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61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61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정색을 하는 호현의 모습에 제갈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연이는 이만 가 보거라.”
제갈연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천막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제갈현진과 호현은 지하 서고로 향했다.
그 날 밤.
호현과 제갈현진은 선학전 일 층에서 마지막으로 도경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학사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가고 그 둘만이 남아 지하 서고의 도경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스륵! 스륵!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호현이 보던 책을 덮었다.
‘이것도 아니군.’
마지막 책을 덮으며 호현은 몸을 일으켰다.
다른 책을 가지러 지하 서고로 내려간 호현의 얼굴에 낭패함이 어렸다.
지하 서고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모두 다 봤다는 말인가?”
호현의 중얼거림에 언제 그 뒤를 따라 왔는지 제갈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찾던 물건은 여기에 없나보군.”
지하 서고를 훑어보던 호현이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는 것인가?”
“저희가 놓친 서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고를 한 번 더 둘러봐야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제갈현진이 한숨을 쉬고는 서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놓친 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되지 않는 크기의 지하 서고를 둘러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서가들의 모습에 호현이 한숨을 쉬다 급히 제갈현진을 찾아 움직였다.
‘제갈 노사께서 발견하셨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애써 실망스러움을 지운 호현이 서고 구석에 있는 제갈현진을 찾아 말했다.
“혹시 찾으셨습니까?”
호현의 물음에 제갈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호현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이곳에는 자네가 찾는 것이 없는 모양인데,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둘을 지켜보고 있던 명효 도장의 입이 열렸다.
“무량수불, 호현 도우께서 선학전에서 찾는 것이 있으십니까?”
“책을 한 권 찾고 있습니다.”
“무슨 책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무당의 물건을 찾는다면 무당인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입니다. 혹여 무당이 알면 안 되는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명효 도장의 물음에 호현이 망설였다.
‘어찌 해야 하는가?’
호현이 망설이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제갈현진이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가 찾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명효 도장께서 걱정하실 물건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곳 선학전에는 더 이상 무당이 걱정할 물건들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명효 도장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호현 학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명효 도장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혹여 무당의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을 달라하지 않아도 반드시 무당에 돌려 줄 사람입니다.”
제갈현진의 말에 명효 도장이 호현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호현이라면 선학전에서 무당의 대표 무공인 태극혜검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무당파에 돌려 줄 사람이었다.
게다가…….
‘본문에 호현 학사가 준 은혜를 생각한다면 태극혜검이라도 전수를 해줘야 할 것이다.’
물론 그전에 호현이 무당에 입문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한 명효 도장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제가 잠시 호현 학사를 의심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명효 도장이 맡은 임무를 생각한다면 무례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제가 명효 도장에게 무례를 범했다 할 수 있습니다.”
“무량수불.”
도호를 외우며 뒤로 물러나는 명효 도장을 보던 제갈현진이 문득 말했다.
“혹시 자네가 찾고 있는 것이 지하 서고에 있는 것인가?”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운학이 태극음양경을 선학전에서 보여 준 것은 맞지만 그가 지하 서고에서 가지고 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 호현의 반응에 제갈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하 서고에 있는 서가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서가에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지상에 있는 서가는 학사들이 모두 분류를 했잖습니까?”
“자네가 찾고 있는 서책이 무경인가? 도경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서장만 본 호현으로서는 태극음양경이 무경인지 도경인지 확실한 분류를 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호현을 보던 제갈현진이 명효 도장을 향해 물었다.
“선학전에서 발견된 책 중 전대 무당의 기인이 저술한 책은 어떻게 처리가 됩니까?”
“본문의 전대 기인들께서 남긴 유산의 경우 다른 곳에 보관이 됩니다.”
명효 도장의 말에 호현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구나. 위의 서고에서 태극음양경이 발견되었다면 분류 과정에서 따로 보관이 되었겠구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집어낸 제갈현진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호현이 명효 도장에게 말했다.
“그 책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지하 서고를 나간 명효 도장이 잠시 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손에는 한 권의 서책이 들려 있었다.
“선학전에서 발견된 전대 어르신들의 서책명록입니다.”
명효 도장이 서책을 건네주자 호현이 그 안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태극권 기공 연단 해
저술 : 현현자>
<양의권 음위경해
저술 : 유진자>
<자연지체 대 양의지체
저술 : 경천자>
<……(중략)……>
서책 안에는 책 제목과 그 책을 지은 무당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중 몇 권은 현재 무당의 무공을 해설하고 익히는 과정과 그 효과들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무당에서 보물로 취급해야 할 비급도 있었다.
그 안을 유심히 훑어보던 호현의 얼굴에 실망이 어렸다. 그 안에도 태극음양경과 운학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 안에도 없는가?”
제갈현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호현이 명효 도장을 향해 말했다.
“혹시 발견된 책 중 이 안에 적히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까?”
“선학전에서 발견된 책 중 본문에 속한 분들이 만든 것들은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한숨을 내쉰 호현은 책을 명효 도장에게 건네주었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호현을 보며 제갈현진이 말했다.
“그곳에도 없는 모양이군.”
“네.”
“아무래도 자네가 찾는 물건은 이곳 선학전에는 없는 모양일세. 오늘은 날이 많이 늦었으니 이만 쉬는 것이 어떠한가?”
제갈현진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미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지하 서고를 나온 호현과 제갈현진 등은 선학전을 나왔다. 선학전을 나오던 호현은 문득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희미한 빛을 반사하는 선학전 건물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운학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호현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먼저 가십시오.”
“자네는 어찌 하려고?”
“저는 선학전에서 생각할 것이 좀 있습니다.”
“그럼 나도 같이…….”
“저 때문에 남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만…….”
호현의 말에 제갈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있고 싶다는데 계속 있겠다고 하는 것도 무례이니 말이다.
“명효 도장, 선학전에 혼자 남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명효 도장의 얼굴에 고민이 어렸다 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도경이라 하나 무당의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선학전에 외인을 혼자 두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청운진인에게서 호현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어지간한 것은 들어 주라는 명을 받았고, 호현이 도경을 훔쳐 갈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명효 도장의 허락에 고개를 숙여 보인 호현은 제갈현진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선학전 안으로 들어갔다.
제3-8장 선학전의 기연, 북두의 별
선학전에서 운학과 처음 만났던 장소에 호현이 서 있었다. 예전에 이리저리 쌓여 있던 서적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빈 서가들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선학전 일이 이제는 끝이 나가는구나.”
선학전에 있던 도경들의 분류가 오늘로 끝이 났다.
지하 서고 정리가 좀 더 걸리기는 했지만 이미 일 층부터 분류된 도경들이 하나둘씩 서가에 꼽히고 있었다.
선학전에서 도경을 빼내는 것이야 일일이 제목과 내용을 확인하고 해야 해서 시간이 걸렸지만, 선학전에 다시 도경들을 채우는 일은 제목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니 늦어도 나흘이면 모두 끝이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현이 무당에 오게 된 이유인 선학전 정리 일도 끝이 나는 것이다.
서가를 바라보며 무당에서의 일들을 떠올리던 호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직 호현의 일은 끝이 나지 않았다. 운학이 심검으로 만든 광구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심검으로 만든 광구 안에서 운학 어르신을 나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신선 어르신께서 스스로 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운학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밖에 있다면 그는 스스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호현이 생각하는 운학의 가장 소중한 물건은 바로 태극음양경이었다.
그리고 호현의 생각에 태극음양경은 이곳 선학전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분명 학사들이 보지 못한 장소에 태극음양경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일까…….’
생각할 것이 있어 선학전에 남겠다고 했지만 호현의 목적은 바로 태극음양경을 찾는 것이었다.
선학전을 훑어보던 호현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선 어르신은 정신이 맑지 못하고 아이와 같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물건을 어디다 숨길 때 안전하게 느낄까?’
자신이 운학이라면 어디다 물건을 숨겨야 안전하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호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린 아이, 어린 아이…… 내가 어린 아이라면…….’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던 호현의 머리에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명오 도장께서 내게 노자도덕경을 주셨었지. 그 때 스승님께 책을 들켜서 크게 혼이 났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숨겨 놓고 봤는데, 어디다 숨겼었더라?’
어릴 때 기억을 더듬던 호현이 몸을 숙였다.
“책상 밑에 숨겼던 것 같은데…….”
바닥에 몸을 눕힌 호현은 서가 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밑이 너무 어두웠고 그나마 있는 촛불 빛도 서가 밑에는 닿지 않기 때문에 호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네.’
눈을 찡그린 채 바닥을 바라보던 호현은 서가에 걸어 놓은 촛대를 잡고는 배를 바닥에 깔고 다시 서가 밑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촛불에 서가 바닥이 호현의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촛불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나마 서가 밑이 보였다.
“이 정도면 책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겠다.”
서가 밑을 바라보던 호현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스스슥!
옷이 더러워질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일이 몸을 일으켰다가 바닥에 눕는 것보다는 이렇게 기어가는 것이 더 빠르니 말이다.
그렇게 기어가며 바닥을 보던 호현은 목과 눈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오랜 시간 어두운 곳을 노려보며 목을 들고 있었으니 아플 수밖에.
‘목 아프다.’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숙인 호현은 다시 서가 밑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를 더 기었을까. 서가의 구석진 곳 바닥을 바라보던 호현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뭐지? 서가 바닥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서가 바닥에서 무언가 천이나 종이 같은 것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본 호현이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밀자 차가운 감촉을 가진 이상한 것이 닿았다. 뭔가 까칠하면서도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호현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