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21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21화
“그럼 홍계를 대신해 홍수가 나한전 제자들에게 말을 전하거라.”
홍명의 말에 승려들 중 체구가 크고 얼굴이 호상(虎像)인 중년 승려가 합장을 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홍명이 승려들을 향해 말했다.
“무당학사로 칭해지는 호현 학사가 소림사로 오고 있다는 소문은 너희들도 들었을 것이다.”
무당학사가 소림사로 오고 있다는 것은 소림사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승려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한 것이다. 그런 승려들을 보며 홍명이 입을 열었다.
“그 무당학사가 지금 소림사 경내에 있다.”
홍명의 말에 순간 놀란 얼굴을 하던 승려들이 앞 다투어 입을 열었다.
“무당학사가 소림사에?”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소문대로 그렇게 뛰어난 인물입니까?”
“지금까지 경내에 있다면 앞으로 본사에 유하게 되는 것입니까?”
승려들의 계속된 질문에 홍명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홍명의 손짓에 모두가 입을 다물자 그가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당학사가 우리 소림사에 호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니 너희들은 되도록 무당학사를 의식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무당학사가 소림사에 머무는 동안 평소의 본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상대는 무당학사입니다. 소문의 반만, 아니…… 소문의 반의반만 맞다고 해도 귀빈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대로 소문의 반의반만 맞다고 한다면…… 무당학사는 우리의 귀빈 대접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네. 그러니 너희들은 일부러 무당학사를 만나러 가거나 일부러 무언가를 묻거나…….”
잠시 말을 멈춘 홍명이 나한전 대표로 온 홍계를 바라보았다. 홍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이 잔뜩 붉어지고 눈빛이 충혈되어 있었다.
“일부러 무리를 묻거나 막힌 벽을 뚫을 수 있는 가르침을 달라는 말을 하지 말거라.”
홍명의 말에 홍계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당학사가 왔다는 말에 제일 기쁜 사람은 바로 홍계였다.
얼마 전 절정을 넘어 강기성화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벽으로 남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무당학사라면 자신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부수지 못한 벽을 산산이 조각내 줄 깨달음을 말이다.
그런데 홍명이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니…… 그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홍명은 소림사의 대사형이니 말이다.
“나무아미타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홍계를 보며 홍명이 말했다.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따라 준다면 앞으로 무당학사가 아닌 소림학사라 불릴 호현 학사가 너희들과 대화를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소림학사?”
“무당학사를 본사가 품는 것입니까?”
승려들의 물음에 홍명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제자나 사제들이 함부로 무당학사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답을 한 승려들이 사라지자 홍명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혜민원의 건물 중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홍민이 아이들에게 경전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무당학사를 각법이 데리고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속으로 중얼거린 홍명이 정자에 앉고는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들고는 그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당학사를 소림의 품으로 안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명이 해야 하는 일은 그것뿐만이 아닌 것이다. 소림사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일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도 장문제자인 홍명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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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법을 따라 걷던 호현은 소림사 외곽에 위치해 있는 건물들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곳이 바로 혜민원입니다.”
각법의 말에 호현이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아들을 기른다고 해서 작은 건물을 생각했는데 혜민원의 건물은 사 층의 전각이었다.
게다가 그 건물은 하나가 아니라 세 채나 되었다.
“저 건물들이 모두 혜민원 건물입니까?”
“본사 건물들 중 혜민원의 크기가 가장 크고 넓지요. 소승이 본사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 바로 이곳 혜민원입니다. 혜민(惠民),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곳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말을 하던 각법의 얼굴에 슬픔이 어렸다.
“혜민원은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렇게 큰 건물이 몇 개나 있는데도…… 길 잃은 아이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이 믿겨지십니까? 저 큰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들이…… 모두 고아란 사실이?”
각법의 말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가장 자랑스러우면서 가슴이 아픈 곳이라…… 소림사의 자애의 상징이면서 버려진 아이들의 슬픔인가.’
각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해 호현이 합장을 해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정말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마주 합장을 하며 고개를 저은 각법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저는 고승이 되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오욕칠정을 버리고 공(空)의 마음이 되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일 텐데 말입니다.”
“반야경에 이르기를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하였습니다.”
“불경에도 조예가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조예라 하기에는 그렇고 그저 선학을 좋아합니다.”
호현의 말에 각법이 문득 그를 바라보았다.
“아! 혹시 지금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까?”
“가르침?”
“듣기로는 무당파 고수들이 호현 학사의 몇 마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고수가 된 사람이 허다하다 들었습니다. 아니, 무당파 고수뿐만 아니라 화산의 매화검룡조차도 깨달음을 얻었다지요. 이거…… 제가 기연을 얻는 모양이군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는 각법의 모습에 호현은 당황스러웠다.
사실 호현은 각법에게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이야기를 들어 그를 위로하려 했다.
그런데 잔뜩 기대감에 젖은 얼굴을 한 각법을 보니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거…… 어쩐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호현이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각법의 눈에는 점점 더 큰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호현 학사가 나를 위해 고민을 하는구나. 더 좋은 가르침을 주려고 말이야.’
각법의 눈에 빛까지 나오는 듯한 착각을 느낀 호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응? 호현 학사, 하시던 말씀 하시고 가셔야지요?”
“흠! 저를 만나자는 분을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서 가시지요.”
말을 돌린 호현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각법이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말을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다…… 다음에 하도록 하지요.”
자꾸 말을 해 달라고 보채는 각법을 무시하며 혜민원에 들어선 호현은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중년 승려를 볼 수 있었다.
각법도 중년 승려를 봤는지 방금 전까지 조르던 것을 멈추고는 합장을 해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호현 학사를 모셔 왔습니다.”
각법의 말에 홍명이 호현에게 합장을 해 보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앞에 있는 것은 그냥 일반 신도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나…… 무…… 아미타불.”
불호를 외우던 홍명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제길.’
소림사의 다음 대 방장으로 내정이 된 자신이 고작 스물이 될까 말까 한 젊은이를 상대로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속으로 침을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킨 홍명이 다시 말했다.
“소림사의 홍명이라 하네.”
“호북 방헌학관 죽대선생 밑에서 수학하고 있는 호현입니다.”
호현의 말에 홍명이 정자를 가리켰다.
“손이 왔다고 하여 주인 된 입장으로 이야기나 좀 나누자 불렀는데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소림사의 고승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이라는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맙네. 각법은 가서 차나 한 잔 가지고 오너라.”
홍명의 말에 합장을 해 보인 각법이 혜민원 전각 중 하나로 들어갔다.
차를 가운데 두고 홍명과 호현이 마주 앉아 있었다.
“본사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재배한 것인데 자네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드시게.”
홍명의 말에 호현이 찻잔을 들었다. 찻잔이라고 해도 투박하게 생긴 목사발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혜민원에는 기본적으로 도기로 만들어진 그릇들이 있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다 보니 실수로 그릇을 깨뜨리는 일이 많다 보니 이렇게 목기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다.
양손으로 감싸 사발에 담긴 차를 한 모금 마신 호현은 기분이 좋아졌다.
차가 맛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찰에서 마시는 녹차 한 모금이 각별하게 다가온 것이다.
기분 좋게 차 한 모금을 삼킨 호현이 홍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맛이 아주 좋습니다.”
차가 맛있다는 말에 홍명은 슬쩍 자신이 들고 있는 사발을 바라보았다.
‘각법 이놈이 차를 다른 것을 쓴 건가?’
“맛이 좋다고 하니 고맙네.”
“아니 정말 맛이 좋습니다. 이런 귀한 차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현이 거듭 차를 칭찬하는 것에 홍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혜민원에 보급이 되는 차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먹는 것이기에 되도록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서 보내기는 하지만, 소림사에서 운영하는 다전(茶田)에서 나는 찻잎 중 가장 좋은 것은 장로전과 방장실로 가고 그 다음 것은 지객당으로 간다.
그 다음 세 번째 등급의 찻잎이 혜민원으로 가는데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소림사의 다른 거처에 보급되는 찻잎보다는 상태가 나았다. 다른 거처로 보내지는 찻잎들은 차라기보다는 건강을 위한 탕약처럼 여기며 마시는 것이다.
“후르릅!”
찻물을 한 모금 마신 홍명이 슬쩍 호현이 내려놓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나하고 같은 차인데…….’
아직도 입 안에 쓴맛이 감도는 것을 느끼며 홍명이 이상하게 생각할 때 호현이 웃었다.
“후!”
“왜 그러나?”
“차 맛이 좋다고 하니 스님께서 짓는 표정이…… 조금…….”
호현의 말에 홍명이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던가?’
홍명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호현이 사발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지금 마시는 차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니 맛으로만 따진다면 제가 태어나서 마신 차 중에 이렇게 좋지 않은 것은 손에 따질 것입니다. 찻잎의 등급도 좋지 않지만 끊이는 방법도 좋지 않았습니다. 차에 쓴맛이 강하게 나는 것은 불의 온도가 너무 뜨거웠음을 의미하고 향이 미약한 것은 잎을 너무 오래 끊인 것을 의미합니다.”
사발에 든 찻물을 회전시키며 코를 가져다 댄 호현이 웃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맛있는 차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이렇게 맛없는 차를 만드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차가 맛있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맛이 없다고 하는 호현을 홍명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본사의 명성을 생각해서 맛있다고 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홍명은 호현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타인의 높음을 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겸손이라 보일 수도 있고 예라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홍명의 눈에는 소림사의 위명 때문에 맛없는 차도 맛있다고 하는 졸장부로 보인 것이다.
‘실망이군.’
호현에 대한 생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와 함께 홍명의 근육이 살짝 이완되었다. 무당학사라는 명성 때문에 생긴 긴장이 풀리는 것이다.
이제 긴장을 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무당학사 호현인 것이다.
긴장이 풀리는 것을 기분 좋게 느끼던 홍명의 귀에 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