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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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동대안의 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슈슈슈슉!
순간적으로 십여 번의 검격이 여치를 향해 뻗어나갔다.
꼬챙이처럼 가느다란 검에서 뻗어나간 검기가 눈 깜짝할 순간 여치의 몸에 대여섯 개의 구멍을 냈다.
무공을 따져도 여치보다 한 수 앞선 동대안이었다.
거기다 분노해서 전력을 다했으니 여치에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이, 이, 이런 빌어먹을…….”
여치가 피분수를 뿜어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동대안은 그런 여치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퍽!
여치의 몸이 이 장이나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든 그가 히죽 웃었다. 괴인은 괴인이었다.
“네, 네놈들도… 곧 죽을 거…. 지옥에서… 기다리…….”
동대안이 침을 퉤 뱉고는 욕을 퍼부었다.
“너나 지옥에 가라, 개 같은 놈아.”
그때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혈혼귀마의 스승이 혈왕동의 장로인 쌍마괴입니다. 쌍마괴가 제자의 죽음을 안다면 골치 아파질 수 있습니다.”
쌍마괴는 중원팔마에 속한 초절정고수다. 둘이 합공을 하면 절대경지의 고수도 상대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목량이 걱정하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 그들이 혈왕동의 장로라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혈왕동 전체가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혁무천이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고 식사나 하러 가자.”
태연한 그의 말에 중년무사가 정신을 차렸다.
쌍마괴라는 말이 나오자 오금이 저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만마성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었다. 여치를 죽인 것도 다른 사람들이고.
“범인을 잡아줘서 고맙소. 그런데 뉘신지 알아야 보고를…….”
“무천이오. 범인은 귀하가 찾아낸 것으로 하시오. 죽인 것은 우리라고 하고.”
중년무사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범인을 찾아낸 것만 해도 작지 않은 공이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소?”
“사실이잖소?”
“하하, 이거 미안해서…….”
“미안하면 이 근처에서 맛있는 요리를 하는 곳이나 추천해주시오.”
중년무사는 바로 손을 들어서 대로 저 끝을 가리켰다.
“저 끝자락쯤 가면 대웅객잔이 있소. 그곳의 잉어요리가 끝내주지요.”
혁무천 일행은 대웅객잔에 가서 잉어요리를 시켜놓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객잔 안에 있는 사람 절반은 잉어요리를 먹는 듯했다. 그 중년 무사의 말대로 잉어요리가 이 객잔의 장기인 듯했다.
그런데 점소이가 막 잉어요리를 가져다 놓았을 때였다.
우당탕.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객잔을 소개해주었던 만마성의 중년무사였다.
뒤따라서 두 노인이 들어오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놈들이냐?”
중년무사가 혁무천 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저, 저기…….”
퍽!
노인 중 핏빛 장포를 걸친 노인이 중년무사의 등을 후려쳤다.
“컥!”
외마디 비명을 지른 중년무사는 피를 토하며 앞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핏빛 붉은 장포를 걸친 노인과 파랗다 못해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장포를 걸친 노인은 곧장 혁무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리를 먹던 자들은 중년무사가 죽는 걸 보고 앞다투어서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두 노인은 혁무천 일행 앞까지 다가갔다.
붉은 장포를 걸친 노인이 먼저 물었다.
“네놈들이 내 제자를 죽였느냐?”
혁무천은 즉사한 중년무사를 보고는 두 노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한광이 그의 눈에서 쏟아졌다.
“혈왕동에 늙고 미친 개 두 마리가 있다더니 당신들인가 보군.”
“이 찢어죽일 놈이……!”
홍마괴 어등산의 눈초리가 관자놀이를 향해 솟구쳤다. 쭉 찢어진 두 눈에서는 광폭한 살기가 일렁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혁무천이 한마디 더했다.
“미친개 같은 눈깔을 보니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 같아.”
“그 죽은 놈들 중에 곧 네놈도 포함될 거다.”
“동 형, 어떤 늙은이를 맡을 거요?”
“아, 젠장! 미친 늙은이들이 밥도 못 먹게 하네. 잉어요리는 따뜻할 때 먹어야 제 맛인데.”
동대안이 투덜거리자, 청마괴 고복이 이를 갈며 옆구리에서 기형병기를 빼들었다.
“오냐, 이놈들. 모두 갈가리 찢어서 개밥으로 만들어주마.”
“이 늙은이는 입으로 싸우나?”
동대안이 버럭 소리치고는 청마괴를 향해 몸을 튕겼다.
동시에 섬혼이 뽑히고, 벼락이 뻗어나갔다.
쐐액!
마치 코앞에서 화살을 쏜 듯했다.
막 앞으로 나오려던 청마괴가 다급하게 몸을 틀어서 피했다. 여치와 다른 점이라면, 피하면서도 반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독수리 발톱을 본 따서 만든 응살조라는 기형병기가 사선으로 허공을 갈랐다. 제대로 걸리면 온몸이 걸레처럼 찢겨져나가는 악랄한 병기였다.
동대안도 상체를 좌우로 흔들어서 피하고는 재차 섬혼을 내질렀다.
광혼검 이십팔식 중에는 몸을 틀면서 전개하는 검초가 있었다.
벼락같은 쾌검이었는데, 처음부터 그 검초를 펼치려고 한 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더구나 단순히 검초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 십여 개의 검영이 생기면서 눈을 현혹시켰다.
“헛! 이놈이!”
청마괴는 몸을 옆으로 튕기면서 동대안의 공격을 벗어났다.
하지만 동대안은 포기하지 않고 연이어서 광혼검을 펼쳤다.
상대는 혈왕동의 초절정고수. 강호의 칼밥을 수십 년 씹어 먹은 마두였다.
한순간의 여유만 줘도 선공으로 겨우 잡은 우세를 잃을 터. 동대안은 일검, 일검에 전력을 다했다.
덕분에 객잔 안이 검기가 날아다니는 전장으로 변했다.
“네놈의 주둥이는 내가 찢어주마!”
홍마괴도 혁무천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슈앙!
아무 것도 없던 손에서 칼날이 솟아났다.
손등에서 갑작스레 솟아난 기다란 칼날은 곧장 혁무천의 심장을 가를 것처럼 떨어졌다.
암암리에 지옥명화공을 끌어올리고 있던 혁무천은 좌수를 마주 뻗었다.
누가 봐도 무모하게 보이는 행동이었다. 맨손으로 초절정고수의 검을 상대하다니.
홍마괴도 살소를 지으며 혁무천의 손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칼날이 그대로 혁무천의 손목 쪽으로 꺾어졌다.
순간, 혁무천도 손목을 비틀면서 칼날을 움켜쥐었다. 지옥명화공이 실린 그의 손은 철갑보다도 더 강했다.
콰직!
절정고수의 공력이 실린 칼날이 손바닥 안에서 옴짝달싹 못했다.
동시에 혁무천의 우수가 홍마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설마 자신의 칼을 맨손으로 잡을 줄이야!
눈을 부릅뜬 홍마괴가 당황해서 다급히 좌수를 들어 막았다.
그러나 혁무천의 우수에 실린 가공할 장력은 홍마괴의 손바닥을 부수고 가슴마저 두들겼다.
콰쾅!
따당!
칼날이 부러지고,
주르륵, 뒤로 물러선 홍마괴의 얼굴이 썩은 땡감을 베어 문 듯 일그러졌다.
손을 들어 겨우 막았지만 가슴뼈가 부러진 듯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밀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던 터라 마음까지 크게 흔들렸다.
거기다 부서진 손바닥에서 뒤늦게 극렬한 고통이 밀려들며 온몸이 떨렸다.
단 일수에 기가 질린 홍마괴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고가야, 나가자!”
겨우 목을 쥐어짜서 소리친 그는 곧장 객잔을 벗어났다.
청마괴 고복은 겨우 전세를 역전시키려는 상황에서 홍마괴가 도주하자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꼬챙이 같은 검을 사용하는 놈도 만만치 않은데, 믿기지 않게도 홍마괴가 몇 수 상대도 못해보고 도주했다.
그것도 부상을 당한 채.
‘제길!’
그는 응살조를 휘둘러서 동대안을 물러서게 만든 후 입구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망치지 말고 더 싸워보자, 파란 늙은이야!”
동대안이 청마괴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나중에 밀린 것이 약 올라서 해본 소리일 뿐.
혁무천은 쌍마괴가 도주하자, 쓰러져 있는 중년무사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듯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목량이 나서서 중년무사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내상이 심하긴 하나 다행히 치명상은 피한 상태였다.
목량은 품속에서 은색 통을 하나 꺼냈다. 뚜껑을 열고 통 안에는 가느다란 침을 꺼낸 그는 임맥을 따라서 침을 꽂았다.
“일단 충격은 완화 시켰습니다.”
“진기요상을 시행해도 괜찮겠나?”
“예, 대형.”
혁무천은 중년무사의 완맥을 잡고 진기를 주입했다. 부드러운 진기가 중년무사의 십이경맥을 따라 돌며 막힌 혈맥을 뚫었다.
그때쯤 객잔 안으로 몇 사람이 들어왔다.
만마성의 무사들이었다.
동대안과 영추문, 강탁이 나서서 그들을 막아섰다.
“워워, 우리가 그런 게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진기요상 중이니까.”
만마성 무사 중 삼십 대로 보이는 자가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저희도 압니다.”
그의 입술은 찢어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흘렀는지 옷에도 핏자국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한두 군데는 이상이 있는 듯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쯔쯔쯔, 그 늙은이들에게 맞았나 보군.”
중년무사, 이충은 진기요상을 시행한 지 일각쯤 지났을 때 정신을 차렸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말을 할 정도는 되었다.
“고맙소이다, 공자.”
“아직 맥이 불안정하니 며칠 요양하며 내상을 다스려야 하오.”
“말씀대로 하리다. 만마성 유마당의 이충, 비록 마도인이나 공자의 은혜를 잊지 않을 거요.”
마도가 득세한 후부터는 마인이 아닌 자들도 살기 위해서 마도에 몸을 많이 담았다.
이충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혈왕동의 쌍마괴가 촉산을 떠나서 왜 이곳에 왔는지 아시오?”
목량이 묻자, 이충이 힘겹게 대답했다.
“저희 만마성에 가던 길이라 했습니다. 혈왕동의 대공자가 오전에 이곳을 지나갔는데, 아마 뒤따라가던 길인 것 같습니다.”
목량이 고개를 돌려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마성에 가서 그들을 만나면 귀찮아질 것 같습니다만.”
혁무천도 귀찮아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현 상황에서 혈왕동과 충돌하는 것은 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은 천화광을 만나는 것이지 만마성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일단 수주에 간 다음 고민해보자.”
그때 이충이 말했다.
“유마당의 부당주이신 관응 형을 만나보십시오. 제 의형이십니다. 그분에게 제 이름을 대고 대공자께 연락해달라고 하면 해주실 겁니다.”
“유마당 부당주 관응?”
“예, 공자. 아! 그럴 게 아니라…… 유안.”
이충이 이름을 부르자,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장한 하나가 대답했다.
“예, 조장.”
“네가 이분들을 모시고 가서 부당주님을 만나게 해드려라. 이곳에서 벌어진 일도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조장.”
***
다음 날 오후, 수주에 도착한 혁무천 일행은 유안이라는 무사가 관응을 데려올 때까지 객잔에서 기다렸다.
처음에만 해도 말썽이 일어날까 봐 객방에서 지냈다. 그러나 석양이 질 시간이 되자 슬슬 지루해졌다.
특히 동대안은 혁무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탁도 이때다 싶었는지 따라 나갔다.
혁무천은 그들이 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놔두었다.
막상 만마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천화광이 친구를 하자고 했던 말, 자신이 수락했던 말도 떠올랐다.
설마 자신이 정말 천화광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미쳤지. 그 자식을 내가 왜 좋아해?’
은설이 신도평이란 놈을 부축하며 쳐다보던 표정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설아가 날 그렇게 쳐다보는 건 싫은데.’
그날 설아도 내가 떠난 걸 알았겠지?
설아는 내가 떠난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화가 난 것은 아니겠지?
날 미워하진 않겠지?
‘아무리 짜증이 났어도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야.’
그는 은설을 믿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은설은 자신을 친오빠처럼 좋아했다.
아니… 그냥 오빠로서 좋아했을 것이다.
‘어쩌면… 설아도 나를 한 사람의 남자로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피식, 혁무천은 실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혁무천은 눈을 감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설아는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복수고 지랄이고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젠장.’
그가 눈을 감은 채 은설의 백 가지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영추문은 그를 흘깃거리며 차를 두 잔이나 마셨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무슨 생각을 하는데 표정이 저렇게 자주 변해? 혹시…… 은설이라는 여자?’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고는 혁무천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순간, 혁무천이 번쩍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