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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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3화
“신선 어르신, 계십니까?”
…….
“신선 어르신.”
…….
한참을 부르던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계신가 보네.”
운학을 만나는 것을 포기한 호현은 다시 태극음양경에 빠져들었다.
*
*
*
이튿날.
호현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방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호현이 밖으로 나오면 학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 불편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몇 번 학사들이 묻는 질문이나 서적에 대해서 응대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끊이지를 않으니, 그렇지 않아도 태극음양경 생각에 머리가 아프던 호현이 진저리를 치며 방으로 피신을 한 것이다.
덜컥!
문이 열리고 호불위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유명인께서 왜 안에 혼자 계시나?”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들어오십니까? 오늘 온 무당 속가 분들과 만나는 일로 바쁘신 것 아니었습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의 얼굴이 흐뭇해졌다. 본의 아니게 호현 덕에 사형제들 사이에서 그의 인지도가 크게 오른 것이다.
“사형제들이 자네를 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워서 말이네.”
“저를요?”
“흐흐흐! 그렇다네.”
속가제자들은 무당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호현에 대한 이야기를 사부님이나 사형제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만 해도 그런 학사가 있나 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오늘 아침 무당에 놀라운 소문이 퍼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당 장로, 그것도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인 청묘진인이 호현과 대화를 하고 난 후 폐관 수련에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무인이 폐관 수련에 드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청묘진인처럼 무당 핵심인물이 폐관 수련에 드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가 폐관 수련에 들게 되면 그만큼 무당의 일에 공백이 생기니 말이다.
그런데도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는 말은 청묘진인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무당의 일보다 더 중한 깨달음을 말이다.
호현이 온 지 하루 만에 절정 고수인 명백에게 무오의 깨달음을 주고, 그 이튿날에는 청묘진인 같은 고수를 폐관 수련에 들게 만들었으니, 속가제자들로서는 그를 만나 뭐라도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호현과 대화를 하다 혹시 자신들에게도 명백과 청묘진인 같은 기연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호현 덕에 가장 기분이 좋은 사람은 바로 호불위였다. 평소 호불위를 크게 생각하지 않던 사형제들이 호현 같은 학사를 어디서 데리고 왔냐며 부러워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까지는 알 일도 없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는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에이! 다들 자네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 그냥 가서 이야기만 좀 해보…….”
“저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호현의 단호한 말에 호불위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아! 뭐 먹을 거라도 가져다줄까? 과자로 유명한 천양에서 온 사제가 이번에 오면서 과자를 엄청 싸가지고 왔던데.”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싫다고 하면 계속 호불위가 권할 것 같은 것이다.
“그럼 조금만 가져다주십시오.”
“아! 그리고 무당에서 일을 할 학사 발표는 내일로 연기 됐네.”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명백 사형이 없으니 동진 학사가 혼자 일을 하고 있잖나. 그래서 사람 뽑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더군.”
“그런데 탈락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미소를 머금었다.
“탈락하고 난 후의 일을 자네가 왜 걱정하고 있는 건가?”
“저도 시험을 봤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다 떨어져도 자네는 합격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모인 학사들의 수가 정말 많던데.”
“하하하! 자네가 떨어지면 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네. 아니 열 발가락도 모두 장을 지지지. 사람 참 별 걱정을 다 하는군. 그럼 기다리게. 내 가서 과자를 좀 가지고 올 테니.”
호불위가 밖으로 나가자 호현은 선학전을 떠올렸다.
‘그럼 내일은 선학전에 다시 갈 수가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호현은 눈을 감고 태극에 대해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제1-12장 학사의 눈과 무림인의 눈
선인각 앞은 아침 일찍 모인 학사들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무당의 명자 배분을 가진 도사들이 돌아다니며 몸을 검사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공이 있거나 무공을 익힌 사람이 있으면 추려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면접을 볼 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상태였기에 그런 사람들은 이미 하산을 하고 없는 상태였다.
지금 하는 검사는 혹시라도 거짓을 말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절차였다.
하지만 누가 있어 무당파에 거짓을 말하겠는가? 게다가 무공이 있는 것이 밝혀지면 무당의 추궁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학사들의 무공 여부 확인 절차는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호현 역시 한 도사에게 무공을 익혔는지에 대해 검사를 받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방헌현에서 호불위 국주와 같이 온 호현입니다.”
호현의 소개에 도사의 얼굴에 살짝 놀람이 어렸다. 도사 역시 호현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호현 학사님이셨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도장께서 들으신 내용이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좋은 내용이었고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호현을 보며 웃은 도사가 손을 내밀었다. 호현도 다른 사람과 같이 무공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손을 주시겠습니까?”
호현이 손을 내밀자 도사가 손과 어깨, 가슴 등을 가볍게 손으로 두들겼다.
타타타탓!
호현의 몸의 근육 상태를 보는 것이다.
‘어려서 그런지 몸이 부드럽군.’
호현의 몸이 부드럽다는 것을 근육의 탄력으로 느낀 도사가 이번에는 맥문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가볍게 내공을 흘려 넣었다. 호현의 몸 내부를 훑던 도사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좋구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의 몸에 이리도 탁기가 없다니.’
호현은 어릴 때부터 공기가 좋은 죽림에서 살았다. 게다가 방헌학관에는 돈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죽림에서 나는 식재료들로 음식들을 해 먹어야 했다.
죽순으로 반찬을 해 먹었고, 대나무 잎으로 차를 해 마시다보니 탁기가 일반인에 비해 적게 쌓인 것이다.
맥문에서 손을 뗀 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호현 학사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학사들이 많아서 이만 가야겠군요. 다음에 자리를 만들 터이니 저도 명백 사형처럼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말씀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가르침을 청해야지요.”
“하하하, 그럼 이만.”
도사는 다른 학사에게 가더니 이름을 묻고는 무공 여부를 확인했다.
그렇게 무공 확인 절차가 모두 끝이 났다. 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동진이 학사들 앞에 나섰다.
명백 없이 혼자 학사들 면접을 치러서인지 동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동진이 서책을 펼치자 학사들과 그들을 데리고 온 속가제자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학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확인 받는 자리였고, 속가제자들은 무당에서 보상을 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속가제자들이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 한 명, 호불위만은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하게 서 있었다.
‘흐흐흐! 설마하니 호현 학사가 떨어지지는 않겠지. 암! 그렇고 말고.’
호불위는 슬쩍 호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내가 고르기는 잘 골랐구나.’
호불위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옆에 있던 오태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길.”
오태석의 중얼거림에 호불위가 그를 바라보았다.
“오 사제, 왜 그러나?”
“몰라서 그러십니까?”
오태석이 슬쩍 진만이 있는 곳을 노려보자 호불위도 같이 그를 바라보았다.
“진만 학사 때문에 그러나? 그래도 명색이 한 학관의 주인인데 설마하니 떨어지겠나?”
“휴우! 그러면 뭐합니까? 학사들 이야기를 들으니 오자마자 호현 학사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동진 학사에게 밉보였다는데……. 에효! 시비를 걸 사람이 없어서 하필이면…….”
뒷말을 흐리는 오태석의 말에 호불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쩝! 그래도 결과는 나와 봐야 알지 않겠나?”
“휴! 결과야 보나마나 일 것 같은데…… 짐이나 싸야 할 것 같습니다.”
호불위와 오태석이 이야기를 나눌 때 동진이 무당에서 일을 할 학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됐다!”
“휴!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군.”
자신들이 데리고 온 학사들이 뽑힐 때마다 속가제자들의 입에서 안도와 기쁨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하나둘씩 이름이 호명될 때쯤 동진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만 학사.”
진만을 호명하자 오태석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다.”
진만 역시 자신이 뽑히게 될 줄은 몰랐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사제, 축하하네.”
호불위의 말에 오태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줄 알았는데…… 휴우! 무당까지 온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아직도 호현 학사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는군요.”
오태석의 말에 호불위가 미소를 지었다.
“주인공은 원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 아니겠나.”
“그것도 그렇군요.”
호불위와 오태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호현은 초조한 눈으로 동진을 보고 있었다.
하나둘씩 사람들의 이름이 호명되는데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자 긴장을 한 것이다.
‘향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릴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구나. 그래도 떨어지지는 않았겠지?’
초조하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동진이 드디어 열 번째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호현 학사.”
자신의 이름이 마지막에 불리자 호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내일부터는 선학전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
합격한 학사들의 이름을 호명한 동진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도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합격하신 분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도사의 말에 호현과 진만 등의 합격자들이 앞으로 나왔다.
“이제 여러분들이 일을 하실 서고인 선학전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도사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호현 등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선학전에 쌓여 있는 도경들을 생각하니 호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호현 학사는 잠시 이리로 오게.”
걸음을 옮기던 호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호현을 부른 사람은 바로 동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무당에서의 내 일이 끝났으니 이제 나는 원시 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가야한다.”
‘아! 동진 학사께서 이번 원시 시험 감독이셨지.’
“지금 출발하시는 것입니까?”
호현의 물음에 동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출발해야 원시 시험 전에 과장(科場)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구나.”
그러고는 동진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건…….”
“내가 주는 작은 선물이다.”
주머니를 받은 호현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절그럭 거리는 감촉에 얼굴로 당혹감이 어렸다.
“이건 돈이 아닙니까?”
“그렇다.”
“이런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호현이 사양을 하며 주머니를 내밀자 동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니 그냥 받거라.”
“하지만…….”
“받지 않는다면 네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