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01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01화
이대로 자란다면 팽문의 손에 팽가가 천하제일가가 될 것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년 전, 그 천룡(天龍) 팽문이 주화입마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팽가주가 백방으로 그를 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팽문은 무공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천룡(天龍) 팽문의 별호 앞에 병(病), 즉 병든 용이라는 수치스러운 한 글자가 붙은 것이었다.
그런 팽문이 호현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둘로서는 그 내용이 궁금한 것이다.
편지를 다 본 호현이 팽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팽 학사의 필력이 무척 뛰어나십니다.”
“팽 학사?”
호현의 말에 팽립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 말의 의미를 알고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형님의 글씨야 명필 중의 명필이지요.”
“그런 듯합니다. 그런데…… 초대는 감사하나 팽가에는 갈 수 없을 듯합니다.”
그 말에 팽립과 팽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무당학사라는 이름이 유명하다고는 하나, 무림인 입장으로 봤을 때 그것은 일개 백면서생의 명성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백면서생이 천하에 명성 높은 하북팽가의 초대를 거절한 것이다.
그것도 장차 하북팽가의 주인이 될 소가주인 팽문의 초대를 말이다.
팽립과 팽수는 의협으로 명성 높은 하북팽가의 가솔답게 의와 협을 중시했다.
하지만 팽문의 초대를 거절한다는 것은 하북팽가를 우습게본다 여겨 자존심이 상한 팽립의 얼굴에는 분노가 어렸다.
“지금…… 본 가문의 초대를…… 으득! 거절하는 것입니까?”
이를 가는 팽립의 모습을 호현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가 아니나, 저 정도로 화를 낼 일은 아닐 텐데?’
이상하다는 듯 팽립을 보던 호현의 눈에 얼굴이 하얗게 된 왕수와 고운이 보였다.
‘저분들은 또 왜 저러시는가?’
사람들을 보던 호현이 입을 열었다.
“저도 호방한 필체를 구사하는 팽 학사를 뵙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태을 표국에 속해 있는 표사입니다. 제 마음대로 거취를 정할 수 없습니다.”
호현의 말에 얼굴이 굳어져 있던 팽립이 왕수를 바라보았다. 팽립의 날카로운 눈길에 왕수가 속으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그 말은…… 왕 국주께서 허락을 한다면 저희와 같이! 본가에 가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팽립의 말에 왕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호 학사 어서 가시게.’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호현이 입을 열었다.
“먼저 왕 국주의 허락이 계셔야 하지만, 저는 북경까지 가는 태을 표국의 표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호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팽수가 매고 있던 도를 뽑아들었다.
챙!
“헉!”
“지금 무슨!”
그에 왕수와 고운이 놀라 뒤로 물러나는 사이 팽수의 도가 탁자에 놓였다.
도를 뽑은 이유가 휘두르려는 것이 아니라 탁자에 놓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에 왕수와 고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팽립의 눈에는 작은 이채가 발했다. 팽수가 도를 뽑는 것을 보고 놀라 뒤로 물러나는 왕수나 고운과는 달리 호현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것을 본 것이다.
‘담이 큰 것인가?’
호현을 지그시 보던 팽립이 왕수와 고운에게 포권을 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왕수와 고운이 자리에 돌아와 앉자 팽립이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의 도입니다.”
“그야…….”
“이 도라면 호현 학사를 대신해 북경까지의 표행을 지켜줄 것입니다.”
팽립의 말에 왕수와 고운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인이 자신의 무기를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팽가의 무인이 자신의 도를 내놓다니…….
“지금 이 도를 호 학사와 대신하자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이 도의 주인이 호현 학사를 대신해 북경까지 호위를 해드릴 것입니다.”
“그 말은 팽수 소협이?”
“팽수라면 북경까지 표행을 안전하게 호위할 것입니다.”
팽립의 말에 팽수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것을 보며 팽립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께서 지신 표행의 책임을 저희 팽가에서 대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제가 북경에 갔다가 팽가에 들르면 안 되겠습니까?”
“팽문 형님께서 호현 학사를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에 호현의 얼굴에 고민이 어렸다. 사실 호현도 팽문이 적은 글을 보고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호현이 왕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표행에 빠져도 괜찮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현 대신 팽수가 함께 간다면 표행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팽 소협이 함께라면 표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왕수의 말에 호현이 팽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팽가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팽가에 가기 전 안구현에 들러야 합니다.”
그 말에 팽립이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구현이라면 어차피 저희가 가야 할 길에 있는 곳입니다. 그럼 지금 출발하시지요.”
“지금?”
객잔 밖에는 이미 해가 떨어져 깜깜한 어둠의 장막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출발을 하자고 하니…….
그런 호현을 보며 팽립이 괜찮다는 듯 말했다.
“어둡기는 하지만 달이 떠 있으니 길을 가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일어나시지요.”
몸을 일으킨 팽립이 팽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는 앞장서서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이 고개를 젓고는 왕수를 향해 포권을 했다.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호북으로 돌아오실 때 잊지 마시고 한번 찾아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호현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객잔 밖으로 나왔다. 객잔 밖에는 어느새 말까지 준비를 한 팽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은?”
“수가 타고 온 말입니다.”
“그럼 팽…….”
말을 하던 호현이 입을 다물었다. 팽립이나 팽수 둘은 얼굴은 사십대 장한의 얼굴이었는데, 아까 왕수가 팽수를 가리켜 소협이라 칭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소협이라 칭해야 하나 대협이라 칭해야 하나.’
호현이 칭호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팽립이 그 생각을 읽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저희를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들 얼굴을 보고 대협이라고 칭하지요. 하지만…… 이십 중반도 되지 못한 저희들에게 대협이라는 말은 좀 늙은이 같지 않겠습니까?”
“헉! 그럼 나이가?”
이십 중반이라는 말에 놀란 탄성을 지르는 호현을 보며 팽립이 말에 올라탔다.
“제가 올해 스물셋이고 수가 스물둘입니다.”
‘그 얼굴에 스물셋?’
“자, 오르시지요. 내일 아침 전까지 안구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내일 아침?”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제 성격이 아닙니다.”
말과 함께 팽립이 호현의 손을 잡아 낚아챘다.
“헉!”
팽립의 손을 따라 팽수가 타고 온 말 등에 호현이 올라탔다. 그러자 팽립이 말고삐를 잡고는 말을 달렸다.
“이럇!”
팽립의 말이 앞으로 뛰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호현이 탄 말이 그 뒤를 따라 질풍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늘 같이 다니는 팽립과 팽수의 말들이다 보니 한 말이 앞장서서 달리자 본능적으로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그에 놀란 호현이 급히 말 등에 몸을 붙였다.
*
*
*
차갑게 얼어붙었던 관도가 햇빛을 받으며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관도 한쪽에서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말 두 필이 있었다.
빠르게 질주하던 선두 말에 타고 있던 장한이 말고삐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워!”
히이익!
장한의 손에 말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말을 멈춘 장한은 바로 감단에서 출발을 한 팽립이었다.
말을 멈춘 팽립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는 출발을 할 때와는 다르게 말 등에 안정된 자세로 앉아 있는 호현이 있었다.
‘학사라 몸이 약할까 걱정했는데… 무공을 익힌 것인가?’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다가가는 날씨라 밤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다가 이곳 하북은 유난히 추위가 매서운 곳이다.
그런데 이 추운 밤길을 말을 타고 가면서도 호현의 얼굴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 호현을 보던 팽립이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혹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무당에서 머물며 작은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그 전에는 무공을 모르셨습니까?”
팽립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파에서 토납공이라도 배운 모양이군.’
호현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린 팽립이 저 멀리 보이는 성을 가리켰다.
“저곳이 안구현입니다.”
팽립의 말에 호현이 안구현을 바라보고는 말을 몰아갔다. 그런 호현의 뒤를 따라가며 팽립이 말했다.
“제가 길을 너무 재촉한 듯해 죄송합니다.”
“몸은 좀 힘들지만 스승님의 명을 이행할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웃으며 말을 한 호현이 문득 팽립을 바라보았다.
“팽 학사에 대해 물어도 되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팽립이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팽문 형님을 모르십니까?”
“…….”
“천룡(天龍)이라 불리는 팽문 형님을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
“하북팽가의 후계자인 팽문 형님을 정말 모르십니까?”
계속되는 팽립의 말에 호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견문이 어두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호현을 보며 팽립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명성을 얻기는 어려우나…… 명성을 잃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로구나.’
주화입마에 당하기전만 해도 팽문의 명성은 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정파와 사파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들인 십룡 중 하나가 바로 천룡 팽문인 것이다.
그런 팽문을 호현이 모르니…….
작게 한숨을 쉰 팽립이 호현에게 팽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하북팽가는 도로서 일어선 가문입니다.”
“그러시군요.”
호현의 말에 팽립의 미간이 살짝 찡그러졌다.
‘그러시군요? 설마…….’
“하북팽가를 모르십니까?”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허!”
그 말에 팽립은 호현이 자신과 장난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북팽가를 모르십니까?”
재차 묻는 팽립의 모습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하던 호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견문이 어두워…… 죄송합니다.”
‘아무리 견문이 어두워도 그렇지. 어찌 천하 오대세가 중 하나인 본 가문을 모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호현을 보던 팽립이 문득 물었다.
“그럼 소림사는 알고 계십니까?”
“아! 알고 있습니다.”
‘소림사는 알고 본가는 모른다? 본 가문을 무시하는 것인가.’
구파일방에 대해 자격지심이 있는 오대세가 중 팽가로서는 열이 받는 것이다. 꿈틀거리는 눈썹을 애써 손으로 누르는 팽립을 향해 호현이 말했다.
“이번 표행을 하면서 숭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숭산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쉬웠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하북팽가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팽립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 호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종의 본산인 소림사를 볼 수 있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소림사 고승께 불법에 관한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불법?”
“그렇습니다. 선종의 본산이니 불력이 깊은 고승들께서 참으로 많이 계실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불호까지 외우며 합장을 하는 호현을 이상하다는 듯 보던 팽립은 아무래도 그와 더 대화를 했다가는 자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생각에 화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