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0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08화
108화
“뭐 좀 찾아보려고.”
혁무천이 책이나 다름없는 서류를 들춰 보며 답했다.
백리양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혹시 우리 비룡장에 들어와서 함께 해보실 생각은 없소? 만약 받아들인다면,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본 장 무력의 수장 자리를 내주겠소.”
한마디로 비룡장의 무력 총 책임을 맡기겠다는 뜻.
상인의 보수적인 성향을 생각한다면 백리양의 제안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백리양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검마보의 제안도 거절했던 사람 아닌가. 그 이전에는 철혈마련의 제안도 거절했다고 했고. 비룡장의 위세는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혁무천도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어떤 생각으로 인해 결정을 유보했다.
“한번 생각해보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
백리양의 표정이 밝아졌다.
절반쯤의 허락조차도 반가웠다.
혁무천을 끌어들이면 그와 함께 온 사람들도 합류할 것이다. 검마보주와 대등하게 싸운 동대안 같은 사람도.
비룡장의 무력이 질적 측면에서 전과 판이하게 달라질 터, 구룡상단에서 비룡장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붙잡아야 돼.’
백리양이 나간 후 동대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거절하지 않았나?”
“비룡장은 마도문파가 아니잖소.”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비룡장이라면 은설이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비룡장은 상인 세력이지 무림의 문파라고는 할 수 없잖은가?”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한 거요.”
비룡장이 상인이라는 것. 그게 두 번째 이유였다.
“나는 지금까지 강호를 움직이는 건 무력밖에 없다고 생각했소. 팔대마세나 마도십문이 천하정세를 장악한 것 역시 무력이 중심이고.”
과거 복수를 할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도의 힘을 모았고, 결국 만인혈이 흘렀다.
“그런데 어쩌면, 강호를 움직이는 건 무력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거야 뭐… 무력 외에 돈도 필요하겠지.”
“그래서 한번 알아볼 생각이오. 황금의 힘이 과연 강호에서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단순한 싸움과 전쟁은 다르다.
지금 강호의 상황은 문파끼리의 싸움이 아닌, 정파와 마도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까지 가세한다면 더 복잡해진다.
물론 강호가 어떻게 되든 자신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강호에 대한 욕심도 없고.
문제는 은설이 그 진흙탕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거 참… 돈과 관련해서는 나도 젬병이라…….”
동대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혁무천의 마음을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량은 혁무천의 말을 들으며 눈빛이 달라졌다.
“금전의 힘은 강호의 무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무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다 무공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그런데 무공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의 대부분은 금전으로 해결하죠.”
혁무천이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는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말하자면…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재미요?”
“이 세상이 마치 권력과 황금을 놓고 벌이는 장기판 같지 않아?”
***
동대안이 혁무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듯, 백리혜는 백리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왜 그 사람에게 그 자료들을 주신 거예요? 그 자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오빠가 잘 아시잖아요?”
백리양은 가벼운 기초자료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내부의 간부만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그 사람들.”
“물론 무천이라는 사람이 검마보의 장로를 제압할 정도고, 동대안이라는 사람이 검마보주와 삼십 초 대결을 벌일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어요.”
“사람을 봤잖아.”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알아요?”
“왜 겉모습만 봤다고 생각하지?”
“그렇잖아요. 그는 이름이 무천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어요. 무공이 뛰어나고 얼굴이 천하에 보기 드문 미남자이긴 하지만, 그것과 속마음은 또 다르잖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선 형을 구하면서 대가를 받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검마보에 가서는 율 보주와 맞서서 한 마디도 밀리지 않았다.”
“그거야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것을 보고 그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율 보주와 당당히 맞서는 것을 보고 그의 기개가 높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검마보의 보주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
“그리고 그는 실력이 있으면서도 남 앞에 먼저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곧 오만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거지. 솔직히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는 그의 크기를 짐작할 수가 없구나.”
백리혜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오라버니가 그렇게까지 평가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가요?”
그녀가 아는 백리양은 아직 기지개를 펴지 못한 잠룡이었다.
무공이야 강호무림의 내로라하는 청년고수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지략 면에서는 상대할 자가 거의 없었다.
특히 황금을 운용하는 일은, 천룡방의 금당주 조청연과 천화상단의 총관인 천면호리 유백리조차 위로 두지 않았다.
그런 백리양이 침을 튀겨가며 칭송하니 백리혜로선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백리양은 거기다 한술 더 떴다.
“만약 나에게 전권이 있다면… 나는 비룡장의 모든 것을 넘겨주는 한 있어도 그를 붙잡으려고 할 거다.”
“맙소사. 완전 빠졌군요.”
백리혜가 눈을 껌벅이며 탄식하듯 말하자, 백리양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빠졌다. 이 백리양이.”
“이러다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백리혜가 어이없다는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백리양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된다.”
“예? 설마……?”
“만약 내가 내민 조건을 아버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사람과 함께 갈 생각이거든.”
“…….”
***
혁무천은 그날 밤을 새며 만마성과 마천문에 대한 자료를 탐독했다.
책에는 방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직도, 건물의 배치, 주요인물의 특성, 일 년에 무엇이 얼마나 소모되고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등.
상가여서인지 무공에 대한 부분은 그저 명칭 정도만 적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 외의 내용은 이름조차도 생소한 것이 많아서 상가를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새삼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오죽하면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혁무천은 차분히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그 많은 걸 한 번에 다 외우지는 못하겠지만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읽은 것 중에 중요한 부분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날이 샜을 때 고개를 든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엄청나군. 만마성과 마천문이 이 정도라면, 철혈마련도 내가 본 것은 일부에 불과했던 거였어.”
만마성은 본 성의 상주 인원만 해도 오천 명이 넘었다. 그 중 무사는 이천이백여 명 정도. 말 그대로 하나의 성이었다.
거기다 지부까지 합하면 무사의 수만 오천에 달했다.
마천문은 만마성에 비해 규모가 조금 작았다.
그래도 상주 인원이 이천삼백에 무사가 일천이백, 지부까지 합하면 무사의 숫자가 삼천여 명 정도 되었다. 철혈마련과 비슷한 규모.
그 많은 인원이 맞물려서 돌아가려면 필요한 것도 많은 법이다.
과거 총군사라 할 수 있는 귀령자가 급조된 대마천을 이끌며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자신은 대마천의 운용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혁무천은 자료집을 읽고 현 강호의 상황을 조금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숨소리도 커졌다.
“후우우, 설아의 소원도 들어주고, 귀령자 할아버지의 빚도 받아내려면 발바닥에 땀 좀 나겠군.”
다음 날, 혁무천은 백리양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당장은 할 일이 있다. 자세한 것은 돌아와서 이야기하기로 하지.”
백리양은 혁무천의 말뜻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밝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나 붙잡을 수도 없었다.
“알겠소. 언제든 오시오. 기다리겠소.”
***
비룡장을 출발한 혁무천은 곧장 수주로 향했다.
만마성은 수주 서쪽의 태문산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만마성으로 가려면 수주를 거치는 게 가장 빠르고 편했다.
반나절 정도 북상한 그들은 오시가 막 지났을 때 효감현에 도착했다.
객잔을 찾기 위해 거리를 걷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 겁에 질린 얼굴도 보였다.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할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듯했다.
그 이유를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장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마당이 온통 시신과 시뻘건 피로 뒤덮여 있고, 그 혈겁의 현장을 대여섯 명이 오가고 있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만마성의 무사인 듯했다.
“이봐!”
안에서 마침 밖을 바라보던 마흔 전후로 보이는 중년무사 하나가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혁무천을 향해 소리쳤다.
혁무천도 안에서의 상황이 궁금했기에 잠시 기다렸다.
안에서 나온 중년무사가 혁무천 일행을 둘러보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어디서 온 자들이냐?”
“무창에서 왔소.”
“어디로 가는 길이냐?”
“만마성에 가는 길이오.”
중년인이 흠칫했다.
“만마성에는 무슨 일로……?”
“만마공자 천화광과 만나기로 했소.”
“…….”
중년무사의 기세가 곧바로 죽었다.
천화광의 이름을 대놓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는데, 만나기로 했다지 않는가 말이다.
“무슨 일이오?”
이번에는 혁무천이 뒷짐 진 자세에서 턱으로 슬쩍 안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중년무사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답했다.
“우가도방의 식솔 스물다섯 명이 죽었소.”
“범인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소.”
“저기 있잖소?”
“뭐요?”
“범인. 저기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오.”
중년무사는 혁무천이 턱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괴상하게 생긴 자가 담장 위에 앉아서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쯤? 오 척 단구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얼굴에도 붉은 칠을 하고 있었다.
그도 혁무천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킬킬킬킬, 내가 범인인 걸 어떻게 알았느냐?”
“손에 묻은 피나 닦아야 의심을 안 하지.”
“응? 그렇군.”
쓱쓱, 손에 묻은 피를 옷에 닦은 괴인이 담장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도망을 가는 게 아니라 혁무천 쪽으로 다가왔다.
“네가 범인이란 말이지!”
중년무사가 버럭 소리치고는 칼을 뽑았다.
그 사이 밖으로 나온 만마성의 무사들도 무기를 뽑아들고 괴인을 포위했다.
“물러서시오.”
혁무천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자, 중년무사가 멈칫했다.
“왜 그러시오?”
“다 죽고 싶소?”
“그건 아니지만…….”
“목량, 언젠가 저런 자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만.”
“예, 대형. 혈혼귀마 여치라는 자입니다.”
그 말에 중년무사는 대경해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혈혼귀마는 그가 상대할 수 없는 절정고수이자 잔혹한 살마였다.
“킬킬킬, 저 안에 있는 놈들은 죽을 짓을 해서 죽였다. 도박을 하면서 감히 나에게 사기를 치려고 했거든.”
우가장은 평범한 장원이 아니라 도박장이었다. 아마 도박을 하던 중 여치에게 사기를 친 모양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기를 쳤소?”
“다 한 패거리이니 모두 죽어 마땅하니라.”
“그렇다고 해서 힘 없는 여자까지 죽이는 건 아니지.”
“킬킬킬킬, 여자를 죽이는 게 더 재미있거든.”
“죽어 마땅한 자군. 동 형.”
동대안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찼다.
이미 여치의 말을 들으면서 화가 나 있던 그였다. 혁무천의 말이 떨어지자 몸을 날리며 섬혼을 뽑았다.
“뒈져!”
그야말로 벼락이 튀어나가는 듯했다.
느긋하게 서 있던 여치가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몸을 틀었다.
뭐가 날아드는데 눈에 잘 보이지가 않았다.
푹!
팔의 살을 뚫은 섬혼이 옆을 긁으며 빠져나왔다.
팔의 살이 쩍 갈라졌다.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