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4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46화
46화
마룡선발대회 참가신청자의 숫자는 모두 오백열두 명.
그러나 같은 색깔과 같은 숫자는 두 개뿐.
똑같은 색과 숫자가 적힌 대나무살을 뽑은 두 사람이 첫 번째 비무 상대였다.
대연무장 북쪽, 철혈대전 바로 앞 중앙에는 유난히 큰 비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살을 뽑아 든 청년들이 웅성거리며 자신의 상대를 추측하고 있을 때, 철혈대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직후 웅혼한 목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졌다.
“철혈의 주인이신 련주님께서 당금 천하를 이끄시는 여러 명숙들과 함께 나오십니다!”
와아아아아아!
군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 사이, 사이에서 휘파람소리가 울렸다.
휘이이이익! 휘휘이익!
곧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비무대 위로 날아왔다.
뒷짐을 진 채 뻣뻣이 서서 날아드는 그를 중심으로 기의 회오리가 일었다.
철혈마종 우문강천.
위엄에 찬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그 사이 원로 명숙 이십여 명이 그의 뒤를 이어 비무대 위에 내려섰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광폭한 기운이 비무대 위를 한 차례 휩쓸었다.
진행자로 보이는 오십 대 중노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서 군중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강호 동도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소이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기다리던 마룡선발대회를 시작하겠소이다!”
와아아아아아!
다시 터져 나오는 함성.
진행을 맞은 중노인, 철혈마련의 장로인 진혈검마 유공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군웅을 쓱 돌아보고 말했다.
“먼저 본 련 련주님의 대회 시작을 알리는 말씀이 있겠습니다!”
유공적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대한 체구의 우문강천이 비무대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서 비무대 중앙에 섰다.
그에게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지는 듯했다.
사방을 휘 둘러본 그가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의 동도 여러분께서 바쁜 와중에도 이리 많이 와주시니, 이 우문강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군웅의 머리를 짓누르는 굵은 목소리가 대연무장을 울렸다.
혁무천은 우문강천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감탄해마지 않았다.
‘대단하군.’
과거의 오대마종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신위!
아니, 그들보다도 한 수 앞선 것처럼 느껴진다.
혁무천은 그를 보고 당금 강호의 마도 거두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문강천은 사대천마 중 일인.
나머지 셋도 그와 비슷하다고 봐야 했다.
‘정파가 마도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군.’
그때였다. 우연인지 몰라도 우문강천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도 우문강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것은 숨 한 번 쉴 시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묘한 느낌에 가슴이 저릿했다.
‘설마 나의 능력을 알아본 건가?’
우문강천 역시 혁무천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혁무천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젊은 놈이 꼭 계집처럼 생겼군. 머리카락 좀 뒤로 젖히면 더 나을 것 같은데…….’
게다가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모습에서 정체 모를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없이 혁무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찰나, 붓으로 죽 그은 것 같은 그의 굵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참으로 묘한 놈이다. 시간이 없어서 시선을 돌리긴 했는데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어떤 놈인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우문강천의 인사말에 이어서 비무대회 참관자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만마성의 응척상 장로께서 오셨습니다!”
“사도맹의 부맹주이신 도광승 부맹주께서 먼 길을 오셨습니다!”
마황궁, 패왕문, 혈왕동, 마천문 등 팔대마세는 물론이고, 마도십문에서도 고수들이 대거 나섰다.
군웅들은 마도의 내로라하는 고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천지를 울리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저런 고수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마도 고수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비무대회에 대한 주의사항 등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질 때였다.
“오호, 자네도 나왔군.”
혁무천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진효가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했다고 들었네.”
“구경만 하기는 심심해서.”
“자신 있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사진효는 속에서 불길이 일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젯밤에 객당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던데, 혹시 자네 아니었나?”
“누구보다 그대가 잘 알 텐데?”
응?
사진효는 바로 답을 못했다.
혹시 자신이 보낸 것을 눈치 챘나?
그럴 리 없다.
호명추와 담사종은 자존심이 강한 자들. 그들은 남에 의해서 움직였다는 것을 인정할 자들이 아닌 것이다.
“사정을 대략 듣긴 했네만, 자네의 입으로 듣고 싶어서 말이야.”
“내가 싸운 건 맞아.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그들에게 물어봐.”
혁무천은 무덤덤한 투로 말을 던지고 몸을 돌렸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사진효의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저 자식이!’
그때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호호호, 여기 계셨군요.”
사공미미였다.
그녀의 한 걸음 뒤에는 사공곽이 서 있었다.
사진효는 재빨리 표정을 풀고 좀 전보다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어이구, 사공 소저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다 시원해지는군요.”
사공미미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포권을 취하고는 곧바로 혁무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효의 웃음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앞에 놓고 저딴 신분도 모르는 거지같은 놈을 상대하다니.
그의 기분이 진흙탕 같든 말든, 사공미미는 혁무천에게 상냥히 말을 건네며 그의 가슴까지 짓이겨 놓았다.
“몇 번째 비무세요?”
“당신은 신경 쓸 것 없어.”
툿 쏘듯 말하는 혁무천의 말투에 사공곽이 눈을 부라렸다.
“좀 알려주면 안 되나?”
“자꾸 신경 쓰는 게 귀찮아서.”
혁무천의 태도에 어이가 없는 사람은 사진효였다.
‘저 자식이 뭐 잘못 먹었나?’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사공미미의 반응이었다.
그녀가 샐쭉하니 사공곽을 흘겨보며 다그쳤다.
“귀찮아할 수도 있죠 뭐. 왜 오빠가 무 공자에게 뭐라고 그래요?”
저 여자가 정말 사공미미 맞아?
사진효는 반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곧 상황을 정확히 인식한 그의 가슴에서 불길이 솟았다.
‘무천, 저 자식이 언제 사공미미를 꼬셨지? 혹시 어젯밤에 몰래 저 계집을 찾아간 것은……?’
머릿속에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다 끝내는 두 사람이 침상 위에서 벌거벗고 뒹구는 상상까지 이어졌다.
가슴의 불길이 분노로 돌변했다.
‘죽여버리겠어!’
그래봐야 혁무천과 사공미미 누구도 그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더 들을 이야기도 없는 것 같으니, 난 그만 방에 가서 쉬어야겠어.”
“그러지 말고 저와 함께 구경 다녀요, 무 공자. 네?”
사공미미가 간드러지게 말할수록 사진효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아마 누군가가 큰소리로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졌을 것이다.
“여어! 사공 형! 어이구, 미미 아가씨도 있었군.”
사공곽과 사공미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까.
“오랜만이오, 구 형.”
더구나 사공곽 역시 그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 사실 만으로도 사진효는 긴장해서 분노를 억지로 눌렀다.
“하하, 소소가 남자를 구한다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지.”
사진효는 그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소소.
우문소소를 말하는 것일 터.
누군데 그녀를 ‘소소’라고 부른단 말인가?
커다란 덩치, 부리부리한 눈과 덥수룩한 수염.
나이는 잘해야 이십 대 후반? 아니면 삼십 대 초반 정도?
문득 사진효의 뇌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패왕문의 소패왕 구불청?’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청년고수 중 하나이며, 우문강천의 외조카가 바로 구불청이다.
“잘 아는 분들 같은데, 인사나 시켜주시게.”
구불청이 황소처럼 큰 눈으로 쳐다보며 말하자, 사진효가 먼저 포권을 취했다.
“삼혈맹의 사진효라 하오. 하북에서 위명을 떨치는 구 형을 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구불청은 통나무처럼 굵은 팔을 들어서 솥뚜껑 같은 손으로 포권을 취했다.
“구불청이네.”
건성으로 인사를 건넨 그는 바로 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친구는 누군가?”
사공곽이 입을 열기 전에 사공미미가 나섰다.
“무천, 무 공자예요, 오라버니.”
구불청은 혁무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공미미가 소개하는데도 무천이란 자는 별반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나는 구불청이라 하네. 반갑네.”
보통 구불청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놀라든가, 두려워하든가.
하지만 혁무천은 무덤덤하게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무천.”
“…….”
구불청은 생각지 못한 대답에 커다란 눈만 껌벅였다.
혁무천이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크긴 한데…… 그래도 대산보다는 작군.”
구불천은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패왕문의 소문주로 살아오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식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오죽하면 사공곽과 사진효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풋.”
옆에서 지켜보던 사공미미가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구불청이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대산이란 자가 나보다 크단 말인가?”
“크지. 키는 두 치 정도, 몸무게도 오십 근은 더 나갈 거다.”
“…….”
숫자로 비교하는 혁무천의 말에 구불청의 눈이 커졌다.
“누군지 몰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군.”
“곧 볼 수 있을 거다. 내일쯤 마련 안으로 들어올 테니까.”
“그런데 항상 말투가 그런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버릇이 된 것이니, 기분이 상해도 그대가 이해해.”
“아니, 마음에 들어. 나도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군.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어.”
혁무천은 할 말만 하고 몸을 돌렸다.
“저도 함께 가요, 무 공자.”
사공미미가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달라붙었다.
그 광경이 또 구불청의 입을 달라붙게 했다.
“나는 여자와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 없어. 따라오지 마.”
“걱정 말고 가세요. 거리를 두고 따라갈 거니까.”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사공미미를 보니 말로써는 통하지 않을 듯하다.
혁무천은 쌩 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겼다.
사공미미가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그를 따라갔다.
사공곽은 이마를 찌푸리고, 구불청은 입을 반쯤 벌리고, 사진효는 독기를 뿜어내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애의 집착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군.’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거야?’
‘오냐, 원한다면 함께 죽여주마. 특히 사공미미, 너는 철저히 갖고 논 다음 죽여주겠어.’
***
천화광은 보고를 받고 고개를 들었다.
“사공미미가 무천이란 자를 따라다닌다고?”
의외라는 표정.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아는 사공미미는 남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가 아니었다.
“예, 소성주.”
“흠, 사공미미가 그에게 반했나?”
“단순히 반한 정도가 아니라…… 푹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천화광의 그림자, 유궁은 주인의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말했다.
천화광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재미있군. 하긴 여인에게 호감을 살 얼굴이긴 하지. 성격도 그만하면 매력이 있고.”
“그런데…… 그를 감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래? 누구지?”
“소소 아가씨의 호위무사인 자경산이란 자입니다.”
그림자의 그 말에 천화광이 눈빛을 번뜩였다.
“소소가 사람을 시켜서 그를 감시한단 말이지?”
“예, 소성주.”
“아쉽군. 하필이면 소소가 그를 욕심내다니.”
말투는 담담했다. 그러나 두 눈 깊은 곳에서 기이한 혈광이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