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42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42화
“고맙네.”
허명진인의 말에 제갈경천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고맙기는 무슨…….’
슬쩍 호현과 제갈연을 번갈아 본 제갈경천이 미소를 지었다.
‘호현 학사의 곁에 구지검선이 늘 붙어 있다는 말은 그가 우리 가문의 데릴사위가 된다면…… 구지검선도 우리 제갈세가의 식객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허명과 허학까지.’
물론 구지검선과 허명진인, 허학진인이 호현을 따라 제갈세가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무당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무력을 제갈세가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 셋이 가문에 머물게 된다면 제갈세가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그 말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세가를 떠나지 못하는 무력들을 밖으로 돌릴 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무력들은 제갈세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호현 학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겠군. 독자에 장남만 아니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본가의 데릴사위로 만들 것이다.’
제갈경천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사이한 웃음이 드러났다. 이 미소가 바로 독심수라의 진면목이었다.
그런 제갈경천의 미소를 보지 못한 허명진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구나. 제갈경천이 속에는 능구렁이를 키우고 있어도 자신이 입 밖으로 낸 것은 어기는 친구가 아니니, 사부님에 대한 일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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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을 시전해 무당파에 도착한 제갈정인은 청운진인과 만나고 있었다.
“제갈세가에서 본문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당에서 학사가 필요한 일이 있다고 하여 본가에서 도움을 주고자 제갈현진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갈현진의 이름은 청운진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비록 무인은 아니지만 호북을 넘어 그 문(文)으로 사해에 명성을 떨치는 인물이니 청운진인이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제갈정인을 보던 청운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세가의 도움에 무당파를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학사들이 쉬는 날이니 이틀 후부터 제갈 학사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너무나 순순히 허락을 하는 청운진인의 모습에 제갈정인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왜 순순히 허락을 하지? 정말 서고 정리를 하기 위해 학사들을 고용한 것인가?’
만약 무당에서 진짜로 절세비급을 해석하고 있다면 제갈세가의 도움을 거절할 것이다. 그런데 이리도 순순히 허락을 하다니…….
‘현진을 괜히 데리고 온 것인가? 아니지……. 무당의 서고이니 기연이 있을 수도 있겠지. 현진의 머리라면 한 번 본 책이라도 그 내용을 잊지 않을 터, 비급을 찾게 된다면 무당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한 번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정인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청운진인이 입을 열었다.
“항간에 본문에서 절세비급을 해석하기 위해 학사들을 모은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지나가는 투로 말하는 청운진인의 목소리에 순간 제갈정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청운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제갈세가에서도 그 소문 때문에 본문에 오신 것이겠지요?”
“그럴 리가요. 저희는 그저 무당을…….”
“그만하십시오.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니.”
청운진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는 것을 본 제갈정인은 침을 삼켰다.
이미 상대가 다 알고 있는 이상 더 숨기는 것은 무당의 분노만을 키우는 꼴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제갈세가만 정보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잠시 청운진인을 보던 제갈정인이 마음을 정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소문은 사실입니까?”
“절세비급이라…….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는 제갈정인에게 청운진인이 입을 열었다.
“태극혜검, 양의심공, 태극기공, 태청검법…….”
무당의 무공을 몇 개 나열하던 청운진인이 제갈정인을 바라보았다.
“이중 중원에 나가면 절세비급이라 불리지 않을 무공이 있습니까? 이중 천하제일 고수를 배출하지 않은 무공이 있습니까?”
“그건…….”
“후우, 본문은 무당입니다. 사람들이 못나 무당의 절학을 반도 익히지 못해서 그렇지…… 무당의 절학은 그 무엇 하나 절세비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당에 절세비급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거짓이라는 것은?”
“절세비급을 해석하기 위해 학사들을 모은다는 것이겠지요. 학사들을 모은 것은 소문 그대로 서고를 정리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끄응!”
침음성을 토하는 제갈정인을 보던 청운진인이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며칠 이내에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남궁세가와 화산파 말입니까?”
그 두 문파에서 무당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제갈정인도 알고 있었다.
제갈정인의 말에 청운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제갈정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들이 오면 해명을 도와…….”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해명을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제갈정인의 의문에 찬 시선에 청운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유난히 차갑고 살기가 짙은 미소가 말이다.
흠칫!
도사가 지을 수 없는 살기 짙은 미소에 제갈정인의 몸이 굳어졌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도…….”
“그저 보고 싶군요. 무당에 그들이 원하는 절세비급이 있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차가운 청운진인의 목소리에 제갈정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는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지? 만약 우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무당의 절세비급에 욕심을 냈을 텐데?’
제갈정인의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은 없는지 청운진인의 눈빛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바로 제갈정인이 가지고 온 자신의 새 도복, 그것도 한 줄의 주름조차도 없이 풀이 빳빳하게 먹여 있는, 손만 대도 베일 것 같은 새 도복 말이다.
‘완벽하군.’
무당에 풀이 빳빳하게 먹여진 도복을 선물한 제갈세가. 그것이 청운진인의 입이 열린 단 하나의 이유였다.
물론 머리가 좋은 제갈세가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챌 것을 염려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제갈정인이 자신의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문이 열리며 명균과 명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세가에서 제갈현진을 데리고 왔다. 이틀 후부터 선학전에서 일을 하라고 했으니 담당을 할 사람을 한 명 붙이거라.”
“알겠습니다.”
명균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청운진인이 명인을 바라보았다.
“호현 학사와 한 달을 지냈는데, 무언가 얻은 것이 있느냐?”
오늘 명인을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막내 제자가 호현 학사의 덕을 봤는지 알아보려고 말이다.
청운진인의 물음에 명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학문을 익히고 있습니다.”
명인의 말에 청운진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것뿐이냐?”
“그것뿐입니다.”
명인의 답에 청운진인이 웃으며 그를 내보냈다. 밖으로 나가던 명인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호현 학사와는 언제까지 같이 있어야 합니까?”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싫으냐?”
“호현 학사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학문을 익힐 때 같은 문장을 수십 번씩 읽고 쓰라 하니…….”
“호현 학사가 무당에 있는 동안은 같이 지내거라.”
사부의 명이 떨어졌으니 이행하면 되는 것, 명인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알겠습니다.”
명인이 밖으로 나서자 청운진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후후후, 균아, 봤느냐?”
“보았습니다.”
“역시 호현 학사 곁에 인이를 둔 것은 좋은 결정인 것 같구나.”
청운진인의 말에 명균은 명인이 나간 곳을 바라보다가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처음 느낀 감정이 짜증인 듯하던데…….”
“물론 기쁨이나 즐거움 등의 밝은 감정을 인이가 느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짜증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지 않느냐? 나는 목석같던 녀석이 짜증이라도 내니 기분이 좋구나.”
“그건 그렇습니다.”
짜증을 내던 명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웃던 청운진인이 말했다.
“선학전 정리는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생각보다 정리가 빨리 되고 있습니다. 지금 속도라면 한 달 정도면 모두 정리가 될 듯합니다.”
“흐흠, 잘 됐군. 아! 곧 다른 문파에서도 사람들이 올 테니, 그들이 지낼 곳도 마련을 해두거라.”
“알겠습니다.”
명균이 밖으로 나가자 청운진인이 힐끗 제갈세가에서 선물한 도복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군. 후후후!”
제2-10장 호현, 무아(無我)에 들다
선학전 지하 서고에서 호현과 제갈현진이 서로에게 책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것 좀 보십시오. 태극수유론입니다.”
“이것도 좀 보시게. 목기경일세.”
“헉! 풍류태경입니다.”
두 사람은 경쟁이라도 하듯 귀한 도경들을 찾으면 서로에게 보여 주고 그 내용을 해석하며 토론을 하는 등,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문제는 내용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하는 사람은 늘었는데 능률은 호현 혼자 할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현은 즐거웠다. 도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 옆에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도경을 보며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제갈현진이 도경 한 권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각세진경이 여기에도 있군.”
각세진경이라는 말에 호현이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각세진경 한 부를 내가 가지고 있는데 아직 반납을 하지 못했구나.’
호현에게 천지인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었던 각세진경, 그것을 지금에야 기억하는 호현이었다.
따지고 보면 호현의 방에 있는 도경은 각세진경 한 부만이 아니었다.
시간을 내서 봐야지 하면서 빌려 온 도경만 거의 백여 권에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또 보지 못한 책이 나오고, 그 책을 보다 또 다른 책을 빌려오는 일이 반복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도경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각세진경을 만지작거리던 제갈현진이 호현을 향해 도경을 내밀었다.
“세상 이치에 대해 잘 써 놓은 책인데, 호현 학사는 읽어 보았는가?”
“아직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응? 다 보지 못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호현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제갈현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학사가 봐야 할 책을 옆에 두고도 시간이 없다하여 보지 않았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네.”
제갈현진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어렸다. 그 말이 옳은 것이다.
“부끄럽습니다.”
호현이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며 제갈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옆에 두고 보지 않는 것은 책망해야 할 일이나, 변명을 하지 않고 바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것이다.
호현을 보던 제갈현진이 각세진경을 펼쳤다.
“각세진경은 도교의 삼선경 중 하나이네.”
“삼선경요?”
“선행을 권장하는 책이라는 말이지. 각세진경은 우리 유교를 믿는 학사들에게도 좋은 책이네. 책 내용이 유교에서 중하게 생각하는 충효예지를 담고 있으니 말이네.”
충효예지를 담고 있다는 말에 호현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각세진경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스승님 앞에서 봐도 별 문제가 없겠군요.”
“죽대 선생 말씀인가?”
“그렇습니다. 사람은 지닌 바 재능에 한계가 있으니 한 우물을 파도 그 끝을 보기 어렵다하셨습니다. 해서 다른 학문에 눈을 돌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렇군. 죽대 선생의 말씀도 옳으나…… 자네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위정자가 되고 싶다고 하였네. 백성들의 삶은 백성들의 수만큼 다양하니, 자네가 배운 유교의 내용으로만 백성들을 다스리려하면 그것은 좋은 정치가 될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