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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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97화
97화
남궁선을 만나고 온 조광유와 상은곡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신도평도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남궁세가가 도와준다면 우리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야.”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 이제 자금 걱정은 덜었어.”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당장은 자금만 돕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사도 파견할 거네.”
“남궁세가에서 무력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조광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약해졌다 하나 남궁세가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특히 남궁태는 비록 강호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마도의 십마룡에 비해 뒤지는 인물이 아니네. 아마 좋은 적수가 될 수 있을 거야.”
남궁태. 그는 가주인 남궁선의 장자다.
무력을 자랑할 수 없는 남궁세가여서 무림 활동을 하지 않아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저 가주인 남궁선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뛰어나다고만 소문났을 뿐.
그조차도 무공 쪽이 아니라 상단의 경영 쪽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가까이 지내는 정파의 고수들은 그가 결코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광유도 그런 정파인 중 하나였다.
‘흐음, 십마룡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란 말이지?’
신도평은 그 사실이 더 흥미로웠다.
마도의 청년고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자들, 십마룡.
기회가 오면 그들과 겨루어보고 싶었다.
한편, 남궁세가 가주의 집무실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석에 오십 대 초반의 중후한 중년인이 앉아 있고, 그의 앞에는 네 사람이 기다란 탁자 양쪽에 둘씩 나누어서 앉아 있었다.
“가주, 정말 천기회에 힘을 보태실 생각이신가?”
탁자 오른쪽에 앉아있던 칠순 노인이 상석을 보며 물었다.
남궁선은 코 밑 수염을 비비꼬았다. 살짝 찌푸려진 그의 눈에서 차가운 정광이 번뜩였다.
“새들은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갈 때 바람에 맞서지 않습니다. 날개를 펴고 순응하며 바람을 타지요. 그런데 지금…… 강호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비틀렸다.
“사실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았습니다, 숙부. 세가도 바람을 타고 훨훨 날 때가 되었지요.”
“하면 정은맹은 어떻게 할 건가?”
“정은맹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순 없지요. 하나, 천기회와 정은맹,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천기회를 택할 겁니다.”
“그리 생각한 이유라도 있으신가?”
“천기회주가 누군 줄 아십니까?”
“신도명산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태천검제의 제자입니다.”
칠순의 노인, 남궁언은 그 말에 대경했다.
“뭐야? 그게 사실인가?”
태천검제는 사십 년 전 천하제일을 다투던 정파의 절대고수였다.
팔대마세에서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당시 마도의 십대고수 중 세 명을 보내 협공했다.
태천검제가 강호에서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소문으로는, 중상을 입고 중원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천기회주 신도명산이 바로 그 태천검제의 제자라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사마진웅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은맹주 사마진웅은 사마세가 사람이다.
아무리 쇠퇴했다 해도 한때 팔대세가 중 제일이었던 남궁세가 아닌가.
지금까지는 정파의 수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힘을 보탰지만,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천기회가 나타난 이상 굳이 사마세가의 밑에서 굴욕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으으음, 그랬군. 어쩐지 신중한 가주께서 천기회를 중히 여긴다 했더니…….”
그때 탁자의 왼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천기회에 무력도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이는 이십 대 후반쯤. 갸름하니 준수한 얼굴에 눈빛이 깊고 맑아서 범상치 않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남궁태. 남궁선의 장자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남궁선이 되묻자, 남궁태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경험삼아서 묵천단(默天團)의 단원 일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부를 함께 보낸다? 흐음…… 하긴 경험이 중요하긴 하지.”
묵천단은 남궁세가가 비상을 위해 십 년 이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핵심 전력 중 하나다.
인원은 모두 오십여 명.
나이는 대부분 이삼십 대로 젊다면 젊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도에 들키지 않게끔 암암리에 육성하다 보니, 무공은 뛰어나지만 경험 면에서는 미숙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가의 무사들이 강호에 나가면 마도의 세력들이 당장 칼을 겨눌 겁니다.”
사십 대의 백의를 입은 중년인이 반론을 제기했다.
무사라기보다 상인이 어울리는 인상. 그는 남궁선의 아우이며, 세가에서 금영당(金影堂)을 맡고 있는 남궁정이었다.
그런 반론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남궁태가 바로 답을 내놓았다.
“그러니 세가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해야겠지요. 그리고 내보낸다 해도 당장 합류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남궁선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암암리에 움직이는 것도 괜찮겠군. 그럼 몇 명이나 내보내는 게 좋을 것 같으냐?”
“너무 많으면 시선을 끌지 모르니, 이십 명 정도 보내면 어떨까 합니다.”
오십여 명 중 이십 명이면 약 사 할의 인원.
언뜻 생각하면 숫자가 너무 적은 것 같지만, 그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적다고 할 수도 없었다.
“좋아, 그럼 그 일은 네가 알아서 보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인 시각.
혁무천은 방에서 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할 일이 없거나 심란해서 정원을 거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방 건너편 방을 은설이 사용했다. 그래서 전에 신도소영에게 얻은 단약을 복용시키기 위해 그녀를 만나려 했다.
그냥 주기만 하는 거라면 언제 주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단약을 복용하고 운공을 할 때 자신이 도와줄 생각이었다. 약효를 최대한 흡수할 수 있게.
그런데 그녀의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은 은설, 대화 상대는 신도평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지만, 가끔 웃음소리도 들렸다.
혁무천은 그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확, 짜증이 났다.
‘저 자식은 지가 뭔데, 야밤에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들어가?’
은설도 못마땅했다.
‘다 큰 여자가 말이야, 무섭지도 않나? 혼자 있으면서 남자를 방에 들이다니…….’
한편으로는 씁쓸했고.
설마 신도평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힘들게 지내다 보니 너무 쉽게 정을 주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어쨌든 은설이 신도평과 함께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래서 정원으로 나왔다. 답답해서. 바람을 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정원으로 나오자 목소리가 더 잘 들렸다.
그만큼 짜증도 커졌다.
방으로 쳐들어가서 쫓아낼까?
그때 목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다.
“뭘 잘못 알고 계시네요.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하지만 소문이…….”
“자꾸 그러시면 신도 공자와 다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늦었으니 그만 가보세요.”
혁무천은 방을 노려보던 눈에서 힘을 뺐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은 그는 몸을 돌렸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더 바보로 변하는 듯했다.
은설은 자신을 믿는데, 자신은 은설을 의심하고 있으니…….
‘누굴 좋아하면 바보가 된다더니…….’
혁무천은 정원을 벗어나서 천천히 걸었다.
이 기회에 남궁세가의 곳곳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금지구역만 안 가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걷자 제법 운치 있는 연못이 나왔다.
달빛을 받은 연못에는 수련이 떠있고, 가장자리에는 정자도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혁무천은 정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분 같은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
정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기둥 뒤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혁무천은 그곳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조금 전에 쌓인 짜증의 잔재가 아직도 남은 듯 불쑥 나오는 목소리가 퉁명했다.
“객당에 있는 사람. 바람을 쐬러 나왔지.”
“객당에 있다 함은…… 혹시 회의 사람이오?”
회. 아마도 천기회를 말하는가 보다.
“회의 사람은 아니지만, 회와 동행하고 있는 것은 맞아.”
잠깐 말을 나누는 사이 정자 앞에 도착했다.
기둥 옆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목소리가 맑다 싶더니 젊은 자였다.
“흐음, 회의 사람이 아닌데 동행을 허락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하긴 회에서도 이유가 있으니 이곳까지 함께 왔겠지요. 하나 그렇다 해도 허락 없이 외인을 데려온 건 그쪽의 실수인 것 같군요. 더구나 장원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놔두다니.”
“밤에 산책 좀 했다고 실수 운운하는 걸 보니 남궁세가도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가 보군.”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참이었다.
더구나 정파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은 혁무천 아닌가.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상대도 혁무천의 말에 가시가 박혀 있다는 걸 알았는지 정자의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차갑게 식은 말투로 받아쳤다.
“아무리 본가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이곳에서 그대처럼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지.”
“허락받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 그대라는 걸 잊은 것 같구려.”
“그럴 거면 정문에서부터 막았어야 하지 않나?”
정자 안에 있던 자가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준수했다. 게다가 선이 부드러워서 마치 학사 같았다.
그는 혁무천의 일 장 앞에 멈춰 서서 포권을 취했다.
“나는 남궁태라 하오. 뉘신지 이름 자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요?”
“무천.”
“무천?”
이름을 되뇌던 남궁태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혹시 마룡…….”
“맞아, 마룡선발대회 참가자 무천.”
혁무천이 선수를 쳤다. 남궁세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떠올릴 만한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남궁태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회에서 마도의 사람을 데려올 줄은 몰랐소.”
“내가 마룡선발대회에 나간 것은 마도인이어서가 아니야.”
“마도인이 아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마룡선발대회에 나간 것은 동생을 찾기 위해서였지. 그대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믿으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으니까.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들면 말해. 지금이라도 나갈 테니까.”
“꼭 자의로 세가에 온 것이 아니라는 말 같소만.”
“내가 자진해서 이곳에 올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왜 온 거요?”
“동생이 회의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왔거든.”
“동생이 회의 사람이오?”
“아니.”
회의 사람과 함께 있지만 회의 사람은 아니라는 말.
“그럼 동생도 마도인이오?”
“설아는 마도인을 무척 싫어하지.”
“마도인이 마도인을 싫어하는 동생 때문에 남궁세가에 왔다? 그거 참 묘한 일이구려.”
혁무천은 남궁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학사처럼 순하게 생긴 사람이 꽤나 끈질겼다.
그런 사람의 입을 막는 데는 충격요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꼭 누구처럼 말이 많군.”
“누구……?”
남궁태는 말을 하고 후회했다. 화를 내야 하는데 질문이나 하다니.
“지금 저쪽 객당에서 설아와 이야기하는 있는 자도 그대처럼 말이 많거든.”
화낼 기회를 놓친 남궁태는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자다.
달빛에 비친 얼굴은 감탄이 나올 만큼 잘생겼는데, 말투는 영 아니다.
“지금 날 놀리겠다는 거요?”
“나는 그대를 놀리고 싶지도 않고, 놀릴 이유도 없어.”
“그럼 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설마 다른 사람들도 그대처럼 처음 본 사람에게 질문을 쉴 새 없이 퍼붓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남궁태는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놀리는 말이 분명했다. 그런데 놀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맞대응하기도 애매했다.
질문을 퍼부은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고.
“이 남궁 모 앞에서 그대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너무 오만하신 것 아니오?”
“능력이 뒷받침 되는 오만은 곧 자신감이라 할 수 있지.”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혁무천의 말에 남궁태도 더 참지 못했다.
“대단한 분이 오셨군. 귀하에게 정말 그 정도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왜, 시험해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