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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69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69화

허명진인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호현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그에 대해 신선 어르신이 남기신 책을 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책? 사부님께서 무경을 남기신 것인가!”

 

깜짝 놀라 묻는 허명진인의 모습에 호현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신선 어르신이 남기신 것은 남기신 것이니 허명진인께서도 용서를 해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분명 신선 어르신께서 남기셨습니다.”

 

차마 무경이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분명 남겼다는 두루뭉술한 답을 한 호현이 말을 이었다.

 

“태극전에 있는 태상노군의 머리 위에 흠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허명진인 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태상노군이라 하면 노자를 일컫는 말이다.

 

흠 안에 비급이 있다는 말은 도교에서 받드는 최고 신 중 하나인 태상노군의 머리에 구멍을 파고 비급을 숨겼다는 말이니…… 불경도 그런 불경이 없는 것이다.

 

굳은 얼굴로 있던 허명진인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선계에 들어섰을 사부님이니, 태상노군에게 직접 혼이 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만 내려가세나.”

 

허명진인의 말에 호현이 하늘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일행들이 저 멀리 보이는 무당파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사부님께서 참으로 멀리도 오셨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우리들이야 경공을 시전하면 되지만 호현 학사는 경공을 시전할 줄 모르니…….”

 

즉, 호현을 누군가 업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중 가장 어린 청수진인의 몫이었다.

 

비록 청수진인이 현 무당파 제일 고수이자,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이라 하나, 허명진인과 허학진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전대 천하십대고수이자 청수진인의 사숙이 되니 말이다.

 

그것을 깨달은 청수진인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호현에게 다가갔다.

 

“호현 학사, 업히시게.”

 

“네?”

 

“무당으로 돌아가야 하니 업히시라는 말이네.”

 

청수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어찌 제 다리를 두고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걸어서 가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지만 이곳에서 무당까지 거리가 있고, 길도 없는데 어찌 걸어가려 하는가? 그러지 말고 업히시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호현의 고집에 청수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호현을 두고 돌아갔다가는 언제 그가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재수가 없기라도 한다면 산에서 길을 잃고 굶어 죽거나 산짐승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것이다.

 

고민을 하던 청수진인이 한숨을 쉬고는 허명진인 등을 바라보았다.

 

“저는 호현 학사와 함께 무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숙들 먼저 가시지요.”

 

청수진인의 말에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몸을 날려 무당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같이 가자 한 번 권하지도 않으시는군. 분명 태극전으로 가시는 것일 터인데…….’

 

등선을 한 운학이 남긴 심검지도에 속한 비급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작게 불평을 한 청수진인은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가세나.”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자신 때문에 청수진인이 남은 것을 안 호현이 사과를 하자 청수진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오랜만에 숲 속을 거니는 것도 깨달음을 구하는 한 방법이겠지.”

 

호현 덕에 귀찮음을 감수하는 일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가 무당에 준 은혜를 생각한다면 청수진인은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귀찮음 정도야.’

 

그런 생각을 하며 청수진인이 무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호현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우리를 내려가던 청수진인이 문득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운학 사조께서 호현 학사에게 무공을 가르쳤다고 하셨는데, 경공은 못하는 것인가?”

 

청수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익힌 태극호신공이나 북두신공이나 경공술 같은 내용은 없는 것이다.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공을 배워도 아주 거꾸로 배운 격이군. 기초도 없는 상태에서 장력을 시전하고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무공이라니…….’

 

기초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아는 청수진인은 호현이 무당의 속가 제자가 되면 친히 그에게 무공을 전수할 것이라 다짐했다.

 

물론 지금도 간단한 경공술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다. 청수진인 정도의 배분과 지위라면 무당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무공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수진인은 호현이 정식으로 무당의 속가 제자가 되면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무공을 전수하면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 무공 역시 기초 없이 배우는 것이니 차라리 안 배우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청수진인이 문득 무당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휴우, 그나저나 무당까지 언제 갈고.’

 

경공을 시전해 가면 금방 닿을 곳을 학사의 걷는 속도에 맞춰 가려니 곤욕인 청수진인이었다.

 

*

 

*

 

*

 

호현과 청수진인이 무당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워낙 호현의 걸음이 느리다보니 무당파로 오는 도중 중간에서 하루 야영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무당에 도착하자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청수진인이 사라졌다.

 

호현은 무당의 산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명균을 만나 한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선학전을 정리하던 학사들이 모두 하산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명균을 보며 호현이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선학전 내에 도경을 넣는 것까지가 학사들의 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산이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생각이 부서지고 그 인근이 망가져 선학전 정리는 다음으로 연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거의 일이 다 마무리 되어 가는데 갑자기 연기라니…….”

 

호현이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말하자 명균이 한숨을 쉬며 그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나나 무당에서도 학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호현 학사도 부서진 장생각을 보셨다시피, 부서져도 너무나 많이 부서져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 몰라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명균이 입맛을 다셨다.

 

“이곳은 무당파입니다. 그리고 장생각은 무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장생각이 부서졌습니다. 장문인께서는 장생각 복구를 최우선으로 명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던 호현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툭! 탁! 툭! 탁! 쿵! 쿵!

 

무언가 두들기는 소리와 크게 땅이 울리는 진동음에 호현이 명균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공사를 하는 소리입니다.”

 

“공사?”

 

호현의 물음에 명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장생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장생각이 있던 곳에 도착한 호현은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산에서 뽑아 온 듯한 나무들을 하나씩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검으로 나무의 거친 표면을 다듬고 있는 모습, 머리에 천을 눌러 쓰고 있는 한 근육질 남자의 지시에 따라 도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모습들 말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도사들 몇이 장정 둘이 껴안아야 할 정도로 두꺼운 나무를 들고 땅을 찍어대고 있었다.

 

쿵! 쿵! 쿵!

 

그 때마다 소리가 울리고 땅이 진동을 하는 것이, 그 나무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이 명균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현재 무당에 있는 동자 배들 중 반이 이곳에서 장생각 보수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당의 도사들이 말입니까? 전문 토목 공사를 하는 분들을 모시지 않고 왜 무당 분들이…….”

 

“전문적으로 토목 공사를 하는 분들도 모셨습니다. 저기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전문가들입니다.”

 

명균의 말대로 장생각 터였던 곳에는 머리에 두건을 쓴 여섯 명 정도가 도사들을 부리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모양이다 보니 선학전에서 일을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서 선학전에 있던 도경들도 모두 분류가 되었고 넣기만 하면 되니, 장생각 복구가 완료가 되면 저희 문도들이 일을 마무리 할 것입니다.”

 

명균의 설명에 호현이 한숨을 쉬고는 장생각 공사장을 바라보았다.

 

‘무당에 온 이유가 선학전 정리 때문이었거늘…….’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막 읽으려 하는데, 죽대 선생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은 그런 아쉬운 심정에 한숨을 내쉬던 호현에게 명균이 천천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호현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장생각에서 일이 났을 때 호현 학사가 아니었다면 이 명균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호현 학사께 무당의 명균이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훗날 이 명균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무당파의 이해관계와 어긋나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음 대 무당의 장문인 자리에 내정이 되어있는 명균으로서는 아무리 구명지은이라 하나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혹여 호현의 부탁이 무당에 해가 되는 일이고 그 약속을 이행할 사람이 장문인인 자신이라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명균아, 명균아. 은인에게 하는 소리가 고작 문의 이해관계와 어긋나지 않는 한이라니…….’

 

자신이 한 말이지만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던 명균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이다.

 

그런 명균의 모습에 호현이 급히 그를 부축해 몸을 일으켰다.

 

“이러지 마십시오.”

 

호현의 부축에 몸을 일으키던 명균이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는지 그를 바라보았다.

 

“아! 듣자하니 호현 학사께서는 본문에 태청신단을 구하러 오셨다 들었습니다.”

 

명균의 말에 이번에는 호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태청신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른 채 얻으러 왔었으니…….

 

“제가 태청신단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무당에 결례를 범했습니다. 송구합니다.”

 

호현의 사과에 명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추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대대로 무당 장문인께는 세 알의 태청신단이 지급 됩니다. 구명지은을 고작 신외지물로 갚으려는 제 자신이 부끄러우나 호현 학사께서 마다하지 않는다면 두 알의 태청신단으로 구명지은에 답을 하려 합니다.”

 

“그 귀한 태청신단을 두 알이나…….”

 

“구명지은에 비하면 태청신단이 아무리 귀하다 하나 신외지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지금은 제가 장문인이 아니기에 바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훗날 무당 장문인이 되는 그 날, 태청신단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명균이 말을 이었다.

 

“혹여 위험한 일이나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태청신단 한 알을 무당 속가가 운영하는 상단이나 표국 그 어느 곳에라도 맡기십시오. 그러하면 제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장문인께서 호현 학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청운진인께서 왜 저를……?”

 

“태사조의 일로 알고 있습니다. 따르시지요.”

 

명균이 앞장서서 장생각 공사터 쪽으로 향하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장생각 공사터 한쪽으로 걸어간 호현은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청운진인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달라는 말이네.”

 

“하지만 지세가 네모반듯하게 나오지를 않는데, 어찌 네모반듯하게 만들라는 말씀인지…….”

 

“어허! 지세가 네모반듯하게 나오지 않으면 지세를 네모반듯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하려면 낮은 곳은 올려야 하고 높은 곳은 깎아야 합니다. 공사가 커질 터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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