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6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68화
장천운은 사마경과 함께 왕규가 붙여준 장한을 따라서 남화로로 향했다.
왕규가 찾았다는 사람은 덩치가 무척 크다고 했다. 게다가 성도 구씨라고 했다. 구진.
‘그렇다면 구산일 가능성이 크군.’
남화로는 무창의 홍구로처럼 홍등가와 청등가가 밀집된 뒷골목 세계였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술에 취한 자들의 고함과 욕설이 사방에서 들리고, 어깨에 힘을 잔뜩 준 흑도무리들이 활보했다.
장천운은 마치 홍구로를 걷는 듯해서 가슴이 잔잔하게 울렸다.
‘언제 시간 내서 무창에 가봐야지.’
향이는 정말 홍화루의 기녀로 들어갔을까?’
흑월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집은?
알아볼 게 너무 많았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장한이 미로처럼 뒤엉킨 남화로의 끝자락에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장천운과 사마경도 뒤따라서 골목으로 꺾어졌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저만치서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십 장쯤 걸어갔을 때, 장한이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대장간이 석가철방이오.”
허름한 외관에 갈색 녹으로 뒤덮인 대장간은 보는 것만으로도 쇠 냄새가 나는 듯했다.
장천운은 격동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걸음을 옮겼다.
정말 저 대장간 안에 구산이 있을까?
사마경은 묵묵히 뒤만 따라가고, 장한은 그 자리에 서서 머뭇거렸다.
“대장간만 알려주고 바로 돌아와. 다른 것은 일체 묻지 말고.”
왕규가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참, 왜 그냥 돌아오라고 한 거지?’
정보상인에게 정보는 곧 돈이다. 비밀이 클수록 더 큰 돈이 된다.
그런데 왜?
‘지미, 이 공패가 여기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지.’
미적거리던 그는 결국 장천운과 사마경의 뒤를 따라갔다.
장천운의 일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은 왕규의 마음도 모른 채.
29장: 하면 된다
장천운은 대장간을 칠팔 장 남겨놓았고 멈칫했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자는 녹이 잔뜩 슨 쇳덩이를 대장간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덩치는 평범했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렸다.
장천운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미묘한 감정에 가슴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누굴까? 누군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멈칫했던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삼 장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쇳덩이를 옮기던 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자를 바라보던 장천운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몸집은 전에 비해서 반밖에 안 되었다. 얼굴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전에 없던 기다란 자상이 뺨을 사선으로 가르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의 골격만큼은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마…… 두심 형?”
막 고개를 돌린 청년이 들고 있던 쇳덩이를 툭 떨어뜨렸다.
“어…… 처, 처, 천운?”
장천운은 왕규가 붙여준 장한을 돌려보내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이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구산, 언제 대장장이가 된 거야? 제법 그럴 듯한데?”
망치질을 멈춘 대장장이가 홱 몸을 돌렸다.
동그래진 두 눈이 소 눈만큼이나 커졌다.
“조장! 살아 있었군! 내 그럴 줄 알았어! 음하하하!”
구산은 망치를 집어 던지고 활짝 웃으며 장천운을 반겼다.
장천운과 구산, 저두심의 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물기가 가득했다.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유모는 어떻게 되었지?”
장천운 뒤쪽에 서 있던 사마경이 물었다.
구산과 저두심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웬 시골 소년인가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여자다. 그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아차, 소성주께 인사드리게.”
구산과 저두심은 장천운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뿐, 두 사람은 황급히 두 손을 맞잡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구산이 소성주님을 뵙습니다.”
“저두심이 소성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일어서. 유모는 어떻게 되었냐니까?”
사마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일어섰던 저두심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사마경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구산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살아계십니다.”
“살아있다고? 정말?”
사마경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러나 구산과 저두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예, 소성주. 그런데…… 부상이 심해서…….”
“부상? 얼마나 심한데?”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
사마경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아가씨…….”
소연추가 격정에 찬 표정으로 사마경을 부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사마경의 눈은 그녀의 왼쪽 팔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왼쪽 팔의 소매가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흐느적거렸다. 속이 텅 빈 채.
“그 팔, 어떻게 된 거야?”
“목숨과 바꿨으니 손해 본 것만은 아닙니다.”
“누구야? 어떤 놈이 유모의 팔을 잘랐지?”
“추산이란 자였습니다.”
“두고 봐, 내가 꼭 그놈의 양팔을 잘라버릴 테니까. 아니, 목도 쳐버리겠어!”
그런데 소연추의 달라진 점은 왼쪽 팔만이 아니었다.
얼굴에도 몇 군데 깊은 상흔이 남아 있었고, 안색은 병자처럼 창백했다.
“내상이 심한 것 같군요.”
장천운은 소연추의 내상이 심각함을 바로 알아보았다.
“일 년이나 노력했는데 쉽게 낫지 않는군.”
소연추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추산과 싸우며 입은 내상에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강물에 떨어진 충격마저 더해졌다.
그로 인해서 진기의 통로인 혈도가 몇 군데나 막힌 상태였다.
십여 개월 동안 구산이 도와줬는데도 호전되지 않았다.
“제가 한 번 방법을 찾아보죠. 마침 괜찮은 약도 있으니까.”
사마경이 멈칫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아! 맞아, 공력증진에 효과 있는 약이라면 내상을 치료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렇지, 천운?”
그녀는 장천운보다 먼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독왕이 만든 해독제는 독만 해독시키는 것이 아니다. 딸을 위해 영약도 섞어서 내공증진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소연추의 운기를 도와주라고 하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구산과 저두심도 따라 나왔다.
단순히 운기하는 것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혈을 주무르는 추궁과혈까지 해야 한다.
옷을 최대한 얇게 입고서. 벗으면 더 좋고.
남자들은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두심 형, 어떻게 된 거야?”
밖으로 나온 장천운이 저두심에게 물었다.
저두심이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강에 빠진 후 간신히 강을 건넜어. 하지만 부상이 심한 데다 피까지 많이 흘려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지.”
강물 속에서 가까스로 지혈을 한 덕에 그나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구산과 진구, 사명학이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강가에서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다.
“추 형과 함께 움직인 사람들과 팔강에서 갈라져 도주했네. 그 후 합비로 가려는데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뭔가. 그래서 달려가 봤더니 강가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더군.”
구산이 당시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진구와 사명학은 여기에 없나 보지?”
“진구는 도박장에서 뒤를 봐주는 호위무사로 취직했고, 사명학은 흑화방에 들어갔네.”
“여긴 어떻게 된 거지? 주인이 없어?”
“원래 주인은 이씨 성의 노인이었는데, 석 달 전에 돌아가셨네. 그런데 자식이 없다 보니 나에게 대장간을 물려주셨지.”
구산의 말에 저두심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 노인은 구산을 타고난 대장장이라며 좋아했어. 단 몇 달 만에 이 노인이 가르쳐준 것을 거의 다 배웠거든.”
장천운은 저두심의 말을 들으며 해독제통을 꺼냈다. 그러고는 해독제 한 알을 꺼내서 저두심에게 내밀었다.
“받아, 두심 형.”
“왜……?”
“두심 형은 받을 자격 있어. 아마 두심 형과 선자가 아니었으면 소성주와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뭐 그렇다면야…….”
“저녁에 복용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잘게 떨리는 저두심의 눈꺼풀에 이슬이 맺혔다.
사실 그도 내상이 완전치 못했다. 게다가 다리의 부상이 심해서 영원히 절룩이며 살아야했다.
내상마저 회복하지 못한다면 남의 신세나 지다가 끝날 인생.
하지만 이제 희망이 생겼다.
“고맙다, 천운.”
“그런데…… 살은 왜 그렇게 빠진 거야?”
장천운은 그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통통하던 몸매가 일 년 만에 반쪽이 되다니.
저두심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내가 조금만 가벼웠으면 선자께서 팔을 잃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이후 다짐했다.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그러고는 악착같이 살을 뺐다.
“하니까 되더군.”
“잘했어, 형. 살을 빼니까 훨씬 인물이 사네, 뭐.”
***
“……그래서 놈들의 이름을 알아왔습죠.”
공패는 자신이 알아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술값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왕규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술값을 줄 마음도 없었다.
술값은커녕 공패를 패죽이고 싶었다.
“내가 그냥 대장간만 알려주고 바로 돌아오라고 했지?”
“평소에 정보는 곧 돈이라고 하셔서…….”
“지금 네가 뭘 알아가지고 왔는지 알기나 해?”
장한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그는 솔직히 왕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한 것은 기껏해야 몇 사람의 이름뿐이었다.
두심, 천운, 구산. 거기다 조장이라는 직위도.
그게 뭐가 문제야?
하지만 왕규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왕규는 그 이름과 직위를 조합해서 하나의 가정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작년 십일월에 헤어진 자들이다. 또한 절정 경지에 이른 실력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아는 한 그러한 자들은 한 무리밖에 없다.
‘제길, 내 생각이 틀려야 하는데…….’
하지만 생각해볼수록 자신의 짐작이 더욱 확실하게 사실로 굳어지기만 했다.
‘작년에 사라진 구천성 소성주의 일행이 분명해. 그리고 그 여자 아이…… 응? 이, 이런 빌어먹을!’
사실 공패가 가져온 정보는 대박 중의 왕대박이었다.
그래서 문제다. 대박에는 항상 위험이 뒤따르니까.
더구나 구천성과 관련된 위험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비밀유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웃으면서 목을 칠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끄응, 미치겠군.’
돈이 아무리 많은들 죽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작게 먹고 가늘게 싸더라도 길게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아무 말도 하지 마. 절대로! 알았어?”
“예, 루주.”
“만약 내 귀에 네가 무슨 말을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너는 내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장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아는 것이다. 평소 조용하던 루주가 화가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걱정 마십쇼. 입을 아예 꿰매고 다니겠습니다.”
***
콰당!
문이 거세게 열리고 두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 두리번거리는 눈이 희열로 번들거렸다.
구산의 연락을 받고 득달같이 달려온 진구와 사명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