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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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45화
45화
호명추의 실력은 담사종에게 뒤지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시커멓게 변한 손바닥에서 쏟아지는 음습한 기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좌우로 흔들리듯 신법을 펼치며 상대의 공세를 피하던 혁무천은 이마를 찡그렸다.
‘쉽게 넘어가기는 틀렸군.’
절정고수 둘의 협공.
거기다 자신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곳을 벗어나는 거야 어려울 것 없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피한다 해서 끝날 일도 아니고.
잠깐 사이, 오륙 초의 공방이 벌어졌다.
혁무천은 유령처럼 움직이며 두 사람의 공세를 피하고, 적당한 반격으로 방어에 치중했다.
“역시 듣던 대로 실력이 제법이구나. 그러니 건방을 떠는 거겠지.”
호명추가 독사 같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말투에서 살기가 풀풀 날렸다.
둘이 협공하고도 저딴 놈 하나 눕히지 못하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무슨 창피란 말인가.
그는 이번 비무대회를 위해 특별히 익힌 흑명장을 펼치기로 작정했다.
‘개자식, 죽여버리겠어!’
교차시키며 뻗는 그의 쌍장에서 묵광이 번뜩였다.
담사종이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등 뒤의 검을 잡았다.
‘이자들이 진짜!’
혁무천도 슬슬 짜증이 났다.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네놈들이 원한다면…….’
그는 가슴으로 날아드는 흑명장의 기세를 보며 손을 마주 뻗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평범한 장력이 아니었다.
장심에서 강맹한 기운이 휘돌았다.
호명추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을 치켜떴다.
“엇? 이 자식이……!”
경악도 잠시,
쾅!
굉음이 터져 나오고,
호명추가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물러설 때마다 두 눈에서 독기가 일렁거렸다.
반면 혁무천은 옆으로 석 자가량 미끄러졌다.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처럼 돌아서서 담사종을 바라보았다.
슈악!
담사종이 쾌속하게 발검하며 그를 향해 검을 뻗었다.
혁무천은 몸을 살짝 우측으로 기울여서 그의 검을 피하고는 손을 뻗었다.
담사종의 검신이 그의 좌수에 잡혔다.
강한 내력이 실린 검을 혁무천이 맨손으로 잡는 걸 보고 담사종의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오냐, 이놈.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주마!’
공력을 더욱 강하게 주입한 그가 검을 틀었다.
그 순간, 혁무천이 잡은 검을 당기며, 주먹으로 변한 우수를 내질렀다.
퍽!
생각지도 못한 공격.
혁무천의 우수가 담사종의 복부 깊숙이 꽂혔다.
“크윽!”
얼굴을 일그러뜨린 담사종이 뒤로 일 장 가량 나가 떨어졌다.
혁무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
손을 쓴 이상 철저히 굴복시켜야 했다.
그가 선 채 뒤로 죽 미끄러졌다.
호명추가 황급히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혁무천이 돌아서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이런 개……!”
퍼벅!
혁무천의 주먹이 호명추의 가슴과 옆구리를 두들겼다.
‘크업!’
극렬한 고통에 입을 떡 벌린 호명추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혁무천은 눈 깜짝할 시간에 호명추를 십여 대나 두들겨 팼다.
그러고는 호명추가 눈을 뒤집어 까며 널브러지자, 이번에는 담사종 앞에 나타났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유령이 따로 없었다.
“무, 물러서!”
기겁한 담사종은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차갑게 노려보던 혁무천이 담사종의 검영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게, 왜 건드려?”
혁무천은 검영 사이를 누비며 철저히 손을 썼다.
뼈는 상하지 않게, 살도 찢어지지 않게, 고통스러운 곳만 골라서.
잠시 후, 혁무천은 쓰러져서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충고를 건넸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밖에서 만났으면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 거다. 앞으로 일찍 죽고 싶지 않으면, 상대부터 정확히 알아보고 건드려라.”
그러고는 두 사람을 그대로 놔둔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몇몇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개중에는 경비무사의 시선도 있었고, 비무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의 눈빛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천이란 자가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빤히 보였다. 춤을 추듯 자연스럽고 유연하긴 하나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담사종과 호명추는 무천이란 자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 후 몇 번 투닥투닥 하는 것 같더니, 오히려 담사종과 호명추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제 보니 속 빈 강정이었나?’
‘귀천교와 남천맹의 기재라고 하더니 별 볼 일 없는 실력이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된다니까.’
그러나 한 사람의 눈빛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뒷짐을 지고 있는 그는 잘 봐줘야 서른 살 정도였다. 고요히 서 있는 그의 전신에서 타인을 짓누르는 위엄이 흘러나왔다.
‘흥미로운 자가 나타났군.’
그는 혁무천이 객당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자 옆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유궁, 이제부터 너는 저자를 살펴봐라.”
그의 오른쪽 뒤쪽에서 어둠이 출렁거렸다.
“소성주, 제 임무는 소성주를 보호하는 겁니다.”
“이 천화광이 너의 경호가 없으면 남에게 당할 만큼 약하다고 보느냐?”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망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명령대로 해.”
“성주님과 부인께서는 저더러…….”
“삼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네 앞에 있는 나 중 누구 말을 듣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하느냐?”
“그거야…… 당연히 소성주님이시죠.”
“그럼 하라는 대로 해. 당장.”
“예, 소성주.”
“가봐.”
청년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진 직후, 오른쪽 뒤쪽에서 일렁이던 그림자가 허공으로 연기처럼 솟구쳤다.
청년은 미소를 지은 채 객당 쪽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보다 좀 더 재미있는 자였으면 좋겠군.’
***
혁무천은 방으로 들어선 후 이마를 찌푸렸다.
‘누구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시하는 자가 있었다.
십여 명이나 되는 구경꾼은 그에 비하면 호랑이 앞의 고양이였다.
청년고수 중 강자라 할 수 있는 사공곽도 그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인 듯했다.
“무슨 일 있었나?”
동대안이 혁무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혁무천은 찻잔이 놓인 탁자 앞에 앉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객당으로 들어오는데, 멀리서 호랑이 한 마리가 지켜보고 있었소.”
“호랑이? 정말 호랑이가 돌아다녀?”
엽기천과 목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동대안을 바라보았다.
강탁은 조금 더 솔직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귓구멍도 눈구멍만큼이나 작은가? 어떻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쇼?”
동대안이 그를 째려보았다.
강탁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의외로 동대안은 그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실…… 귓구멍도 작았다.
“누가 진짜 호랑이가 아니란 걸 몰라? 어떤 자이기에 무천이 호랑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지.”
“철혈마련에 호랑이 같은 자들이 득시글하다는 걸 모르쇼?”
“그딴 자들은 무천의 눈에 차지도 않아.”
“쳇, 대형이 뭐 얼마나 대단해서…….”
“대단하지. 너 같은 멧돼지는 짐작도 못할 만큼.”
“흥!”
강탁이 코웃음 쳤다.
그는 솔직히 혁무천을 인정할 수 없었다.
사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면 당장 붙어보자고 했을 것이다.
그때 혁무천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어쩌면 곧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
“담사종과 호명추가 무천에게 당했습니다.”
사진효는 남조의 보고를 받으며 미간을 좁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것 같군.’
짜증이 났다.
은근슬쩍 두 사람을 충동질해서 무천이란 놈을 쳐보았다.
놈이 강하다 해도 그들에게 걸리면 혼쭐 좀 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담사종과 호명추가 합공을 하고도 당하다니.
‘역시 위험한 놈이야.’
비무대회 참가자 중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열 명 안팎?
어쩌면 그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철저히 이용하고 죽이려 했는데, 아무래도 오래 끌면 안 되겠어.’
사진효가 독심을 품고 있던 그 시각.
사공곽은 자신의 방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그자는 여느 때처럼 여유가 넘쳤다.
“오랜만이군, 곽 아우.”
“강동일화가 대단하다는 걸 알지만, 천 형까지 불러낼 줄은 몰랐구려.”
찾아온 자는 준수한 얼굴에 강인함까지 느껴지는 미남자였다.
거기다 키마저 훤칠해서, 남 못지않은 외모를 자랑하는 사공곽도 그에 비하면 특별난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하하, 강동일화의 미모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를 불러낼 정도는 아니라네. 더구나 소소는 내 외사촌 동생 아닌가?”
그렇다. 천화광의 어머니는 본래 철혈마련의 여인이었다. 정략결혼으로 인해 만마성의 소주인과 맺어진 여인.
“하면 호북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만마공자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만마공자(萬魔公子) 천화광.
참으로 놀라운 별호였다.
당금 천하무림의 청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절대경지를 맛본 절세의 기재.
만마성주가 만마성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외동아들이 바로 그였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보고 싶어서 왔지.”
“얼굴이 아니라 실력을 보고 싶은 것 아니오?”
“그럴 생각도 조금은 있고.”
“제길, 잘하면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천 형이 온 이상 포기해야겠구려.”
천하에 사공곽으로 하여금 포기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들 자가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태연했다.
“곽 아우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네.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밀릴 지도 모르지.”
“입에 발린 소리하지 마쇼. 어디 나만 늘었겠소?”
천화광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객당에 있는 무천이란 자를 아나?”
“천 형이 어떻게 그자를……?”
“여기 오면서 우연히 봤네. 재미있는 자더군.”
사공곽이 쓴웃음을 지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자인 건 맞소. 미미를 귀찮아하는 남자는 처음 봤으니까.”
“호오, 그래?”
“나더러 동생 데리고 다니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하더군요.”
“응? 푸하하하.”
“그런데 미미가 애가 닳아서 나만 고생이오.”
“여전히 잘 생긴 남자를 보면 들이대나 보군.”
“어쩌겠소? 천성이 그런 걸.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 아이가 요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소. 알고 보면 순진한 아이인데.”
그 말에 피식, 웃은 천화광이 불쑥 물었다.
“그 친구, 어느 정도 아는가?”
“그저 말만 몇 마디 섞어 보았을 뿐이오.”
“이번 비무대회에 출전하겠지?”
“신청했다고 듣긴 했소.”
“그래?”
천화광이 미소를 지었다.
사공곽은 그 미소를 보고 흠칫했다.
‘설마…… 천 형이 그를 적수로 생각하고 있는 건……?’
그의 속마음을 눈치 챈 듯 천화광이 담담히 말했다.
“오랜만에 좋은 적수를 만날지도 모르겠어.”
“정말…… 그 정도란 말이오?”
“나를 만족시킨다면 친구로 삼을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철저히 밟아줄 생각이네. 이 천화광의 눈을 기만한 죄로.”
사공곽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하의 청년고수 중 그가 패배감을 느낀 사람은 천화광이 유일했다.
천화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 둘 더 있긴 했으나,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천화광이 무천이란 자를 적수로 인정한 것이다.
‘난 인정할 수 없어. 무천, 네가 천 형을 만나려면 먼저 나를 넘어야 할 거다.’
***
둥! 둥! 둥! 둥! 둥!
천둥 같은 북소리가 아침 하늘에 울려 퍼졌다.
창천을 뒤흔드는 북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대 연무장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마룡선발대회가 열리는 날이 온 것이다.
비무대회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은 커다란 항아리에 꽂힌 대나무살을 하나씩 뽑았다.
항아리 속에 묻혀 있던 대나무살 끝에는 숫자가 적힌 천이 매달려 있었다.
[청(靑) 이백이십사]
엽기천이 뽑은 대나무살의 천에 적힌 글자였다.
혁무천도 하나 뽑았다.
[홍(紅) 구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