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02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02화
“팽문 형님은 스무 살이 되기 전 열아홉의 나이에 도강을 터득하셨습니다.”
팽립은 자신의 말을 듣고 호현이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 중원을 통틀어 스물이 되기 전 강기를 깨달은 후기지수는 팽문이 유일한 것이다.
십룡라고 불리는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성취이니 말이다.
하지만 호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현으로서야 도강과 도기의 차이도 잘 모르니 놀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호현의 모습에 눈을 찡그렸던 팽립이 말을 이었다.
“또한 열여덟의 나이에 향시에 합격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호현이 놀란 듯 팽립을 바라보았다.
“열여덟의 나이에 향시에 합격하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호현의 감탄성에 그제야 팽립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어렸다.
‘이제야 우리 팽문 형님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무당학사라고 불리지만 백면서생이니 무(武)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고 보니 학사라서 우리 하북팽가의 명성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인가?’
팽문에 대한 감탄성에 지금까지 호현에 대해 가졌던 불만이 말끔히 사라진 팽립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놀라면 안 됩니다. 흔히들 천재는 괴팍하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 팽문 형님은 어찌나 대인대덕한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돈과 옷까지 모두 벗어주고는 한답니다.”
“아! 대인이시군요.”
“하하하! 어렸을 적에는 가주께서 팽문 형님이 밖에 나간다고 하면 지니고 있는 돈을 모두 뺏고 내보내시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팽문 형님께서 어느 날 길을 가시다가 한 가난한 아이가 병든 어미를 부축하며 의가를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돈을 주셨나 보군요.”
“아닙니다. 그것을 보고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신 형님께서 병든 어미에게 천호단(天虎丹)을 먹인 겁니다.”
“천호단?”
“본가의 비전의 내상약입니다. 극히 만들기 어렵고 귀한 약재가 많이 들어간 약이라 영약 취급을 받는 것이지요.”
“옥령단과 비슷한 것인가 보군요.”
“무당의 비전 내상약이군요. 맞습니다. 약효로 따진다면 본가의 것이 훨씬 좋겠지만 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어쨌든 그 귀한 것을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주었으니……. 휴우, 그날 가주께서 얼마나 화를 내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섭군요.”
말은 무섭다고 하지만 팽립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어려 있었다.
‘팽문이라는 사람을 아주 존경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리고 팽립은 팽문에 얽힌 이야기들을 몇 가지 더 해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호현은 팽문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팽 소협의 말대로라면 정말 뛰어난 인재였구나.’
호현이 팽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말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기에 둘은 곧 안구현의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선 팽립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구현에서 볼일은 무엇입니까?”
“조충 학사께 서찰을 전해야 합니다.”
“아! 하북조명 조 대인을 뵈러 온 것이었군.”
“조충 학사를 아십니까?”
“하북에 사는 사람치고 조 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팽문 형님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기도 하시지요.”
팽립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쪽으로 말을 몰았다. 팽립이 조충 학사가 사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안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안구현을 감싸고 있는 성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안구현 밖에 있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안구현 서쪽으로 가면 강이 흐르는데 그곳에 조충 학사가 사는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시진쯤을 갔을까,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강의 한쪽에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이 열리며 백의 학사복을 깨끗하게 입은 젊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밖으로 나온 젊은이는 팽립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팽 형님 오셨습니까.”
젊은이의 말에 팽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 동생 잘 있었는가.”
“손님과 함께이시군요.”
젊은이가 호현을 보며 하는 말에 팽립이 말에서 내렸다.
“호북에서 온 호현 학사시네.”
“학사?”
학사라는 말에 젊은이가 호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모습에 호현이 자신을 내려다보다 아차 싶었다.
호현이 입고 있는 옷은 학사복이 아니라 태을 표국의 표사 복장인 것이다.
‘이런 낭패로구나. 조충 학사께서 이 모습을 보면 뭐라 하시겠는가.’
예란 자신의 몸을 살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호현은 자신의 의복 하나도 살피지 못하고 유교의 석학인 조충을 만나러 온 것이다.
그에 부끄러움을 느낀 호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호현을 보던 젊은이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천추 학관의 진영입니다.”
“방헌 학관의 호현입니다.”
호현의 인사에 진영이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호북 방헌 학관이라면 혹 죽대선생의?”
“맞습니다. 스승님께서 조충학사께 보내는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 먼 길을 오셨군요. 이리 들어오십시오.”
진영이 집 안으로 안내를 했다. 집 앞에 있는 말뚝에 말고삐를 묶은 호현과 팽립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을 집 안으로 안내한 진영이 차를 내왔다.
“스승님께서는 낚시를 가셨으니 잠시 기다리시면 오실 것입니다.”
“그…….”
호현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가 온 것이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오셨습니다.”
진영의 말에 호현과 팽립이 다시 몸을 일으켜서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호현의 눈에 망태기와 낚시대를 든 한 초로의 노인이 백의를 입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전 한림원 시강학사 조충이었다.
제5-4장 하북팽가는 모두 덩치가 크구나
진영은 아침밥을 하겠다고 밖으로 나가고 방 안에는 조충과 호현 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조충은 호현을 감회가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림원에서 책을 보고 있던 네 모습이 선한데 이리도 장성을 해 있으니 세월이라는 것이 흐르기는 한 모양이구나. 그래, 박 학사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더냐.”
박 학사란 죽대선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에 호현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러셔야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조충이 말을 이었다.
“그래,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고?”
“스승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서신?”
‘낙향하고 연락 한 번도 안 하시던 분께서 어쩐 일로 서신을?’
의아해하는 조충에게 호현이 죽대선생의 편지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 든 조충이 그 안을 열자 두 장의 종이가 나왔다.
스윽!
죽대선생의 서신을 읽던 조충이 피식 웃으며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신의 내용을 아는가?”
“모릅니다.”
“보게.”
조충이 서신을 내밀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어찌 제가 읽을 수 있겠습니까.”
“별 내용 아니니 봐도 상관없네.”
조충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표국에도 맡길 수 없는 긴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자신에게 직접 전하라고 한 편지였다.
그런데 그 편지를 본 조충은 별 내용이 아니라고 하니 이상한 것이다.
‘긴한 내용이라 했는데?’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충이 웃었다.
“허허, 어릴 때도 고지식한 면이 있더니…… 지금도 여전하구나.”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 서신에는 너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느니라.”
“제 내용?”
조충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호현을 보며 조충이 말했다.
“네 스승께서 너를 장가보내실 생각인 듯하구나.”
장가라는 말에 호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직 어린 제가 어찌…….”
“허허, 네 나이가 어때서 그러느냐? 그 나이면 일가를 이루기에 충분한 나이이다. 박 학사께서 보낸 편지에는 괜찮은 처자가 있으면 소개시켜 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구나. 그리고 한 장의 편지는 내가 아니라 너에게 보내는 편지니라.”
말과 함께 조충이 호현을 바라보다 편지를 내밀었다.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네가 직접 보는 것이 나을 듯하구나.”
호현이 편지를 잠시 보다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직접 보는 것이 나을 듯한 것이다.
조 학사 보시게.
내가 낙향을 하고 난 후 자네가 보낸 편지들은 잘 받아 보았네. 하지만 몸이 멀고 내 하는 일이 많아 자네에게 연락을 하기 어려웠으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중략)……
낙향 후 후진양성에 바쁜 시일을 보내다 보니 미처 내 집안의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더군.
이렇게 자네에게 서신과 함께 현아를 보내는 이유는, 현아의 장래를 상의하려 하네. 현아의 나이도 열여덟이고 얼마 후면 열아홉이 되는 바 이제 일가를 이뤄주려 하지 않겠나.
해서 조 학사 자네가 아는 참한 규수가 있으면 소개를 해주게.
그리고 현아를 자네가 데리고 있으면서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바라네.
죽대선생이 적은 편지를 읽은 호현이 조충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조충이 웃음을 보였다.
“아무래도 박 학사께서 자네를 출가시키려는 모양이로군.”
“출가?”
“그렇네. 흠…… 그나저나 어찌한다.”
고민이 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충이 입을 열었다.
“내 북경에 있었다면 자네에게 세상을 보여주겠으나 내 몸이 좋지 않아 이곳에서 요양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여의치가 않군.”
조충의 말에 가만히 옆에 앉아 있던 팽립이 웃으며 말했다.
“호현 학사는 저와 같이 저희 가문에 가기로 했습니다.”
“팽가?”
“그렇습니다.”
팽립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물을 것이 있었는지 조충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문아를 혼자 두고 왜 밖에 있는 것이냐?”
“형님께서 호현 학사에 대한 소문을 들으시고 뵙고 싶다며 저를 보내셨습니다.”
“문이가? 너를?”
“그렇습니다.”
팽립이 호북으로 자신과 동생을 보낸 팽문의 이야기를 하자 조충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문아에게 일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팽문에게 일이 있다는 말에 팽립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예를 아는 팽문이다. 뵙고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달랑 편지 한 장을 너희들에게 들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문 형님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 원행을 떠나기 어려우십니다. 그러니 저희를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팽립의 말에 조충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문이라면 가르침을 청하면서 제 몸의 불편을 핑계 삼아 편지 한 장만을 보낼 아이가 아니로구나.”
그 말에 팽립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조충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팽문은 그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주화입마를 당한 후 몸이 아플 때에도 일 년에 두 번은 조충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천 리 길을 오던 팽문인 것이다.
하북에서 호북이 멀기는 하지만 팽문이 호현을 만나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직접 갔을 것이다.
팽문에게 명을 받을 때만 해도 팽립은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당학사의 명성이 어떤지는 그도 듣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백면서생인 것이다.
그런 백면서생을 보러 팽가의 소가주가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자신들이 데리러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팽문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라면 직접 호북으로 갔을 것이다.
그에 생각이 미친 팽립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팽립을 보며 조충이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