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75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75화
허명진인의 말에 허학진인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허학진인을 보며 허명진인이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에게 맞는 태극권을 만드는 것은 내가 할 것이니…… 너는 일단 보법과 경공을 가르치거라.”
“호현 학사라면 주역에도 정통할 듯하니, 보법은 구궁보법을 가르치고 경공은 유운신법을 전수하겠습니다.”
구궁보법은 주역에 나오는 구궁의 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고, 유운신법은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하거라.”
허명진인의 허락에 허학진인이 호현을 데리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본 허명진인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태극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태극권 중 호현 학사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빼고, 보법은 사제가 가르칠 구궁보법으로 하고…… 호현 학사가 약한 박투 쪽을 강화시키려면……. 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군.’
태극권이라는 절세 무학을 토대로 새로운 무학을 만들려고 하니 머리가 아파오는 허명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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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의 관도 위에서 무당으로 향하는 죽대 선생과 제갈세가 사람들이 야영을 하고 있었다.
화르륵! 보골보골!
제갈인이 피운 모닥불에서는 그가 잡은 멧돼지 한 마리와 역시 그가 길어 온 물이 끓고 있는 차 주전자가 걸려 있었다.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죽대 선생에게 제갈연이 멧돼지 다리 고기를 잘라 건네주었다.
“고맙구나.”
“마땅한 양념이 없어 맛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노상에서 음식을 가릴 정도로 막힌 노인네는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제갈연이 주는 돼지고기를 입에 넣고 씹던 죽대 선생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맛이!’
입에 넣자마자 달콤하게 흘러나오는 돼지고기의 육즙과 그 부드러운 식감에 놀란 것이다.
그런 죽대 선생의 모습에 제갈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맛이 어떠십니까?”
“놀랍군. 저 아가씨가 요리할 때 보니 양념을 많이 쓴 것 같지도 않던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건지…….”
죽대 선생이 정말 궁금한 듯 제갈연을 바라보자 그녀가 예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저만의 비법입니다. 입에 맞으시다니 소녀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 노상에서 이런 식도락을 즐기게 될 줄이야. 고맙게 잘 먹겠네.”
즐거운 얼굴로 음식을 즐기는 죽대 선생을 보며 제갈현진과 다른 사람들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노상에서의 즐거운 식사를 마친 일행은 제갈인 등이 상을 치우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마차에서 작은 다기들을 꺼내 온 오진이 대나무 통에서 녹색 가루를 꺼내 조심스럽게 찻잔에 담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따른 후 죽대 선생과 제갈현진에게 건네주었다.
찻잔을 받은 제갈현진이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윽한 다향에 미소를 지었다.
“향이 단아한 느낌을 주는군요.”
“차에도 조예가 있던가?”
“학사와 다도는 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드셔보시게. 향만큼이나 맛도 좋은 편이니.”
죽대 선생이 먼저 차를 마시는 것을 기다린 제갈현진이 그 뒤를 따라 차를 음미했다.
‘흐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군. 녹차는 아닌 듯한데…… 뭐지?’
차를 좋아해 유명한 차는 대부분 마셔본 제갈현진은 색다른 차 맛에 죽대 선생을 바라보았다.
“제 견문이 짧은 탓에 이것이 무슨 차인지 모르겠군요.”
“집 근처에 좋은 죽림이 있네. 거기서 얻어 직접 집에서 만든 것이네.”
“아, 그럼 죽대 선생께서 직접 만드신 것입니까?”
“나야 먹을 줄만 알지. 이건 우리 현아가 만든 것이네.”
그 말에 제갈현진이 뜻밖이라는 듯 차를 바라보았다.
‘향과 맛이 이렇게 뛰어난 것을 보면 시중에 유통이 되는 차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할 듯한데. 호현 학사에게 이런 재주까지 있다니.’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를 음미하는 제갈현진을 보고 죽대 선생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현아는 무당에서 잘 지내고 있는가?”
죽대 선생의 물음에 제갈현진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호현 학사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되었군. 후룩!”
차를 마시는 죽대 선생을 보며 제갈현진의 얼굴에 고민이 어렸다.
‘무당파에서 호현 학사를 끌어 들이려고 한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하나?’
죽대 선생에게 무당파에서 호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제갈현진은 고개를 저었다.
무당에 가면 알 수 있는 일을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균현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삼…….”
삼 일이라는 말을 하려던 제갈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만이라면 삼 일이면 도착할 거리이지만, 노령인 죽대 선생은 틈틈이 휴식을 취하면서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십 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말에 죽대 선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노령인 몸으로 먼 길을 가려니 힘이 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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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현을 데리고 동굴 입구로 온 허학진인은 반 장 정도 크기의 둥근 원을 그렸다.
그러고는 그 안에 다시 여덟 개의 원을 그린 허학진인이 호현을 불렀다.
“이리 오시게.”
호현이 다가오자 원에서 나온 허학진인이 말했다.
“태극권을 익히기 전에 구궁보를 배울 것이네.”
“구궁보?”
“그렇네. 모든 무학은 발에서 시작이 되어 발에서 끝이 난다고 볼 수 있네. 구궁보를 익히면서 하체를 단련시키고 땅을 밟는 법을 배울 것이니 그리 알게.”
말과 함께 허학진인이 자신이 그려놓은 원을 가리켰다.
“이것은 자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궁을 표시한 것이네. 가장 큰 원이 중궁, 그 안에 있는 원들은 구궁에 속하는 팔문이네. 먼저 앞에 있는 원이 휴문(休門), 그리고 생문(生門), 상문(傷門), 두문(杜門), 경문(景門), 사문(死門), 경문(驚門), 개문(開門)이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원들을 바라보았다.
“잘 보시게.”
허학진인이 큰 원의 중심에 들어가더니 천천히 구궁보법의 순서에 따라 문들을 밟기 시작했다.
휙! 휙!
반 장 정도의 원 안에서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허학진인을 호현이 정신을 집중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휴생두경경상개…….’
허학진인이 밟는 원들을 읊고 있을 때, 허학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궁보법은 상대를 자신의 움직임에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네. 상대가 밟고 있는 위치와 방향에 내가 밟아야 하는 문의 위치와 방향도 달라지니 그 변화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지. 적을 죽이고자 한다면 적을 사문으로 끌어들여야 하고, 적을 다치게 하고자 한다면 상문으로 끌어들여야 하네. 또한 적을 놀라게 해 제압하고자 한다면 경문으로, 적을 무력하게 하고자 한다면 휴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지…….”
보법을 밟으며 각 보법에 대한 설명과 그에 따른 변화를 허학진인이 직접 보여주기 시작했다.
호현이 구궁보를 배운 지 하루가 되는 날, 허학진인이 눈가를 잔뜩 찡그린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 장 크기였던 원은 어느새 그 두 배인 일 장 크기로 커져 있었고 그 안에서 호현이 구궁보를 연습하고 있었다.
구궁보를 밟으며 몸을 움직이던 호현이 몸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이상한데…….’
잠시 생각을 하던 호현은 허학진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가를 찡그리고 있는 허학진인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호현의 말에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 멍청한 제자들이 생각이 나서 그러네.”
“제자들? 제자 분들이 계셨습니까?”
“모두 다 있는 제자를 나라고 없겠나? 별 볼일 없는 놈들이기는 하지만 나도 몇 명 키우기는 했지.”
말을 하던 허학진인이 호현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호현 학사는 참 가르치는 재미가 없군.”
“무슨 말씀입니까?”
“구궁보는 구구 팔십일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마다 각 아홉 번의 변화가 더 있으니 총 칠백이십구 개의 변화를 일으키네. 그 속에 아홉 번의 변화를 더 가미할 수도 있으니 그 변화는 끝이 없다 할 수 있지. 그 많은 보법의 변화에 보통 구궁보를 익히는 자들은 수백 번도 넘게 발이 꼬여 넘어지고 쓰러지는데, 어떻게 된 것이 자네는 한 번도 안 넘어지는가?”
오랜만에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 예전 제자들을 가르칠 때의 재미를 보는가 싶던 허학진인으로서는 호현이 구궁보를 너무 잘 밟는 것이 불만인 것이다.
허학진인의 말에 호현이 그것이 뭐가 이상하냐는 듯 입을 열었다.
“구궁은 유학에서 기본이 되는 주역의 낙서(落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사인 제가 주역의 구궁의 법에 익숙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호현의 말에 허학진인이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이 안 되네. 그렇게 따지면 구궁보 또는 팔괘권 같은 무공을 학사들은 모두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구궁에서 시작을 하는 것, 구궁만 이해를 하고 있다면 변화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구궁만 이해를 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다고? 이거 산서진가에서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겠군.’
중원 일절로 꼽히는 구궁도법을 절학으로 삼는 산서진가는 오래도록 구궁도법의 난해함을 풀지 못해 절정 고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산서진가를 떠올리던 허학진인이 호현을 향해 말했다.
“다시 한 번 밟아보게. 이번에는 그냥 보법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생각하면서 밟아보게.”
허학진인의 명에 호현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천천히 구궁보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호현이 제대로 구궁보를 펼치는 것을 보며 허학진인은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렸다.
‘호현 학사는 이렇게 쉽게 배우는 것을 내 바보 같은 제자들은……. 에휴! 좀 제대로 된 녀석들을 제자로 받을 것을.’
고개를 저으며 동굴로 돌아온 허학진인은 땅바닥에 이상한 그림과 글을 적고 있는 허명진인에게 다가갔다.
“사형.”
허학진인의 부름에 허명진인이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보며 말했다.
“호현 학사는 잘하고 있느냐?”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허명진인이 고개를 들자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며 동굴 바닥에 털썩 앉았다.
“구궁보의 형과 변화들을 모두 익혔습니다.”
그 말에 허명진인이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다가 멈칫해서는 고개를 들었다.
“하루 만에? 그 모든 변화를 말이냐?”
“진기를 운영하는 법을 빼고는 모두 배웠습니다.”
“허! 대단하군.”
말을 하던 허명진인은 허학진인의 얼굴이 찌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굳은 것이냐?”
“제자 놈 구궁보를 가르칠 때가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그게 왜?”
“구궁에 대한 이해를 시키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는데…… 호현 학사는 하루 만에 모두 익혀버리니…….”
“하하, 그래도 청온 그 아이가 심성은 좋지 않았느냐.”
“심성이 좋으면 뭐 합니까. 십 년 동안 사부 얼굴 한 번 보러 오지 않는 무심한 녀석인데…….”
“제자 하나 없는 나도 있다. 그리고 제자가 보고 싶으면 네가 한번 가보면 되지 않느냐?”
“에잉! 아이들 기저귀나 갈고 있는 그 답답한 모습 보러 그 먼 길을 간다는 말입니까?”
허학진인의 말에 허명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허학진인의 제자 청온은 하북에 있는 한 작은 도관에서 고아들을 기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제자를 생각하니 슬쩍 기분이 무거워진 허학진인이 고개를 젓고는 허명진인을 바라보았다.
“태극권은 어찌 돼가고 있습니까?”
“몇 가지 수정할 부분이 있으나 거의 다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는데 잘 왔구나. 태을각은 나보다 네가 낫지 않느냐. 각법 몇 개를 태극권에 접목하려고 하는데, 좀 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