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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39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39화

하긴 몇 십 년 동안 단 한 벌의 도복만을 입고 살았으니 지금까지 입고 있는 것이 용한 것이다.

 

잠시 운학의 옷을 보던 호현이 허명진인을 향해 말했다.

 

“혹시 도복을 파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글쎄……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군. 무당에서 주는 도복을 입기만 했지 사서 입어 본 적은 없어서 말이네.”

 

허명진인이 주위를 둘러보다 지나가는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중년인은 갑자기 나타난 허명진인의 모습에 급히 예를 취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말씀 좀 묻겠습니다. 도복을 파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허명진인의 물음에 중년인이 자세하게 도복을 파는 상점의 위치를 알려 주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공손하게 말했다.

 

“도사님,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도우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균현에서 도사님들을 돕는 것을 번거롭다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도사님을 도우면 공덕을 쌓게 되니 제가 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따르시지요.”

 

중년인이 걸음을 옮기자 허명진인이 일행들에게 따라 오라는 눈짓을 주고는 그 뒤를 따랐다.

 

중년인을 따라 상가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들어서고 잠시 후, 일행들은 옷을 파는 상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균현에서 가장 양심적으로 장사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일반 옷 가게로 보이는데요?”

 

“일반 옷도 판매를 하지만 도사님들이 입는 도복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고맙소.”

 

“아닙니다. 그럼.”

 

중년인이 총총 걸음으로 사라지자 호현과 운학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허학진인이 허명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 가게 안에 고수가 있군요.

 

허학진인의 전음에 허명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가게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느낀 것이다.

 

- 기운으로 보면…… 제갈세가의 천위심법인 듯하구나. 그런데 이 정도 기운이라니. 혹시 경천 그 친구인가?

 

허명진인의 전음에 허학진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지금 나온 경천이라는 인물에게 쌓인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 허학진인을 보며 허명진인이 웃었다.

 

- 일단 들어가 보세. 들어가 보면 경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있겠지.

 

허명진인의 전음에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고는 호현 등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허명진인 등의 나이 많은 도사들이 들어오자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던 초로의 노인이 급히 다가왔다.

 

“무량수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주인장의 모습에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슬쩍 주인장과 이야기를 하던 손님들을 훑어보았다. 백의로 옷을 맞춘 사람이 여섯 명이었다. 중년인 한 명과 두 명의 노인, 그리고 젊은 남자 둘에 젊은 여인이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여인의 얼굴은 허명진인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게 만들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과 옷자락 한쪽에 그려져 있는 구름 모양을 보니, 확실히 제갈세가 사람들이었다.

 

그중 청수한 인상을 한 노인을 본 허명진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과연 경천이군. 후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하긴…… 얼굴을 보지 못한 지가 삼십 년이 넘으니 그럴 수도.’

 

노인은 허명진인과 같은 시대에 활동을 한 제갈세가의 제갈경천이었다.

 

만약 제갈경천의 몸에서 천위심법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면 허명진인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말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주인장의 모습에 제갈경천 쪽을 보던 허명진인이 문득 호현을 바라보았다.

 

옷 가게에 볼일이 있다고 온 것은 호현이지 자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현 학사, 이곳에는 왜 온 것인가?”

 

“신선 어르신의 도복이 너무 낡은 듯해서 도복을 사드리려고요.”

 

허명진인의 말에 호현이 운학의 손을 잡고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신…… 흐흠!”

 

신선 어르신이라고 말을 하려던 호현은 주인장이 놀랄 것을 생각해 말을 멈추고는 다시 말했다.

 

“이 어르신에게 어울리는 도복이 있으면 세 벌 정도 보여 주시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주인장이 운학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그 체형을 살폈다.

 

“적당한 도복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과 함께 주인장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다 먼저 와 있던 손님들에게 다가갔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괜찮네. 우리야 바쁠 것이 없으니 천천히 하시게나.”

 

“감사합니다.”

 

주인장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자신들이 순서를 새치기 했다는 것을 안 호현이 미안함을 느끼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본의 아니게 부끄러운 일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호현의 말에 중년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우리야 바쁠 것이 없으니 신경 쓰지 마시게나.”

 

너그럽게 자신의 잘못을 덮어 주는 중년인에게 호감이 생긴 호현은 그를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옷이 백의 유생복인 것을 보면 호현과 같은 학사인 모양이었다.

 

‘예를 아는 분인 듯하니 사귀면 좋겠구나.’

 

중년인과 친분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든 호현이 포권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방헌현 방헌학관 죽대 선생에게 수학하고 있는 호현이라고 합니다.”

 

호현의 소개에 유생복을 입은 중년인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 유명한 호현 학사이신가?”

 

“유명한……?”

 

중년인의 말에 호현이 의아해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반갑군. 나도 학문을 익히는 학사로서 방헌신사의 소문을 듣고 한 번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인연이로군.”

 

기분 좋게 웃던 중년인은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인사하거라. 방헌신사 호현 학사이시다.”

 

젊은이들은 호현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도 중년인을 통해 호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이다.

 

“제갈세가의 제갈현입니다.”

 

“제갈세가의 제갈인입니다.”

 

“제갈세가의 제갈연이에요.”

 

이남 일녀의 인사에 호현은 같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방헌현 방헌학관 죽대 선생의 문하 호현입니다.”

 

호현이 자기소개를 하자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총명하게 생긴 제갈인이 물었다.

 

“작년에 향시에 합격했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제갈인의 물음에 호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 나이에 향시라니.”

 

다른 무가와 달리 문무를 동시에 쌓는 제갈세가이다보니 향시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는 것이다.

 

“그럼 올해 치른 회시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회시는 치르지 못했습니다.”

 

호현의 답에 제갈인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향시에 합격한 거인이 왜 회시를 보지 못했다는 겁니까? 향시 합격자는 다음 해에 회시를 치르는 것으로 아는데요?”

 

제갈인의 물음에 호현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렸다. 스승님의 명으로 회시를 보지 못했다고 하면 왜 라는 물음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승님과 사형제 간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호현의 얼굴에 어린 난감함을 읽은 중년인이 제갈인에게 말했다.

 

“호현 학사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예가 아니다.”

 

“아,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제갈인의 말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자신이라도 향시 합격자가 회시를 안 봤다고 하면 물었을 것이니, 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제갈현진이라 하네.”

 

제갈현진의 이름에 호현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제갈현진? 혹시 국치명정(國恥明正)을 논하신 제갈현진 공이십니까?”

 

호현의 말에 제갈인이 웃으며 말했다.

 

“숙부님의 국치명정을 보셨습니까?”

 

“헉! 그럼 정말 국치명정의 제갈 노사가 맞으시군요.”

 

호현의 놀람에 찬 말에 제갈현진이 웃었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리 놀라니, 내 얼굴이 다 부끄럽군.”

 

제갈현진이 자신을 인정하자 호현이 존경에 찬 시선으로 그를 보다가 급히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국치명정이란, 나라의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밝은 정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학설이었다.

 

밝은 곳에서 시행되는 정치, 즉 정치에 부정부패를 없앤다면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학설을 들은 죽대 선생은 실현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책상물림의 학설이라며 독설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학설을 당당하게 밝히는 학사의 패기에 칭찬을 하며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말도 했다.

 

평소 사람들을 칭찬하는 법이 적은 스승이 칭찬을 한 명사를 눈앞에 뒀다는 생각에 호현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평소 흠모하던 제갈 노사를 뵈오니 정말……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허허, 나 역시 평소 보고 싶던 호현 학사를 보니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군.”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을 보고 제갈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두 분이 서로를 그리 보고 싶어 했는데 이런 옷 가게에서 보게 되다니, 과연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그렇군. 후후!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신가? 보니 신분이 범상치 않은 분들인 듯한데.”

 

제갈현진이 허명진인 등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호현이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듯 급히 말했다.

 

“아! 이쪽은…….”

 

호현이 예의상 제갈현진 등을 소개하려 하자 허명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다 들었네. 그래, 제갈세가에서 어인 일로 균현까지 온 것인가? 본문에 가는 길인가?”

 

허명진인의 말에 옆에 있던 노인 중 청수한 노인, 제갈경천이 앞으로 나섰다.

 

“무당 분이셨는가?”

 

대뜸 하대를 하는 제갈경천의 모습에 허명진인이 속으로 웃었다.

 

‘경천 이 친구, 배분에 자신이 있으니 사람에게 함부로 하대를 하는군.’

 

웃음을 머금은 허명진인의 시선에 눈가를 찡그리던 노인이 무언가를 느낀 듯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놀란 듯 손가락으로 허명진인을 가리켰다.

 

“어! 허명?”

 

이제야 자신을 알아보는 제갈경천의 모습에 허명진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량수불. 제갈 도우, 그동안 잘 지냈는가?”

 

“허! 정말 허명 자네인가?”

 

“맞네.”

 

사십 년이 넘도록 얼굴을 보지 못했던 옛 친우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제갈경천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안 죽었던가?”

 

“무량수불, 제갈 도우가 먼저 안 갔는데 내가 어찌 가겠는가? 그나저나 사십 년 만인가?”

 

“그런 듯하군. 허명 자네가 무당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그쯤 된 것 같으니.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무당에 들러 자네가 등선이라도 했으면 술이나 한 잔 따라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좋군.”

 

도가에서 등선이라는 의미는 도를 얻어 신선이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도사의 죽음을 뜻하기도 했다.

 

제갈경천이 힐끗 뒤에 있는 허학진인을 보고는 웃었다.

 

“허학인가?”

 

제갈경천의 말에 허학진인이 흥!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제갈경천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 사제는 아직도 나를 싫어하는군.”

 

“어렸을 적에 제갈 도우가 사제를 좀 괴롭혔나.”

 

“괴롭히기는…… 그저 학문을 좀 가르쳐보려고 했을 뿐이지. 그리고 허학에게 학문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한 사람은 자네였네.”

 

“그랬던가?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모르겠구만.”

 

남이 들으면 오랜 만에 만난 옛 지우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정다운 모습일 것이나…… 제갈세가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어렸다.

 

‘세상에!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배분이라고?’

 

‘허자배? 그렇다면 전대 무당 기인이잖아?’

 

‘전대 무당 기인들이 왜 호현 학사와 같이 다니는 것인가?’

 

제갈현 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갈현진과 같이 있던 노인이 허명진인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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