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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4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5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48화

48화

 

 

섬광은 정확히 혁무천의 심장을 관통했다.

아니, 관통한 듯 보였다.

사람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 직후, 혁무천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서 있던 자리 우측 석 자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펼쳐진 이형환위.

동시에 혁무천이 한 걸음 내딛으며 우수를 뻗었다. 단순히 손을 뻗는 것 같았는데,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발검.

후웅!

검첨에서 튀어나온 강맹한 기운이 허공을 짓이기며 뻗어갔다.

유곽은 자신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는 걸 직감한 순간, 왼발로 땅을 딛고 몸을 틀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음에도 한 줄기 기운이 그의 옷자락을 가루로 만들며 스쳐갔다.

오싹한 느낌.

유곽은 이마를 찡그리며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혁무천의 몸이 죽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그림자처럼 유곽을 따라 움직였다.

‘이놈이!’

눈을 치켜뜬 유곽은 찰나에 팔 검을 휘둘러서 혁무천의 공격을 봉쇄했다.

촤촤촤촤촤!

어둠이 그물처럼 갈기갈기 찢어졌다.

쩌저저저정!

강력한 기운의 충돌!

굉음이 귀청을 찢을 듯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일 장을 더 물러선 유곽은 다급히 자세를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상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혁무천은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공격을 멈추었다.

“끝장을 보겠다면 마다하지 않겠소. 하지만 이제부터는 피를 볼 각오를 해야 할 거요.”

나직이 흘러나오는 무심한 목소리.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휘도는 무형의 기운.

유곽은 이를 악 다물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저 따위 새파란 놈에게 밀리다니!

분노가 치밀었다.

죽든 살든 결판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그 소름끼치는 초식!

마치 검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만약 저자가 멈추지 않았다면 자신의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설마 내가 잘못 봤단 말인가?’

한편, 금가휘는 유곽이 혁무천에게 밀린 듯 보이자 표정이 굳어졌다.

‘제기랄! 조 장로가 당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

자신의 실력은 유곽보다 나을 게 없었다.

유곽이 밀렸다는 것은 자신 역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

게다가 무천의 곁에는 얕볼 수 없는 고수들이 몇 더 있지 않은가.

힘으로도 누르기가 힘든 상황.

당장 장대산을 끌고 갈 마땅한 방법이 없다.

철혈마련의 도움이 있다면 또 몰라도.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는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터.

금가휘는 씁쓸한 표정으로 후퇴를 결정했다.

“좋아, 오늘은 그만 돌아가지.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게. 아버님께서 끝까지 장대산을 데려오라 하시면, 그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대산을 데려갈 거네.”

“마음대로 해. 대신 다음에는 관도 준비해 와야 할 거다.”

 

***

 

백마궁의 소궁주와 장로가 쫓겨나다시피 떠나간 사건은 곧 몇 곳에 알려졌다.

사공곽은 소식을 전해 듣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 장로가 패하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더 강하다고 봐야겠군.”

승부에 대한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유곽의 패배를 기정사실처럼 말했다.

패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냥 돌아갔겠는가 말이다.

“금 공자의 코가 이번 일로 납작해졌겠는데요?”

사공미미는 싱글싱글 웃었다.

사공곽은 그 모습을 보고 실소가 나왔다.

“아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무 공자도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백마궁의 소궁주를 그렇게 몰아붙이다니, 호호호호.”

사공미미는 금가휘야 자존심이 상하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래도 금가휘의 앞에서는 말조심해라.”

“알았어요. 제가 뭐 그 정도도 못 가릴 정도로 천방지축인 줄 알아요?”

천방지축 맞지.

사공곽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때 사공미미가 멈칫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오빠, 아버지가 그 사람을 싫어할까요?”

응?

사공곽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여동생이 남자에게 가끔, 아니 자주 관심을 보여도 그러려니 했다.

단순히 사귀는 것과 혼인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사공미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녀의 혼인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혼인 전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혼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사도맹주 딸로서 정략적인 혼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무천이란 자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 대해 확실한 것을 알 때까지는 아버님께 말하지 마라.”

“걱정 말아요. 저도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지는 않으니까요.”

 

천화광은 유궁의 보고를 받고도 놀랄 것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재미있군.”

오히려 유궁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소성주, 예상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어쨌든 대단한 친구야.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하고.”

천화광이 담담히 말하고는 명을 내렸다.

“유궁, 그와 백마궁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라. 정확히는 백마궁이 장대산이란 자를 왜 원하는가 하는 것이겠지.”

“예, 소성주.”

천화광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났다.

“분명 뭔가가 있을 거다. 아주 흥미로운 사연이.”

 

***

 

또 다른 곳에서도 그 일에 흥미를 보이는 자가 있었다.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천화광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고?”

서른 살쯤으로 보이는 자가 콧등을 긁으며 말했다.

철혈마련의 소련주.

우문강천의 세 아들 중 첫째인 우문척.

짙푸른 감색 비단 무복을 입은 그는 우문강천과 달리 평범한 체구였다. 인상도 기이할 정도로 흐릿하게 느껴지는 눈빛을 제외하면 평범했다.

그는 평소 거처인 철심원(鐵心院)에서 지내며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철혈마련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절대 그의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예, 소련주. 수하 중 은잠술에 뛰어난 자를 그에게 붙였습니다.”

부복하고 있던 자가 마저 보고를 올리자, 우문척이 입술 끝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그놈이 관심을 보인단 말이지? 훗, 잠자고 있던 욕망이 꿈틀대나 보군.”

그는 극소수의 사람밖에 모르는 사실을 하나 알고 있었다.

천화광, 그에게 비정상적인 성적 취미가 있다는 걸.

“소소도 관심이 많다며?”

“자경산을 시켜서 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눈만 높은 철부지가 관심을 갖다니, 어떤 놈인지 궁금하군.”

“명을 내리시면 대령하겠습니다.”

우문척은 눈썹을 한번 꿈틀거렸지만 곧 손을 저었다.

“놔둬. 이번 대회를 빛내줄 놈인지, 아니면 망칠 놈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의 관심대상이 된 자다. 자칫하면 엉뚱한 일로 번질 수 있어.”

“알겠사옵니다.”

“어쨌든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어.”

미소 짓는 우문척의 눈에서 괴이한 빛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세상이 한번은 뒤집힐 때가 되긴 했지.’

어쩌면 이번 비무대회가 그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세상이 뒤집혀야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질 테니까.

그때 밖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련주, 련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린 우문척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버님이 나를? 지금?”

“예. 즉시 들어오시라는 명입니다.”

 

***

 

우문척이 철혈마전에 들어갔을 때에는 한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칙칙한 회색 장포를 걸친 오십 대 초반의 장년인.

철혈마련의 정보를 총괄하고 비밀스런 임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비천마단의 단주이자 우문강천의 사촌 동생인 우문홍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 자.

그러면서도 우문강천에게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자.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문척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앉아라.”

우문척이 의자에 앉자, 상석의 우문강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은맹이 기재들을 선별해서 수련에 들어간 것 같다.”

우문척의 흐릿하던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단순한 수련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해에서 가져온 무공을 그곳에서 수련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그 무공을 얼마나 익혔을 거라 보십니까?”

“그건 아직 모른다. 무공에 대한 깨달음은 시간과 큰 상관이 없으니까.”

“사실 정은맹이야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손에 넣은 무공이지요.”

정은맹이야 팔대마세 한 곳만 나서도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을 경우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비전무공을 익힌 고수들이 배출될 터. 마도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를 부른 거다.”

“하오면……?”

“지금 정확한 장소를 확인하고 있다. 보고가 들어오면 네가 가서 거두어들여라. 피는 얼마든지 봐도 상관없다.”

우문척은 흥미가 인 듯 눈빛부터 달라졌다.

“다른 곳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까?”

우문강천이 우문홍을 바라보았다.

마치 ‘네가 대답해’ 하듯이.

우문홍이 우문강천의 의도를 눈치 채고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모르는 것 같네. 하지만 지금은 모른다 해도 곧 알게 되겠지.”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우문강천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철혈마령대를 내주마. 그 아이들을 이끌고 가서 처리해라. 아주 확실하게.”

철혈마령대는 철혈마련에서 가장 막강한 전위세력 중 하나다.

그들과 함께라면 정파의 수련장 하나 치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우문홍이 몇 마디 덧붙였다.

“소련주가 그들을 치면 숨어 있는 정은맹 놈들이 기어 나올 거네. 그들의 전력과 본거지를 정확히 파악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숙부. 놈들을 최대한 흔들어 놓겠습니다.”

대답하는 우문척의 입가에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의 외출이군.’

지금까지 두 번 강호에 나갔다.

그때마다 강호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다.

세상은 그 일이 자신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지만.

그림자까지 철저하게 감추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어차피 세상에 자신을 알릴 때도 되었고.

‘아주 확실하게 알려주지.’

철혈마련의 다음 대 주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

 

자욱한 안개가 주산도를 뒤덮은 어느 날 아침, 보타암에 손님이 왔다.

뒤뜰의 연무장에서 열심히 검법을 수련하던 은설은 쪼르르 달려온 홍아를 보고 수련을 멈추었다.

“아가씨, 아가씨.”

“무슨 일인데 그렇게 난리야?”

“손님이 왔어요.”

“손님?”

“예, 다섯 명이나 왔어요.”

보타암은 향화객 외의 손님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런데 홍아가 저리 방정을 떠는 걸 보니 일반 향화객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다섯 명이나 오다니.

“신니를 찾아오신 손님이야?”

“물론이죠. 거기다 한분은…… 진짜진짜 잘 생기신 공자님이세요.”

홍아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볼은 이미 발갛게 상기되었고, 몸도 비비 꼬였다.

“키도 크고…… 그렇게 잘생긴 공자님은 처음 봤어요.”

은설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오빠를 보면 아주 쓰러지겠네.’

잘생긴 얼굴에 면역이 된 그녀는 홍아의 말에도 흥이 나지 않았다.

“근데 왜 나를 찾아왔어?”

그제야 홍아가 정신을 차렸다.

“아! 신니께서 모셔 오라고 했어요.”

“나를?”

“예.”

은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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