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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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04화
104화
“검마보요.”
그들이라면 혁무천도 이해가 되었다.
마도십문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마보라면 비룡장을 어려워할 자들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묘한 감흥이 일었다.
검마보는 대마천의 핵심고수였던 천붕십이마 중 벽천검마 율항의 고향. 자신이 검 한 자루를 들고 강호를 종횡할 때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율항을 수하로 거두기 위해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당금 마도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지 않은가. 검마보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문제는 거리였다.
검마보는 무창에서 남쪽으로 삼백 리 함녕 남쪽의 막부산맥의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다녀오려면 최소 사흘은 잡아야 한다.
“검마보까지 가야 하나?”
“아니오. 검마보의 지부라 할 수 있는 영마장으로 가는 중이오.”
검마보에 가지 않는 건 아쉽지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함께 가지.”
“고맙소. 대가는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소?”
“일인당 은자 백 냥. 그리고 한두 가지 정보면 돼.”
백리양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여인이 먼저 나섰다.
“일인당 은자 오십 냥에 두 가지 정보. 어때요?”
백리양의 약점 중 하나가 냉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일은 대부분 백리혜가 해결했다.
혁무천은 순순히 그녀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것도 괜찮군.”
사실 처음부터 깎을 거라 생각하고 백 냥을 부른 것이었다. 은설에게 배운 대로.
***
영마장은 무창성 남문에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백리양과 혁무천이 일행과 함께 도착했을 때, 짙은 살기가 장원을 휘감고 있었다.
말에서 내린 백리양이 먼저 정문 앞의 위사에게 포권을 취했다.
“비룡장의 백리양이오. 이곳에 본인의 친구가 잡혀 있다 해서 왔소. 안에 기별을 해주시오.”
백리혜가 나란히 서고, 갈색과 남색 무복을 입은 청년이 그의 좌우에서 호위했다.
혁무천 일행은 그 옆에 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위사는 상대가 비룡장의 소장주라는 걸 알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곧 장원 안에서 십여 명이 나왔다.
굳은 표정, 몇몇은 긴장감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들 중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백리양을 보며 말했다.
“경호승이네. 백룡공자가 직접 올 줄은 몰랐군.”
“총관께 백리양이 인사드립니다.”
영마장의 총관 경호승은 절정고수로 일대 무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였다.
“우리는 선위종을 순순히 내줄 마음이 없네. 설령 놈의 사부인 운 노사가 오신다 해도 마찬가지네. 그러니 돌아가게나.”
선위종의 사부는 마도에서 이름 높은 고수, 은산일마(銀山一魔) 운풍산이었다.
“선 형은 이 백리 모의 친구입니다. 친구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마땅히 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할 것입니다.”
“놈은 검마보 진 장로님의 딸을 겁탈하려 했네. 게다가 반항하면서 본 보의 무사 다섯을 해쳤고, 그 중 하나는 목숨을 잃었네. 그게 어떤 죄인지는 모르지 않겠지?”
“저는 아직 선 형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먼저 선 형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허락해주시지요.”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벌을 받을 때 받더라도 정확한 사정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에 대한 것은 검마보에서 사람이 오면 처리할 거네. 자네가 아무리 뭐라 해도…….”
그때 백리혜가 끼어들었다.
“솔직히 뭔가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소저는 누구신가?”
“저는 백리혜라고 해요. 총관님께서 말씀하신 선 공자와는 정혼 이야기까지 있었던 사입니다.”
“허어, 그놈이 어찌 백리 소저 같은 절세미인을 놔두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군.”
“그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선 공자는 저와 오빠를 만나기 위해 무창으로 오던 중이었어요. 그런 분이 중간에서 엉뚱한 짓을 했다니. 솔직히 저는 믿어지지 않아요.”
“직접 본 사람이 있네.”
그 말에는 백리혜도 바로 반박을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도대체 선위종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런데 듣기만 하던 목량이 슬쩍 끼어들어서 한마디 물었다.
“그 목격자는 검마보나 영마장과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까?”
경호승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건…… 험, 그가 비록 검마보의 사람이긴 하나,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네.”
백리혜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선 오라버니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소저는 너무 순진하군. 아름다운 여자가 앞에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게 남자라네.”
“어쨌든 일단 선 오라버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로선 검마보와 영마장이 우리 비룡장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백리혜가 생각보다 강하게 나가자, 경호승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으으음…….”
비룡장과의 싸움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진짜 꺼려지는 상대는 구룡상단이었다.
그들을 잘못 건드리면 두고두고 후회할지 몰랐다. 어쩌면 춘궁기에 쌀 한 톨 구경 못하고 쫄쫄 굶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좋네. 만나게 해주지. 단, 우리의 감시를 철저히 받는 상태에서만 만날 수 있네.”
선위종은 영마장의 뒷마당에 있는 뇌옥에 갇혀 있었다.
혈도를 제압당하고 쇠사슬로 묶인 그는 백리양과 백리혜가 몇 사람과 함께 나타나자 뇌옥 문 쪽으로 다가왔다.
키는 크지 않았다. 그래도 어깨가 떡 벌어진 체구는 적절히 균형이 잡혀서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거기다 얼굴까지 준수해서 백리혜가 좋아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일로 오게 해서 미안하네, 백리 형. 혜매에게도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군. 만나기로 한 장소가 황학루에서 뇌옥으로 바뀔 줄은 나도 미처 몰랐네.”
선위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백리양이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된 건가?”
“자네가 나를 잘 알잖은가?”
“알지. 그래서 묻는 거네. 도대체 어떻게 되어서 이곳에 갇힌 건지 말이야.”
“객잔에서 술을 한 잔 하고 방에 들어갔더니, 먼저 자리를 떴던 진 소저가 침상에 누워 있더군. 그래서 내보내려고 했는데…….”
진이향이 갑자기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그녀를 떼어내려고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데 하필 그때 문이 열리고 검마보의 무사가 그 광경을 보았다.
비명을 내지르는 진이향.
당황한 선위종.
고함을 치는 검마보의 무사.
때마침 근처에 있던 검마보와 영마장의 무사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다.
선위종은 겁탈한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검마보와 영마장 무사들은 믿지 않았다.
진이향은 옷이 찢어진 채 한쪽에서 울고만 있었고.
“……그렇게 된 거네.”
선위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마장 간부 하나가 코웃음 쳤다.
“흥! 웃기지 마라! 그럼 진 소저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하지만 백리혜는 다른 말에 더 관심이 있었다.
“왜 진이향과 함께 술을 마신 거죠? 그것도 밤에.”
“내가 객잔에 있는데 찾아왔다. 그리고 한잔 같이 하자면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술을 시켰다.”
“그럼 그냥 일어났어야죠.”
“그랬어야 하는데… 영산주는 내가 워낙 좋아하는 술이라서 그만…….”
진이향이 시킨 영산주는 최고급 술로 선위종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다.
백리혜는 상황을 짐작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우, 결국 진이향이 선 오라버니를 차지하려고 꾸민 일이군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게, 백리 소저. 진 소저가 꾸민 일이라는 증거라도 있는가?”
“진이향이 선 오라버니를 어릴 때부터 좋아한 것은 강호에 몸담은 우리 또래들 여자라면 다 아는 일이에요.”
백리혜가 작심한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는 검마보의 체면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동안 입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뇌옥 입구에서 노성이 울렸다.
“갈! 그럼 우리 이향이가 먼저 네놈에게 꼬리를 치기라도 했단 말이냐!”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중 회갈색 무복을 입고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사람은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치켜뜬 눈만 봐도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진이향의 부친이며 검마보의 장로인 수라도 진규청이었다.
“사실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위종은 기죽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그 바람에 진규청의 분노가 더욱 더 거세게 타올랐다.
“이노오오옴! 감히 내 딸을 모욕하다니! 당장 네놈의 목을 쳐버리겠다!”
백리양이 황급히 그의 앞을 막으며 포권을 취했다.
“저는 비룡장의 백리양이라 합니다. 진정하시지요, 장로님.”
“비켜라!”
“무조건 선 형을 두둔하려는 게 아닙니다.”
“비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일단 화를 가라앉히시고…….”
“네놈도 죽고 싶은 게냐!”
지금 진규청의 눈에는 비룡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딸을 겁탈하려 했던 놈과, 그놈을 비호하려는 놈만 보일 뿐.
그런데 백리양도 만만치 않았다.
“노선배님께는 저희 비룡장이 하찮겠지요. 그렇더라도 한번쯤은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흥! 들어봐야 저놈을 비호하는 소리겠지. 비켜라! 이제부터 내 앞을 막는 놈은 누구든 목을 쳐버릴 것이다!”
코웃음 친 진규청의 입에서 흉흉한 살기가 풀풀 날렸다.
그런데 한쪽에서 약간의 조롱기 섞인 말이 들려왔다.
“그 노인네, 성질 한 번 더럽게 급하네.”
“뭐야? 어떤 놈이야!”
홱, 고개를 돌린 진규청이 혁무천 일행 쪽을 쳐다보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동대안이었다.
그런데 동대안은 다른 쪽을 돌아다보고, 혁무천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진규청의 불길이 인 눈이 혁무천에게 꽂혔다.
“네놈이더냐?”
“귀도 안 좋으신가 보군.”
목소리가 달랐다. 그러나 비웃는 말투는 비슷했다.
“오냐, 이놈! 먼저 네놈의 목부터 잘라야겠구나.”
결국 동대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더했다.
“미쳤군.”
이제 진규청도 조금 전의 목소리 주인을 알았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네놈이었구나! 아니, 상관없다. 모두 죽여주마!”
진규청은 노성을 내지르고 도를 빼들었다.
스릉!
“장로님.”
경호승이 나서서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호승! 나를 말리지 말게!”
상황이 점점 격화되면서 뇌옥 안에 살기가 충천했다.
“그 칼, 휘두르면 후회할 거요.”
나직한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모두의 귀에 들렸다.
진규청은 멈칫하더니 혁무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후회할 거라 했느냐?”
“그렇소.”
“이 죽일 놈이…….”
진규청은 귀화(鬼火)가 이는 눈으로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금방이라도 불꽃이 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진규청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두 눈에서 서서히 불길이 가라앉았다.
“잘 생각하셨소.”
진규청은 자신이 기세에서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네놈은… 누구냐?”
“중요한 건 내가 누구냐가 아니오.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
“저놈은 내 딸을 겁탈하려고…….”
“저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했소.”
“흥! 그건 거짓말…….”
“누구 말이 거짓말인지 알아보면 되겠지요. 목격자를 데려와 보시오.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소.”
진규청은 혁무천을 노려보더니, 홱 고개를 돌려 뒤에 대고 소리쳤다.
“양소를 데려와라!”
잠시 후, 삼십 대 장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왠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진교청이 그를 다그쳤다.
“네가 본 것을 말해봐라.”
양소는 뇌옥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진규청이 냉랭히 말했다.
“다 들었으니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알겠지?”
혁무천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양소에게 물었다.
“왜 그의 방문을 열었지?”
“그게…….”
“당신은 밤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방문을 자주 열어보나?”
“그게 아니라…….”
“방문을 연 후에 진 소저가 비명을 질렀다는데, 그럼 그 전에 진 소저가 그 방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 안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소.”
“이상한 소리? 객잔에 사람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 소리를 다른 사람은 못 듣고 그대만 들었나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