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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3화

113화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천화광의 옆에 뒷짐 진 노인이 서 있었다.

나이가 짐작이 안 될 정도로 주름이 많은 노인이었다. 심지어 눈꺼풀은 마치 접선(摺扇)을 접어놓은 것만 같았다.

그래도 허리는 꼿꼿했는데, 얼굴에 고집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화광이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면 아마도 만마성의 최고위 원로가 아닌가 싶었다.

“천 형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습니다만.”

“허락? 누구의 허락! 이 아이는 그런 허락을 내릴 자격이 아직 없느니라!”

혁무천은 버럭버럭 소리치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옮겨 천화광을 바라보았다.

누구냐는 듯.

천화광이 눈치 빠르게 전음으로 말해주었다.

<본 성의 최고 원로이시고, 나에게는 고조부가 되시는 분이시네. 백 세가 훨씬 넘으신 분이지.>

그 나이에 저리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다니.

참 정력이 대단한 노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지만 안에서 아무 것도 손대지 않았고, 갖고 나온 것도 없으니 이번 한 번은 봐주시지요.”

혁무천은 포권을 취하며 일단 숙이고 들어갔다.

이곳은 만마성의 대지. 일이 커지는 것은 그도 바라지 않았다.

“뭐라? 봐줘? 이놈! 선조의 묘에 함부로 들어간 것이 어떤 죄인지 아느냐!”

“모르고 행한 일이니 한번쯤은 선처해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뻣뻣하게 보이는 자세가 노인의 화를 더욱 돋웠다.

“이노오옴! 설마 저 묘가 본 성 선조님의 묘라는 걸 모르고 들어가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것이 아니라…….”

“더 말할 필요 없다! 광아는 저놈의 혈도를 제압해라! 저지른 죄에 대한 판단은 성으로 가서 내릴 것이니라!”

“고조부님…….”

“왜, 네놈도 함께 벌을 받고 싶은 것이냐?”

“…….”

천화광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자, 혁무천이 그를 변호했다.

“이번 일은 제가 천 형에게 부탁해서 벌어진 것이니 잘잘못은 저에게 물으시지요.”

“흥! 꼴에 친구라, 이거냐? 네가 정말 잘못을 인정한다면, 친구를 위한다면… 스스로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잘라라!”

“…….”

“그건 못 하겠나 보구나. 친구? 흥! 친구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놈이 무슨 친구?”

씁쓸하게 가라앉았던 혁무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굳어졌다.

노인이 계속 고집을 피운다면 정면돌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진다고 하던데, 노인장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군요.”

“뭐, 뭐라고?”

“노인장의 친구 중 노인장을 위해서 손가락 자른 분이 있습니까? 그것도 지금처럼 무덤 한번 구경한 걸로 말입니다.”

“이, 이, 이놈이……!”

“없으신가보군요. 백 세를 넘었다 하니 살 만큼 사신 분 같은데, 꼭 손자의 피를 구경하고 싶습니까?”

뭐가 어째? 살만큼 살아?

이제 죽을 때가 다 된 노인이 왜 지랄을 떠냐, 그런 말처럼 들렸다

노인, 천두공은 노화가 활활 타올라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네, 네, 네놈이 어디서……!”

“할 말이 없으시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 형, 그럼 다음에 보세.”

말 몇 마디로 천두공의 정신을 흔들어 놓은 혁무천은 어영부영 작별인사를 하고 훌쩍 솟구쳤다.

입구 쪽에서 경비무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더 있다가는 정말 끌려가든가, 아니면 큰 싸움이 날 듯했다.

“갈-!”

천두공이 일갈을 터트리며 혁무천의 뒤를 쫓아 신형을 날렸다.

천화광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후우우우, 골치 아프게 됐군. 하필이면 고집불통인 고조부님이 이곳에 오시다니.”

허공으로 솟구친 혁무천은 곧장 초월영을 펼쳐서 협곡을 둘러싼 산능선을 타넘었다.

천두공도 노인답지 않게 가공할 경공을 펼치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만만치 않은 노인이군.’

혁무천도 천두공이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 세가 넘은 노인이 뭐 저리 힘이 넘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저렇게 씩씩거리며 쫓아오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자신이 덤터기를 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마침 평평한 공터가 나오자 혁무천이 걸음을 늦추었다.

그 사이 천두공이 그를 바짝 따라잡았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이 삼 장여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이놈! 이제 더는 도망가지 못하겠더냐?”

천두공이 득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굴이 상기된 걸 보니 제법 많은 공력을 소모한 듯했다.

하긴 나이가 들면 공력은 높아질지 몰라도 지구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공력이 그 지구력을 보완하기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혁무천의 뒤를 바짝 따라오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을 터, 공력의 소모가 많을 수밖에.

혁무천은 솔직하게 멈춘 이유를 말해 주었다.

“노인장이 달리다가 쓰러질지 몰라서 멈춘 겁니다.”

“……!”

“쓰러져서 다시 못 일어나시기라도 하면 만마성이 저를 탓할 거 아닙니까?”

천두공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붉어졌다.

이번에는 육체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노화가 치민 것일 뿐.

“이 때려죽일 놈이……!”

이를 갈 듯 말하던 그가 혁무천을 향해 쇄도했다.

힘들여 땅을 차지도 않았는데, 주욱, 미끄러져 가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동시에 주름진 손을 들어서 혁무천을 향해 뻗었다.

후우우우웅!

강력한 장세가 대기를 일그러뜨리며 혁무천을 뒤덮었다.

혁무천은 동요하지 않고 쌍수를 쳐냈다.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구구궁!

둔중한 폭음이 연속적으로 울리더니 천두공의 기운이 뒤로 밀려났다.

그제야 천두공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젊은 놈이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천하의 젊은 놈들 중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손자 놈과 친구 먹은 놈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다그치며 몰아붙일 때의 기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던 놈이었다.

최소한 절정고수 이상.

그렇게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정면으로 대해보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노인장은 몰라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만마총에서부터 자신을 노인장이라고 불렀다.

노인이니 노인장이라 부르는 것일 텐데도, 왠지 기분이 상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까마득한 어른에게 노인장이라니!

돼먹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

천두공은 공력을 더 끌어 올려서 혁무천을 공격했다.

죽이기보다는 살려서 끌고 가려는 마음이 앞섰기에 살기는 덜했다.

그러나 살기만 덜할 뿐 위력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혁무천은 무기를 뽑지 않고 적수공권으로 천두공을 상대했다.

천두공이 지구력은 약할지 몰라도, 그가 펼친 장력의 위력만큼은 지금까지 혁무천이 상대한 그 누구보다 강했다.

콰과과광!

굉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며 일대의 대지가 들썩거렸다.

구름처럼 피어 오른 먼지가 회오리치는 기의 폭풍 속으로 휘말려들면서 두 사람의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진 혁무천이 작정하고 지옥명화공을 실어서 일장을 내갈겼다.

고오오오!

먼지구름으로 뿌옇던 공간에 구멍이 뻥 뚫렸다.

천두공도 지금까지의 공격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전력을 다해 마주쳐갔다.

콰아앙!

일성 굉음이 울리자마자, 혁무천이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번에는 천두공도 뒤를 쫓지 않았다.

나이를 많이 먹긴 했어도 만마성의 고수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가끔씩 나이 먹은 노고수들이 쇠락해서 젊은 놈에게 당하는 걸 보면, 평소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새파란 놈에게 밀렸다.

겉으로는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숨이 턱 막혀서 아마 놈이 한번만 더 공격했다면 위기에 처할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이 마지막에 펼쳤던 일장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눈에 익은 장법 같은데…….’

최근에 대해본 것이 아니다.

까마득한 시절 언제인가 그런 장법을 봤던 것 같다.

그 의문이 분노조차 삼켜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모습도 꼭 언젠가 본 것 같군.’

이마를 찌푸린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천두공에게서 벗어난 혁무천은 곧장 수주로 갔다.

천두공이 만마성 무사들을 동원하면 일이 커질 터, 그 전에 수주를 떠나야만 했다.

동대안은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혁무천을 보고 안도했다.

‘다행히 그 자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 같군.’

그런데 그 생각을 속으로만 했어야 하는데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천화광하고는 아무 일 없었지?”

“조금 소란스런 일이 있긴 했는데, 그 일은 동 형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소란스런 일?

신경 쓰지 말라고?

‘설마……?’

“그만 갑시다.”

“어? 어. 가세.”

동대안은 혁무천을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방을 나섰다.

 

***

 

수주를 나선 혁무천은 북서쪽으로 향했다.

길을 나선 김에 마천문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곳에도 혈천여록의 조각이 없다면, 정체 모를 누군가가 혈천여록을 모두 얻었다고 봐야 했다.

그 안에 적혀 있는 미완성의 마공까지.

삼뇌자를 통해서 글을 해독하는 방법도 알아냈을 테니까.

혁무천으로선 그리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막아야 한다.

미완성의 마공은 말 그대로 지옥의 마공이다.

그 마공을 익히면 이지를 상실하고 피를 갈구하는 마인, 아수라가 된다.

더구나 수련방법만 알면 익히기도 어렵지 않아서 수많은 마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강호 무림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수주를 막 벗어난 혁무천은 문득 그 생각이 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우,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마공을 적어 놓은 건지…….’

순간, 머릿속이 찡하니 울리면서 눈앞이 번쩍거리는 듯했다.

전부터 가끔 겪는 일이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강했다.

그런 충격이 느껴지는 것은 과거의 일을 생각할 때였다. 그것도 마천제로서 만인혈사를 일으킬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때.

더 이상한 것은, 그러한 충격을 겪고 나면 머릿속에서 단단한 뭔가의 껍질이 깨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대법으로 인한 부작용은 아닌 것 같고…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모르니 답답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

그때 장평이 물었다.

“사천으로 갈 거요?”

“그래. 왜? 가기 싫은가?”

장평을 만난 곳이 사천 면양이다.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평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싫을 것도 없소.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다행이군. 귀찮다고 피하려고만 하면 평생을 피해 다녀야만 하지.”

장평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자세로 콧등을 두어 번 씰룩이더니 시선을 내려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무 형 말이 맞소. 앞으로 나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오.”

표정이 전보다는 조금 밝아진 것처럼 보였다.

 

혁무천 일행은 다음 날 오후 석양이 질 무렵 번성에 들어섰다.

한수 건너편 양번은 한때 와룡의 대지라고 불렸던 곳이었다.

제갈세가가 황제처럼 군림했던 곳.

그들이 진짜 제갈량의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들이 강호 제일의 두뇌를 지녔다는 것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야이, 개자식들아! 니들이 술 안 준다고 내가 못 마실 줄 알아!”

대로를 걷던 혁무천 일행은 갑자기 들리는 고함에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이 객잔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쉬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객잔에서 쫓겨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이제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쯤?

제법 준수한 얼굴이었는데, 술에 잔뜩 취한 모습이었다.

구시렁거리며 욕을 하던 그가 혁무천 일행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다가왔다.

“어? 이보쇼, 나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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