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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9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98화

98화

 

 

남궁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뒷짐 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까스로 참았다.

손을 쓰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 세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패할 수는 없으니까.

그럴 경우 세가의 힘을 감춰온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룡선발대회에서 승승장구했던 분을 내 어찌 시험할 수 있겠소.”

“겸손이 지나치군. 하긴 마도가 항상 주시하고 있으니 자신을 다 드러낼 수는 없었겠지.”

“…….”

“하지만 그들이 모를 거라 생각했다면 그 또한 오만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꿩은 대가리만 풀 속에 처박고 남들이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줄 알지.”

“나는 꿩이 아니오. 숨길만 한 것도 없고.”

“정말 그런지 볼까?”

혁무천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우수를 뻗었다.

손가락을 살짝 구부린 그의 장심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독수리 발톱처럼 구부러진 좌수는 허리 앞에서 언제 어떤 식으로든 찰나의 빈틈만 생기면 뻗을 것처럼 기회를 노렸다.

남궁태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발하듯 손을 내밀며 혁무천의 공격을 차단했다.

검법이 주 무공으로 알려진 남궁세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검 외에도 다양한 무공을 발전시켰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으로 되찾은 제왕수는 그들이 감추고 있는 상승 무공 중 하나였다.

그는 혁무천의 공격에 맞추어서 육성 정도의 공력만 사용했다.

설령 밀리더라도 그 이상은 사용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마도의 쥐새끼들이 주시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후우우웅.

웅혼한 경력이 그의 두 손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혁무천의 공세를 휘감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손에서 뿜어진 강력한 장력이 한 자 간격을 두고서 충돌했다.

떠더더덩.

굉음이 울리고,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혁무천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반면 남궁태의 얼굴에는 경악과 곤혹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사선으로 늘어뜨린 그의 손이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떨렸다.

육성의 공력을 사용해서 제왕수를 펼쳤는데도 밀렸다.

무천이란 자는 어느 정도 공력을 사용했을까. 표정이나 태도로 봐서는 육성 이상 쓰지는 않은 듯했다.

그럼 자신보다 강하단 말인가?

‘그럴 리 없어. 일수 공방만으로 승패를 논하는 건 말도 안 돼.’

어쨌든 자신보다 하수가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대단하군요. 내 일수를 그리 쉽게 받아 내다니.”

“대단할 것도 없어. 그 정도의 장력을 큰 부담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젊은 고수를 꼽으라면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다섯 명은 되니까.”

“…….”

“그래도 오만할 만해. 그들 모두 내로라하는 자들이거든.”

남궁태는 그 말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단 말인가?

그런데 혁무천은 그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돌렸다.

“어쨌든 천기회와 손을 잡으려 하는 걸 보면 다른 정파의 세력도 남궁세가와 같은 생각이라고 봐야겠군.”

갑작스런 혁무천의 말에 막 화를 내려던 남궁태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무슨……?”

“그런데 왜 정은맹이 아니라 천기회지?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건가?”

정곡이 찔린 남궁태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제대로 짚었다는 걸 알았다.

“양다리를 걸친 것이 아니오. 양쪽 다 정파 세력이니 도와주려는 것일 뿐.”

“정은맹이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할까?”

“…….”

남궁태도 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하긴 남궁세가 입장에서는 양쪽과 동시에 손을 잡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 어느 한쪽이 무너져도 다른 한쪽은 남을 테니까.”

“우린 어느 쪽도 패하는 걸 원치 않소. 기왕이면 그들이 힘을 합쳐서 강호의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좋겠지요.”

“세상은 꼭 좋은 결과가 나오는 쪽으로만 움직이지 않아. 오히려 안 좋은 쪽으로 흐를 때가 많지.”

“누가 보면 세상을 오래 산 분으로 알겠소. 아직 서른도 안 된 거 같은데.”

남궁태는 상대가 나이를 밝히도록 대답을 유도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린 것 같았다. 그런데 반말을 찍찍 내뱉으니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혁무천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대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는 많아. 그리고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지.”

“흠, 그래요?”

“어쨌든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면 그만 가봐야겠군.”

혁무천은 남궁태의 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러다 멈칫하더니 고개만 돌려서 남궁태를 바라보았다.

“천기회와 정은맹이 움직였으니 곧 폭풍이 불 거다. 그럼 감추고만 지낼 수는 없을 거야.”

“……!”

“아마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거센 폭풍이 이 아름답고 운치 있는 장원을 날려버릴지도 모르지. 무슨 말인지는 알아서 해석해. 하룻밤 신세진 대가로 해주는 말이니까 허투루 넘기지 말고.”

혁무천은 할 말 다했다는 듯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남궁태는 혁무천이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묘한 자였다.

마도인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 해서 정파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태도와 말투는 둘째 치고, 일장을 마주하는 중에 느낀 기운이 결코 청명하다고 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가 없군.’

 

객당으로 돌아온 혁무천은 은설의 방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조용했다. 신도평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런데 창문에 그림자가 비쳤다.

형태로 봐서는 은설이었다.

은설이 좌우로 팔을 벌리며 옷을 벗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창문에 그대로 비쳤다.

‘저, 저…… 하여간 여자가 겁도 없다니까.’

 

***

 

다음 날, 날이 밝자 천기회 사람들이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혁무천도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남궁운이 일행에 합류했다. 남궁태의 명령에 의해 남궁세가를 대표해서 천기회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혁무천은 은설을 향해 미소 짓는 그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가벼운 듯 보이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자였다.

게다가 감추고 있는 무공도 상당했다.

‘남궁세가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가?’

어쨌든 고수 하나가 더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은설만 엉큼한 눈빛으로 보지 않는다면.

안 그래도 신도평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데…….

 

남궁세가를 출발한 일행은 합비성 서문을 나서서 서쪽으로 길을 잡고 빠르게 이동했다.

합비성을 나선 이후로 남궁운이 은설의 곁으로 다가왔다. 신도평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기도 은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은설의 우측에서는 혁무천이, 좌측에서는 남궁운과 신도평이 나란히 걷는 형국이었다.

은설은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거는 남궁운을 자주 쳐다보았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혁무천이 남궁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은설을 불렀다.

“설아야.”

은설이 고개를 돌렸다.

“예, 오빠.”

“내게서 멀어지지 마라.”

은설이 피식 웃었다.

남궁운과 자주 이야기를 하니 시샘이 난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저는 그냥 남궁 공자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멀어지면 내가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은설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신도평이 무뚝뚝한 얼굴로 예의바르게 말했다.

“그럼 은 소저는 내가 지켜주지요.”

“네 실력으로는 안 돼.”

혁무천의 말을 듣고 신도평이 눈에 힘을 주자, 이번에는 남궁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힘을 보태지요.”

“너희들의 안전이나 걱정해.”

그때만 해도 신도평과 남궁운은 혁무천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 혁무천이 자신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툭 쏘듯이 받아쳤다.

“우리보다 무 형이나 걱정하시지요.”

“우리 남궁세가가 비록 전보다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남에게 얕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남궁세가가 지금까지 철혈마련과 귀천교에 눌려 지냈나?”

남궁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 법이오. 본가 역시 남들이 모르는 사정이 있었던 것일 뿐.”

“그 일로 말다툼하고 싶은 생각 없어. 그보다는 적으로부터 설아를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

“무슨……?”

뒤늦게 은설이 백마궁에 쫓기며 영파로 향하던 때의 일을 떠올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혹시 우리를 노리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성문을 나선 직후부터 따라붙고 있다.”

그제야 신도평과 남궁운도 안색이 달라졌다.

그들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번듯하게 지어진 집이 있는가 하면 흙벽돌과 나무로 대충 지은 허름한 집도 많았다.

일 각째 걷고 있는 데도 아직 합비의 구역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성 밖에서 사는 사람만 해도 수 만 명. 온갖 사람들이 오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적처럼 보이는 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에 적이 있다고……?”

신도평이 이마를 좁히고 믿지 못하겠는 투로 말했다.

남궁운도 신도평과 같은 마음이었다.

“합비 일대에서는 아무리 철혈마련이라 해도 본가를 무시할 수 없소.”

혁무천은 그에 대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합비성 외곽 마을을 벗어나자 드넓은 평원이 반겼다.

관도가 일직선으로 뻗어서 대평원을 좌우로 나누었다.

“정말 우리를 감시하는 자가 있었나?”

상은곡이 혁무천을 쳐다보며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평원의 저 앞쪽, 양쪽의 갈대숲에서 이십여 명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넓은 관도를 막아선 채 천기회와 혁무천 일행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모두 무기를 지니고 있는 자들, 철혈마련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을 알아본 남궁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철혈마련 무사들입니다.”

조광유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를 기다린 것 같군.”

남궁세가를 방문하면서 어느 정도는 각오했던 바였다. 마도세력의 눈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생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게다가 남궁세가가 지근거리에 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동안의 행동과는 뭔가가 다르게 느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아.’

그 사이 그들과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삼 장 거리를 두고 조광유가 손을 들어 일행을 정지 시켰다. 그러고는 길을 막고 선 자들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오?”

철혈마련 무사들 중 가운데 서 있던 사십 대 중년인이 턱을 쳐들었다.

“본인은 철혈마련의 장호라 한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순순히 응해준다면 조사를 빠르게 마치고 보내드리지.”

그 말에 ‘예, 그렇게 하시죠.’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왜 그대들의 조사를 받아야 한단 말이오?”

“수상하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중년인이 기다렸다는 듯 말하고 입술 끝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조광유도 순순히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검을 뽑았다.

“할 수 없군. 어디 조사해 보시지.”

“뒤에도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

여충민이 뒤를 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가 앞만 신경 쓰는 사이 뒤쪽에서도 이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혁무천의 말대로 뒤를 밟고 있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앞뒤가 막힌 상황.

어쩌면 갈대숲 속에도 적이 있을지 모른다.

얼굴이 굳어진 조광유가 결정을 내렸다.

“일단 앞을 뚫고 간다. 상 형이 뒤를 맡아 주시게.”

“알겠네.”

상은곡의 대답과 동시에 조광유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신도평과 여충민 등 천기회 무사 다섯이 뒤따랐다.

상은곡은 천기회 무사 셋과 뒤로 약간 처져서 뒤쪽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마라.”

그가 은설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은설이 어느새 검을 뽑아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오빠. 저도 이제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요.”

“저들이 다가 아니다.”

그제야 은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럼……?”

“진짜 고수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철혈마련이 더 이상은 남궁세가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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