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5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54화
‘맙소사……!’
장천운은 자신의 눈이 잘못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는 소성주 사마경 대신 다른 소녀가 앞에 있었다.
이제 막 피어난 배꽃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소녀가.
그 많던 주근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있던 점도, 거무스름하던 반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근깨 심술쟁이 소성주도 사라졌다.
사마경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 살 때부터 아까 그 얼굴로 살았어. 보름마다 한 번씩 유모가 손을 봤지.”
거기다 면사까지 써서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는 예뻤는데 커가면서 병 때문에 얼굴을 버렸다고만 생각했을 뿐.
“괜찮아? 보기 싫진 않지?”
“다시 조금 전처럼 변용할 수 있습니까?”
“이젠 못해. 변용약이 구천성에 있거든.”
“후우, 그럼 벗어놓은 면사라도 다시 쓰십시오.”
장천운이 한숨을 내쉬고 품속에 넣어두었던 면사를 꺼내서 내밀었다.
“왜?”
“그 얼굴로 돌아다니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쓰기 싫은데…….”
“쓰세요.”
“꼭 써야 돼? 구천성 사람들도 내 본 얼굴을 모르는데?”
사마경이 입술을 뾰족 내밀며 쀼루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번만큼은 장천운도 양보하지 않았다.
“예, 그래도 써야 합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
“물어보세요.”
“내 얼굴…… 송하나 류화만큼 예뻐?”
“…….”
“예쁘냐니까? 아냐?”
“예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본 어떤 여자보다도.
“정말?”
“그러니까 쓰세요.”
“알았어, 나도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바라지 않아. 쓸게.”
사마경이 복사꽃이라도 핀 것처럼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이 반쯤 벌어졌다.
‘이건 뭐, 얼굴 자체가 무시무시한 무기네.’
장천운이 사마경을 겨우 설득해서 면사를 씌웠을 때였다.
멀리서 휘파람소리와 소성이 메아리쳤다.
휘이이이익!
삐익! 삐이이익!
“놈들이 산으로 들어왔나 봅니다, 소성주. 아무래도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광활한 곽산 어딘가에는 적을 따돌리고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있겠지.
“알았어. 출발해.”
***
삐이이익! 삑, 삐익!
계곡의 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소성이 들렸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소성.
장천운의 감각도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제기랄.’
아무래도 그와 사마경이 쉬었던 곳을 발견하기라도 한듯했다.
“속도를 높여야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소성주?”
“응. 괜찮아.”
바짝 긴장한 사마경이 장천운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땅을 내딛을 때마다 엉덩이 쪽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씰룩거리지 않으려고 한쪽에 힘을 주다 보니 더 아팠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자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개 낀 계곡을 지나서 고개를 하나 넘자, 우측으로 안개가 짙게 낀 험준한 협곡이 보였다.
“천운, 저곳으로 가.”
사마경이 손을 들어서 협곡을 가리켰다.
안개에 반쯤 파묻혀 있는 협곡은 기립한 수백 창수들의 창처럼 하늘로 솟구친 기암괴석이 즐비했다.
아마도 그녀는 협곡이 험준함만큼 적의 눈을 피하기에도 좋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장천운도 반대하지 않고 협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협곡의 지나친 험준함이 걱정 되었지만 어차피 다른 길도 없었다.
그런데 험준한 협곡으로 진입해서 한 시진쯤 전진했을 때였다.
‘이런 젠장!’
달려가던 장천운이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분노한 옥황상제가 도끼로 내려치기라도 한 듯 협곡이 쩍 쪼개져 있었다.
그 바람에 바로 앞은 깎아지른 낭떠러지였다.
더구나 안개가 워낙 짙어서 건너편도, 아래도 보이지 않았다.
사마경도 낭떠러지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낭떠러지잖아? 어떡하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찾아보면 길이 있을 겁니다.”
장천운은 일단 사마경부터 안심시키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좌측은 높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물기가 많은 데다 반질반질해서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우측도 낭떠러지였는데 그나마 깎아지른 앞쪽보다는 경사가 조금 나았다. 위험을 조금만 감수한다면 그럭저럭 내려갈 수 있을 정도.
문제는 ‘깊이가 얼마나 되느냐.’하는 점이었다. 만약 내려갔는데 출구가 없다면 다시 올라와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되돌아가자니 다가오는 적들의 아가리로 뛰어드는 격이 될 터.
장천운은 일단 우측을 택했다.
“소성주, 제가 먼저 이쪽으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함께 가.”
“너무 위험합니다.”
“설마 어제보다 더 위험하겠어?”
그건 그렇다. 어제는 두어 번이나 죽을 위기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아마 종리성학과 추산이 함께 나타났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상처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하실 텐데,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 참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까.”
사마경은 낭떠러지의 아래쪽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다독였다.
‘천운이 옆에 있잖아? 괜찮을 거야.’
그때 그들이 지나온 곳에서 또 날카로운 소성이 들렸다.
삐이이익!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어차피 협곡 자체가 외줄기여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쫓아온 듯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는 상황.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두 가지만 당부했다.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제가 딛고 내려가는 곳을 잘 보고 조심해서 따라오셔야 합니다.”
“응.”
사마경의 대답을 듣고 몸을 돌린 장천운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삼 장 간격으로 건너뛰며 사마경이 바로 이전 장소까지 내려오는 걸 보고 이동했다.
갈라진 바위, 결이 져서 살짝 튀오나온 곳, 바위 틈 사이에서 자란 나무 뿌리부분 등 지지대가 될 만한 부분이 많았다.
상처가 깊은 옆구리가 울리며 통증이 제법 강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십여 장을 내려가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위쪽은 이미 구름 같은 안개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상태. 위도 아래도 보이지 않는 절벽에 매달려 있는 셈이었다.
장천운은 갈라진 절벽에서 주먹만 한 돌을 뜯어낸 후 밑으로 던졌다.
열을 셀 즈음 미미한 소음이 들렸다.
대략 사오십 장.
‘아직 절반도 내려오지 못했군.’
그때 절벽 저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젠장! 길이 끊겼군. 잘못 찾아왔나?”
“이 길 외에는 없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요.”
“절벽을 타고 산을 넘어갔는지도 모르지.”
“아! 이쪽은 경사가 덜합니다. 놈이 이쪽으로 내려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성주와 놈은 부상을 입었네. 부상당한 몸으로 내려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려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있겠나?”
“확인해 봐서 나쁠 것은 없잖습니까?”
“하긴…….”
종리성학과 추산의 목소리다.
장천운은 이 장 위쪽에 있는 사마경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죄송하지만, 저에게 업히십시오.]
사마경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위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은 터라 오래 망설이지는 않았다.
기대서 있던 절벽에서 몸을 뗀 그녀는 장천운을 향해 날아갔다.
나비처럼 날아간 그녀는 장천운의 등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꽉 붙잡으십시오.”
장천운이 속삭이듯 말하고는 밑으로 몸을 날렸다.
사마경은 장천운의 어깨를 잡고 있던 두 손을 앞쪽으로 뻗어서 마주 잡았다. 가슴이 장천운의 넓은 등에 밀착되었다.
‘정말 넓어.’
그녀는 아버지에게 업혀본 기억이 없었다.
업어준 사람은 기껏해야 유모나 시비 정도.
남자의 등이 이렇게 넓을 줄 생각도 못하고 있던 그녀로선 장천운의 등이 마치 구천성의 백만 평 대지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 넓은 대지에 슬며시 뺨을 댔다.
그때만큼은 자신이 수십 장 허공에서 장천운에게 생사를 맡긴 상태라는 것조차 잊었다.
긴장은커녕 오히려 장천운의 등을 통해서 들려오는 심장박동 소리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 절벽이 아주 높으면 좋을 텐데…….
그럼 더 오랜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눈을 감은 그녀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장천운은 사마경을 업은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철저히 안전한 곳만 밟으며 내려갔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었지만 다행히 밟고 지지할 만한 곳이 제법 많았다.
환귀자의 술법을 익힌 그에게 그 정도 지지대는 평범한 계단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이십 장 정도.
그는 삼 장 아래쪽에 한 자가량 튀어나와 있는 바위가 보이자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바위의 색깔이 유난히 푸르스름했는데, 처음에만 해도 짙은 안개 때문에 색깔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응?’
그가 흠칫했을 때는 이미 발이 그 바위를 밟고 있었다.
순간, 물기 가득한 이끼가 벗겨지며 죽 미끄러졌다.
“헛!”
깜짝 놀란 그는 급히 손을 뻗어서 절벽을 치며 중심을 잡았다.
손바닥으로 벽을 치자 옆구리가 더욱 강하게 울리며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의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중심을 잡는 일에 열중했다.
그 상태로 등에 업힌 사마경과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한편, 등에 업혀서 꿈을 꾸고 있던 사마경은 장천운이 중심을 잃자 반사적으로 두 팔에 힘을 주고 꽉 끌어안았다.
‘컥!’
겨우 중심을 잡았던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사마경이 목을 얼마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손에서 힘을 빼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황.
숨을 멈춘 그는 바위 틈바구니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보이자 재빨리 움켜쥐었다.
소나무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뿌리째 뽑혔다. 그래도 그 덕분에 속도가 많이 늦춰졌다.
대신 팔을 뻗다보니 옆구리가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러다 내장이 튀어나오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
‘윽!’
눈을 부릅뜬 장천운은 속도가 늦춰진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서 한 뼘 정도 튀어나와 있는 바위를 찾아냈다.
발끝으로 바위를 밟은 그는 외줄에서 줄타기하는 곡예사처럼 안간힘을 다해서 중심을 잡았다.
다행히 옆구리의 통증은 더 이상 심해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바위 위에서 안정을 되찾은 그는 손가락으로 사마경의 팔을 툭툭 쳤다.
그제야 사마경이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괜찮아.”
“목뼈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놀라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 또 뭐야?
어쨌든 미안한 마음이 든 그녀는 슬쩍 말을 돌렸다.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왔습니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장천운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놀라서 냄새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안개의 축축함 속에서 독한 냄새가 느껴졌다.
시큼하면서도 역겨운 냄새.
그뿐이 아니었다. 하얗던 안개도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
‘이거 잘못 내려온 거 아냐?’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
투둑, 투두둑.
위에서 자잘한 자갈이 떨어진다.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는가보다.
“일단 밑으로 내려가서 알아보죠.”
결정을 내린 그는 이를 지그시 악다물고 밑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