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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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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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전에서 일을 마친 호현과 학사들은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선인각이 부서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세 명씩 짝을 지은 학사들의 모습에 호현은 명인을 바라보았다.
자신만 어디서 지내라는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저는……?”
“호현 학사께서는 다른 곳에서 지내셔야 할 듯합니다.”
명인의 말에 학사들 사이에서 냉소가 흘러나왔다.
“우리들은 세 명이서 한 방을 쓰라고 하면서 호현 학사만 다른 곳에서 지내라니, 역시 무당도 사람을 능력대로 차별하는가 보군.”
호현이 고개를 돌리니 진만 학사가 그렇지 않냐는 듯 학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저 사람이군.’
진만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씀은 곧 제가 진만 학사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이니…… 이 호 모, 감당하기 어렵군요.”
“내가 언제!”
“능력대로 차별한다 하신 말은 진만 학사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까.”
“끄응!”
진만이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호현은 속으로 웃다가 돌연 한숨을 쉬었다.
‘휴우, 아직 나도 멀었구나. 사람의 세치 혀에 이리도 마음이 흔들리다니.’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진만을 바라보았다. 왜 쳐다보냐는 듯 바라보는 진만을 보며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저 사람 덕에 내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군.’
자신의 미소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진만에게 고개를 작게 숙여 보인 호현은 명인을 향해 말했다.
“저도 다른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해주십시오. 아니, 진만 학사와 같은 방을 쓰고 싶습니다.”
호현의 말에 명인이 힐끗 진만을 바라보았다.
“진만 학사, 괜찮겠습니까?”
호현이 자신을 지목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진만은 무슨 의도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만의 눈길에 호현은 그저 웃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호현을 노려보던 진만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호현 학사 같은 분이 소인을 원하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꼬는 어조로 말을 하는 진만의 모습에 호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사람하고는 내가 연이 아닌 모양이군.’
“알겠습니다. 그럼 호현 학사와 진만 학사는 나를 따라오십시오.”
명인이 호현과 진만을 데리고 가자 도사들이 다른 학사들을 데리고 걸어갔다.
진만과 함께 명인의 뒤를 따르던 호현이 물었다.
“그런데 저희는 어디서 머물게 되는 겁니까?”
“장생각입니다.”
“장생…… 각? 헉! 그곳은 무당의 어르신들이 머무는 곳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진만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놀란 얼굴로 명인을 바라보았다.
“왜 우리가 그곳에서 머물게 되는 것인가?”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호현 학사가 장생각에서 머물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현 학사가 원하니 진만 학사도 그곳에서 머물게 될 것입니다.”
“끄응!”
명인의 말에 진만은 침음성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당의 어른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니 말이다.
물론 진만이라고 무당의 어른들과 안면을 익히는 것이 싫을 까닭은 없었다. 하지만 안면을 익히는 것과 같은 공간에서 기거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장로들과 살게 되면 평소에도 언행과 행동에 늘 조심을 해야 하니 말이다. 즉,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굳어진 얼굴의 진만과 함께 장생각에 도착한 호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청수진인을 볼 수 있었다.
청수진인은 호현이 들어오는 것에 미소를 짓다가 진만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자 의아한 얼굴로 명인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진만 학사입니다. 호현 학사가 혼자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같이 모셔 왔습니다.”
명인의 말에 청수진인이 웃으며 진만에게 포권을 했다.
“호현 학사와 친분이 두터우신 모양이군요.”
호현과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친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청수진인을 보고 진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그런 진만을 보며 속으로 웃던 호현은 청수진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왜 장생각에……?”
호현의 물음에 청수진인이 웃었다.
“우리와 같이 지내는 것이 싫은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편하게 생각하시게. 밤잠 없는 노인네의 말동무를 해주는 것도 덕을 쌓는 일이 아니겠는가?”
호현을 보며 웃던 청수진인이 명인을 바라보았다.
“명인은 가서 호현 학사가 지낼 방을 보여 주거라.”
“알겠습니다.”
명인은 호현과 진만을 데리고 장생각 삼 층으로 올라갔다. 명인이 안내해 준 방은 단출한 구조였다. 침상이 양쪽 끝에 두 개가 있고 가운데에 탁자가 있었다.
“침상이 두 개군요.”
“청경 사숙과 명오 사형이 사용하던 방이라 그렇습니다.”
명인의 말에 호현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청경진인과 명오 도장이 이 방을 사용하셨구나.’
호현이 방을 살피고 있을 때 명인이 말했다.
“선인각의 호현 학사 방에 있던 짐들은 모두 옮겨 왔습니다. 살펴보시고 빠져 있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명인이 침상 한쪽을 가리키자 그 말대로 그 위에 호현의 짐들이 놓여 있었다.
“진만 학사의 짐은 원래 묵기로 하신 곳에 가져다 놓았는데, 이곳으로 옮기셨으니 제가 내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합니다만.”
진만의 말에 명인이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는 듯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걸어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잠시 밖을 바라보던 명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만을 향해 말했다.
“진만 학사의 짐을 가지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곧 짐이 도착할 것입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명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젓다가 품에서 아침에 빌린 도경을 꺼내 내밀었다.
“책 잘 읽었습니다.”
책을 품에 넣은 명인이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서 있자, 호현이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이 시간쯤에 와서 대화를 하자고 하셨지.’
호현이 알겠다는 듯 웃으며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지요.”
호현은 자신의 짐에서 명인을 가르치기 위해 구한 서적을 꺼내 펼쳤다. 명인에게 학문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명인 도사께서는 학문을 어디까지 익히셨습니까?”
“학문요?”
“그렇습니다. 도인이라고 해도 학문은 익히셨을 것 아닙니까?”
호현의 물음에 명인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논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논어라……. 그럼 논어의 어느 편까지 기억을 하십니까?”
“어느 편?”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명인의 모습에 호현이 말했다.
“논어는 모두 이십 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어느 편까지…….”
말을 하던 호현은 명인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모양이군요. 혹시 기억이 나는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흐흠, 그럼 오늘부터 일과가 끝이 난 후 한 시진씩 논어를 강론해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학문을 가르칠 생각이십니까? 사부님께서는 호현 학사와 대화를 하라고 하셨지 학문을 배우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학사인 제가 명인 도사와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전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는 무엇을 전합니까?”
명인의 말에 호현이 생각을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도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호현을 보던 명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논어 구절 중에…….”
말을 하던 호현은 힐끗 진만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요,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명인에게 한 질문이기는 했지만 내용은 진만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뜻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는 뜻이었다.
명색이 학관을 운영하는 진만인지라 그 뜻을 모르지는 않기에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과유불급(過猶不及)부터 알려 주는 것이 좋을 듯하오만……. 호현 학사가 그 뜻을 안다면 말이오.”
과유불급이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즉, 호현에게 학식 높은 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로 진만이 말한 것이다.
그 말에 호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을 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은 없겠지만, 진만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 말이다.
쓰게 웃은 호현은 명인에게 논어에 대해 강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은 논어의 학이(學而) 편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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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은 밤, 호현은 장생각을 거닐고 있었다. 처소를 옮겨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운학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이 있었고 말이다. 아침에 헤어졌던 운학은 그 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디에서 또 자신을 기다리며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선 어르신은 대체 어디를 가셔서 오지 않는 것인가? 식사는 하셨는지 모르겠군.’
속으로 중얼거리던 호현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장생각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선인각이 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혹시 운학이 선인각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운학은 호현이 선인각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빠르게 걸음을 옮긴 호현은 곧 선인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인각은 운학이 만든 회오리에 반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 주위로 건물 잔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잔해들을 피해 선인각으로 향하던 호현이 중얼거렸다.
“신서…….”
“와악!”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호현의 앞에 운학이 유령처럼 솟구쳤다.
‘헉! 놀래라.’
운학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호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헤! 사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웃는 운학을 보며 마음을 진정한 호현이 물었다.
“제가 신선 어르신을 불렀는데 못 들으셨습니까?”
“사형이 말 듣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운학은 귀 막고 사형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렸어요.”
“그럼 제가 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헤! 그거야 사형이 오는 것을 봤으니까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사형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제가 밥 먹으러 갈 수는 없잖아요.”
‘아! 그럼 나 때문에 식사도 거르셨구나.’
“배 안 고프십니까?”
“우웅! 고프기는 한데…….”
“그럼 어서 가셔서 식사부터 하십시오.”
호현의 말에 운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 알았어요! 그럼 사형,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말과 함께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척도 없이 운학이 사라졌다.
“그런데 식사는 어디에서…….”
스윽!
“헉!”
호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그의 앞에 운학이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양손에 떡을 한 움큼씩 쥔 채 말이다.
“사형, 먹을 것 가져 왔어요. 드세요.”
떡을 내미는 운학의 모습에 호현이 두 손으로 공손히 음식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음식들은 어디에서……?”
“태극전에서요.”
“태극전?”
“네! 태극전에는요, 늘 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어요.”
운학의 말에 호현은 손에 들린 떡이 태극전에 있는 신상들에게 바쳐진 공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량수불. 도교의 신들에게 바쳐진 음식이라니, 이런 불경이 있나.’
호현은 속으로 도호를 읊으며 들고 있던 떡을 운학에게 내밀었다.
“이 음식들을 다시 가져다 놓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