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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97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97화

그 모습에 호현이 자신이 타고 온 마차 위로 올라갔다. 이제 왕수가 출발 신호를 하면 표행이 다시 시작이 되는 것이다.

 

마차 위에 앉은 호현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게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듯했다.

 

‘중원이 넓기는 넓구나. 호북을 넘어선 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하남이라니…….’

 

새삼 중원의 거대함을 느낀 호현이 미소를 짓고는 품에서 태극음양경을 꺼내들었다.

 

한편 표물을 확인하고 오늘 일정을 살피던 왕수는 표행 외곽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중년 무인을 볼 수 있었다.

 

‘고운?’

 

다가오는 사람이 천월 표국의 대표두인 고운이라는 것을 안 왕수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어젯밤 호현이 강기를 시전하는 것을 본 고운이 멍하니 있다가 돌아간 것이다.

 

‘우리 쪽에 강기를 시전하는 고수가 있다는 것을 봤으니 어제 일을 사과하려는 것인가?’

 

북경행 표물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자신을 무시한 고운이다. 하지만 절정 고수가 끼어 있는 표행이라면 북경으로 향하는 표행을 감당할 능력이 충분한 것이다.

 

게다가 어제 호현이 시전한 무공의 수준이라면 절정고수 그 이상으로 볼 것이다.

 

강기를 시전하는 절정고수 중에도 어제 호현처럼 강기 다발을 뿜어낼 수 있는 자들은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고운이 어제 일을 사과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왕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호현이 태을 표국의 사람이라면 고운의 사과를 받지 않고 화를 내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 호현 같은 고수가 있다면 어차피 표국의 세력을 확장해도 되니, 어차피 천월 표국과는 나중에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제 있었던 일을 명분으로 삼아도 되는 것이다. 천월 표국이 태을 표국을 무시했으니 우리도 그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호현은 북경까지만 가면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천월 표국과 얼굴을 붉히면 안 되는 것이다. 이번 표행만 하고 장사를 접을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과를 하면 적당히 받아주고 우리 표국 얼굴이나 살리고 말아야겠구나.’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중얼거린 왕수가 표사들에게 출발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하고는 고운에게 다가갔다.

 

왕수가 다가오자 고운이 먼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고운의 인사에 왕수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천월 표국의 대표두가 먼저 인사를 하다니.’

 

속으로 웃은 왕수도 고운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표행 준비로 바쁘실 것인데 무슨 일이십니까?”

 

왕수의 표정에 어린 미소를 본 고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어제 자신이 그에게 한 말을 떠올린 것이다.

 

절정고수가 버티고 있는, 그것도 강기 다발을 한참을 쏟아내는 절정고수가 있는 표국에 북경으로 가는 표물을 감당할 능력이 되냐는 소리를 했으니… 그야말로 공자 앞에서 문을 논한 격이었다.

 

‘하아! 태을 표국에 절정고수가 있을 줄이야.’

 

속으로 중얼거린 고운이 슬쩍 태을 표국 마차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젊은 표사 호현을 바라보았다.

 

‘대체 왕수 이자가 어디서 절정고수를 데리고 온 것인가?’

 

호북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천월 표국에서도 절정고수는 국주인 천월검 이국이 유일했다. 그리고 고운이 보기에 태을 표국의 절정고수는 천월검보다 더 윗줄의 고수였다.

 

천월검이 강기를 시전할 수는 있지만, 어제 태을 표국의 절정고수처럼 강기 다발을 뿜어낼 능력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절정고수가 태을 표국처럼 작은 곳에 몸을 담고 있으니 그것이 의아한 것이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의아한 것이고 고운이 지금 아침부터 천월 표국에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어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혹 어제 일로 태을 표국이 앙심을 품고 시비를 건다면 천월 표국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표국이 무림과는 조금 별개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곳 역시 약육강식의 율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 하실 말이 안 계시다면 저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천월 표국처럼 거대한 표국이 아니라 제가 일일이 손을 대지 않으면 표행 준비에 차질이 생깁니다.”

 

태을 표국을 작다고 표현하는 왕수의 비꼬는 말에 고운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일을 마음에 두고 있구나. 하긴 나라도 그런 말을 들었다면 당연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고운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제가 했던 말…… 사과드리겠습니다. 태을 표국의 저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지껄인 저를 왕 국주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운의 말에 왕수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왕수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 일이 어찌 고 대표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 대표두께서야 호북 표국계의 상도를 지키려고 하신 것일 뿐 잘못이라 할 수 있는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왕수의 말에 고운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어렸다. 만약 자신이 왕수라면 크게 화를 내고 난 후 천월 표국에 정식으로 항의를 했을 것이다.

 

‘분명 잘못은 나에게 있거늘…… 왜 내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지?’

 

어제 일을 없는 것으로 하려는 왕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고운의 머리에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지금은 자신의 사과를 왕수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왕 국주께서 큰 아량으로 제 사과를 받아주시니 이 고모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표행 출발 준비를 해야 하니 이만 실례 하겠습니다. 그럼 북경까지 사고 없이 가시기 바랍니다.”

 

왕수가 자신의 표국으로 향하는 것을 보던 고운이 호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일견해 보기에 나이도 어린 것 같은 데 절정고수라니…… 대체 누구지?’

 

고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은 없다. 게다가 강기 다발을 쏟아낼 수준의 고수라면 더욱더…….

 

하지만 고운의 머리에는 호현과 같은 젊은 고수, 게다가 표국에서 표사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호현을 보던 고운은 태을 표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차 싶은 얼굴로 급히 왕수에게 다가갔다.

 

“왕 국주.”

 

고운의 부름에 왕수가 무슨 일이냐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북경으로 가는 동안 동행을 했으면 합니다.”

 

“동행?”

 

동행이라는 말에 왕수가 의아한 듯 고운을 바라보았다. 그런 왕수의 시선에 고운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저희 표국과 태을 표국이 향하는 곳은 북경입니다. 그러니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안전한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말을 하던 왕수가 힐끗 호현을 바라보았다. 왕수가 호현을 바라본 이유는 그가 외인들과 함께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장담을 하지 못해서였다.

 

‘신분을 숨기고 계신 호 대협이시니 외인들과 함께 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인데…….’

 

하지만 왕수가 호현을 바라보는 것을 본 고운은 다르게 생각했다.

 

‘하긴 저런 고수가 있으니 우리와 굳이 동행을 할 필요가 없겠지.’

 

호현을 보던 고운이 슬며시 왕수에게 말했다.

 

“태을 표국의 힘이라면 저희와 동행을 할 필요 없겠지만 저희 규모는 백 명에 가까운 수입니다. 거기에 천월 표국의 수까지 합치면 백오십에 가깝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표행이라면 불필요한 사건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고운의 말에 왕수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운 대표두의 말이 맞다. 표행 인원이 많다면 산적들도 함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뜻밖의 사고가 생기더라도 대응하기 쉽겠지. 게다가 인원이 많으니 불침번을 서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속으로 중얼거린 왕수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 대협께서 승낙을 하신다면 동행을 해야겠구나.’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운에게 기다리라고 말을 한 왕수가 호현이 있는 마차로 다가갔다.

 

책을 보고 있던 호현은 왕수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었다.

 

“호 표사.”

 

“말씀하십시오.”

 

“천월 표국과 동행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천월 표국?”

 

호현이 고개를 돌려 고운들이 있는 곳을 보자 왕수가 급히 말했다.

 

“천월 표국도 저희와 같은 북경행 표물들을 운송 중입니다. 혹 호 표사께서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따로 이동을 하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동행을 해도?”

 

자신에게 동행 의사를 묻는 왕수를 보며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국주님 편한 대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돌아서는 왕수를 보며 호현이 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태을 표국의 마차들 사이로 천월 표국의 마차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태을 표국과 천월 표국 두 곳의 표행이 합쳐지자 규모만 이두마차가 끄는 마차만 스무 대에 인원만 백오십에 달했다.

 

마차들이 자리를 잡고 나자 이윽고 표행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다그닥! 다그닥!

 

마차 위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진동을 느끼며 호현은 태극음양경을 읽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얼마간은 그 진동에 신경이 쓰여 책을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규칙적인 진동에 적응이 돼서인지 지금은 눈이 조금 아픈 것을 제외하면 책을 읽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의존하면서 사물을 만들고 성립시키는 생성과 존립의 원리, 서로 순환하고 전화하는 변화의 원리라는 두 개의 원리로서 작용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양은 모순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서로 대립한다는 것은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음양은 음이 없으면 양이 없고, 양이 없다면 음 역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서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음양은 서로 반하고 대립하면서도 음과 양은 서로 의지하며, 음은 양이 되고 양은 음이 되는 순환을 거쳐 새로운 기운을 잉태한다 할 수…….

 

‘서로 의지하고 순환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잉태한다라……. 새로운 기운을 낳는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음과 양은 순환을 거쳐 새로운 기운을 낳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기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태극음양경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 또는 그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것을 반복하던 호현이 다음 장을 넘기려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호현의 시야에 자신을 보고 있는 고운이 들어왔다. 호현과 시선이 마주친 고운이 웃으며 말을 몰아 다가왔다.

 

“나는 천월 표국의 대표두인 고운이라 하네.”

 

고운의 말에 순간 주위에 있던 태을 표국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런 미친놈이 지금 누구한테 하대를!’

 

‘저, 저…… 미친놈!’

 

왕수 역시 고운이 호현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굳어버렸다.

 

주위의 그런 반응을 알지 못하는 고운이 슬쩍 호현이 보는 책으로 시선을 주었다.

 

“무엇을 보는 것인가?”

 

고운의 말에 호현이 책을 덮었다.

 

<태극음양경>

 

‘태극음양경? 도교 경전인가?’

 

책 표지에 적힌 제목을 고운이 볼 때, 호현이 책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것을 본 고운이 웃으며 말했다.

 

“도문 사람이던가?”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은 아니고, 동행을 하게 된 사이끼리 인사나 나눌까 싶어 왔다네. 나는 이미 소개를 했는데…….”

 

고운의 말에 호현이 그를 보다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방헌학관 죽대선생 밑에서 수학하는 호현이 인사드립니다.”

 

호현의 인사에 순간 고운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리고 그것은 왕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헌학관의 호현이라면 무당학사가 아닌가!’

 

무당학사에 대한 이야기는 호북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 있으니 왕수 역시 들은 것이다. 게다가 호현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이름을 듣고 무당학사라는 별호도 떠올렸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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