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76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76화
“어디에 말입니까?”
허명진인이 바닥에 그려진 그림 중 하나를 가리키자 허학진인이 그 옆에 쭈그려 앉았다.
“흐흠, 이 부분은 질운각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 하지만 그렇게 하면 보법이 흩어지지 않겠느냐?”
“질운각에 회자 결을 가미하면 자연스럽게 보법이 연결이 될 듯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 그려진 그림을 수정하던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의 고개가 갑자기 꺾어질 듯 뒤로 젖혀졌다.
“이건!”
“호현 학사입니다.”
허학진인의 말에 허명진인의 몸이 동굴 밖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태극권을 수정하고 있을 때 호현은 구궁보를 밟으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구궁보를 밟을 때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무언가 이상한데…… 무언지를 모르겠구나.’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호현이 구궁보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슬쩍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진인들께 여쭈어 보아야 하는 것인가?’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배운 그이기에 허학진인에게 물을 생각을 하던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내가 스스로 찾아보고 그래도 못 찾겠으면 진인들께 물어보아야겠구나.’
생각을 정한 호현은 슬쩍 원 밖으로 나왔다. 원 안에는 호현이 구궁보의 법칙에 따라 밟은 발자국들이 있었다.
그 발자국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생각을 하던 호현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본 호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땅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를 줍고는 무언가를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바로 주역 낙서 편에 나오는 구궁에 대한 글귀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구궁에 대한 글과 낙서구궁도라 불리는 그림을 그려 나갔다.
낙서구궁도는 가로세로 세 개의 칸이 있는 그림으로 그 안에 중궁과 팔괘가 들어 있는 그림을 말한다.
그것을 보던 호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그림을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궁이란 중궁(中宮)과 건(乾), 감(坎), 간(艮), 진(震), 손(巽), 이(離), 곤(坤), 태(兌)의 팔괘를, 휴(休), 사(死), 상(傷), 두(杜), 개(開), 경(驚), 생(生), 경(景)의 팔문(八門)에 배합을 하여, 그 운행하는 아홉 방위의 자리를 이르는 것이다. 이는…….’
잠시 생각을 멈춘 호현이 자신이 밟았던 원 안의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호현이 밟은 발자국들은 모두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질서 정연했던 것이다.
“태극호신공의 이치를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하늘과 땅의 기운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자연의 기운 역시 바람 한 점에 흔들리는 것을……. 구궁의 자리 역시 늘 같을 수는 없는 것이거늘.”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린 호현이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화아악!
순간 호현의 몸을 한 줄기 바람이 휘감았다 사라졌다. 그리고 문곡성이 떠지면서 호현의 눈에 자연의 기운들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구궁보는 나와 상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움직임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작게 중얼거린 호현이 천천히 개문을 밟으며 구궁보를 시작했다.
휘익! 휘익!
호현이 개문에서 상문으로 이동을 하자 날카로운 바람이 주위를 장악했다. 그와 함께 호현의 오른발이 상문에서 휴문을 밟았다.
우우웅!
낮은 진동 소리와 함께 호현의 주위에 있는 기운들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른발에 몸을 지탱하며 호현이 왼발로 두문을 밟았다.
우지끈!
호현의 왼발이 강하게 땅을 파고들며 그 주위로 피어 난 강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제4-3장 몸이 가벼워지는 법
날카로운 기운을 몸에 두른 호현이 구궁보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현의 모습을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동굴 밖으로 나온 그들은 호현의 걸음걸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경악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사제, 호현 학사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허명진인의 놀람에 찬 전음을 들으며 허학진인이 침을 삼켰다.
- 그야…… 구궁보를 가르쳤습니다.
- 허! 자네 눈에는 저게 구궁보로 보이는가?
- 꿀꺽! 보법은 구궁보인 듯한데…… 저런 현상들은 모르겠습니다.
우지끈!
호현의 발걸음에 깊게 파이는 땅과 그 위로 피어오르는 강한 기운을 보던 허명진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현 학사……. 보면 볼수록 놀라운 사람이구나.’
잠시 호현을 보던 허명진인이 고개를 젓고는 허학진인을 바라보았다.
“보법은…… 보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안 가르쳐도 되겠구나.”
“구궁보의 운기 방법은 아직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단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운기 방법은 가르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게다가 저런 구궁보에 우리가 아는 운기 방법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잠시 말을 멈춘 허명진인이 말을 이었다.
“잘못되면 주화 입마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유운신법은 어찌합니까?”
보법과 달리 유운신법은 경공술이라 운기 방법을 알아야 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허학진인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허명진인이 입을 열었다.
“유운신법의 큰 틀과 형만을 전수하고 운기 방법은 놔두어라. 구궁보를 저렇게 변화시킬 재주라면 유운신법도 나름 자신에 맞게 변화를 시키겠지.”
“알겠습니다.”
허명진인이 다시 태극권 수정 작업을 하기 위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홀로 남은 허학진인은 호현이 펼치는 구궁보를 바라보았다.
우지끈! 우지끈!
이제는 호현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주변의 나무들까지 영향을 받는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호현 학사가 무당을 만난 것이 기연인가, 아니면 무당이 호현 학사를 만난 것이 기연인가?’
보법을 저런 식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호현의 재능을 생각하며 허학진인이 중얼거렸다.
호현이 구궁보를 시전하는 것을 보던 허학진인은 그가 천천히 몸을 멈추자 그에게 다가갔다.
“호현 학사.”
허학진인의 부름에 생각에 잠겨 있던 호현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르셨습니까?”
“방금 자네가 펼친 그것은 무엇인가?”
“뭐가 말씀입니까?”
“방금 자네가 한 보법 말이네.”
“그야 진인께서 전수해 주신 구궁보입니다.”
아는 것을 왜 묻느냐는 듯 바라보는 호현을 보며 허학진인이 말했다.
“내가 전수한 것과는 좀 달라서 그렇네.”
“아! 혹시 제가 잘못 익힌 것입니까?”
“그건…….”
내가 가르친 것보다 더 좋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허학진인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왜 내가 전수한 것과 다르게 변한 건가?”
“그건 자연의 기운에 따라 구궁도 변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응? 변한다?”
“혹……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아니네. 하지만 궁금하군. 자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허학진인의 물음에 호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호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허학진인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시와 때에 따라 자연의 기운이 변하니 구궁의 위치 역시 변해야 한다?’
호현을 바라보던 허학진인이 물었다.
“그럼 변하는 자연의 기운은 어찌해야 볼 수 있나?”
“그건…… 태극음양공을 익혀야…….”
그 말에 허학진인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태극음양공은 무슨……. 북두신공이겠지. 쩝! 그럼 북두신공을 익힌 자가 아니면 호현 학사가 펼친 그건 할 수 없다는 말이군. 과연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북두신공이구나. 구궁보에 북두신공의 공능이 조금 섞인 것으로 이런 무학이 되다니.’
전설로 내려오는 북두신공의 공능에 새삼 놀랐던 허학진인의 머리에 한 가지 호기심이 어렸다.
‘그럼…… 유운신법은 어떻게 변하려나?’
유운보는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감이 든 허학진인이 호현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호현을 잡고는 몸을 날렸다.
갑자기 자신의 몸을 잡고 나는 허학진인의 행동에 호현이 헛바람을 삼켰다.
“헉!”
그런 호현을 데리고 근처 나무 위로 올라온 허학진인이 고개를 돌렸다.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호현을 본 허학진인이 헛기침을 했다.
“험!”
허학진인의 기침에 정신을 차린 호현이 급히 그를 바라보았다.
“놀랐나 보군.”
“조금 놀랐습니다.”
“보법 하나로 나를 놀린 사람이 고작 나무 하나 올라왔다고 그리 놀라나?”
웃으며 호현을 보던 허학진인이 나뭇가지를 슬쩍 발끝으로 눌러 그 탄력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제는 경공을 가르칠 것이네.”
“아! 하늘을 나는 법!”
“하늘을 날기는. 우리가 무슨 신선이라도 되나. 그저 좀 빠르게 달리고 좀 높이 뛰는 것이지. 어쨌든 자네에게 경공을 가르치기 전에…… 이리로 오게.”
허학진인이 자신이 서 있는 나뭇가지를 가리키자 호현이 그곳을 한 번 보고는 그가 있는 곳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뭐 하는 것인가?”
“오시라고 하셔서…….”
호현의 말에 한숨을 쉰 허학진인이 그를 들어 올렸다.
“누가 기어 오라고 했나. 나무가 튼실한 것이 우리 둘 정도는 거뜬히 버틸 것 같으니 겁먹지 말게.”
허학진인의 말에도 호현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엉거주춤 자세를 낮추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보던 허학진인이 입을 열었다.
“경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가볍게?”
“그렇지. 그래야 더 높이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럼 여기서 몸을 어떻게 가볍게 만들까?”
허학진인의 물음에 호현이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살을 빼야 하는 겁니까?”
“물론 마른 사람이 경공을 시전하는 데 유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답은 그것이 아니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나를 한번 들어보게.”
“제가 어찌 불경스럽게 진인을…….”
“괜찮으니 해보게.”
허학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현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서는 그를 안고 들어 올렸다.
작은 체격을 가진 허학진인이라서 그런지 호현은 그를 드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단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려울 뿐.
호현이 자신을 내려놓자 허학진인이 다시 말했다.
“다시 한 번 나를 들어보게.”
이상한 것을 시키는 허학진인을 한 번 본 호현이 다시 그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어?”
“후! 어떤가. 아주 가볍지?”
나뭇가지 하나 정도 든 것 같은 무게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진인을 들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내가 말한 몸을 가볍게 한다는 의미이…….”
들썩들썩!
말을 하던 허학진인은 자신의 가벼운 몸이 신기한지 계속 흔들어보는 호현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신기한 것은 알겠지만 이만 내려놓게.”
“아! 제가 불경한 짓을…….”
호현이 급히 그를 내려놓자 허학진인이 그를 한 번 쏘아보았다.
“송구합니다.”
잠시 호현을 보던 허학진인이 말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눈 말고 몸이야말로 마음의 거울이네. 마음이 죽으면 몸의 기운이 쇠하고, 몸이 힘들면 마음 역시 괴롭기 이를 데가 없지.”
“그 말씀은 마음이 가벼워야 몸 역시 가벼워진다는 말씀입니까?”
“비슷한 의미지. 몸을 가볍게 하려면 마음부터 일단 가볍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하네. 자! 이제 눈을 감아보게.”
호현이 천천히 눈을 감자 허학진인이 말했다.
“이제 자네의 몸은 가벼워진다고 생각을 하게. 깃털처럼 가볍게 가벼워진다는 생각 말이네.”
허학진인의 말대로 호현이 몸이 가벼워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가벼워진다…… 가벼워진다…….’
호현이 가벼워진다는 생각을 한참 하는 것을 보던 허학진인이 슬쩍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