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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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05화
팽정의 말에 철제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이리 속이 좁아서야……. 이런 아이에게 팽가의 가주 자리를 맡겨도 되는 것인가?’
팽정의 심성이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팽문이 무공을 잃고 소가주 지위를 포기한 이상 팽가로서는 차남인 팽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내린 인재인 팽문의 그늘에 가려 팽정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역시 명문의 자손이라는 이름에 맞는 무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만약 팽문이 무공을 잃지 않았다면 나는 형수가 너에게 힘이 되어주라는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나 역시 팽가의 주인은 팽문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알고 있습니다.”
“팽가 지존은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네 형인 팽문은 그것을 잃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능구렁이같이 웃으며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팽정의 모습에 철제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팽정의 심성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팽문이 주화입마를 극복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빠를 것인가.’
고개를 젓는 철제를 보던 팽정이 남궁미소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저는 스승님과 함께 문 형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겠습니다.”
“문이에게?”
“저에게 소가주 지위를 넘겨주시는데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호호! 그래, 그 말이 맞구나.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나 하고 오너라. 하북팽가의 소가주가 될 사람의 인사라면 문이에게도 영광일 것이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웃으며 팽정이 방을 나서자 철제가 한숨을 쉬며 그 뒤를 따랐다.
혹시라도 팽정이 팽문에게 모욕을 준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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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문과 호현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둘은 짧은 시간이지만 사서삼경과 현 조정의 정치에 대해 폭넓게 대화를 했다.
“호 학사가 쓴 사득지해를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글이거늘 그것을 보셨습니까?”
“제가 작으나마 학문에 성취를 얻은 후 향시의 답안은 늘 찾아보는 편입니다.”
“그것은 왜?”
“향시의 답안은 중원 각지에서 올라오니 그것을 보면 각 지방의 현실을 멀리서나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호현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어렸다. 사실 호현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 호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팽문의 말은 이어졌다.
“토, 인, 수, 병을 얻으면 구민이 이루어진다. 참으로 훌륭한 구민 정책입니다.”
팽문의 말에 호현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사득지해를 적을 때 이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사득지해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은 백면서생의 답일 뿐입니다.”
호현의 말에 미소를 짓던 팽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제가 제시한 답안에는 명을 움직이는 관리들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신을 위해서만 권세를 사용하는 관리들이 바뀌지 않는 한…… 사득지해는 백면서생의 현실을 무시한 답일 뿐입니다.”
“황제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자들 역시 사람이니…….”
“그렇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백성을 위해 살아야 할 자들이 백성의 위에서 살고 있으니…….”
“백성은 물과 같으니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지요.”
“민여지수(民如之水) 수류만변(水流萬變)이라……. 좋은 말입니다.”
팽문의 말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호현이 문득 그를 바라보았다.
“주화입마라는 병에 걸렸다 들었는데 몸이 좀 좋아지신 듯합니다.”
“주화입마 병?”
주화입마를 병에 비유하는 호현을 이상한 듯 보던 팽문이 피식 웃었다.
‘병이라고 하면 병일 수도 있겠지.’
“제 몸이 좋아 보이십니까?”
“몸에 기운이 넘치는 듯하니 건강해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호현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팽립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화입마에 걸려 무공을 잃은 사람에게 기운이 넘친다는 말을 하니 꼭 비웃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팽립과는 다르게 팽문의 얼굴에는 즐거운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이후 사람들은 그를 불쌍하다는 듯 보기만 했는데 호현은 건강해 보인다고 말을 하니 자신이 주화입마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것이다.
기분 좋아진 팽문이 호현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제가 저희 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팽문이 밖으로 나가자 호현도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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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에는 고루거각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현 팽가에 거주하는 인원만 팽가 직계와 방계를 합쳐 총 오백여 명에 일꾼들까지 합치면 칠백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여 살다 보니 어지간한 마을 규모를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팽가 사람들의 덩치가 오죽 큰가? 육 척이 넘지 않으면 팽가 사람이 아니라는 말처럼 팽가 인물들의 대부분은 육 척에 가까운 키와 백오십 근이 넘는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사는 처소들 역시 보통 사람들의 집보다 훨씬 크게 지어진 것이다.
팽가인들은 모두 무인들이기에 그들이 무공을 수련하는 연무장도 큰 것만 네 개가 넘고 작은 연무장들까지 합치면 열댓 개가 넘어가니 그 규모는 더욱 방대했다.
팽문의 설명을 들으며 팽가를 구경하던 호현은 장원을 두르고 있어야 할 담이 없는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이 정도 규모의 장원의 외담을 쌓는 것도 막대한 재화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팽가를 구경하던 호현의 귀에 우렁찬 기합성이 들려왔다.
“타핫!”
“핫!”
“맹호출림!”
기합성이 들리는 곳으로 호현의 고개가 절로 돌아가자 팽문이 미소를 지었다.
“본가의 어린아이들이 수련을 하는 모양입니다.”
팽문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이 우렁찬 기합성을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기합성은 몸과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기에 본가에서는 되도록 소리를 크게 지르게 하지요. 구경을 해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하하, 원래 무가의 수련을 구경하는 것은 금기이나, 호 학사께서는 무공을 익히고 계신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팽문의 말에 호현이 그럼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왜……?”
“제가 무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호현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에 팽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어렸다. 그런 팽문을 향해 호현이 말했다.
“무당파에서 일을 하면서 무공을 배웠습니다.”
호현의 말에 팽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럼 무공을 배운 지 몇 달 되지 않으시군요.”
“그건 그렇습니다.”
‘몇 달 배운 재주를 무공이라 하다니…….’
무공을 배웠다고 말하는 호현을 보며 속으로 웃은 팽문이 물었다.
“그럼 무당에서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태극호신공과 보법을 배웠습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호현의 모습에 팽문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태극호신공이 어떤 것인지 팽문도 익히 아는 것이다.
‘태극호신공과 함께 배웠다면 그 보법도 그 수준이겠구나. 호현 학사의 건강을 위해 무당파에서 입문 공부를 조금 가르쳤나 보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팽문이 호현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수련하는 무공은 본가의 입문무공인 오호도법이니 외인이 구경을 해도 괜찮습니다. 가시지요.”
팽문의 허락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의 무공에 대해서는 그리 호기심이 생기지 않지만 지금 들리는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성을 들으니 그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팽문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작은 연무장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두툼한 목도를 힘 있게 휘두르고 있었다.
목도를 휘두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기운에 자신의 가슴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호현이 팽문을 향해 물었다.
“저 아이들은 나이가?”
호현의 물음에 팽문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몇쯤 되어 보이십니까?”
“글쎄요. 한 열넷?”
“하하,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열 살이 되지 않았습니다.”
팽문의 말에 호현이 놀란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일견해 보기에도 열 살로 보이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이 정말 열 살이 안 됐다는 말입니까?”
“후후후! 본가의 가솔들은 모두 뼈가 강골이라서 그런지 모두 다 체격이 좋고 성장이 빠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체격도 그 나이에 맞지 않게 크고 좋지요.”
“아이들이 무척 강건해 보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소모되는 쌀의 양만 해도 상당하지요.”
팽문이 아이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하북팽가의 미래인 것이다.
팽문이 온 것을 봤는지 아이들의 무공을 가르치던 장한이 포권을 하며 크게 소리쳤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장한의 외침에 아이들도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는 팽문을 향해 포권을 하며 외쳤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아이들의 외침에 팽문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팽문의 반응에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를 불러댔다.
“와아아! 소가주님!”
“와아! 소가주님!”
그 모습을 본 팽문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자신이 소가주 지위를 포기했다는 것을 알 터인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그를 소가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팽가의 전 무사가 아직도 그를 소가주라고 불렀다.
자신은 소가주의 지위를 놓았지만 팽가 사람들은 아직 그를 소가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 너희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으니…… 미안하구나.’
팽문이 속으로 한숨을 쉴 때 아이들을 가르치던 장한이 다가왔다.
“팽철, 수고하는구나.”
팽문의 치하에 팽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본가의 미래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수고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수고는 제가 아니라…….”
팽철이 한 손에 들려 있는 몽둥이를 슬쩍 들어 보였다.
“이 녀석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어른 팔뚝만 한 두께의 몽둥이를 본 팽철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이 몽둥이는 팽가에서 애훈(愛訓)이라 불렀는데 무공 교두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수련을 게을리 하거나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은 일명 사랑을 하기에 때려서라도 가르친다는 이 애훈으로 두들겨 패는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 팽문도 이 애훈의 맛을 톡톡히 보았었다.
“그래도 너무 심하게 때리지는 말거라.”
“제 어릴 적에 비하면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소가주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알겠다.”
말과 함께 팽문이 등을 돌리자 팽철이 급히 말했다.
“소가주.”
소가주라는 말에 팽문이 걸음을 멈추자 팽철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부디…….”
“그만하거라.”
팽철의 뒷말을 끊은 팽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팽문의 눈에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팽철과 그 뒤로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향해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모습에 팽문의 가슴이 떨려왔다.
그리고 순간 팽문의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화아악!
갑자기 문곡성이 열리며 주위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곡성이 왜?’
문곡성이 갑자기 열리는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든 호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호현의 눈이 팽문에게서 멈추었다. 팽문의 몸 주위로 자연의 기운이 모여드는 것을 본 것이다.
마치 자신이 태극호신공을 운용할 때와 비슷한 기의 움직임에 호현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팽 소협도 태극호신공을 익힌 것인가?’
팽문이 태극호신공을 익혔나 하는 생각에 호현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