 죽인다오.”

그는 혁무천 일행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술을 따라서 마셨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뭔가 있군.’

제갈위종은 분명히 술을 많이 마셨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날 정도로.

하지만 비틀거릴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마음이 취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사람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취한 척하고 싶을 때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취하고 싶어서.

혁무천이 제갈위종을 빤히 바라보는 동안 목량이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도 술잔을 목구멍 안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생각보다 독한 술이었다.

그래도 제갈위종의 말처럼 향기 하나는 몽롱한 느낌이 들 정도로 끝내주게 좋았다.

 

제갈위종은 연화주를 혼자 세 병이나 마신 후에야 술 마시기를 멈추었다.

요리도 접시 다섯 개가 빈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왜? 더 마시지.”

동대안이 그를 째려보며 비꼬듯 말했다.

제갈위종도 말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동대안을 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

“내가 뭐 술꾼인 줄 아시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갑시다.”

“어딜……?”

“내가 제갈세가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래봬도 약속 하나는 칼인 남자요.”

동대안이 혁무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혁무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밤을 제갈세가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정말 갈 건가?”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와룡의 구중심처를 구경해볼 수 있겠소?”

담담히 대답한 혁무천이 제갈위종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대가 약속을 지키는 남자라고 생각했지. 앞장서게.”

 

제갈위종은 혁무천 일행을 선착장으로 데려갔다.

제갈세가로 가려면 먼저 한수를 건너야 했다.

그 후로도 삼십 리는 걸어야 한다.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상태여서 선착장의 도선은 이미 철수한 후였다. 그런데도 제갈위종은 용케 배 하나를 물색했다.

물론 돈은 혁무천이 냈다. 낮에 비하면 도선비가 배는 더 비쌌다.

 

***

 

한 시진 후.

제갈위종을 따라간 혁무천 일행은 거대한 장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현판에 ‘제갈세가’라는 글씨가 용사비등한 서체로 적혀 있었다.

그곳이 바로 백 년 전만 해도 천기제일가로 명성을 날리던 제갈세가였다.

“어이쿠! 공자님, 어디를 다녀오십니까?”

정문위사가 제갈위종에게 다가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누가 날 찾던가?”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낮에는 가주님도 찾으셨고, 총관 어른은 물론 장로님들도…….”

그때였다.

“이놈!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게냐! 경사를 앞두고 어른들이 모두 모여 있거늘, 오빠라는 놈이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우다니!”

안쪽에서 사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노기 가득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나왔다.

“아, 넷째 숙부님. 친구들을 만나려고 번성에 갔다 왔습니다. 하하, 하, 하!”

“친구를 만나러 가? 흥! 그게 아니라 술 처먹으러 갔겠지!”

“제가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 해도 어찌 숙부님께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친구들이 연아의 혼인에 참석한다고 해서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중년인은 싸늘한 눈으로 혁무천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곧 점점 표정이 변했다.

번성이나 양번 어디에서 뒷골목 패거리들을 데려온 줄 알았다. 여차하면 작신 혼을 내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덩치가 뒷산만큼이나 큰 청년, 눈이 콩알처럼 작은 장한,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져 있긴 해도 감탄이 나올 만큼 잘생긴 청년, 기도가 들고 있는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청년, 그 외의 청년들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게다가 한둘도 아니고, 일곱 명이나 되지 않는가 말이다.

“하, 하, 하. 뭐 하나? 어서 인사드리게. 이 제갈위종의 넷째 숙부님이시네.”

제갈위종이 재빨리 혁무천 일행을 인사시켰다.

혁무천 일행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제갈진수도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게. 이 아이의 숙부 되는 제갈진수라 하네. 본 가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세. 숙부님, 친구들을 객방으로 데려가겠습니다. 먼 길을 와서 피곤할 테니 쉬게 해야지요.”

“으음, 알았다. 그리해라.”

“따라오게. 방으로 안내해주겠네.”

제갈위종은 혁무천 일행에게 손짓을 하고는, 재빨리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제갈진수는 그런 제갈위종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의문이 남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루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혁무천은 제갈위종을 따라가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를 방패로 삼으려고 했던 거였나?’

아마 혼자 돌아왔다면 혼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제갈세가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듯했다.

‘과연 제갈세가의 자식답게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군.’

하지만 제갈위종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구경이나 하려고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걸.

 

마도에 밀려 영광이 퇴색되었다 하나 제갈세가 역시 한때는 팔대세가 중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이름을 떨친 곳이었다.

특히 무공 외에도 학문과 병법에 뛰어나서 황궁의 고위직에 많이 진출해 있었다.

마도의 혈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 컸다.

더구나 마도가 득세한 지금은 아예 무공보다 학문에 치중해서 마도 세력들도 어느 정도 경계심을 낮춘 상태였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객당은 정문에서 삼십여 장쯤 들어간 곳에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빈방을 알아보겠소.”

제갈위종은 혁무천 일행이 쉴 방을 알아보았다.

사람이 일곱 명이나 되어서 방을 두 개는 잡아야 했다. 여자인 영추문의 방을 따로 잡지 않는다 해도.

그런데 제갈위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혁무천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이십 대 중반쯤 되는 여자였다. 여자치고는 키가 제법 컸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아름답다기보다는 강한 느낌이 드는 여자.

그녀가 맑고 고운 목소리로 물었다.

“위종 오라버니와 함께 오신 분들인가요?”

혁무천이 대답하기 전에 목량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그렇습니다, 소저.”

아마 혁무천이 대답했다면 반말로 대했을 게 뻔했다. 남의 집, 그것도 제갈세가에서 그랬다가는 자칫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게다가 무천의 정체를 알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질지 몰랐다.

“술 마신 것 때문에 혼날까봐 데려오셨나 보군요.”

제법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게다가 말하는 투를 보니 성격도 직선적이었다.

“혹시 오지 않으려 했는데 오라버니 때문에 억지로 오신 건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 소저. 저희도 제갈세가를 구경하고 싶어서 따라왔습니다.”

“오라버니가 손님과 함께 온 것은 오늘이 두 번째예요. 전에는 어떤 날건달을 데려왔는데, 오늘은 흥미로운 분들을 모셔온 것 같군요.”

여인이 당당한 태도로 말하고는 혁무천을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저는 제갈예경이라고 해요.”

혁무천도 어쩔 수 없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무천이다.”

역시나 반말.

목량은 쓴웃음을 지으며 언제든 끼어들 준비를 해두었다.

“아, 혹시 마룡선발대회의 무천?”

역시 제갈예경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마룡선발대회는 강호 청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일 중 하나였다.

“맞아.”

이번에도 혁무천이 툭 쏘듯 대답했는데,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제갈예경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와아,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이현처럼 그녀도 혁무천을 밝은 표정으로 대했다. 그리고 이현의 부인처럼 순위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어떤 남자기에 강동일화를 무시했는지 궁금했거든요.”

강하게 보이긴 해도 그녀 역시 여자인 모양이다.

그런데 여자는 정말 그게 그렇게 궁금할까?

“내 여자가 아니라서 신경 쓰지 않은 것뿐이야.”

“세상에 무 공자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아마 우문소소가 웃으며 손짓하면 많은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따라갈 걸요?”

그녀는 세상의 남자들이 들으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반발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하지만 혁무천의 일행 누구도 그녀의 말에 반발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때 혁무천의 뒤쪽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 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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