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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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57화
첫 번째 독의 이름은 칠보산(七步酸).
이름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중독되면 일곱 걸음 만에 쓰러진다는 절독이다.
독왕은 독을 복용시키기 전에 주의부터 주었다.
“공력으로 독기를 제어하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독기가 한쪽으로 뭉쳐서 해독약이 듣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해독약이 없다면 독기를 뭉쳐놓아서 확산을 방지한 후 치료법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독약이 있는 이상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뭉친 독기가 해독만 늦추고, 자칫하면 장기마저 상하게 한다.
내심 공력을 이용하려 했던 장천운은 속이 뜨끔했다.
“알겠습니다.”
“못 믿겠으면 마음대로 해. 대신 내 원망은 하지 말고.”
“지금 복용할까요?”
독왕은 독을 투여하고 일 각이 넘도록 해독제를 복용시키지 않았다.
일곱 걸음 만에 쓰러지는 절독이라면서 그렇게 오래 놔두다니!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잖아요! 저러다 썩은 땡감처럼 되겠어요!”
사마경이 옆에서 강력히 항의해봤지만, 독왕은 조금도 급할 것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한 걸음도 안 옮겼잖느냐?”
“……예?”
“움직이지 않으면 독이 늦게 퍼지니, 오두방정 떨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독왕은 오히려 사마경을 다그치고 장천운의 상태 변화를 세밀히 관찰했다.
“역시 독에 저항하는 능력이 무척 강한 몸이군. 어지간한 놈은 일 각을 버티지 못하고 눈알이 썩어갈 텐데…….”
가끔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칭찬(?)도 하면서.
“다음에는 더 강한 독을 써봐야겠군.”
그런 말로 속을 뒤집어 놓을 때도 있었고.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고는 이각을 꽉 채운 후 해독약을 복용시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쓸 만해. 그냥 죽게 내버려두었으면 아쉬울 뻔했어.”
장천운은 이를 갈며 독왕을 씹었다.
‘두고 보자, 영감태기!’
홍구로의 귀호가 얼마나 독한 놈인지 보여주겠어!
그나마 해독제가 말을 잘 들어서 고통이 빠르게 누그러지는 게 다행이었다.
다섯 시진 후.
장천운이 겨우 독에서 해방되자, 사마경이 땀으로 범벅된 그의 얼굴을 물 적신 천으로 닦아주었다.
“어때? 고통이 심했지?”
“참을 만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힘들면 말해. 기문진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약속한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서 이곳을 나갈 겁니다.”
“천운…….”
“저를 믿으세요. 절대로 소성주 혼자 남겨놓진 않을 테니까요.”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던 사마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믿을게.”
***
절독곡에 들어온 지 보름째.
장천운은 두 번째 독을 복용했다. 대가리가 붉은 도마뱀의 쓸개로 만든 용갈독(熔蝎毒)이었다.
이번에는 해독제를 일각 만에 복용했다. 시독의 해독제보다는 덜했지만, 냄새가 지독해서 마치 썩은 쥐똥을 한주먹쯤 먹은 듯했다.
그래도 효과는 좋았다. 세 시진 만에 반점이 없어지는 걸 보면.
사마경은 얼굴만 보고도 장천운의 상태를 짐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네?”
“예, 아가씨.”
대답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겉모습은 괜찮아졌지만 내장을 쥐어짜는 고통은 여전했다.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말은 안했지만.
“독왕 할아버지는 밖에 나갔어.”
한 시진 전만 해도 있었다. 자신에게 복용시킨 용갈독이 해독되는 걸 보고 식량과 독물을 구하러 나갔나보다.
그러다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진짜 독한 노인네라니까.’
장천운은 속으로 독왕을 가볍게 씹어준 후 사마경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뭐하고 계셨어요?”
이제는 아예 소성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있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며 사마경이 무조건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것도 싫으면 동생이라고 부르던가. 난 괜찮으니까.”
장천운은 그 말에 ‘아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마경이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듯했지만 모른 척했다.
솔직히 너무 부담 가는 동생이었다.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나중에 나가면 천운에게만 항상 신세질 순 없잖아? 급할 때 내 몸 정도는 내가 지켜야지.”
사마경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뭐랄까, 전에는 대 구천성의 심술쟁이 소성주였을 뿐인데, 이제는 제법 강호무사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눈빛도 전보다 더 무사답게 느껴졌고, 말투 역시 날을 세운 듯 사나와졌다.
오늘은 유난히 더했지만.
“그러려면 일단 천운에게 십초도 넘기지 못하고 맞는 것부터 벗어나야지.”
“비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제 맞은 것은 잊으십시오.”
“흥! 흥! 그런다고 다친 엉덩이를 쳐?”
“그건 아가씨가 피할 수 있는 데도 방심하는 바람에 피하지 못해서 맞은 거죠.”
“어쨌든! 열심히 해서 안 맞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신법 좀 가르쳐줘.”
“신법요?”
“응. 천운의 신법은 꼭 환상을 보는 것 같아. 그 기가 막힌 신법을 배우면 남에게 안 당할 거 아냐?”
장천운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평범한 신법이라면.
문제는 자신이 펼친 신법은 환귀자의 말도 안 되는 환술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 그게 말이죠…….”
“가르쳐주기 싫어?”
“저도 가르쳐 드리고 싶은데…….”
사마경의 눈매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흥! 가르쳐주기 싫으면 마!”
빽, 소리치고 홱, 몸을 돌린 사마경이 입술을 한 자는 내밀고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나도 뭐 신법을 모르는 줄 알아? 나도 알고 있는 신법 있어! 아주 굉장한 신법이라고!”
그런데도 익히지 못하는 건 그녀의 현재 능력으로는 펼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신법은 너무 높은 공력을 요구했고, 공력만 높다고 해서 배울 수 없는 절대의 깨달음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장천운의 신법을 배우려고 했던 건데, 안 가르쳐 줘?
“흥! 흥! 나도 안 배워!”
“후우, 정말로 제가 가르쳐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한숨을 내쉰 장천운이 사정하듯 말했다.
그러나 사마경도 고집이 제법 셌다.
“안 배워!”
끝내 장천운이 왜 안 되는지 말해주었다.
“그 신법을 배우려면 상체의 옷을 다 벗어야 된단 말입니다!”
“…….”
움찔하며 멈춰선 사마경이 고개를 돌렸다.
“진짜야?”
“어쩌면 아래도 겉옷은 벗어야할지 몰라요.”
“씨이, 뭐 그런 신법이 다 있어?”
겨우 사마경의 감정을 가라앉힌 장천운이 속으로 안도하며 말했다.
“그래서 가르쳐드릴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 말이지, 깜깜한 밤에만 배우면 안 될까?”
“…….”
***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어느 겨울 날 밤.
구천성 군사각인 비령각 내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찾았느냐?”
“곽산 인근에서 사라진 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죽었다고 보느냐?”
“벌써 석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죽지 않았다면 어딘가에서 나타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곽산은 넓다. 천주산까지 남북으로 오백 리야. 그 안에는 수백 명이 몇 년 동안 뒤져도 찾지 못할 곳이 허다하지. 게다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곳 또한 많아.”
“왕래를 할 수 없는 곳이라면 살기도 그만큼 척박할 겁니다.”
“그러겠지. 하지만 소성주와 함께 있는 사람이 장천운이란 게 변수야.”
“그가 없는 식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주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그는 도술을 부릴 줄 모른다.”
“하면 왜 그리 그를 믿으시는 겁니까?”
우문각이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왜냐고? 그가 나에게 약속했거든. 반드시 살아서 소성주를 지키겠다고.”
“예?”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그놈은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다. 놈에게는 남에게 없는 것이 있거든. 하늘이 내려준 생존본능이랄까?”
“솔직히 속하는 총사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후후후후, 그러겠지. 나 역시 한 동안은 너처럼 반신반의했으니까.”
담담하게 웃던 우문각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정유.”
“예, 총사.”
“대령주가 어떻게 나올 거라 생각하느냐? 그가 약속한 기한까지 기다려줄 거라 보느냐?”
소성주 사마경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했다. 그녀가 구천성에 있다면 당연히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구천성을 떠난 상태다. 그것도 자신의 발로. 비록 바람을 쐬고 온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굳이 기다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 모두가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지금 당장 대권을 취한다 해도 반대할 사람이 전보다 더 적을 겁니다.”
“맞아, 훨씬 적어져서 삼 할도 채 안 될 거다. 십이지부까지 다 합한다 해도 사 할이 넘지는 않을걸?”
“삼 할만 되어도 다행이지요.”
“그래서 그는 기다릴 거다.”
“예?”
“어차피 일 년이야. 그 기간만 지나면 그 삼 할마저도 자신의 수중으로 거둘 수 있다. 또한 조카를 기다려주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지. 너 같으면 어떤 길을 선택하겠느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총사.”
정유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우문각이 그런 말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정유, 비조는 일조만 남긴 채 모두 거두어들여라.”
“예, 총사.”
우문각이 명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령주가 기다린다면 나도 기다린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것이다. 과연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는 하늘이 가려주겠지.”
그때였다. 밖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총사, 지금 즉시 구천대전으로 들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순간 우문각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겨울이 되면서 대령주는 자신을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놔두었다.
자신 역시 비령조를 내보낸 뒤 일절 움직이지 않았고.
심지어 소성주파가 은밀하게 찾아와서 비통한 표정으로 간청했음에도 안타까움만 표하고 돌려보냈다.
대령주의 눈과 귀가 하루 열두 시진 자신을 향해 열려 있다는 걸 아니까.
‘아마 비령조를 움직였다는 것을 알지도…….’
알고도 놔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비령각의 감춰진 힘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을 공개적으로 죽일 수 있는 약점도 밝힐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지켜만 보던 그가 마침내 자신을 불렀다.
그 이유를 어찌 모를까.
성주 자리에 오르기 전 자신을 이용해서 모든 걸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겠지. 그래야 더 완벽할 테니까.
‘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기가 생각처럼 쉽진 않을 거요, 대령주.’
“가실 겁니까, 총사?”
정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우문각이 여전히 냉소 띤 표정으로 찻잔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가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이라는 핑계를 대고 비령각의 모든 걸 들출 테니까. 그래도 이 차는 다 마시고 갈 생각이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대책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늦으면 욕을 좀 먹겠지만, 대책도 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
우문각은 명을 받은 지 일각 반이나 지나서 구천대전에 들어섰다.
거대한 구천대전 안에는 구천대령주 공손백 외에도 호위무사 다섯, 장로 셋과 율검당주 강극효, 경혼당주 동태국 등 열 사람이 늘어서 있었다.
우문각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고 서리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