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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28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28화

“식사도 하지 않고 가십니까?”

 

“어차피 갈 것, 일찍 내려가 산 밑 식당에서 먹겠네.”

 

호불위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웃으며 속삭였다.

 

“내 비록 무당의 속가제자이기는 하지만 산 밥은 나하고 잘 맞지가 않거든.”

 

“지금 내려가서 언제 식사를 하시려고 하십니까?”

 

무당산을 오르던 기억을 떠올리며 호현이 묻자 호불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 산을 내려가는 것이야 금방이지. 아마 한 시진 정도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것이네.”

 

호불위가 방을 나서자 호현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선인각 밖에는 이미 속가무인들이 하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 밑에서 거하게 먹어 보자고.”

 

“그러지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자리를 만들겠습니까?”

 

“그럼 술도?”

 

“푸하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다 같이 산을 내려가서 회포라도 풀고 헤어지려는지, 속가무인들의 얼굴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들과 합류한 호불위가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를 보다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형제에게 내가 큰 은혜를 입었네.”

 

“아닙니다. 호 국주님 덕에 제가 무당에 오게 되었으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럼 서로가 서로에게 덕을 베푼 격인가?”

 

호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호불위를 향해 오태석이 다가왔다.

 

“호 사형, 어서 갑시다.”

 

“알겠네.”

 

호불위가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훗날 이 호 모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시게.”

 

“저는 괜찮으니 그동안 학관 좀 잘 살펴 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럼 나는 가겠네.”

 

호불위는 웃으며 몸을 돌리고는 속가무인들과 함께 선인각을 나서기 시작했다.

 

*

 

*

 

*

 

속가무인들이 하산을 하고 난 후 호현과 학사들은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과 함께 학사들은 선학전으로 향했다.

 

선학전 앞에 도착한 학사들은 그 앞에 펼쳐진 천막과 나무 상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학사들이 그것을 보고 있을 때 명인이 말했다.

 

“작업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선학전에 있는 도경들의 내용과 제목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간혹 제목과 내용이 다른 책 중, 이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도경이 있다면 저희들에게 보여 주시면 됩니다.”

 

“이상한 내용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 학사의 질문에 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도경 중에 제목만 도경이고 안에는 무공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여 도경 안에 혈도라든지 사람의 신체가 그려져 있거나, 제목만 같고 다른 내용이 적혀 있는 책을 보시면 저희들에게 확인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무언가 이상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생각되는 책은 모두 확인을 받으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더 물으실 것이 있습니까?”

 

명인은 학사들을 바라보았다.

 

학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젓자 명인은 그들을 데리고 선학전 안으로 들어갔다.

 

선학전 안에 들어서자 호현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음 놓고 선학전의 도경들을 볼 수 있겠구나.’

 

*

 

*

 

*

 

선학전 삼 층, 서가 구석. 얼굴에 하얀 면포를 두른 호현은 손에 들린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경은 먼지가 하얗게 내려 앉아 제목조차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확인한 도경이 적지 않기에 이제는 그런 것에 익숙해진 호현은 책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 냈다.

 

풀럭! 풀럭!

 

하얗게 날리는 먼지를 손바람으로 밀어낸 호현은 도경을 바라보았다.

 

호인경

 

제목을 확인한 호현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어렸다.

 

‘호인경은 아까도 본 책이거늘.’

 

선학전에 쌓여 있는 도경이 모두 다 다른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니었다. 무당에 들어오는 도경들 대부분이 선학전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그 중에는 같은 도경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보지 못한 책을 찾고 싶었던 호현으로서는 실망을 할 수밖에…….

 

그래도 안에 다른 내용이 있을까 싶어 책을 펼친 호현은 내용을 훑어보았다.

 

도경을 본 호현은 그 내용이 다른 호인경과 같은 것을 보고는 책을 덮었다. 그러고는 옆에 놓여 있는 바구니에 책을 담았다.

 

바구니는 호현이 확인한 책들로 어느새 가득 쌓여 있었다.

 

호현이 바구니를 들려하자, 근처에서 학사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명인이 대신 바구니를 들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바구니를 든 명인이 삼 층에 있는 창가로 걸어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창가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지필묵이 놓여 있었다.

 

붓을 든 호현은 종이에 바구니에 들어 있는 도경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명인이 바구니를 창밖으로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그런 행동에 호현은 깜짝 놀랐다.

 

힘들게 확인한 도경들을 창밖으로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호현의 착각이었다.

 

창밖으로 던져진 바구니는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당 사람이 받아 천막으로 가져가 그 안에 담긴 것을 분류하고 있었다.

 

다시 한쪽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들고 서가 쪽으로 향하자 명인이 그 뒤를 따라왔다.

 

그런 명인의 행동에 호현이 불편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계속 제 옆에…….”

 

“사부님께서 호현 학사 곁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제 옆예요?”

 

“그렇습니다. 호현 학사 곁에 있으면서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명인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저에게서 무엇을……?”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명인 도사의 사부님이 누구지?’

 

호현은 어젯밤에는 자신과 대화를 하라고 명인을 보내더니 오늘은 자신을 지켜보라고 명한 명인의 사부가 궁금했다.

 

“명인 도사의 사부님은 누구십니까?”

 

“청운진인이십니다.”

 

“청운진인?”

 

장생각에서 만났던 무당 장로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려 본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장생각에서 본 분은 아닌데?’

 

호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자 명인이 입을 열었다.

 

“본문의 장문인이십니다.”

 

“장문인? 명인 도사의 사부께서 무당의 장문인이라는 말입니까?”

 

도가의 본산인 무당의 장문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배우라고 제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호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무당의 장문인이 뭐가 아쉬워서 일개 학사인 나에게 제자를 보냈지? 설마 명인 도사에게 학문을 가르치라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 호현은 명인을 향해 물었다.

 

“혹시 학문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명인 도사는 학문에 관심이 없는 듯한데…… 그럼 장문인이 학문에 관심이 있나?’

 

자식이 학문 익히기를 싫어한다고 부모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기에 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 장문인께서 제자에게 학문을 익히게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무당에서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 청을 거절할 수야 없겠지. 오늘부터 틈틈이 명인 도사에게 학문을 가르쳐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문득 주위에 있는 도경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책을 정리할 때, 어떻게 들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도경들 사이에 사서(四書)에 관한 책들도 있었다.

 

그것을 모으면 명인 도사를 가르치는데 사용할 교재가 될 것 같았다.

 

“제가 분류해 놓은 책들 중 몇 권을 가져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귀한 책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명인의 허락에 고개를 끄덕인 호현은 다시 서가에 꼽혀 있는 책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보고 있었을까, 명인이 슬쩍 밖을 보더니 호현에게 말했다.

 

“벌써 정오가 다 되어가는군요. 식사부터 하시지요.”

 

명인의 말에 호현은 들고 있던 도경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금 들고 있는 도경은 현천경이라는 것으로 호현이 아직 보지 못했던 도경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호현이 현천경을 쥐고 있자 명인이 손을 내밀었다.

 

“제게 줘보시겠습니까?”

 

호현이 아쉽다는 듯 현천경을 바라보다 명인에게 건네주었다. 현천경을 받아 슬쩍 훑어본 명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현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도경이군요. 숙소에서 보시고 추후에 반납하십시오.”

 

“헉!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무공 비급만 아니라면 보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명인의 말에 호현은 웃으며 선학전을 나왔다.

 

선학전을 나온 호현이 상자가 쌓여 있는 곳을 보고는 명인에게 말했다.

 

“먼저 가십시오. 저는 물건 좀 챙기고 가겠습니다.”

 

“무슨 물건인지 말해 주시면 제가 챙기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찾아야 할 물건입니다.”

 

호현의 거절에 명인은 학사들을 데리고 선인각으로 향했다.

 

명인과 학사들이 선인각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호현은 천막으로 들어갔다. 도경들을 분류해 나무 상자에 집어넣고 있던 도사에게 다가간 호현이 물었다.

 

“오전에 내려온 책 중에서 도경이 아닌 사서나 유학에 관련된 책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호현의 말에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습니다.”

 

“그 책을 좀 얻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상자들을 살피던 도사가 그중 하나를 가지고 다가왔다.

 

“이 안에 들어 있는 서적들이 도경이 아닌 것들입니다.”

 

도사의 말에 호현이 뚜껑을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유학 서적들과 사서 몇 권이 들어 있었다.

 

‘명인 도사의 학문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겠구나.’

 

서적들을 보던 호현은 그중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으로 한 권을 집었다.

 

서적을 훑어보던 호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사를 향해 말했다.

 

“이 책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다 보시고 난 후 반납만 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품에 집어넣은 호현은 도사에게 고개를 한 번 숙여보이고는 선인각으로 향했다.

 

선인각에는 이미 학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개의 탁자에 나뉘어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호현은 그중 가까운 곳에 앉았다.

 

호현이 앉자 같은 탁자에 있던 학사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호현은 빨리 밥을 먹기로 하고는 급히 그릇에 밥을 담았다.

 

호현이 그릇에 밥을 담는 것을 물끄러미 보던 학사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노 학사가 입을 열었다.

 

“호 거인, 같이 무당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나누도록 하시지요. 나는 안휘에서 온 유경이라 합니다.”

 

“유경 학사와 같이 온 막무입니다.”

 

유경과 막무는 무당에 고용된 학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둘 다 오십 줄은 넘은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이 존대를 하는 것에 호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방헌에서 온 호현입니다.”

 

호현이 정중하게 인사를 받아주자 두 사람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어렸다.

 

누군가 호현이 거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소문을 퍼뜨려 그가 인사를 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누군가는 진만이지만 말이다.

 

호현이 인사를 받자 다른 학사들도 서둘러 자신들의 이름을 이야기 했다.

 

“정주에서 온 정준입니다.”

 

“경상에서 온 예조입니다.”

 

학사들과 인사를 나눈 호현이 자리에 앉자 유경이 웃으며 말했다.

 

“향시를 합격한 거인(擧人)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향시에 합격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호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훌륭한 스승님의 가르침 덕입니다. 그리고 말을 낮춰주십시오.”

 

“허허, 아닙니다. 우리야 시골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는 신세이나 호현 학사는 향시에 합격한 거인입니다. 어찌 저희 같은 백면서생이 거인에게 말을 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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