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6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65화
“그들 중 한 사람이면 이 방의 벽 뒤와 천장 위에 있는 자들 일곱을 모두 죽일 수 있죠.”
왕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천운의 말대로 벽 안쪽과 천장 위에는 만약을 대비한 무사 일곱 명이 숨어 있었다.
“우리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군.”
“증명하길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모두 죽여줄 수 있습니다만.”
‘빌어먹을! 기분이 더럽더라니.’
왕규는 입맛이 썼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한번 시험해봐?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망설이고 있는데, 장천운이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손으로 덮었다.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이면 매사에 신중할 터, 섣부른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찻잔이 모래로 만든 듯 스르르 부서졌다.
왕규가 눈초리를 파르르 떨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 그냥 해본 말이오. 좌우간 그런 고수들이 열 명이나 들어왔다면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요.”
“다행이군요.”
“한 사람 당 은자 열 냥이오.”
“합해서 오십 냥.”
“그건 너무 적…….”
“한두 사람만 찾아도 나머지를 찾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오십 냥도 신속하게 찾아주길 바라고 주는 겁니다. 싫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요.”
왕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장천운은 품속에서 열 냥짜리 은괴를 꺼내주었다.
“계약금이오. 골목 입구에 홍구객잔이 있는 걸 봤습니다. 그곳에서 사흘을 기다리지요.”
약속장소까지 정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경과 함께 방문으로 향했다.
그때 걸어가는 장천운의 좌측 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순간, 장천운이 벽을 향해 좌수를 쑥 뻗었다.
퍽!
단단하게 보이는 벽이 종잇장처럼 뚫렸다.
“컥!”
벽 안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아시오.”
장천운이 서리가 내리듯 차갑게 몇 마디 내뱉고는, 좌수를 벽에서 빼고 왕규를 돌아다보았다.
“봐주는 것도 이번 한 번뿐입니다.”
왕규에게 경고를 남긴 그는 사마경과 함께 방을 나섰다.
눈을 부릅뜬 왕규는 구멍이 뚫린 벽을 바라보았다.
그 벽은 평범한 흙벽이 아니다. 안에 철판을 덧댄 철문이다.
유사시에는 숨어 있는 무사가 문을 박차고 나와서 자신을 지키게끔 만든 시설.
그런데 그 철문이 가벼운 손짓에 뻥 뚫렸다. 그것도 아주 깨끗하게.
‘지미, 더럽게 강하군.’
스륵. 턱.
미세한 소리와 함께 그의 좌우와 뒤쪽에 있던 벽이 벌어졌다.
역시나 철판으로 덧대진 철문이었는데, 그 안에서 칼과 도끼, 단겸을 든 장한들이 나왔다.
“루주, 어떻게 할까요? 애들 시켜서 묻어버릴까요?”
왕규가 말한 자를 째려보았다. 칼을 든 텁석부리장한이 당장 달려 나갈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하겠냐? 헛소리 말고 애들을 시켜서 찾아봐. 찾아야하는 자들 특징에 대해서는 들었지?”
“예, 루주.”
“애들 시킬 때,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말도 꼭 하고.”
왕규는 텁석부리장한의 눈을 노려보며 주의를 주었다.
자신조차도 손바닥에 식은땀이 나는 판이었다. 수하들의 어설픈 실력으로는 그놈의 손끝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정식으로 붙으면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수하들을 내보내고 다 식은 찻잔을 잡은 그의 손끝이 잘게 떨리며 찻잔을 두드렸다. 전율을 느낄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좌우간 뭔지 몰라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
호기심에 눈이 가려진 그는 빌어먹을 운명이 자신을 칭칭 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정보상인치고는 제법이었습니다. 그런 자가 주루나 하면서 정보상인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봐도 보통은 아니었어.”
“아마 실력만 따지면 흑월조원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겁니다. 목숨을 건 대결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 정도야?”
“강호인명부에 그자와 비슷한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셋인데, 조금만 더 자세히 알면 정확히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운, 유모와 저두심이 살아 있을까?”
사마경이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여섯 걸음 말 없이 걷던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사마경을 돌아보았다.
“살아있을 겁니다. 약속했으니까요.”
사마경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화화로 입구의 홍구객잔은 규모가 작았다. 일층에는 탁자가 여섯 개밖에 안 되었고, 이층의 방은 창고로 쓰는 방까지 합쳐도 다섯 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방이 두 개 비어 있었다.
장천운과 사마경은 일단 방부터 잡아 놓고 포목점을 찾아보았다.
옷을 살 생각이었다. 낡은 것도 낡은 것이지만, 아무리 남장을 했다 해도 사마경은 여인이 아닌가. 더 이상 낡은 옷을 입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옷이 더 좋아 보이는데?”
사마경은 새 옷을 이것저것 집어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얼굴이 엉망임에도 밝은 표정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결정했어. 이걸로 해.”
마침내 사마경이 백색바탕에 감색이 들어간 옷과 붉은 빛 나는 갈색 가죽 겉옷을 하나 골랐다.
처음에는 노란 색이 든 옷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자신이 남장을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바꾼 것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입어보십쇼.”
포목점 주인이 방을 가리켰다.
사마경이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사이 장천운도 짙은 청색 무복과 검은색 가죽 겉옷을 하나 골랐다.
옷을 먼저 입고 나온 사람은 장천운이었다. 사마경은 여자답게 옷을 입어보는 시간도 길었다.
그런데 장천운이 밖에서 기다릴 때였다. 일단의 무사들이 포목점 앞을 우르르 지나갔다.
‘응? 남궁세가?’
그랬다. 십여 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남궁세가의 전형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창룡검대와 옷 색깔이 조금 다를 뿐.
포목점 주인이 그들을 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또 피바람이 불게 생겼군. 에잉…….”
장천운이 물었다.
“어떤 자들입니까?”
“남궁세가 수룡검대 무사들입죠.”
포목점 주인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장천운과 사마경도 검을 차고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엄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천운, 어때?”
때마침 사마경이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얼굴은 영락없이 시골 총각이었다. 그러나 옷맵시는 제법 그럴 듯했다.
“멋진데요?”
“정말?”
옆에 있던 포목점 주인은 좋아하는 사마경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쯔쯔쯔, 목소리는 좋고 눈도 예쁜데 얼굴 피부가 엉망이네. 그래서 남장을 하고 다니는 건가?’
그래도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정말 멋있습니다요.”
장천운은 포목점 주인에게 은자 한 냥과 동전 오십 문을 건네고 사마경을 재촉했다.
“가시죠.”
“응.”
포목점을 나선 장천운은 남궁세가 무사들이 사라진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객잔이 있는 곳과 반대 방향.
사마경이 이상함을 느낀 듯 슬쩍 장천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려고?”
“좀 전에 남궁세가 무사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래? 혹시 방호인가 방구인가 하는 자들을 쫓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근데 왜 그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왠지 모를 끈적끈적한 느낌 때문이다.
그런데 그 느낌을 설명하기가 어정쩡해서 대충 둘러댔다.
“안휘와 합비에서 주로 활동했던 자들이니 합비 내의 일도 잘 알 겁니다. 그렇다면 흑월조 조원들을 봤을지도 모르죠.”
“그들을 돕다가 남궁세가와 적이 되면 더 곤란해지지 않을까?”
“상황 봐서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물러서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봐.”
***
장천운과 사마경이 남궁세가 무사들을 쫓아가서 멈춘 곳은 초화루라는 기루 앞이었다.
이층 건물로 된 기루는 제법 컸는데, 그 기루의 앞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내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방호!”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강 형은 안 죽였다고 하잖아!”
방호와 이공진, 유각이 정신을 잃은 강상을 가운데 두고는 삼재 형태로 진을 이룬 채 대항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남궁두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중간 간부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포위망이 워낙 단단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흥! 네놈들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그렇게 당당하면 도망가지 말고 순순히 본가로 함께 가서 따져보자!”
남궁세가 무사들 중 사십대로 보이는 중년인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나 방호 일행은 그들을 따라서 남궁세가로 갈 마음이 없었다.
어떤 결론이 내려져도 결코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 잘못도 없는 우리가 왜 당신들을 따라간단 말이냐!”
“따라가지 않겠다면 할 수 없지. 놈들을 쳐라! 죽여도 상관없다!”
멀리서 기루 앞의 상황을 지켜보던 사마경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운, 저들의 말이 사실일까?”
“사실 같습니다.”
“그래?”
“어차피 남궁세가에 대항하면 이러나저러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하긴 그러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장천운 특유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세력의 힘을 빌어서 상대를 억압하는 것은 정파의 대표적인 대문파인 남궁세가도 크게 다르지 않군.’
흑도 출신인 장천운은 어린 시절부터 그러한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래선지 남궁세가 측의 강압적인 일처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아마 방호 등이 남궁세가로 간다 해도 사건이 정상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거다.’
남궁세가는 자신들의 판단잘못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설령 강상이 남궁세가의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진다 해도 그 다음에는 남궁세가에 대항한 죄를 묻겠지.’
사상자가 발생한 이상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힘을 가진 대문파들의 일반적인 공통점이다.
참으로 더러운 공통점.
장천운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 이공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틀거렸다.
삼재진의 한 축이 흔들리자, 방호와 유각도 방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아가씨, 잠깐 저곳에 계십시오. 제가 구멍만 만들어주고 오겠습니다.”
장천운이 눈짓으로 한쪽에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사마경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마자 골목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28장: 남궁세가 이공자
이를 악물고 섭선을 휘두르는 방호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젠장! 결국 잡히고 마나?’
남궁세가의 창룡검대에 이어서 수룡검대마저 나타났다.
부상이 심한 강상이 없다 해도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
이제는 자신들의 목숨을 걱정해야할 판이었다.
‘개자식들! 죽어도 그냥 죽진 않겠다!’
방호는 이를 갈면서 섭선에 전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때였다.
한줄기 전음이 고막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