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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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31화
“네! 사형, 저도 주먹밥 먹을래요!”
자신에게 받은 주먹밥을 맛있게 먹던 모습.
“몰라요. 운학이는 사부님하고 사제들 찾으러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어디에도 사부님하고 사제들이 안 보여요.”
이미 죽어 세상에 없을 사부와 사제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슬퍼하던 모습…….
그리고 자신 앞에서 이제는 옷을 잘 빨아 입는다며 양팔을 벌린 채 웃는 모습까지…….
‘그렇게…… 신선 어르신은 사형이라는 분을 기다리신 것인가? 이미 세상에 없는 사형을?’
- 호현 학사!
다급하게 들리는 청수진인의 목소리에 호현은 운학을 바라보았다.
“제 품에 떡을 넣으신 분이 신선 어르신입니까?”
“네. 사형을 처음 봤을 때 배고픈 것 같아서 제가 몰래 넣었어요.”
운학의 말에 그의 어깨에 올려진 호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십 년 만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나 때문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호현은 자기도 모르게 운학을 끌어안았다. 운학의 몸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신선 어르신을 이리 대하는 것은 불경이나…… 제가 사형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사형?”
“그래, 내가 바로 네 사형이다.”
화아악!
호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인각을 부수며 몸집을 부풀리던 회오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두둑! 후두둑!
그와 함께 회오리바람에 빨려 올라갔던 나무 조각들과 흙더미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제2-4장 운학 이야기
자소궁은 무당 장문인이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태상노군과 무당 역대 장문인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태상노군의 신상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한가운데에 호현과 운학이 있었다.
그런 호현과 운학을 가운데 두고 장로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다.
자신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운학의 팔을 떼어 낸 호현은 앞에 앉아 있는 청운진인을 바라보았다.
‘이 분이 무당의 장문인이구나.’
청운진인 또한 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현 학사라…….’
청수진인과 청묘진인이 호현에 대해 한 말들을 떠올리던 청운진인이 입을 열었다.
“사제들에게 호현 학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묘한 상황에서 보게 됐지만 직접 보게 되니 반갑군. 나는 무당 장문인 청운이라 하네.”
“방헌에서 온 죽대 선생의 제자 호현입니다.”
호현의 예에 청운진인이 문득 한숨을 쉬었다.
“운학 사조의 일에 호현 학사를 끌어들여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런데 신선 어르신께서 왜 저를 사형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청운진인이 운학을 바라보았다. 운학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호현의 손을 잡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청운진인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운학 사조의 별호는 구지검선이었네.”
“구지검선?”
“그렇다네. 스스로 우수(右手)의 검지를 잘라 도를 얻으신 분이지. 학사인 자네가 알지 모르겠으나 검객에게 우수의 검지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네.”
청운진인의 말에 호현이 슬며시 운학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운학의 우수의 검지는 보이지 않았다.
‘도를 얻기 위해 목숨 같은 검지를 자르신 것인가?’
검객에게 우수의 검지가 목숨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학사인 호현은 정확히 몰랐다. 다만 학사에게도 우수의 검지는 중요했다.
글을 쓸 때 검지가 없다면 붓을 잡을 힘이 없으니 말이다. 호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운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도를 얻으신 후 운학 사조께서는 등선을 하셨네. 하지만…… 등선을 하실 때 문제가 있었네. 등선을 하시다가 떨어져 버린 것이네.”
청운진인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등선을 하다가 떨어진다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니 떨어지셨겠지. 그리고 그 후, 이렇게 정신이…….”
차마 문파의 존장에게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청운진인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 뒷말을 짐작할 수 있는 호현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혹시 등선하시는 것을 직접 보셨습니까?”
“보지는 못했네. 당시 운학 사조께서는 등선을 하실 때 본인의 제자였던 허명 사숙과 허학 사숙만을 대동하시고 천왕봉에서 등선제를 올리셨다고 하네.”
청운진인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명과 허학? 운학과 운명하고 비슷한데?’
“도명이…….”
“맞네. 본인의 사형이셨던 운명진인의 도명을 따서 지으신 것이네.”
“그럼 운명진인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호현의 물음에 청운진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말을 해주겠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자소궁 안으로 두 명의 노도사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 도사가 안으로 들어오자 청운진인과 장로들이 일제히 그들에게 예를 올렸다.
“청운이 허학 사숙과 허명 사숙을 뵙습니다.”
“청수가 허학 사숙과 허명 사숙을 뵙습니다.”
장로들의 예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두 노도사의 모습에 호현의 얼굴로 놀람이 어렸다.
허학이라 불린 노도사는 운학과 비슷한 체격으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하지만 허명진인이라 불린 노도사는 훤칠한 키에 얼굴은 중년이라고 할 만큼 팽팽한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너무나 극과 극인 두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호현은 다른 이유로 그들의 등장에 놀라고 있었다.
바로…….
‘저 두 분이 신선 어르신의 제자?’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운학에게 다가온 두 노도사가 무릎을 꿇었다.
“제자 허학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제자 허명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운학에게 예를 올린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은 자신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사부, 운학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 저희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몰라요.”
왜 자신을 귀찮게 하느냐는 듯 바라보는 운학을 보며 허명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러시군요.”
운학을 바라보던 허명진인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라 들었네.”
“방헌의 죽대 선생 밑에서 수학하는 호현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그런데 운명진인에 대해 물었었나?”
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명진인이 입을 열었다.
“운명진인은 우리 스승님이신 운학진인의 사형이셨네.”
허명진인의 말에 따르면 운명은 소위 무(武)의 천재라 했다. 이십대의 나이에 강기를 시전하는 절정 고수에 올라 무당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무당비검(武當秘劍)이라 불렸다 한다.
운학은 운명의 사제였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는 아주 어린 사제였다.
당시 버려진 갓난아기를 운명의 사부인 정경진인이 데리고 왔는데, 그 아기가 바로 운학이었다.
그리고 그런 운학을, 운명이 똥오줌을 받고 하루에 네다섯 번씩 산을 내려가 모유를 받아가며 키웠다.
그러니 운학에게는 운명은 사형이 아니라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던 것이다. 게다가 무공까지 운명이 가르쳤으니 스승이기도 했다.
그렇게 운학이 여섯 살이 됐을 때, 무당에 혈겁이 닥쳤다. 당시 중원을 공격하던 마교의 마두들이 고수들이 빠져나가 있던 무당에 들이닥친 것이다.
마두들의 공격에 장로들은 무당의 미래를 위해 어린 제자들을 태극전의 지하 밀실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그게 운학이 운명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
*
*
“사형! 사형도 같이 들어가요!”
“사형은 무당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하지만…….”
“너를 혼자 두고 이 사형은 죽지 않는다. 사형이 얼마나 강한 지는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운학아, 어서 들어가거라.”
“싫어요! 사형 없이는 안 들어갈 거예요!”
“운학!”
“…….”
“사형을 믿어라! 사형은 너를 혼자 두고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사형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러니 사형을 믿고 태극전에 숨어 있거라.”
“사형.”
“사형을 믿어라!”
검은 눈썹, 굳게 닫힌 입술…… 그리고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 자신을 바라보는 애잔한 눈빛…….
그것이 운학이 기억하는 운명 사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던 어느 날, 배고파 눈을 뜬 운학의 눈에 사형이 나타났다.
*
*
*
“사형…….”
중얼거리며 눈을 뜬 운학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 호현을 보았다.
“헤헤헤! 사형!”
호현의 얼굴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운학이 웃었다. 그런 운학의 모습에 호현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려다보았다.
운학이 굳게 손을 잡고 있어 다른 곳에 가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셨습니까?”
“헤! 사형도 잘 잤어요!”
‘대낮에 무슨 잠을 자겠습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이 손을 움찔거렸다.
“그만 손 좀 놓아주시겠습니까?”
“네!”
자신의 손을 놓는 운학을 보며 호현이 몸을 일으켰다.
현재 호현이 있는 곳은 자소궁 대청. 원래대로라면 호현 같은 외부 사람이 계속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호현이 자소궁 밖으로 나오자 운학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자소궁 밖으로 나온 호현은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호현과 운학이 나오는 것을 봤는지 그 둘이 다가왔다.
“스승님, 잘 주무셨습니까?”
허명진인의 인사에 운학이 이상하다는 듯 그 둘을 바라보았다.
“왜 나보고 스승님이라고 하는 거죠?”
운학의 말에 둘의 얼굴로 씁쓸함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명진인이 입을 열었다.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허명진인의 말에 운학은 호현을 바라보았다.
“사형,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저야 선학전에 일을 하러 가야지요.”
“헤! 맞다! 사형한테…….”
말을 하던 운학이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의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에 허명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이 무슨 말을 하시든 저희는 안 듣고 안 본 것으로 할 터이니 편하게 이야기 하십시오.”
“우웅! 그래도 귀가 있고 눈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저희가 듣고 본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요.”
“허허, 괜찮다니…….”
“그래도…….”
“…….”
거듭된 의심에 허명진인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집요한 면이 있으셨지. 나와 허학은 기억을 못하셔도 성격만큼은 여전하신 모양이구나.’
예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부를 떠올리자, 때로는 힘들고 즐거웠던 기억에 허명진인과 허학진인이 웃음을 지었다.
“그럼 저희가 귀와 눈을 막고 있겠습니다. 자, 보십시오.”
허학과 허명진인은 양손으로 귀와 눈을 막았다. 귀를 막고 있다고 해도 두 사람 수준의 무공이라면 얼마든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운학의 어린 정신연령에는 그것이 먹혔다.
“헤!”
두 노인이 손으로 귀와 눈을 막고 있는 것을 재밌다는 듯 보던 운학에게 호현이 말했다.
“두 어르신을 곤란하게 하지 마십시오.”
“운학은 두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는데요? 그렇죠?”
운학의 물음에 허명진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호현 도우는 우리에 대해 신경 쓰지 마시게나.”
허명진인의 대답에 운학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 말 안 듣는다면서요! 다 듣고 있었네!”
운학의 말에 허명진인이 눈과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며 난감해했다.
그 모습에 호현이 한숨을 쉬고는 운학의 손을 잡고는 걸음을 옮겼다.
“선학전으로 가시지요.”
“헤! 그래요.”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호현의 손길이 좋은지, 운학은 허명진인에게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 따라왔다.
운학과 함께 선학전으로 향하던 호현의 귀에 허명진인의 전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