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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0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01화

101화

 

 

밖으로 나온 사람 중에는 천기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은설의 부축을 받고 있는 신도평을 보고 놀라서 황급히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공자. 괜찮은가?”

“은 소저, 공자를 우리에게…….”

은설이 신도평을 그들에게 넘기려 하는데, 신도평이 오히려 그들을 말렸다.

“괜찮습니다. 은 소저, 방까지만 부탁합니다.”

은설은 그의 마음을 눈치 챘지만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천기회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서 방에 들어가면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자칫하면 오빠만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요. 어차피 부축했으니 방까지는 제가 모셔갈게요.”

혁무천은 은설이 신도평을 부축해서 객방으로 가는 걸 쳐다보기만 했다.

‘그냥 넘기지.’

조광유와 상은곡이 노기를 담은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대에 대한 것은 공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네.”

조광유가 그리 말하고 객방으로 돌아갔다.

상은곡도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뒤를 따라갔다.

혼자 마당에 남은 혁무천은 뒷짐을 지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은 더럽게 밝았다.

 

일각.

석상처럼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 있던 혁무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에 들은 신도평의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곁에 있으면 은설이 힘들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했다. 자신이 저들과 부딪칠 때마다 은설은 불안해 할 테니까. 자신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테니까.

당장 내일 아침만 되어도 그녀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열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 대한 말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 신도평 말대로 내가 너무 과분한 욕심을 부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남들은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솔직히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월만 따지면, 자신은 백 살이 훨씬 넘은 늙은이(?) 아닌가 말이다.

구요의 말대로,

지금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백 년 전에 이 세상과 인연이 끊긴 사람.

반면 은설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 소녀다.

어쩌면 자신이 도둑놈 같은 욕심을 낸 것일지도…….

피식.

실소를 지은 혁무천은 몸을 돌렸다.

내일 아침이면 은설이 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간다고 해서 행복할지는 미지수였다. 남겠다고 하면 자신 혼자 떠나야 하고.

결국 얻는 건 반쪽짜리 마음뿐.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은설이 나오기 전에 떠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은설을 보면 또 떠나지 못할 테니까.

아마 자신이 떠난 걸 알면 잠시 동안은 힘들어하겠지.

하지만 은설은 그 나이보다 몇 배는 강한 여인이었다.

‘너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갔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그때 만나러 가마.’

순간, 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반각쯤 지났을 때, 은설이 마당으로 나왔다.

“어? 오빠가 어디 갔지? 기분이 상해서 술 마시러 가셨나?”

하지만 객잔은 이미 영업이 끝나서 술을 팔지 않았다.

방에도 가봤지만 텅 비어 있었다.

“어디 가셨지?”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그녀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설마……?”

그녀는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객잔 밖 대로 어디에서도 혁무천은 보이지 않고 썰렁한 바람만 불었다.

“오빠…… 안 돼, 오빠… 가면 안 돼, 오빠…….”

대로를 달리는 그녀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

 

남경으로 가는 길이 전보다 열 배는 더 멀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뒤를 돌아다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뒤 어디에서도 은설은 보이지 않았다.

혁무천은 은설과 헤어진 다음 날 밤, 마을에 들어가서 술을 진탕 마셨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취하고 싶은데 진기가 자동으로 취기를 억눌렀다.

이럴 때는 공력이 강한 게 야속하기만 했다.

“저기, 손님. 저희 문 닫아야 합니다요.”

점소이가 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을 때는 술을 열두 병이나 마신 후였다.

혁무천은 은자 반냥을 탁자 위에 놓고 일어났다.

비록 취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가눌 수는 있었다.

‘일단 남경으로 가자. 그래도 설아의 생사를 몰랐을 때보다는 낫잖아?’

 

이틀 후.

남경에 도착한 혁무천은 구요부터 찾아가보았다.

“대형!”

장대산이 제일 먼저 그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동대안과 영추문, 목량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량이 있는 걸 보니 엽기천과 강탁도 남경에 도착한 듯했다.

“다 왔군. 엽 형과 강탁은?”

목량이 대답했다.

“구요 노선배의 심부름을 갔습니다.”

“심부름?”

그때 안쪽의 문이 열리고 구요가 나왔다.

“돌아왔구먼. 동생은 만났소?”

“예, 만났습니다.”

혁무천은 그 말만 하고 자세한 말은 피했다.

은설과의 일에 대해서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구요도 뭔가를 눈치 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엽 가와 강 가는 금천방에 보냈네. 금천방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흐르는 것 같아서 몇 가지 알아오라고 했소.”

“금천방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니요?”

“곽추민이 점점 세를 키우고 있네. 곽도전을 따르던 장로 중 몇 명도 곽추민 쪽으로 돌아선 것 같소.”

“그래요?”

혁무천은 반문을 하긴 했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

금천방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였다.

겨우 찾은 은설과 헤어진 지 이제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허전한 마음이 여전했다.

은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에 찬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지금의 마음 같아서는 강호 전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남경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없었다면, 혼자 세상 곳곳을 여행 다니기 위해서 어딘가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상관중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곽도전이 공격을 시작하면 지원하기로 했소.”

“상관중의 배후에 있는 자들의 정체는 밝혀졌습니까?”

혁무천의 묻는 말에 구요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게 이상하오. 아무리 조사해 봐도 알 수가 없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그러고는 혁무천을 힐끔거렸다.

‘그대처럼.’

혁무천은 그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모른 척하고 말했다

“뿌리가 상당히 깊어서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유심히 지켜보다 보면 꼬리를 드러날 때가 있겠지요.”

“으음, 알겠소.”

 

구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일각쯤 보냈을 때 엽기천과 강탁이 돌아왔다.

왠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엽기천의 입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곽도전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뭐야? 왜?”

“그의 숙부인 곽추민이 장로들을 선동해서 가두었다고 합니다.”

“제길, 깜냥도 안 되는 놈이 욕심을 부리는군.”

구요는 짜증을 내며 투덜거리더니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곽도전을 구해내야 하네. 아마 곽추민은 반발을 무시하고 곽도전을 빨리 처리하려고 할 거야.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곽도전을 구한다 해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끝을 보는 게 좋겠지.”

“성급하게 공격하면 곽추민이 곽도전부터 죽이려 할 거요.”

“내가 상관중에게 연락해서 외곽을 공격하게 하고, 곽도전을 따르는 자들도 움직여 보겠소. 안팎으로 공격을 당하면 곽추민 패거리들도 정신이 없게 될 거요. 공자가 곽도전을 감옥에서 빼내기만 하면 이 기회에 금천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내가 곽도전을 구해내야만 한다는 거군요.”

“부탁하겠소. 도와주시오.”

혁무천은 구요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은자 천 냥. 선불입니다.”

“…….”

돈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 못한 듯 구요는 반쯤 입을 벌리고 혁무천을 올려다보았다.

혁무천이 말을 바꾸었다.

“당장 주기 어려우면 외상으로 해도 됩니다. 대신… 천오백 냥입니다.”

구요가 재빨리 말했다.

“그냥 천 냥으로 하겠소.”

“지금 주십시오.”

정말 지독한 놈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지, 전에도 돈을 밝혔지.

구요는 혀를 내두르며 내실로 들어가더니 구백팔십 냥의 전표를 가져왔다.

“스무 냥은 공자를 곽도전의 코앞까지 데려가는 대가로 빼겠소. 시비 없이 뇌옥에 들어가게 하려면 돈이 좀 드니까.”

구요도 만만치 않은 강적이었다.

 

***

 

그날 밤, 혁무천은 혼자서 금천방에 찾아갔다.

혁무천 일행이 남경이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경비가 느슨해져서 접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구요의 손길이 금천방에도 닿아 있었다.

혁무천이 뒷문으로 가자 미리 연락을 받은 듯한 사람이 나와 있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

“염창로에서 오셨소?”

“그렇소.”

“따라 오시오.”

뒷문 쪽 경비무사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그자와 혁무천이 뒷문을 통과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경비업무가 끝난 후 화화루의 계집을 끼고서 질펀하게 술 마실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조장이 거하게 산다고 했으니까.

 

혁무천은 금천방 내부를 살피며 조장이란 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뇌옥이 이십여 장 남았을 때였다. 사십 대쯤으로 보이는 자가 건물을 돌아서 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강 조장, 왜 경비를 서지 않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왔는가? 그 사람은 누구고?”

금천방의 육당 중 북선당의 이조 조장인 강대문은 바짝 긴장했다.

나타난 자는 남호당 당주 전응수였다. 곽추민을 지지하는 간부 중 하나.

자칫하면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빌어먹을, 왜 오늘따라 부지런을 떨어서 순찰을 다녀?’

전응수는 평소 야간순찰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 시간이면 계집을 끼고 술을 마시고 있어야 했다.

아마도 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나보다.

강대문은 재빨리 잔머리를 굴렸다.

“당주를 뵙습니다. 여기 이 친구는… 민 장로님께서 부른 사람입니다.”

“민 장로가?”

“예.”

전응수는 성격이 괴팍한 민진평 장로를 두려워했다. 그러니 민진평이 부른 사람이라면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가 혁무천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가까이 다가왔다.

“어린놈이 낯짝 하나는 괜찮게 생겼군. 그런데 민 장로가 왜 너를 부른 거지?”

“그건…….”

강대문은 뒤늦게 아차 하며 자책했다.

민진평은 곽도전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로 곽추민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차하면 적이 될 사이.

오히려 민진평의 핑계를 댄 것이 역효과를 낸 듯했다.

“흐음, 이거 수상한데?”

바짝 다가온 전응수가 눈빛을 번뜩이자, 혁무천이 나직이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소만.”

“뭐?”

“잠시 저쪽으로 가시지요. 아주 중요한 일이오.”

혁무천은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어두컴컴한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행동이나 말투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강대문조차 무심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전응수도 이마를 찌푸리기만 했을 뿐 별다른 추궁을 하지 않고 뒤를 따라갔다.

이곳은 자신의 텃밭이었다. 하룻강아지도 호랑이에게 짖어댈 수 있는 곳.

더구나 상대는 새파란 애송이 아닌가 말이다.

‘자식, 돈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가 본데…… 몇 푼으로는 어림도 없지.’

그렇게 어둑한 곳에 도착하자 전응수가 짜증을 냈다.

“뭔데? 말해 봐.”

뒤돌아선 혁무천이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상관…….”

뒷목소리는 워낙 작아서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전응수가 무의식중에 마주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머리를 내밀었다.

“뭐라……?”

콰직!

혁무천의 우수가 전응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찌나 빠른지 손을 뻗는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목이 꽉 막힌 전응수는 ‘고’라는 말도 마저 내뱉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대항하려 하던 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목을 통해 들어온 가공할 기운에 온몸이 저릿해지고,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혁무천은 전응수를 바짝 당기며 좌수 검지로 귀 앞의 이문혈을 쿡 찍었다.

전응수의 몸이 축 늘어졌다.

혁무천은 그 상태로 전응수를 끌고 구석으로 갔다.

누가 보면 다정하게 몸을 기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듯했다.

구석진 곳으로 간 그는 건물 위로 훌쩍 몸을 날렸다.

안 그래도 외딴 곳에 있는 건물의 지붕은 그림자까지 져서 칠흑처럼 컴컴했다.

그는 전응수를 그 지붕 위 구석에 처박아놓고 내려왔다.

아마 날이 밝기 전까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던 강대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 죽었소?”

“아침이면 깨어날 거요. 갑시다.”

혁무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둠 속에서 밖으로 나갔다.

후다닥 뒤따라가는 강대문의 등은 땀으로 흥건했다.

‘지미…… 사신을 들인 거 아냐?’

그 짠돌이 영감이 은자 스무 냥을 준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는 뒤로 돌아설 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자신도 저 지붕 위에서 아침을 맞이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혈도를 제압당한 채 묶여 있던 곽도전은 뇌옥 철창 너머의 혁무천을 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자네가 여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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