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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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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0화

110화

 

 

영무천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서 방문을 노려보았다.

‘설마 내가 입술 내민 걸 보진 못했겠지?’

괜한 우려에 가슴이 벌떡 벌떡 뛰었다.

만약 봤다면 무슨 창피야?

다행히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듯 담담히 말했다.

“왔군.”

‘휴우.’

안도한 영추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혁무천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추문, 왜 입술을 내밀었지? 배가 고픈가?”

‘윽.’

영추문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휘청거리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한편으로는 눈치코치 없는 혁무천이 불쌍했다.

‘바보 같기는! 그것도 몰라? 그러니 은설이 떠나지!’

속도 모르고 혁무천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마침 밖에서 유안이란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 부당주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와.”

덜컹.

방문이 열리고 유안이란 자가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과 함께 들어왔다.

 

관응은 유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혈왕동의 쌍마괴가 무천이란 자와 그 일행에게 패해서 도망쳤다니.

잠꼬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하지만 죽을 뻔한 이충을 구해준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속는 셈 치고 유안을 따라왔다.

그런데 밖에서 본 자도 그렇고, 방 안에 있는 자들 역시 자신보다 약하게 느껴지는 자가 없었다.

‘도대체 이자들의 정체가 뭔데……?’

관응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혁무천을 살펴보며 포권을 취했다.

“관응이라 하네. 그대가 충 아우를 구해줬다 들었지. 고맙네.”

“늙은 개에게 물려죽기에는 아까운 사람 같아서 도와준 것뿐이오.”

늙은 개라…….

아마도 쌍마괴를 말하는 것 같다.

천하에서 쌍마괴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쌍마괴는 지금 혈왕동을 대표해서 온 능화 대공자와 함께 본 성에 있네. 그자들과 마주쳐봐야 좋을 것 없을 테니 바로 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이야.”

“나 역시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소.”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들었네만. 말해보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뭐든 도와주겠네.”

“천화광에게 내가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시오.”

관응도 유안에게 그 말을 듣긴 했다.

그런데 정말 천화광과 잘 아는 사이일까?

쌍마괴를 물리친 걸 보면 허튼 소리나 지껄이는 놈 같지는 않은데…….

“그 말만 전하면 되나?”

“그렇소. 아마 그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거요.”

“알았네. 대공자께 그리 전하지.”

그때였다.

혁무천의 두 눈에서 차가운 한광이 번뜩였다.

“꼬리를 달고 오셨군.”

“무슨 말인가?”

관응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혁무천은 그의 눈빛이나 표정에 거짓이 없음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

“꼬리를 말고 도망갔던 미친개가 냄새를 맡은 것 같소.”

“무슨……?”

그 순간, 밖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네놈들이구나!”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

관응의 고개가 방문 쪽으로 돌아갔다.

문득 혁무천이 조금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꼬리를 말고 도망쳤던 미친개.

‘설마……?’

이번에는 동대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누구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튀었던 노인네들이잖아?”

제법 큰 목소리. 아마도 혁무천에게 들으라는 말인 듯했다.

“이 죽일 놈이!”

“흥! 죽긴 누가 죽어? 늙은이나 도망가지 마셔!”

“오냐, 이놈! 오늘 네놈의 가죽을 벗기고 말겠다!”

욕설과 고함에 이어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혁무천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

객잔의 마당에서 동대안과 청마괴가 한바탕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칠팔 명이 한쪽에 서 있었다.

방을 나선 혁무천은 한쪽에 서 있는 자들을 쳐다보았다.

삼사십 대의 무사 여섯 명이 핏빛처럼 붉은 비단 무복을 입은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을 호위하고 있었다.

홍마괴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혁무천에게 당한 내상 때문에 오지 못한 듯했다.

“헛! 능 공자가 어떻게 여길……?”

나중에 나온 관응이 청년을 보고 놀라서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혁무천은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을 응시했다.

‘저자가 혈왕동주의 아들인 능화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 올라간 눈초리,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얀 얼굴. 얇고 끝이 아래로 꺾인 입술은 오만하고 냉혹한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귀하는 가서 천화광에게 내 말을 전하시오.”

“괜찮겠나?”

“만마성의 입장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

“…….”

자신이 염려하는 사람은 능화가 아닌데…….

관응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고 뒤로 빠졌다.

그때 능화가 고개를 혁무천 쪽으로 돌렸다.

“어떤 놈이 무천이란 놈이냐?”

혁무천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죽이진 않아도 이빨 몇 개는 뽑아줘야 할 것 같군.”

능화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혀가 짧으면 이빨이라도 없어야 뺨을 맞아도 덜 다치지.”

이마를 찌푸린 능화의 눈초리가 서서히 솟구치고, 눈에서는 붉은 기가 휘돌았다.

혁무천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것이다.

“이 찢어 죽일 놈이, 어디서 감히……!”

분노한 그를 대신해서 호위무사 셋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곧장 혁무천 쪽으로 날아가며 무기를 뽑았다.

혁무천 쪽에서도 장대산과 영추문, 강탁이 나섰다.

“죽이진 마라.”

“어, 알았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장대산이 먼저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에서 휘둘러진 머리통만 한 주먹이 바람을 부수며 날아들자, 마주친 호위무사가 다급히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팔뚝을 후려쳤다.

하지만 칼날이 오히려 튕겨나가고, 주먹은 그대로 상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대경한 호위무사는 허공에서 급히 몸을 틀며, 나머지 손을 펴서 장대산의 주먹을 막았다.

퍽!

튕겨지듯 날아간 호위무사가 겨우 내려서서 비틀거렸다.

그 사이 영추문과 강탁이 나머지 두 호위무사를 상대하며 몰아붙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머지 호위무사들도 마저 나섰다.

능화의 호위무사들이 일류고수라 하나 장대산과 영추문, 강탁을 맞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탁을 상대하는 자만이 숨 쉴 여유가 있을 뿐, 장대산과 영추문의 상대들은 몇 초식 겨뤄보지도 않았는데 기가 질린 상태였다.

그나마도 둘은 더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능화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호위무사들이야 죽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할 그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서 혈왕동과 자신이 창피를 당한다는 것이다.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그는 영추문을 향해 발을 내딛으며 쌍장을 뻗었다.

영추문의 권각술이 괴이하고 빠르긴 하나, 칼을 맞고도 끄떡없는 커다란 곰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후우웅!

영추문을 향해 쳐낸 그의 쌍장에서 붉은 기가 일렁거렸다. 혈왕동의 삼대 마공 중 하나인 혈혈마공을 일으킨 것이다.

영추문도 그의 강함을 눈치 채고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떠더더덩!

눈 한 번 깜짝할 순간에 십여 번의 격돌이 이루어졌다.

석 자의 거리를 두고 기운만 충돌했는데도 영추문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빌어먹을! 공력에서 딸려.’

초식만 논한다면 지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공력이었다.

상대는 혈왕동의 소주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공력을 높였을 터. 어쩌면 당연한 차이였다.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씨. 애비란 놈이 공력에 좋은 것을 엄청 처먹인 모양이네.’

능화도 놀란 마음은 비슷했다.

옆에서 볼 때만 해도 조금 괴이한 권각술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대해보자, 이건 괴이한 걸 넘어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종잡을 수 없는 방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공격에 살을 에는 날카로운 기운마저 숨겨져 있었다.

아차, 실수하는 순간 창피를 당할지도 모를 일.

능화는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려서 영추문을 압박했다.

후우웅.

떠더더덩!

쌍장에서 발출된 혈기에는 바위도 으스러뜨리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영추문의 손발이 쇠처럼 단단하다 해도 연속된 공격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입술도 파리해졌다.

반면 능화의 입가에는 살소가 떠올랐다.

“건방진 놈들. 그 따위 실력으로 감히 우리 혈왕동을 농락했더냐?”

그때 혁무천이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능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일장을 쳐냈다.

고오오오오.

웅혼한 장력이 삼 장 거리를 좁히며 밀려갔다.

능화도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장력을 눈치 채고, 영추문을 놔둔 채 두어 걸음 옆으로 피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계집이 울고 갈 정도로 잘생긴 자였다.

“본 공자는 혈왕동의 능화라 한다. 네놈이 무천이란 놈이냐?”

“맞아.”

“어디에 속한 놈이냐?”

“너 따위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

“이 건방진 놈이……!”

땅을 박찬 능화가 혁무천을 향해 달려들며 두 손을 뻗었다.

그의 장심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왔다.

동대안과 치열하게 싸우던 청마괴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공자! 조심하시게!”

능화도 듣긴 했다. 홍마괴가 무천이란 자에게 당했다는 걸.

하지만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홍마괴가 쪽팔려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당했다고 했을 뿐.

“이놈! 심장을 부숴주마!”

냉랭히 소리친 그는 혈혈마공이 실린 장력을 쏟아냈다.

혁무천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천망검을 밀어올렸다.

보는 사람이 많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낼 생각이었다.

툭!

천망검이 느릿하게 허리춤에서 솟구쳤다.

너무 느려서 하루가 흘러도 다 뽑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능화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함에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다물었다.

괴이하게도 자신의 장력이 더욱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쌍장이 하루가 다 흘러도 상대의 가슴에 닿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이런……!’

이를 부서지도록 악다문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상체를 틀며 쌍장을 교차시켜 쳐냈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의 검에 목이 날아갈 것처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쉬아아아악!

한 줄기 광채가 벼락처럼 스쳐 지나가고, 잘린 머리카락이 너풀거리며 허공에 날렸다.

능화는 검이 지나간 후 남은 여운에 전율이 일었다.

심장이 그대로 멈추는 듯했다.

아마 상체를 틀지 않았다면 정말 목이 잘렸을지도 몰랐다.

혈혈마공을 십성 끌어올려서 쳐냈는데도 검기가 스치고 간 쌍장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듯했다.

반사적으로 일 장가량 물러선 능화는 눈을 부릅뜨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자리에 서서 검을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보고 있으니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연환 공격을 펼쳤을 것이다.

스쳐가는 검의 방향을 틀어서, 자세가 틀어진 상대의 몸을 갈라버리려 했을 것이다.

그럼 피한다 해도 지금보다 훨씬 큰 부상을 당했을 텐데…….

저자가 그걸 몰랐을까?

그럴 능력이 정말 없었던 걸까?

“관응과 약속했으니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겠다. 돌아가라.”

혁무천이 그에게 말했다.

그제야 능화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고 이를 갈았다.

저자는 연환 공격을 펼칠 능력이 되는 데도 봐주었던 것이다.

속으로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식었던 피가 끓었다.

“이놈, 무기를 들고 약간 이득을 보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가 보구나! 본 공자도 검으로 상대해주마!”

이를 갈며 으르렁거린 그가 등 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았다.

“싫다면 할 수 없지. 안 그래도 아쉬웠는데. 이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은 네 탓이라는 것만 알아라.”

혁무천은 잘 됐다는 듯 능화를 향해 성큼 걸음을 뗐다.

화아악!

거대한 기세가 해일처럼 밀려갔다.

눈을 홉뜬 능화는 검을 움켜쥐고 해일 같은 기세를 향해 쇄도했다.

혈혈마공이 주입된 그의 검에서 붉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죽어라, 개자식!”

붉은 검기가 뭉치면서 핏빛 검화가 하나 둘 피어났다.

처절한 살기를 띤 검화가 순식간에 십여 개로 늘어났다.

허공 가득 진득한 혈향이 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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