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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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80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을 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집무실을 나서던 죽대 선생이 서가들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호현을 향해 말했다.
“융중에서 돌아오면…… 이사를 갈 것이니 오진에게 그 준비를 하라 하거라.”
“이사? 어디로 말씀입니까?”
“북경으로 돌아갈 것이다.”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북경으로 이사를 간다고?’
놀라는 호현을 보던 죽대 선생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북경으로 이사를 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네 입관을 준비하기 위해서이지 네 사형들과 다시 만나려는 것은 아니다.”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죽대 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지금 그 미소는 무엇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말은 진짜다. 네 사형들을 만나려고 북경으로 가는 것이 아니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호현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죽대 선생이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호현이 죽대 선생이 만지작거리던 제갈현진이 선물한 붓을 바라보았다.
“제갈 노사…….”
작게 중얼거리며 붓을 보던 호현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역시 방을 나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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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현과 죽대 선생은 거대한 한 장원 앞에 서 있었다. 멍하니 장원을 바라보던 죽대 선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한 가문의 장원이라고?”
죽대 선생의 중얼거림처럼 그들이 보는 장원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게 컸다. 거의 작은 마을과 같은 크기를 가진 장원이니 말이다.
<제갈세가>
용비봉무하는 듯한 명필로 적혀진 현판을 단 제갈세가를 죽대 선생과 호현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둘은 방헌에서 융중에 있는 제갈세가로 제갈현진에게 참배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워낙 명성이 큰 가문이라 두 사람이 제갈세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쉬웠다.
융중에 사는 사람들 중 두 사람 중 한 명은 제갈세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니 말이다.
그렇게 융중에 도착한 둘은 거대한 제갈세가의 장원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멍하니 제갈세가의 장원을 보던 죽대 선생이 중얼거렸다.
“대체 이들은 자신들이 황족이라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거대한 장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보는 죽대 선생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배첩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멍하니 장원을 바라보는 죽대 선생을 보며 호현이 장원에 다가갔다.
장원 앞에는 백의 무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청년 여섯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런 청년 중 한 명이 호현을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제갈세가의 제갈순입니다.”
평범한 학사복을 입고 있는 자신에게 예를 보이는 제갈순의 모습에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역시 제갈세가는 예를 아는 곳이구나.’
이런 거대한 장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하대를 할 만도 한데 그들은 예를 지키는 것이다.
호감이 있는 제갈세가에 실망을 하지 않아도 된 것에 기분이 좋아진 호현이 품에서 붉은 봉투를 꺼내들었다.
호현이 꺼내든 붉은 배첩을 본 제갈순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본가에 찾아오신 손님에게 이런 말씀 드리기 어려우나…… 현재 본가에 우환이 있어 외인을 들이지 않습니다. 훗날 다시 찾아와 주시겠습니까.”
제갈순이 말하는 우환이 무언지 짐작이 된 호현이 배첩을 내밀며 말했다.
“제갈현진 노사의 묘에 참배를 하고자 온 것입니다.”
호현의 말에 제갈순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현진 숙부님의 지인들인가?’
호현을 보던 제갈순이 일단 배첩을 받아들었다.
“가주께 배첩을 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갈순이 안으로 들어가자 대문 앞에 서 있던 무인들 중 한 명이 어디선가 의자 한 개를 가지고 왔다.
“노사, 앉으시지요.”
무인이 권하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며 죽대 선생이 그를 바라보았다.
“집이 무척 크군.”
죽대 선생의 말에 무인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무인을 보며 죽대 선생이 물었다.
“제갈현진의 식솔이 어찌 되는가?”
제갈현진이라는 이름에 잠시 얼굴이 어두워졌던 무인이 입을 열었다.
“부인이 계시고 아들이 하나 계십니다.”
“그렇군. 아들은 나이가 올해 어찌 되는가?”
“열다섯입니다.”
“열다섯이라…… 아이를 늦게 본 모양이군.”
죽대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무인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천에 싼 작은 물건을 들고 죽대 선생에게 다가왔다.
“날씨가 춥습니다. 이것을 안고 계십시오.”
“무엇인가?”
“화로에 달군 돌입니다.”
무인의 말에 죽대 선생이 반색을 하며 천에 싸인 물건을 받았다.
천에 쌓인 돌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기분이 좋아진 죽대 선생이 하나를 호현에게 내밀었다.
“너도 하나 안고 있거라. 따스한 것이 몸을 녹여주는구나.”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으니 스승님이 안고 계십시오.”
“너도 추울 것이 아니더냐.”
“정말 괜찮습니다.”
“어허!”
죽대 선생이 눈을 찌푸리는 것에 호현이 슬며시 손을 내밀어 돌을 받았다.
자연의 기운을 몸에 받은 이후부터 추운 것과 더운 것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호현이었지만, 추운 날에 이런 따스한 돌을 잡으니 그 온기로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구나.’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며 제갈현이 나타났다.
“박현 어르신! 호현 학사!”
놀란 얼굴로 뛰어 나오는 제갈현을 보며 호현이 포권을 해 보였다.
“제갈 소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호현의 예에 제갈현도 포권을 해 보이며 죽대 선생을 바라보았다.
“인이에게 선생께서 방헌으로 돌아갔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이렇게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제갈현의 인사에 죽대 선생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도 자네를 보니 좋군.”
“방헌의 일이 그리 심각할 줄 알았다면 무인들을 더 보냈을 것인데…… 저희의 불찰로 어르신께서 고생을 하시어 송구합니다.”
제갈현의 사과에 죽대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송구하다니 그런 말 하지 마시게. 나를 보호하느라 자네 가문이 치른 희생을 잘 알고 있네. 나 죽대는 제갈세가에 큰 빚을 지게 된 것이야.”
“안으로 드시지요. 가주께서 뵙기를 무척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갈현이 앞장서서 그들을 제갈세가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 제갈현을 따라 제갈세가로 들어선 호현과 죽대 선생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전각들과 조형물들이 운치 있고 질서 있게 세워져 있는데 마치 황궁을 축소한 듯한 모양이었다.
“대단하군.”
죽대 선생의 중얼거림에 제갈현이 말했다.
“저희 가문에 있는 모든 건물과 조형물들은 제갈무후의 팔진도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팔진도라는 말에 죽대 선생과 호현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육손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그 팔진도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갈현의 말에 호현과 죽대 선생이 주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진법은 그 둘도 대종사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조예가 깊었지만 팔진도는 그들에게 생소한 진법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개안을 하는구나. 네가 보기에는 어떠한 듯 하느냐?”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이 걸음을 옮기며 주위에 있는 건물들과 조형물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본다면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겠으나 이렇게 한 면만을 봐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하냐?”
죽대 선생의 물음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죽대 선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보기에 팔진도의 기본은 팔괘진인 듯하구나.”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아는 것을 말해보거라.”
“지금 이곳에서 보이는 건물과 조형물들이 팔진도의 법에 따라 지어진 것이라면…… 팔진도는 음양오행의 팔괘로부터 변형돼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손자의 팔진법도 가미가 되어 있습니다.”
말과 함께 호현이 건물 몇 개를 가리켰다.
“손자의 팔진법을 이곳 지형과 건축에 적용을 시킨다면 저 건물은 방진의 역할을 한다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침입자가 있다면 그들은 저 건물을 중심으로 강한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쪽에 있는 건물은 침입자들로부터 가솔들을 보호하는 방진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살피던 호현이 한쪽에 있는 작은 집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전각들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초가집을 유심히 보던 호현이 말했다.
“제 생각에 저 초가집은 추행진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추행진이라면 적진을 돌파할 때 사용하는 진 말이냐?”
“맞습니다. 주위 지형을 진법에 따라 생각한다면 적들이 이곳을 침입한다면 그들을 돌파하는 역을 하게 됩니다. 그 말은 저곳에 무인들이 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군요.”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호현의 말에 제갈현의 얼굴에는 경악이 어려 있었다.
호현의 말 중 앞부분인 음양오행과 팔괘 이야기는 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팔진도는 너무 유명한 진법이기에 그 자세한 사항은 퍼지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이야기 정도는 진법가들 사이에 많이 떠도는 것이다.
게다가 사천에는 제갈무후가 병사들을 훈련시킬 때 사용한 팔진도의 기본적인 모양이 돌로 새겨져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호현이 뒤에 한 말은 달랐다. 지금 호현은 팔진도에 따라 지어진 건물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팔진도를 파해하다니…….’
놀란 눈으로 호현을 보던 제갈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제갈현의 모습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응? 왜 그러십니까?”
호현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제갈현이 포권을 해 보였다.
“송구하지만 호현 학사와 죽대 선생께 큰 결례를 범해야 할 듯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해하는 호현을 보며 제갈현이 품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정말 송구합니다.”
쫘아악!
말과 함께 제갈현이 비단 손수건을 두 개로 찢어서는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두 분의 눈을 가려야 할 듯합니다.”
“그게 무슨?”
“본가의 팔진도는 비전 중의 비전입니다. 중원에 본가의 팔진도라고 퍼져 있는 진법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두 진짜가 아니며, 오직 본가에만 제갈무후의 팔진도가 존재합니다. 그런 팔진도를…… 지금 호현 학사께서 파해하고 계십니다.”
“아! 파해하면 안 되는 것이었군요.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하는 호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제갈현은 알 수가 없었다.
‘허! 팔진도를 파해를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황당한 얼굴로 호현과 죽대 선생을 보던 제갈현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눈을 좀 가려 주십시오.”
제갈현의 말에 죽대 선생이 순순히 손수건을 받아 머리에 둘러 눈을 가렸다.
다른 사람이 눈을 가리고 가라고 했다면 화를 내며 노발대발했을 테지만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제갈현진의 가문에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도 쓰거라.”
“알겠습니다.”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도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 둘을 보며 제갈현이 손을 들자 근처 건물에서 무인 둘이 나오더니 죽대 선생과 호현을 업으려 했다.
“어험!”
누가 자신을 업으려 하자 죽대 선생이 헛기침을 하며 손을 저었다.
호현 역시 누군가에게 업혀서 간다는 것에 민망함을 느낀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알아서 갈 수 있습니다.”
“눈도 보이지 않으신데 어찌 걸으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