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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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98화
제9-7장 호현, 대별산을 떠나다
성녀의 옆에서 호현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니, 내기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후우욱!”
길게 숨을 토한 호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번쩍!
신광이 토해지듯 뿜어져 나오는 호현의 안광에 일순 방이 대낮처럼 환해졌다가 순식간에 빛이 사라졌다.
몸을 일으킨 호현이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는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성녀에게 추궁과혈을 하고 난 후 그녀가 추울까 싶어 호현이 이불을 덮어 준 것이었다.
화아악!
문곡성을 통해 성녀의 몸을 바라본 호현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어렸다.
막혀 있던 기혈들은 대부분 뚫려 있고 단전 쪽에 응어리져 있던 기의 덩어리들도 어느새 안정되어 있었다.
성녀의 몸에 이상이 없나 이리저리 훑어보던 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전이 어제보다 더 커진 것 같네?”
어제 추궁과혈을 할 때보다 성녀의 단전이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의아한 눈으로 성녀를 바라보던 호현은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갑자기 코로 지독한 똥냄새가 들어온 것이다.
호현은 급히 방문을 열고는 앞뒤로 흔들었다.
덜컥! 덜컥!
방 안의 냄새를 없애려는 것이다.
호현이 문을 흔들고 있을 때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끝난 것인가?”
문을 흔들며 환기를 시키던 호현은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말씀대로 추궁과혈을 하니 상세가 나아진 것 같습니다.”
호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의원이 방으로 들어서려다 미간을 찡그리며 코를 움켜잡았다.
“이 냄새는……?”
의원의 말에 호현이 급히 말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호현의 말에 의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냄새가 심하기는 하네만, 냄새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안으로 들어간 의원이 슬며시 성녀가 두르고 있는 이불을 들추었다.
화아악!
그러자 지독한 똥냄새와 함께 이상한 고름과 같은 진득거리는 액체가 성녀의 옷에 배어 있었다.
옷 밖으로 이렇게 배어나올 정도라면 그 안은 어떠할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내 생각이 맞군. 몸 안에 있던 독기와 탁기들이 배출이 된 것이야.”
“아! 그럼 몸에 좋은 것이죠?”
전에 북경에서 도유 사형의 일을 떠올리며 호현이 묻자,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안에 탁기가 없으면 일반인도 건강에 무척 좋지. 그리고 그 대상이 무인이라면 내공을 운용하는 데 득이 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니겠나.”
말을 하던 의원이 문득 성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독기와 탁기가 옷을 적실 정도로 흘러나온 것에 비해 얼굴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독기와 탁기가 얼굴이라고 해서 안 나오지는 않았을 것인데……?’
의아한 얼굴로 성녀의 얼굴을 만지던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부가 물컹거리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의원이 성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 성녀의 목 언저리에서 이상한 이질감을 느끼고는 천천히 그것을 쓰다듬었다.
“인피면구?”
성녀의 얼굴에 붙은 것이 인피로 만든 가면이라는 것을 깨달은 의원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인피면구를 떼어내자 짙은 색의 점액질이 얼굴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건…… 사람 얼굴이 아닙니까?”
인피면구를 보고 호현이 놀라 묻자,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녀의 맥을 짚었다.
의원을 긴장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호현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혹 제가 잘못한 것이라도…….”
호현의 말에 고개를 저은 의원이 맥을 짚던 손을 떼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 혹시 의술을 배운 적이 있나?”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룻밤 사이에 그 지독한 내상을 이렇게 치료할 수 있었단 말인가?”
“치료요? 내상이 다 나았단 말입니까?”
호현의 말에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다친 것이 그리 쉽게 나을 수 있나. 아무리 가벼운 병이라도 한 번 앓으면 며칠은 고생하는 것이 사람의 몸이 아니던가.”
웃으며 호현을 보던 의원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제에 비하면 이 소저의 병은 거의 나은 것이나 다름없네. 한 며칠 몸에 좋은 약으로 기를 보하고 몸을 추스르면 내상은 나아질 것이네. 외상이야 시간이 해결을 해줄 것이고. 수고했네.”
“제가 뭐 한 것이 있다고요.”
“아니야,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 소저는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야. 정말 수고했네.”
의원의 말에 호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소저의 치료비는 얼마나 들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의원이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환자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치료비를 받는 의원이 어디에 있겠나. 환자가 다 나아서 이 의가를 나갈 때, 그때 지불하게.”
“제가 이만 대별산에 가봐야 해서 이곳에 머물기가 어렵습니다.”
“대별산? 그곳에는 산적이 있는데, 왜 그곳에 가려는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흠…… 그럼 이렇게 하세. 자네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끝낸 후에 들러서 약값을 치르게. 물론 이 소저가 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된다면 자네에게 돈을 받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의원님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후후, 괜찮네. 자넨 생면부지인 사람을 구해내 이곳까지 데려왔고, 추궁과혈까지 한 사람이네. 게다가 치료비까지 대신 내주려고 한 자네이니 돈을 떼어먹을 리가 있겠나. 못 받을 돈도 아니고 단지 며칠 늦는 것뿐인데, 그게 무슨 대수겠나.”
의원의 말에 호현이 포권을 해 보였다.
“오늘 이 호현이 대인을 뵈었습니다.”
“대인은 무슨…… 나야 돈 받고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일 뿐이지.”
“그럼…….”
호현이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의원이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그런데 환자가 깨어나면 자네에 대해 말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녀도 알아야 하니 말이네.”
“호북 방헌학관 죽대선생에게 수학하는 호현입니다.”
“호북의 호현이라…… 알겠네. 소저가 깨어나면 내 말해 주겠네.”
의원에게 다시 포권을 해 보인 호현이 의가를 빠져나갔다.
호현이 나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세상에도 저렇게 반듯한 청년이 다 있군.”
이런 각박한 세상에 생면부지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의원이 중얼거렸다.
“내 손녀라도 있으면 붙여주고 싶구나. 아니면…… 오가의 손녀가 참하던데, 다음에 오면 그 아이라도 소개시켜 줘야겠구나. 학관에서 수학한다고 했으니 문무겸전의 인재일 터, 잘하면 오가한테 거하게 술 한 잔 얻어먹을 수 있겠어.”
친구인 오가에게 좋은 덕을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던 의원은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서 나는 독한 냄새에 미간을 찡그렸던 의원은 문과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천을 꺼내 성녀의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었다.
성녀의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던 의원의 얼굴이 순간 몽롱하게 변했다.
오물로 덮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 오물이 조금씩 걷히자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킨 의원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얼굴을 보고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게 사람의 얼굴인가?’
급히 고개를 돌린 의원은 밖으로 나왔다.
“휴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쓸어내린 의원이 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 쪽을 바라보자 성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자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간의 얼굴이 아니야. 혹 선녀?”
작게 중얼거린 의원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방을 바라보다 아들 내외가 사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성녀의 의복을 갈아입히고 몸을 닦아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남자인 자신이 하기에는 곤란한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의원이고 노인인 그라도 말이다.
“며느리가 일어났는지 모르겠군.”
*
*
*
한편, 호현은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호현을 보고는 모두 그를 주목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처를 입은 성녀를 안은 호현의 의복에는 여기저기 혈흔이 묻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피 묻은 의복을 입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의 눈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호현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색하고 불편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 마을 밖으로 급히 나온 호현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파앗!
하늘로 치솟은 호현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대로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대별대두가 화가 많이 났겠지?’
대별대두가 두들겨 팰 사람을 자신이 빼돌렸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를 생각하자 호현은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호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 말이다.
대별대두를 만나면 어찌해야 하나 걱정을 하며 호현은 빠르게 남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아 움직인 호현의 몸은 어느새 대별산에 도착해 있었다.
호현이 대별대두의 장원이 있는 봉우리 인근에 도착한 순간, 천둥 치는 듯한 고성이 들려왔다.
“네 이놈!”
벼락 치는 듯한 고함과 함께 호현의 앞에 대별대두가 나타났다.
“헉!”
갑자기 대별대두가 앞에 나타나자 호현은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그런 호현을 향해 대별대두가 양 주먹을 휘둘렀다.
“이 새끼! 그년 어디 있어!”
고함과 함께 다가오는 대별대두의 주먹에 호현은 급히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르릉!
얼마나 빠르게 떨어졌는지 뇌성 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호현을 대별대두가 따라붙었다.
“네 이놈! 감히 내 일을 망치다니!”
자신을 따라 떨어져 내리는 대별대두의 모습에 호현이 소리쳤다.
“사람을 구했을 뿐입니다!”
“대별산에서는 내가 법이다!”
“그 법이 틀렸다면 법도 법이 아닌 것입니다!”
호현의 외침에 대별대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틀린 법이라도 대별산에서는 바로 내가 법이다!”
일갈과 함께 대별대두의 양손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화르륵!
“대별산에서는 살생을 금한다! 이것이 바로 내 법이다!”
불길을 양팔에 두른 대별대두가 고함과 함께 호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런 대별대두의 모습에 호현이 양손을 휘둘렀다.
퍼퍼퍼펑!
그러자 호현의 양손에서 장력이 뿜어지며 대별대두를 향해 나아갔다.
“지금 이게 살생을 금한다는 사람이 할 행동이요!”
호현의 외침에 대별대두가 양손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퍼퍼퍼펑!
호현의 장력을 후려쳐 터뜨려 버린 대별대두가 그 힘에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호현이 다시 장력을 방출하려는 순간, 대별대두의 모습이 사라졌다.
“헉!”
호현은 헛바람을 삼키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뒤로 장력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호현의 뒤에 나타난 대별대두가 그 손을 틀어쥐었다.
‘이런!’
자신의 손이 잡힌 것에 호현이 다급성을 토하는 순간 대별대두가 으르렁거렸다.
“이놈! 최소한 나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대별대두의 주먹이 빠르게 움직이며 호현의 온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손이 잡혀 있어 도망도 가지 못하니, 호현으로서는 그 주먹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는 호현에게 연신 주먹을 날리며 대별대두가 소리쳤다.
“그년은 어디에 뒀어!”
“으아악!”
대별대두의 물음에도 연신 비명만 지르던 호현이 급히 보법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