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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7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5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71화

반승은 심장에 검이 꽂힌 사부를 보고 그를 죽일 듯이 몰아붙였다.

사부가 반승을 말렸다. 그러고는 ‘무를 탓하지 마라, 자업자득이니…….’라는 말만 남긴 채 돌아가셨다.

반승은 사부를 안고, 원망서린 눈길로 사제인 철무를 쳐다본 후 절영곡(絶影谷)을 떠났다.

“사실이라면, 그때는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당시 사형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 그랬을지도 모른다.

“십이 년 전에 너는 나를 찾아왔다. 그때라도 말했으면 되었지 않느냐?”

“변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 검에 사부님이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니까요.”

노인, 아니 노인처럼 보이는 반승은 이십 년 전에 버린 사제를 노려보았다.

단 하나 있는 사제, 열 살이나 어린 사제를 친동생처럼 위했었다. 사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줄 수 있었다.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부만 사제의 검에 죽지 않았어도 자신과 사제는 친형제처럼 지냈을 텐데…….

‘빌어먹을!’

반승은 흔들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홱 몸을 돌렸다.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

너무 무심해서 목상 같던 철무의 입술 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고맙습니다, 사형.’

 

***

 

쪼르르르.

노란빛이 나는 황차에서 은은한 다향이 퍼졌다.

자신의 찻잔에 마저 차를 따른 반승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맞은편의 철무를 쳐다보았다.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냐. 입에 발린 소리나 할 거면 아예 말하지 마라.”

그는 사제를 너무도 잘 알았다.

사제는 단순히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 사람이 아니다. 그럴 사제였다면 자신을 찾아낸 십이 년 전 이후 적어도 열두 번은 더 왔을 것이다.

“성주께서 독살당하셨습니다.”

“독살?”

반승은 이마를 찌푸렸다.

천하제일인 천궁마신이 독살되었다고?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구천성과 절영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두 곳의 옛 주인이 형제였으니까.

그 후 절영곡의 두 제자 중 하나는 구천성의 주인을 암중에 호위했고, 하나는 제자를 키웠다.

이십 년 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구천성 주인의 죽음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너무나 교묘해서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성주님조차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확신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어이가 없군.”

“조사 끝에 독살 방법도 알아냈고, 대백과 대장로 쪽에서 벌인 일이란 심증도 확실합니다만, 문제는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공손백과 나극 장로가? 그게 사실이냐?”

“예, 사형. 증거는 없습니다만, 목을 걸라면 걸 수 있습니다.”

반승은 철무의 말을 듣고 찻잔을 주시했다.

그는 공손백과 나극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이라면 모른 척할 수도 없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단순히 병으로 돌아가신 거라면 소성주를 찾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살이 확실한 이상 소성주께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정은 소성주께서 내리시겠지요.”

병사와 독살은 천양지차다.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

부모를 죽인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제다.

공손백과 나극은 너무나 강하고,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독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여린 소성주가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쨌든 철무의 말대로 알리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소성주가 합비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지난 몇 달 동안 흔적을 철저히 쫓았습니다. 곽산에서는 소성주가 지낸 것으로 보이는 수상한 계곡도 찾아냈지요. 기문진과 독기 때문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곳을 나온 후 이어진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반승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 사람을 추천했다.

“화화로 쪽으로 가면 정보에 밝은 놈이 있다. 찾아보다가 안 되겠으면 그를 만나봐라. 소성주가 합비성 안에만 있다면 사흘 안에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아는 사람입니까?”

“조금. 죽이지는 마라. 괜찮은 친구거든. 입도 무겁고.”

 

***

 

밤이 되자 진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장간을 찾아왔다.

“조장, 명학이가 놈들에게 꼬리를 밟힌 것 같아.”

예상을 못한 바는 아니다. 상대는 구천성 광혈단 아닌가.

그래도 하루만 더 지났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을 텐데…….

그냥 떠나버리면 되니까.

“명학이는 지금 어디 있지?”

“흑화방에서 나오다가 놈들의 감시를 눈치 채고 다시 돌아갔어. 그 후 다른 사람을 보내서 나에게 연락한 거야.”

“그나마 먼저 알아채서 다행이군.”

그때 사마경이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장천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냉소를 지었다.

“합비는 남궁세가의 자존심이 걸린 곳입니다. 어디 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구천성 사람이 남궁세가 순찰조를 두들겨 패면 남궁세가가 어떻게 나올까요?”

“그거 재미있겠는데?”

사마경이 장천운의 말뜻을 알아듣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좋아했다.

남궁호, 소서연과 다툰 경험이 있는 그녀는 남궁세가가 골탕 먹는다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구산과 진구 형, 두심 형은 이곳을 지켜.”

“혼자가려고?”

“많은 사람이 움직여봐야 좋을 것 없어.”

 

***

 

술시 말.

장천운과 방호, 이공진, 유각은 동문로로 들어갔다.

그들의 복장은 낮과 달랐다.

광혈단 무사들과 비슷한 무복을 사 입고, 이마의 무사건마저 비슷하게 흉내 낸 상태.

심지어 방호는 부채 대신 짧은 곤을 들었고, 이공진은 사자갈기처럼 뻗은 머리를 억지로 묶었고, 유각은 말꼬리머리를 풀어서 좌우로 늘어뜨렸다.

거기다 구름이 낀 캄캄한 밤마저 그들의 변장을 도와주었다.

동문로는 남궁세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들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앞쪽에서 무사 몇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남궁세가의 순찰조였다.

모두 다섯.

장천운 등은 그들을 피하려는 것처럼 엉성한 움직임을 보이며 우측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다가오던 남궁세가 검순당 순찰조가 그들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빠르게 달려왔다.

“웬 놈들이냐? 거기 멈춰라!”

장천운 일행은 골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무작정 공격했다.

검순당 무사들은 장천운 일행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 초의 공방이 벌어지지도 않아서 검순당 무사 다섯이 모두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흥! 꼴에 남궁세가라 이건가? 귀찮아서 피했더니, 한물간 남궁가의 졸개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멈추라 마라 하는 거냐? 그나마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

“우리 구천성이 콧바람만 날려도 숨을 죽이는 남궁가 따위가 우릴 어떻게 하겠나?”

“하긴 무림맹도 우리 눈치를 보는데, 겉멋만 잔뜩 든 남궁세가 정도야 말할 것도 없지.”

“그만 가세. 서 공자께서 기다리시겠네.”

방호와 장천운이 한마디씩 내뱉은 직후 네 사람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쓰러져 있던 검순당 무사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목숨은 구했지만 두어 사람은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끄응, 개자식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아무래도 엊그제 들어왔다는 구천성 놈들 같습니다, 조장.”

“나도 놈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죽일 놈들! 가자, 당주께 알려야겠다.”

 

***

 

“구천성 무사들이 순찰조를 공격했다고?”

“예, 당주. 틀림없이 그놈들입니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만, 놈들이 비아냥거리면서 본가를 모욕했습니다.”

검순당 오조장 기양은 자신이 들은 말을 남궁선에게 그대로 전했다.

남궁선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창궁무전을 앞두고 소란이 일까봐 소 닭 보듯 그냥 놔두려고 했다.

그런데 감히 순찰조 무사를 두들겨 패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궁세가를 모욕하다니!

“괘씸한 놈들! 가만히 있으니 우리가 하찮게 보였나 보군.”

“저대로 놔두면 창궁무전도 방해할지 모릅니다, 당주.”

“그럴지도 모르지.”

그때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누가 창궁무전을 방해한단 말입니까?”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남궁호였다.

그는 장천운과 사마경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상의하려고 남궁선을 찾아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창궁무전을 방해할지 모른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가.

“숙부, 대체 무슨 말입니까?”

남궁선은 그에게 기양이 당하고 온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니 참으로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네.”

남궁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기 조장, 그들이 정말 그리 말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공자. 비록 쓰러져 있었지만,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그들이 합비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는데, 차라리 잘 됐습니다, 숙부.”

남궁선이 흠칫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본가를 농락한 말을 듣고도 그냥 놔둔다면 강호의 친구들이 우리를 비웃지 않겠습니까? 내일 찾아가서 받은 것만큼은 반드시 돌려줄 겁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한번 불붙으면 마른 장작처럼 타오르는 남궁호다.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남궁선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로인 섬혼수 정이청이 광혈단과 함께 왔다고 하더군. 싸움이 벌어지면 일이 지나치게 커질지 모르네.”

“걱정 마십시오, 숙부. 정면대결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북성로 쪽 대륙객잔에 머물고 있네.”

“마침 남경의 사공 형이 저녁식사 때 도착했는데, 함께 가야겠습니다. 사공 형이라면 섬혼수도 등골이 서늘해질 겁니다.”

“자네들만으로는 안 되네. 놈들은 숫자가 삼십 명이 넘네. 가주께 보고를 올리지 않을 수 없어.”

“보고를 올리더라도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먼저 저들의 실력을 알아봐야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남궁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 정도라면 상관없겠군. 알았네, 내 적당히 조절해 보지.”

 

***

 

돌아온 장천운에게 이야기를 들은 구산 등은 피식, 실소를 지었다.

“남궁세가에서 잔뜩 화가 났겠군.”

“서궁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될 거고.”

“조장, 방호와 그 일행이라는 자들, 믿을 수 있어?”

저두심이 물었다.

장천운은 그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평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 줄 아는 자들이야.”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래? 그럼 그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때였다.

탕탕.

밖에서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계시오?”

“이 밤에 누가 찾아온 거지?”

구산이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서 방을 나서려 했다.

장천운이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잠깐. 들어본 목소리 같아. 내가 나가보겠어.”

 

장천운은 뜻밖의 방문객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밤늦은 시각에 대장간을 찾아온 사람은 왕규였다.

“어쩐 일이오?”

“할 말이 있어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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