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93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93화
“하지만 이 대별산은 대…… 흠! 장주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호현의 말에 대별대두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러더냐? 이 대별산이 내 것이 아니라고?”
“그럼 대별산이 장주의 것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이 대별산은 내 것이다.”
대별산이 자신의 것이라는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어찌 이 대별산이 장주의 것이란 말입니까? 설마하니 이 대별산을 돈이라도 주고 샀다는 말입니까?”
“내게 무슨 돈이 있다고 이 대별산을 돈 주고 샀겠느냐.”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을 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대별산은 태조께서 우리 조사이신 천명진인께 하사하신 것이다.”
태조를 언급하는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태조가 준 대별산 성지(聖旨)라도 보여 줘야 믿겠느냐?”
성지를 보여주겠다는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같은 양민이 어찌 태조의 성지(聖旨)를 뵐 자격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너는 백 일 동안…… 아니지, 이제 구십팔 일 남았군. 앞으로 구십팔 일 동안 내가 너를 두들겨 팰 것이다. 도망갈 것이냐?”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고노와 같은 말을 하는군.’
대별대두가 꼽추 노인을 고노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호현은 그의 이름이 고노인 것을 알았다.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불의를 앞에 두고 도망을 가지는 않습니다.”
“불의? 이 땅은 내 땅이고 길을 낸 사람도 나다. 그런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는 것이 어찌 불의라고 할 수 있느냐?”
“장주의 말은 지당한 것 같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주의 생각일 뿐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호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대별산을 이용하는 과객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돈부터 받으시니, 그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나보고 일일이 그걸 설명하고 돈을 받으라는 것이냐?”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대별대두를 향해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습니다. 다만, 그간의 사정과 대별산의 주인은 장주라는 것, 그리고 통행료를 적은 팻말을 산 중턱에 두고 모금함을 만든다면, 그들도 불만 없이 돈을 낼 것입니다.”
이 방법은 호현이 예전에 향시를 치를 때 제출했던 사득지해(四得之解)에서 떠올린 것이었다.
당시 호현은 수해로 피해를 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물을 관리하는 저수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때 호현은 저수지를 만드는 비용은 상단들에게 대도록 하고, 저수지의 물을 이용하는 백성들에게서 일정 금액의 이용료를 징수하게 되면 저수지 공사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이치로 대별대두가 대별산에 길을 냈으니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걷는 것이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대별대두가 한 것과 호현이 한 말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이때까지 대별대두는 설명 없이 길을 이용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징수했지만, 호현은 그에 대한 사정을 설명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통행료를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관에 허가까지 받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귀찮다.”
짧은 한 마디로 귀찮다고 하는 대별대두의 모습에 호현이 급히 말했다.
“제가 그에 대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네가?”
“그렇습니다. 대신 제가 그 일을 처리하면 앞으로 산적질은 하지 마십시오.”
“산적질이 아니라 난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 뿐이다.”
“어찌 됐건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주께서도 굳이 사람들에게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호현의 말에 대별대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안 되겠어. 나는 사람들을 손대는 것이 좋거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구십팔 일 동안 여기 머물면서 나한테 두들겨 맞을 생각이나 해.”
두들겨 맞는다는 말에 호현이 눈가를 찡그렸다.
“대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으마.”
‘다른 사람을 때리는 대신 나를 때리겠다는 건가?’
“그런데 왜 백 일입니까?”
“난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거든.”
“한 번 한 말?”
“어쨌건 구십팔 일이다. 만약 네가 도망을 간다면…… 앞으로 대별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너 대신 나에게 두들겨 맞을 것이다. 구십팔 일 동안.”
단호한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이자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면…… 내가 이자를 제압하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좋습니다. 구십팔 일 동안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말과 함께 장원 쪽으로 몸을 돌리던 대별대두가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밥값 대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에게 공부 좀 가르쳐라.”
“공부요?”
“그래. 세상에 나가서 쓸 수 있는 산학(算學)이라든가, 그런 기본 지식들 같은 것 말이다.”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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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팔 일 동안 대별산에 머물기로 한 호현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묘시(卯時)에 대별대두와 싸워 기절을 하고, 연못에 몸을 씻은 후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오전이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간단한 산학과 효와 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현은 대별대두 같은 자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문보다 효와 충에 대한 사상을 심어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호현이 의덕장에 머물면서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대별대두에게 아버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와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진파파가 고아가 된 아이들을 하나둘씩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열일곱 전후가 되면 대별산 밖으로 내보내 살게 했다.
*
*
*
고노가 구해다 준 거대한 나무의 널빤지에 호현이 숯으로 글을 적고 있었다.
〈자오반포(慈烏反哺)〉
글을 적은 호현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가 있느냐?”
호현의 말에 순간 아이들이 손을 치켜들었다.
“저요!”
“저요! 자오반포!”
“자오반포요!”
시끄러운 외침에 호현이 웃으며 손을 들어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진파파가 천자문을 가르쳤다고 하더니 대부분의 글자들은 읽고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모두 글을 잘 읽는구나.”
“네!”
“진파파께 배웠어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는 듯 외치는 것을 들으며 호현이 자오반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희들이 읽은 대로 이 글은 자오반포다. 그럼 이 글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
호현의 물음에 방금 전과는 달리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호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 듣거라.”
호현이 글자를 하나씩 가리키며 그 뜻을 말해주었다.
“사랑할 자(慈), 까마귀 오(烏), 되돌릴 반(反), 먹을 포(哺). 이 말을 풀이하면 까마귀가 다 자란 후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것으로서,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자오반포를 해석해 준 호현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호현의 말에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물었다.
“까마귀가 정말 그렇게 하나요?”
아이의 말에 호현이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나 역시 까마귀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까마귀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이 나올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또한 까마귀를 이르는 말 중 반포조(反哺鳥)가 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 신기함이 어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호현이 말을 이었다.
“일개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조차도 자신을 키우고 먹인 부모에 대한 효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찌 해야겠느냐?”
“저희도 아버지께서 늙으시면 먹을 것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한 아이의 말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다. 너희들을 먹이고 키워주는 것은 장주이니 훗날 장주께서 밥 먹을 힘이 없고 움직이지 못할 때, 너희들이 장주를 잘 보살펴야 할 것이다.”
웃으며 말을 하던 호현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너희들에게 충과 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충과 효는 무엇이냐?”
호현의 물음에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뭐지?”
“글쎄…….”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충효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 재밌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려운 모양이었다.
호현이 설명을 다시 해주려고 할 때, 아이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충은 모르겠지만 효는 좀 알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구가 유난히 작은 아이를 호현이 바라보았다.
‘유명이라고 했던가?’
올해 열 살이 되는 유명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말해 보거라.”
호현의 말에 유명이 망설이듯 입을 달싹였다. 혹시 자신이 한 말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호현이 웃으며 말했다.
“충과 효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천 사람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천 사람의 마음이 모두 답인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망설이지 말고 말을 해 보거라.”
호현의 말에 용기를 낸 유명이 입을 열었다.
“효는…….”
“효는?”
“아버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면 되는 듯합니다.”
유명의 말에 아이들이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유명, 그게 효야?”
“그게 말이 돼?”
“그러게. 그거야 당연한 거지.”
“효가 그거면 우리들 모두 이미 효자겠다.”
“하하하, 맞아! 그리고 우리가 걱정을 끼치면 아버님이 아니라 고노하고 진파파가 우리를 혼낼걸.”
아이들이 유명을 비웃는 것을 보고 호현이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호현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왜 유명의 답이 틀렸다고 생각하느냐?”
“그야 너무나 당연한 것을 말하잖아요.”
“맞아요! 아버님을 걱정시키지 말라는 것은 우리들도 다 아는 거라고요.”
아이들의 답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명이 한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네!”
“맞아요!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아이들과 호현의 말에 유명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자신이 한 답이 너무나 바보 같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 유명을 보고 미소를 지은 호현이 그를 손짓해 불렀다. 유명이 나오자 호현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유명이 한 말, 아버님을 걱정시키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것은 너희들도 알지?”
“네!”
“그럼요!”
아이들의 고함을 들으며 호현이 웃었다.
“그것을 안다면 내가 지금까지 괜히 너희들에게 효에 대해서 떠들었구나.”
“네?”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효의 근본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예기의 곡례 상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행선지를 말씀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의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 드려야 한다.”
예기에 적힌 효에 대한 대목 한 구절을 읊은 호현이 말을 이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답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호현이 유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