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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29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29화

유경의 말에 호현이 난감한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만 등과 일이 얽혔을 때야 그들의 불손한 행동에 화가 나서 거인이 받는 관인의 예를 들먹인 것이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존대를 받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둘은 아들또래라 할 수 있는 호현에게 스스로 자신을 낮추며 다가오지 않았는가.

 

호현을 의심하고 질투하며 다가온 진만 등과는 확연이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예로서 다가온 분들에게 예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군자라 할 수 없다.’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말을 놓지 않으신다면 이 호 모는 감히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기 어렵습니다.”

 

호현의 말에 유경과 막무가 서로를 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호 거인이 그리 말을 한다면 따르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닐 터, 그럼 편히 대하겠네. 아! 식사 중에 너무 말을 많이 시켰군. 어서 식사부터 하시게.”

 

유경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서둘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학사들에게 쉬고 싶다는 말을 한 호현은 서둘러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한 곳에서 현천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침상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펼친 호현은 창밖을 보았다.

 

“미시(未時)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그때까지는 책을 읽어야겠다.”

 

새로운 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는 것을 느끼며 호현은 책을 펼쳤다.

 

그런데 막 책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 호현의 몸이 굳어졌다.

 

쿵! 쿵!

 

심장과 단전이 있는 곳에서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던 것이다.

 

‘헉, 설마!’

 

어제의 그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린 호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단전과 심장에서 음양의 기운이 솟구치더니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

 

“우욱!”

 

음양의 기운이 부딪치며 일어난 충격에 호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잘못하면 죽는다.’

 

어제의 고통을 떠올린 호현은 입술을 깨물고는 태극호신공을 펼쳤다.

 

그와 함께 음양의 기운들이 호현의 몸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

 

*

 

*

 

호현을 찾아 선인각 이 층으로 오르던 명인은 순간 이상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스쳤다고 느꼈다.

 

“응?”

 

이상한 기분에 명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휘익!

 

계단을 오르던 명인은 다시 이상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응?”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명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명인은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너 이상해.”

 

계단을 오르던 명인은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노인의 모습에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나타나셔서 놀랐습니다.”

 

명인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운학이었다.

 

놀라려면 바로 놀랄 것이지, 가만히 있다가 놀랐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명인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운학은 손가락으로 선인각 대청을 가리켰다.

 

“봐.”

 

운학이 가리키는 곳에는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학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명인이 운학을 바라보았다.

 

“어르신께서 모두 잠들게 만드신 겁니까?”

 

“응. 그런데 너는 왜 안 자?”

 

“저도 자야 하는 것입니까?”

 

“그럼, 당연하지. 내가 자라고 말했는데.”

 

“어르신이 자라고 하면 모두 자는 것입니까?”

 

“응.”

 

잠시 운학을 보던 명인이 문득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다 말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본문에서 어르신 같은 분을 본 적이 없는데?”

 

“나? 나는 운학이야.”

 

“운학?”

 

운학이라는 이름을 되새기던 명인의 머리에 순간 무당파의 전설적인 인물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구지검선 운학 태사조?”

 

“헤! 구지검선인지 뭔지 나는 몰라. 나는 그냥 운학이야.”

 

운학이 웃으며 하는 말에 명인이 그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구지검선 운학 태사조는 분명 오른손 검지가 없으시다고…… 없다.’

 

운학의 오른손 검지가 없는 것을 본 명인이 급히 계단에 엎드렸다.

 

“무당파 일대 제자 명인이 운학 태사조께 예를 올립니다!”

 

계단에 엎드리는 명인의 모습에 운학이 웃으며 앉았다. 명인이 엎드리며 인사를 하니 마치 자신이 어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에헴! 절 잘한다.”

 

“운학 태사조께서 인세에 남아 계시니 본문의 홍복입니다. 이 사실을 사부님과 장로들께서 아신다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명인의 말에 운학이 웃으며 말했다.

 

“헤! 장로라면 노인들 말하는 거야?”

 

“노인들?”

 

“응, 여기 사는 노인들은 내가 있는 것을 이미 알아.”

 

“운학 태사조가 살아 계신 것을 말입니까?”

 

“응.”

 

명인을 보며 웃던 운학이 문득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왜 안 자지?”

 

“그야 졸리지를 않으니…….”

 

“아닌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운학이 미간을 찡그렸다.

 

“노인네들 온다.”

 

선인각 밖을 바라보는 운학의 모습에 명인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선인각의 벽 뿐,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태사조님이라면 무당 그 어디의 기척이라도 감지하실 수 있겠지.’

 

명인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운학이 힐끗 이 층을 쳐다보았다.

 

“어쩌지. 사람이 오면 안 되는데.”

 

“뭐가 말씀입니까?”

 

“사람이 오면 안 되는데 사람이 와. 우웅.”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리던 운학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명인을 붙잡고는 선인각 밖으로 몸을 날렸다.

 

제2-3장 선인각, 부서지다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은 선인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명균이 따르고 있었다.

 

풀을 먹여 달였는지 빳빳하게 날이 서 있는 도복을 입고 있는 청운진인을 향해 청수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장문 사형도 호현 학사를 만나러 가시는 길인가 봅니다.”

 

청수진인의 말에 청운진인이 그를 보다가 눈가를 찡그렸다. 청수진인의 옷에 잡힌 주름이 눈에 보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정도의 구김이었지만 청운진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쯔쯔쯔! 사제는 어찌 옷을 그리 함부로 입는가?”

 

“후후후,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사람하고는…….”

 

청운진인이 손을 내밀어 청수진인의 옷에 있는 주름들을 손으로 쓸어 내렸다.

 

스스슥!

 

그러자 청운진인의 손에서 뿜어진 뜨거운 기운이 도복의 주름을 말끔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의 행동에 청수진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괴벽만 아니라면 장문 사형의 경지가 지금보다 훨씬 높을 것인데…….’

 

결벽증을 괴벽으로 칭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운진인은 청수진인의 깔끔하게 변한 도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단정해 보이는군.”

 

사그락! 사그락!

 

움직일 때마다 종이처럼 빳빳해진 도복이 내는 소리에 청수진인이 슬쩍 청운진인의 도복을 바라보았다.

 

청운진인의 도복은 마치 날이 선 칼날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장문 사형은 이런 옷을 입고도 잘만 움직이시는군요.’

 

청수진인은 작게 고개를 흔들고는 청운진인과 함께 선인각으로 향했다.

 

선인각으로 향하던 청운진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청묘 사제에게 들으니 청수 사제도 호현 학사를 봤다고 하더군?”

 

청운진인의 목소리에 깃든 호기심을 읽은 청수진인은 미소를 지었다.

 

“장생각에서 보았습니다.”

 

“청묘 사제가 호현 학사 칭찬을 과하게 하던데, 그렇게 뛰어난 사람인가?”

 

“호현 학사는 무림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저 백면서생에 불과할 것이나, 도인의 눈으로 본다면 배울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청수진인의 말에 청운진인이 선인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나 보면 알게 되겠…… 응? 응?”

 

선인각 쪽을 바라보던 청운진인이 마치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자신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스스슥!

 

“왜 그러십…….”

 

청운진인을 따라 선인각으로 시선을 돌렸던 청수진인의 눈에 한 노인과 젊은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노인을 멍하니 바라보던 청수진인은 그 노인을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 장문인!

 

청수진인의 일갈에 청운진인이 정신을 차리고는 명균에게 전음을 보냈다.

 

- 청자 배들을 모두 소집하라!

 

- 존명!

 

명균이 급히 답을 하고는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명균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청운진인이 급히 품에서 장문영부인 태극패를 꺼내 들었다.

 

태극패는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에 팔각형 모양이었다. 그 중심에는 태극과 팔괘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태극패는 무당파 제일의 권위를 가진 물품으로써 그 앞에서는 무당 제자라면 그 누구라도 명을 받아야했다.

 

태극패를 쳐든 청운진인이 선인각, 즉 명인과 함께 있는 운학을 향해 소리쳤다.

 

“무당 제자 운학은 태극패의 명을 받으라!”

 

순식간에 운학의 앞에 내려선 청운진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며 볼을 부풀리고 있는 운학을 보고 청운진인이 다시 외쳤다.

 

“감히 태극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인가!”

 

청운진인의 고성에 운학이 볼을 부풀리고 있다가 바닥에 엎드렸다.

 

“무당 제자 운학이 태극패의 명을 받습니다.”

 

바닥에 엎드리는 운학의 모습에 청운진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운학 사조가 아직 태극패의 권위는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엎드려 있는 운학을 보고 있는 청운진인에게 청수진인이 전음을 보냈다.

 

- 다시 운학 사조께서 사라지시면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태극패의 권위로 금제를 거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청수진인의 전음에 청운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전대 무당 장문인 시절에 사라진 운학을 이때까지 찾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같은 무당파 경내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무당 제자 운학은 들으라. 오늘 이후 무당에서 모습을 감추고 행동하는 것을 금제한다. 또한 태극패의 부름을 받을 시 즉시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청운진인의 말에 운학이 얼굴을 찡그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히잉! 사람들이 귀찮게 하는데……. 또 나를 이상한 곳에 가둬 두려고 그러는 거죠! 운학은 거기 싫어요!”

 

“무당 제자 운학! 태극패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청운진인이 태극패를 높이 들어올렸다.

 

반짝!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태극패의 모습에 운학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무당 제자 운학이 태극패의 명을 받습니다.”

 

운학의 말에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청운진인이 태극패를 품에 집어넣고는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까지는 태극패의 권위를 세웠지만 본문의 어른을 봤으니 예를 표하려는 것이다.

 

“청운이 운학 사조를 뵙습니다.”

 

“청수가 운학 사조를 뵙습니다.”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의 예에 운학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 운학의 모습을 청운진인과 청수진인은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특히 청수진인의 얼굴에는 슬픔까지 어려 있었다. 젊은 시절, 청수진인에게 운학은 신앙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구지검선이라 불리셨던 분이 지금은 이런 모습이라니…… 하아!’

 

구지검선이라 불리며 천하제일 고수의 반열에 있었던 운학이 이제는 반쯤 미친 치매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청수진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운학에게 예를 올린 청운진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어디에서 머무시고 계셨습니까?”

 

“여기저기에 있었어요.”

 

사조인 운학의 존대에 청운진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대 허자배가 무당을 청자배에 맡기면서 알려준 무당의 비사 중에는 운학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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