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26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26화
“나도 잘은 모르지만…… 몇 년 전에 호현이와 같이 이곳을 정리했을 때 대략 일만여 권 정도 되었네. 그 후에도 꾸준히 모았으니 조금 더 늘었겠지.”
“대단하십니다. 개인이 그 많은 서책들을 모으시다니……. 한 사람의 학사로서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존경까지야 뭘……. 그래, 오늘도 책이나 보고 있을 것인가?”
“학사가 이렇게 많은 책들을 옆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그 만큼 게으른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죽대선생께서 저를 내치지 않으신다면 이곳에서 책을 보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게. 제갈 학사, 자넨 나와 같이 죽림이나 한 바퀴 도세나.”
“알겠습니다.”
운동 삼아 죽림을 돌기 위해 밖으로 나서던 죽대선생이 공손무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늘 책만 보고 있지 말고 가끔씩 바람도 쐬고 하게나.”
“알겠습니다.”
공손무기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것에 죽대선생이 제갈현진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 둘이 밖으로 나가자 공손무기가 손을 들어 이마를 닦아냈다.
‘죽대선생과 같은 대석학을 속이려니…… 마음이 좋지 않구나. 하지만 이것이 다 교를 위한 것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교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은 공손무기가 서가 쪽으로 다가갔다. 교에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공손무기……. 얼마 전 월신 사자와 만났던 학사, 그가 바로 공손무기인 것이다.
죽림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제갈현진과 죽대선생은 천하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완이라는 황관 놈의 세가 요즘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제갈현진의 말에 죽대선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관 놈의 세가 그리 크다는 말인가?”
“관에 있는 세가 아이들이 보내오는 이야기이니 확실한 듯합니다. 오완 그 환관 놈의 집으로 대소신료들이 보내는 뇌물이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드나든다 합니다.”
“허! 세상이 어찌 되려고 환관 놈이 그렇게 날뛰게 놔둔다는 말인가.”
“오완이라는 자를 태후께서 신뢰하신다 하니…… 개가 주인의 권세를 믿고 짖는 격입니다.”
제갈현진의 말에 죽대선생이 북쪽을 바라보았다. 황궁에 남아 있는 자신의 제자들이 떠오른 것이다.
‘못난 놈들. 스승까지 버리고 대의를 쫓겠다며 황궁에 남은 녀석들이…… 어찌 환관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날뛰게 만든다는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린 것과는 달리 죽대선생의 얼굴에는 황궁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 대한 걱정이 어려 있었다.
그런 죽대선생의 모습에 제갈현진이 슬며시 말했다.
“제자들이 걱정이 되신다면 제가 한 번 알아볼까요?
제갈현진의 말에 순간 죽대선생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다 멍하니 그를 보다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제자들 이야기는 다시 하지 말게.”
“그래도…….”
“어허! 다시 한 번 그 불효막심한 놈들의 이야기를 한다면 내 다시는 제갈 학사를 보지 않을 것이네!”
죽대선생의 노성에 제갈현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제갈인과 제갈연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모습에 제갈현진이 죽대선생에게 말했다.
“조카들이 가문의 이야기를 가져 온 모양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시게.”
죽대선생에게서 떨어진 제갈현진이 제갈인에게 다가갔다.
“호현 학사에 대해 알아보았느냐?”
“지금 하북팽가에 있습니다.”
“하북팽가? 북경이 아니라?”
“팽문과 연이 닿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북팽가에 머물고 있습니다.”
“별일은 없다고 하더냐?”
제갈현진의 말에 제갈인이 고개를 저었다.
“팽가에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큰일?”
“소가주가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천룡 팽문이라면 당대 후기지수 중 짝을 찾아볼 수 없는 기재 중의 기재인데, 왜 그런 아이를 두고 소가주를 바꾼다는 말이더냐?”
“팽문이 무공을 잃지 않았습니까.”
제갈인의 말에 제갈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무공을 잃었다고 해도 그 재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 번 밟았던 길이니 다시 그 길을 간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무공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 팽가에서도 아직까지 소가주를 바꾸지 않은 것이 아니더냐?”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다만 이번에 소가주를 바꾼다고 팽가에서 하북 일대에 그에 대한 서신을 보냈다 들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제갈현진이 문득 제갈현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물었다.
“현이는 어디 갔느냐?”
“하북팽가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왜?”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소가주가 바뀌는 일입니다. 같은 오대세가인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아버님께서 형님을 본가 사절로 해서 하북팽가로 보내셨습니다.”
“그렇구나. 그래, 내가 알아보라는 것은?”
제갈현진의 물음에 제갈인이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공손무기에 대한 조사 내용입니다.”
제갈인이 건네는 종이를 제갈현진이 펼쳤다.
공손무기
나이 - 47세
고향 - 호남성 장사
특이사항 - 북경 만문학관에서 수학. 27세에 입관. 북경 이부지사 자리에서 물러났음.
가족 사항 - 장사에 노부모가 있으며 이남 일녀를 슬하에 두고 있음
짧은 내용이 적혀진 종이를 보던 제갈현진이 제갈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것뿐이냐?”
“별다른 내용들이 없습니다.”
제갈인의 말에 제갈현진이 다시 종이를 보다 살며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너무 평범하구나. 내용만을 본다면…… 그야말로 평범한 낙향 학사가 아닌가.’
공손무기에 대해 생각을 하던 제갈현진이 슬쩍 제갈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공손 학사를 주시하거라.”
“알겠습니다.”
제갈인이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학관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한편 죽대선생들이 나간 방에서 서가에 꼽혀 있던 책들을 빠르게 훑어보던 공손무기의 손에 새로운 서책 한 권이 잡혔다.
“응?”
서책을 잡는 순간 공손무기가 이상하다는 듯 서책을 바라보았다.
분명 서책의 표지는 깨끗하고 빳빳한 것이 새 책인데 손에 잡히는 감각은 무언가 눅눅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공손무기가 서책을 펼쳤다. 그러자 표지 안에 고서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서적 위에 새 표지를 댄 것이군.’
고서적을 보던 공손무기가 그 제목을 바라보았다.
<전진도해>
쿵!
표지 안에 있는 새로운 표지에 적힌 제목을 본 공손무기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전진도해! 찾았다!’
제목을 보는 순간 교에서 찾으라고 말한 물건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안 공손무기가 급히 그 내용을 훑어보았다.
‘확실하다. 전진교 초대교주 왕무위가 지은 전진도해 진품이다.’
교에서 맡긴 대업을 드디어 자신이 해결을 한 것이다. 그 기쁨에 공손무기가 급히 들고 있던 책을 품에 집어넣었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속으로 중얼거린 공손무기가 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헉!”
문을 연 공손무기는 순간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방 앞에 제갈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제갈인은 인기척을 통해 이미 공손무기가 안에서 나오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가 너무 놀라는 것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리 놀라십니까?”
“아니 그, 그게…….”
“흠…… 꼭 나쁜 일이라도 하다 걸리신 것 같습니다.”
제갈인의 말에 공손무기가 헛기침을 하며 문밖으로 나왔다.
“허험! 제갈 소협, 농이 지나치십니다.”
그런 공손무기를 보던 제갈인이 슬쩍 내실을 한 번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제갈인의 말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던 공손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죽대선생께서 너무 책만 보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산보나 하려고 합니다. 그럼 제갈 소협, 또 보세.”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공손무기를 보던 제갈인이 내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데…… 책이라도 훔친 건가?”
내실 안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던 제갈인은 고개를 저었다. 방헌학관에 아무리 귀한 책이 많다고 해도 그 양이 제갈세가의 서고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안에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올 일이 없는 것이다.
“하긴,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리고 이런 책들을 훔쳐 갈 사람이라면 진작 가져갔겠지.”
서가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린 제갈인이 의자에 앉았다. 요즘 들어 가문과 제갈현진의 명에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피곤한 것이다.
방헌학관을 서둘러 나선 공손무기는 어딘가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온 공손무기가 방헌현에 있는 한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을 공손무기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 그 귀에 전음이 들려왔다.
- 공손 교우, 물건은 찾으셨소?
갑자기 들리는 전음에 공손무기가 흠칫 놀란 얼굴로 주위를 보려 하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 나를 찾으려 하지 마시오. 물건을 찾았으면 그대로 밖으로 나가시오.
전음에 공손무기가 다시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놀람에 찬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 물건을 찾았군! 수고하시었소. 지금 방헌현 서쪽으로 움직이시오.
그 소리에 공손무기가 빠르게 방헌현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를 걷자 곧 공손무기는 방헌현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공손무기의 몸이 사람들이 없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 한 중년인이 안개처럼 솟구쳤다.
갑자기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낸 중년인의 모습에 공손무기가 놀라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요?”
“놀라게 해 죄송합니다. 저는 교에서 나왔습니다.”
교라는 말에 공손무기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갑시다.”
“물건은 확실합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몇 번이나 확인을 했습니다.”
“잠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말과 함께 중년인이 공손무기의 몸을 잡고는 솟구쳤다.
“헉! 왜 이러시오?”
“월신 사자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물건이 없어진 것을 알면 추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월신 사자가 기다린다는 말에 공손무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년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산보를 마치고 학관으로 돌아온 죽대선생은 제갈현진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운동 삼아 산보를 하고 난 후 제갈현진과 공손무기와 더불어 고서적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죽대선생의 하루 일과인 것이다.
내실에 들어서던 죽대선생과 제갈현진의 모습에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제갈인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제갈인의 말에 제갈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다 공손무기가 없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듯 말했다.
“공손 학사는 어디 가셨느냐?”
“잠시 산보를 하시겠다며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래?”
제갈인의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제갈현진이 내실 안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러다 제갈현진이 서가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서가 한쪽에 꼽혀 있는 서책들의 틈이 무언가 헐렁함을 느낀 제갈현진이 죽대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죽대선생은 책상 위에 놓인 고서적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여기가 좀 이상합니다.”
제갈현진의 말에 죽대선생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에게 다가왔다.
“무엇…… 응?”
제갈현진에게 다가오던 죽대선생이 서가를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모아 놓은 책 중 한 권이 빈다는 것을 알았다.
“어?”
서가를 이리저리 살피는 죽대선생을 보며 제갈현진이 물었다.
“책이 없어졌습니까?”
“그렇다네.”
“무슨 책입니까?”
다급히 묻는 제갈현진을 향해 고개를 돌린 죽대선생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