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7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75화
사람들 모두 먹이를 바라는 새끼 새처럼 장천운의 입만 바라보았다.
“강 형과 한바탕 싸운 전홍기가 합비로 향하던 서궁 일행을 만났을 수도 있소. 화가 나 있던 그는 서궁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정체를 캐물었을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서궁의 성격 상 순순히 대답하지는 않았을 테니 또 싸움이 벌어졌겠지요.”
장천운은 가정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 후 전홍기와 남궁세가의 무사 둘은 두양양과 싸웠던 가등이란 자의 손에 죽었다.
“아마 정확한 상황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구천성 무사들만이 알 거요.”
장천운이 말을 맺고 돌아서자, 사람들이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대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궁호가 전옥창에게 물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전옥창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저 검흔이 광혈검마의 광혼마검류에 의한 것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럼 이제 저 검흔이 정말 광혼마검류인지, 그것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군요.”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전옥창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확인한다 해도 상대가 광혈검마의 제자다. 과연 자신의 손으로 자식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남궁호도 어려움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에 대해선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언뜻, 장천운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사라졌다.
‘겉보기와 달리 생각이 깊은 자군.’
32장: 그들이 돌아왔다
“뭐? 구천성 놈들이 합비에서 나갔다고?”
“예, 루주.”
왕규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떡하지? 재산도 거의 다 정리했는데.
그것도 하루 만에 처리하느라 이 할 싸게 내놓았다.
아니, 재산이 문제가 아니다.
그놈과 약속했다.
없던 일로 하자고 할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자신이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한 이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칼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빌어먹을! 괜히 말했잖아?’
왕규가 안절부절못하며 눈알만 굴리자, 옆에 서 있던 공패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어떻게 할까요?”
“뭘?”
“두 놈이 그들의 뒤를 쫓아갔는데, 돌아오라고 할까요?”
“구천성 놈들의 뒤를 쫓아갔다고?”
“혹시 나간 척했다가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서…….”
공패의 그 말에 왕규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나간 척했다가 다시 돌아와?’
가능성이 충분하다.
구천성은 소성주를 찾기 위해서 사방팔방에 무사를 파견했다.
현재 공손백은 무엇보다 그 일을 중요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남궁세가 때문에 소성주를 포기할 놈들이 아니야.’
왕규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렸다.
“그냥 놔둬. 뭔가 변화가 있으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알겠습니다, 루주. 그리고…….”
“또 뭐?”
“보정루를 은자 이백 냥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는데, 어떡할까요?”
“뭐라? 이백 냥? 이 도둑놈들이 어디서……!”
천 냥짜리를 오백 냥에 내놓았다. 건물은 비록 낡았지만 입지가 좋아서 약간의 돈만 투자하면 멋진 주루로 재탄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뭐? 은자 이! 백! 냥?
으드득, 이를 간 왕규가 홱 고개를 돌려서 공패를 바라보았다.
공패가 자라처럼 목을 쏙 집어넣고 눈알만 굴렸다.
그때 왕규가 말했다.
“그냥 너 가져!”
“……!”
“단! 내가 한 말 명심하고, 절대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저, 정말입니까?”
“만약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돌아와서 네놈 목뼈를 하나하나 뽑아버릴 거다!”
공패가 털썩 무릎을 꿇고는, 그 어느 때보다 감격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걱정 마십쇼, 루주! 입을 확 꿰매고 살겠습니다!”
도둑놈들에게 보정루를 그냥 넘기기 싫어서 공패에게 주긴 했는데, 아주 약간 후회가 되긴 했다.
보정루를 키우느라 고생한 세월이 몇 해인데…….
하지만 왕규는 머리를 흔들어서 아쉬움을 털어버렸다.
사실 공패가 그 동안 자신을 보필해온 걸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없었다.
‘그래, 여기서 주루나 착실히 하면서 살아라. 예쁜 마누라도 얻고.’
공패는 나이가 서른다섯이나 되는 데도 아직 총각이었다.
뒷골목 출신이 대부분 그렇듯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혼인을 하지 않았다.
혼인에 대해선 공패만 탓할 것도 없었다.
자신도 혼자였으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어서 가정을 만들지 않았는데, 그거야말로 후회막급한 일이었다.
‘항주나 소주에 가면 나도 괜찮은 여편네 하나 잡아서 집안이나 꾸려야지.’
아직 쉰 살이다. 밤일도 곧잘 한다.
괜찮은 밭만 만나면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도…….
히죽, 멋쩍은 웃음을 지은 왕규는 슬그머니 자신의 사추리를 만져보았다.
‘둘만 낳을 수 있으면 최곤데…….’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몽롱해졌다.
‘애기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닭 잡아서 아직 털도 안 뽑았는데 뼈다귀부터 핥는 왕규다.
그렇게 몽상에 빠진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슬슬 손자 이름을 짓기 시작할 때쯤, 천장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울렸다.
“비마 왕대규, 맞소?”
‘왕대규는 내 이름이라서 손자에게 붙여주기는……’
찰나, 몽상의 거품방울이 허공에서 펑! 하고 터졌다.
벌떡 일어선 왕규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때 조금 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비마, 왕대규. 지금 이름은 왕규. 나이 쉰. 비설문의 제자. 내가 아는 게 정확한지 모르겠소.”
“누, 누구요?”
“누가 그러더군. 그대가 사람을 잘 찾는다고.”
‘젠장! 이놈은 또 누구지?’
왕규는 감각을 극대화시킨 채 사방과 천장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을 하나 찾아줘야겠소.”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마치 뒤에서 귀에 대고 이야기하듯.
왕규는 눈알도 돌리지 못했다. 놈이 워낙 가까이 있어서 눈알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지 몰랐다.
“누구를……?”
“키는 육 척, 나이 스물 둘, 잘생긴 얼굴에 검은 빛이 도는 검을 쓰고, 무공은 최소 절정 경지에 올라 있소.”
듣는 것만으로도 왕규의 머릿속에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찜찜한 놈의 얼굴이.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성은 장이고…….”
“이름은 천운이겠지.”
“……아시오?”
“제기랄.”
그놈하고 무슨 악연이 있기에 마지막까지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왕규의 말투가 워낙 뜻밖이어서, 철무조차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그 친구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소?”
있었지. 함께 멀리 가서 세력을 만들자고 했다가 은자 수천 냥은 손해 봤으니까.
“별 일 아니오.”
“나는 두 번 묻는 걸 좋아하지 않소. 묻는 것보다 알아내는 걸 더 좋아하니까.”
단순한 질문보다 고문을 더 즐긴다는 뜻.
그런 종자들을 몇 알고 있는 왕규는 목에서 힘을 뺐다.
“뭘 알고 싶소?”
“그 친구를 어떻게 아시오?”
“함께 사업을 하나 하기로 했소.”
“나는 농담도 좋아하지 않소.”
“후우, 사실이오.”
퍽!
“윽!”
허벅지 뒤쪽에 심한 통증이 일면서 저절로 무릎이 구부러졌다.
“전에 사람 몸을 하나하나 분해해본 적이 있소. 뼈다귀가 생각보다 많았지.”
“진짜라니까……!”
“껍질도 벗겨봤는데 제법 넓었소.”
“씨바, 진짜래도…….”
스윽.
“일단 얼굴 가죽부터 벗기겠소.”
“이, 이 미친놈이! 진짜 그놈하고 항주에 가서 사업하기로 했다니까!”
“그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오.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쿡!
날카로운 칼날 끝이 목 뒤에 꽂혔다.
‘으헉!’
살갗에만 살짝 꽂혔을 뿐인데도 하마터면 오줌이 찔끔 나올 뻔했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뜨끈뜨끈한 핏방울이 뒷목을 타고 흘러내려서 등골 사이로 내려간다.
“소성주도 함께 가기로 했어!”
결국 그는 마지막 패를 꺼냈다.
거죽이 벗겨진 후에는 아무리 중요한 정보도 소용없었다.
목 뒤를 파고들던 칼끝이 멈췄다.
“정말이었군.”
그럼 정말이지, 거짓말인 줄 알았어?
아니, 이 인간은 자신의 말이 사실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진정 소름끼치는 인간 아닌가.
“그는 어디에 있소?”
왕규는 반항할 마음을 만 리 밖으로 내던졌다.
“밤이 되면 만나기로 했소. 곧 어두워지니 함께 갑시다.”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그럼 자신이 배신했다고 생각한 장천운이 죽이러 올지 모르니까.
***
강상은 풀려나지 않았다. 진범이 확인될 때까지는 풀어주지 않겠다는 게 남궁세가의 방침이었다.
다만 전처럼 뇌옥이 아니라 객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부상도 치료해주기로 했고.
나쁜 결과는 아니어서 방호와 그 일행도 그쯤에서 한발 물러섰다.
장천운은 방호 일행은 객잔으로 보내고 혼자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그 후 사마경의 투덜대는 소리를 이각 동안이나 들어야 했다.
그 사이 석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젠장, 제기랄! 염병할 놈의 지랄 맞은 인생!’
왕규가 속으로 신세타령을 하며 자신의 인생이 담긴 보따리를 챙기고 있을 때, 공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으로 들어왔다.
“루, 루주!”
“무슨 일이냐?”
“놈들이, 헉헉, 놈들이 몰래 되돌아왔습니다.”
“어떤 놈들?”
“낮에 떠났던 놈들요.”
왕규의 표정이 괴이하게 이지러졌다.
이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주 나쁜 일도 아니다.
그놈들을 적절히 이용하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알았다. 가봐.”
“예? 예, 루주.”
공패는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섰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더 올릴 보고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섰다.
“저, 루주.”
“또 뭐야?”
“저번에 그 재수 없는 놈이 말했던 자들 있잖습니까?”
재수 없는 놈?
최근 들어 그런 놈은 딱 하나밖에 없다. 아니, 오늘 한 놈 더 늘었다.
그러나 ‘저번에’라고 한다면 한 놈뿐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놈.
“찾았어?”
“찾았다기보다, 성하표국 애들이 그때 들었던 설명과 비슷한 놈들을 황보산에서 봤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어. 그만 가봐.”
“예, 그럼…….”
공패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을 나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주가 오늘은 왜 저러지? 뭐 잘못 먹었나?’
방문이 닫히자 왕규가 왼쪽 벽을 바라보았다.
철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패는 저놈을 보지 못한 걸까? 봤다면 왜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거지?
왕규는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다.
“누가 돌아왔다는 거요?”
“낮에 떠났던 구천성 사람들이 되돌아왔소.”
철무의 두 눈에서 서릿발 같은 한기가 흘러나왔다.
“지금 출발해야 할 것 같군.”
왕규는 목이 달아나기 전에 후다닥 보따리를 어깨에 멨다.
“나도 준비가 다 끝났으니 갑시다.”
***
장천운은 대장간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왕규를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왕규는 제법 묵직하게 보이는 보따리를 매고 있었다. 아마도 정리한 재산이 보따리에 담겨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장천운의 눈이 향한 곳은 보따리가 아니라 그 너머였다.
한 사람이 왕규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듯 아무런 표정도 없는 자였다.
분명히 왕규의 뒤를 따라서 들어오는 데도 소음은커녕 미세한 진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유령이 왕규를 따라서 들어오는 듯했다. 육신 없는 혼백만이 부유해서 떠오는 듯했다.
아마 환귀자의 환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장천운도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저분은 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