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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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36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길이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는가? 산세가 변한다 해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천년거암이 비바람에 깎인다 해도 그 역시 천년거암이니 말이다.
지금 허학진인이 관도에 멈춰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호현이 조금 진정하기를 바라서였다.
조급한 심정으로 호현의 마음에 마가 낄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라.”
주위를 보며 지세를 살피는 흉내를 내는 허학진인의 모습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사형들은 고초를 당하고 계실 것인데……. 스승님은 무사하실지 모르겠구나.’
스승님과 사형들에 대한 걱정에 몸이 단 호현이 허학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어디를 가는 것입니까?”
“심정이란 곳이다.”
“심정이라면?”
“호북과 하남의 정보를 모으는 개방 분타가 있는 곳이다. 하남과 호북의 정보가 일차로 모두 모이는 곳이니 그곳에 가면 유표의 행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정이라는 말에 호현이 그대로 몸을 솟구쳤다. 갑자기 하늘 높이 솟구치는 호현의 모습에 허학진인이 소리쳤다.
“뭐하는 것이냐?”
“잠시만요!”
하늘 높이 솟구친 호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화아악!
문곡성이 개안되며 주위 자연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던 호현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저들에게 심정이라는 곳을 물어봐야겠다.’
저 멀리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노화의 지름길이라 했던 해운의 말은 이미 호현의 머리에 없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더! 더!’
호현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밖에는 없는 것이다.
저 멀리 사라지는 호현을 보던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며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
*
*
사람들에게 물어 심정에 도착한 호현은 허학진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호현의 재촉에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고는 그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호현이 이렇게 마음이 급하니…… 차라리 유표라는 자를 빨리 잡게 하는 것이 낫겠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허학진인은 호현을 최대한 돕기로 했다. 무당의 힘을 빌리는 한이 있다 하여도 말이다.
심정은 거대한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었다. 장강의 지류가 흘러와 형성되었다는 호수를 허학진인과 호현이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를 훑어보던 호현이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호수의 중심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장원이 하나 있었다.
“저곳이 그 개방이라는 곳입니까?”
호수에 있는 장원에서 꽤 많은 사람들의 기운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호현의 말에 허학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저곳이 바로 개방의 심정 지부다.”
“그럼 어서 가시지요.”
“아니. 기다려라.
“지금 가시는 것이…….”
“주인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무례니라.”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장원 쪽을 바라보았다. 호수 한 가운데 있다고는 해도 호현과 허학진인이라면 배를 타지 않더라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허학진인의 말이 옳았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가는 것은 예가 아닌 것이다.
“그럼 저희가 왔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미 전해졌을 것이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초조한 눈으로 장원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호숫가에 서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한 늙은 거지가 다가왔다.
갑자기 다가오는 거지의 모습에 호현이 품에서 동전을 꺼냈다.
“식사라도 하십시오.”
“아이고! 쿨럭! 감사합니다! 쿨럭! 학사님, 앞으로 입신양명하시고 관직에도 올라 대대손손 쿨럭! 잘 먹고 잘 사시기 바랍니다.”
목이 좋지 않은 듯 노개가 연신 기침을 해대며 감사함을 표했다. 거지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인 호현이 장원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허학진인은 거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합장을 해 보였다.
“무량수불. 무당의 허학이 개방의 도움을 받고자 하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놀란 눈으로 거지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그 개방이라는 곳의 사람……. 그러고 보니 개방이라는 이름이 거지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아닌가?’
개방이라는 이름을 떠올린 호현이 허학진인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요청하자고 온 곳이 고작 거지들의 모임이란 말인가.’
그에 호현의 눈에 실망스러움이 어렸다. 뭐 대단한 곳에 도움을 청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가 거지들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호현은 거지들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죽대 선생의 지론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였다. 그리고 그 지론에 가장 부적합한 자들이 바로 거지였으니 말이다.
한 예로 죽대 선생이 관에 있을 때 북경에 있는 거지들을 모두 데려다 부역장에서 일을 시키려 한 적이 있었다. 거지들에게 일거리를 줘 자생할 수 있게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부역장에 있던 거지들이 모두 도망을 쳐버렸다. 죽대 선생은 몰랐지만 당시 부역장에 온 거지들 중 개방의 고수들이 있었다.
개방의 고수들이 거지들을 모두 이끌고 도망을 쳐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죽대 선생은 거지라면 치를 떨었다.
“물가에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말에게 물을 먹일 수 없다는 말은 바로 거지같은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말까지 하며 거지를 평했던 죽대 선생인 것이다. 그런 죽대 선생의 영향을 받았으니 호현이 거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뻔한 것이다.
방금 거지에게 동전을 준 것도 거지가 너무 노인이고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어 스승님 생각이 나서 준 것이었다.
물론 거지에게 돈을 줬다면 죽대 선생은 호통을 쳤겠지만 말이다.
만약 거지가 지금 호현의 얼굴을 봤다면 자신을 무시하는 인상을 받고 버럭 고함을 질렀을 것이나…… 운이 좋게도 거지는 호현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쿨럭! 허…… 학이라면……. 쿨럭! 무당쌍선 허학진인?”
허명진인이 무당파 고수들과 함께 무당산을 내려왔다는 것은 개방도 알고 있었다.
‘은거를 한 허명진인에 허학진인까지 무림에 나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운 무인이라 할 수 있는 둘이 동시에 나왔다는 것은 아주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보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노개(老�)는 허학진인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쿨럭! 하명 쿨럭! 하십시오.”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가 있는데 개방에서 도와줄 수 있겠는가?”
허학진인의 말에 노개의 얼굴에 고민이 어렸다. 허학진인 정도의 배분과 명성을 생각한다면 개방이 그를 돕는 것은 그들에게 이로웠다.
무인들은 한 번 맺은 은원은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갚으니 말이다.
하지만…… 허학진인 정도 되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라면 쉽게 답할 내용이 아니었다. 게다가 노개는 심정 개방 지부의 문지기에 불과한 말단이었다.
그에 고민을 하던 노개는 자신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여기고는 품에서 작은 호각을 꺼내 들고는 힘껏 불었다.
“삐이익!”
호각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낸 노개가 허학진인을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쿨럭! 쿨럭! 연락을 하였으니 쿨럭!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고맙네.”
고개를 숙여 보인 노개가 등을 돌려 가려 하자 허학진인이 그에게 다가갔다.
“잠시 기다리시게.”
“쿨럭! 하실 말씀이 쿨럭! 계십니까?”
노개의 말에 허학진인이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탁탁!
가벼운 두들김이었지만 노개는 순간 자신의 몸에 깊이 파고들어 오는 기운을 느꼈다.
‘헉!’
그에 놀라 노개가 허학진인을 보는 순간, 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도 있으니 몸조리 잘 하시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개의 입에서 보기에도 더러운 검붉은 색의 가래가 토해져 나왔다.
“우엑! 우엑!”
연신 토하는 노개에를 보던 허학진인은 급히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돌렸다.
호의로 노개의 목에 찐득하게 붙어 있던 가래를 내력으로 뽑아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직접 보자니 비위가 상한 것이다.
그리고 허학진인의 눈에 섬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 빠르게 다가오는 거지들이 보였다.
“저기 오는군.”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허학진인에게 작게 속삭였다.
“혹시…… 저 장원에 있는 사람들이 다 거지들입니까?”
“개방의 장원에 있는 사람들이니 그야 모두 거지가 아니겠느냐?”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는 장원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의 기운이 보이는 것이다.
‘저들이 모두 거지라……. 휴! 스승님께서 내가 거지 소굴에 들어간 것을 아시면…… 크게 혼이 나겠구나.’
호현의 얼굴에 어린 불만스러운 기색을 본 허학진인이 다가오는 조각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 저들이 거지라 무시하는 마음이 있거든 지워라. 저들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며 가장 높은 이상을 지향하는 철혈의 개방도이니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기운을 볼 수 있으니 너도 저들이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러고 보니…… 저들의 기운이 풍운삼객보다 더 높지 않은가.’
풍운삼객은 이류에 불과했지만 그들도 작은 표국의 표사들보다는 강한 무인들이었다.
풍운삼객보다 더 강한 그런 기운이라면 굳이 동냥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일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저들이 왜 거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 정도 무위라면 호위무사를 하든 아니면 표국에서 표사 일을 하든 지금보다 더 잘살 수 있지 않습니까?”
호현의 말에 허학진인이 다가오는 조각배를 바라보았다.
“잘사는 것보다는 자유롭고 의롭게 사는 것을 원하는 자들이 바로 저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의로운 삶을 꿈꾸는 자들의 모임……. 그것이 바로 개방이다.”
허학진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각배에 타고 있던 거지 중 거한의 덩치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하하하! 가장 낮은 곳에서 의로운 삶을 꿈꾸는 자들의 모임이라! 무당의 고인께서 본 개방을 이렇게 높게 봐주시니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호기롭게 외치며 몸을 솟구친 거한이기는 했지만 조각배에서 호수 변까지 거리가 상당했기에 한 번의 도약으로 넘어오기 힘들었는지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조각배에서 작은 나무 조각이 그 발밑으로 날아오자 거한이 그것을 밟고는 다시 몸을 솟구쳤다.
휘리릭!
옷자락을 휘날리며 허학진인 앞에 내려선 거한이 포권을 해 보였다.
“개방 심정 타주 거골심개 척광입니다. 무당의 고인께서는 법명이 어찌 되시는지요.”
정중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척광의 말에 허학진인이 합장을 해 보였다.
“무당의 허학이라 하네.”
‘허학?’
허학이라는 말에 척광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어렸다. 무당의 도복을 입은 노인이라 청 자 배 장로인 줄 알았는데 배분이 허라니?
‘허 자 배? 헉!’
그리고 순간 그 허 자 배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척광이 머리를 땅에 닿을 듯 숙이며 포권을 했다.
“무당쌍선 허학진인을 뵙습니다.”
*
*
*
퀴퀴하고 지독한 고린내가 물씬 나는 방 안에서 호현과 허학진인은 척광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서 청정지도(淸淨至道)를 닦는 도사인 허학진인도 그렇지만 깨끗함을 좋아하는 호현에게도 이 냄새는 고약하고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크응! 참기 어렵구나.’
고약한 냄새에 머리까지 아파 올 때쯤 척광이 죽간 한 뭉치를 들고 왔다.
그 모습에 호현이 급히 물었다.
“유 대인의 행적은 어찌 되었습니까?”
호현의 물음에 척광이 죽간들을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해 말해주려고 이렇게 유표에 관한 정보들을 가져온 것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