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0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0화
보고 싶던 도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던 호현은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운학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것을 본 호현은 급히 책을 내려놓고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오셨습니까?”
“헤!”
“그런데 사람을 피하시는 듯하던데, 이렇게 나오셔도 됩니까?”
호현이 동오를 떠올리며 묻자 운학이 말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헤헤 거리며 웃었다.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 웃는 운학을 호현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조금 이상하신데……. 아니지. 신선이란 하늘의 부름을 받아 인간의 탈을 벗은 존재들이니,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면 안 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호현은 동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동오가 혹여 신선을 보고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오면 큰일인 것이다.
호현의 시선에 동오가 바닥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주무시네. 혹시 신선 어르신께서 재우신 겁니까?”
“헤헤헤.”
운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호현은 힐끗 동오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잠들게 만들다니……. 역시 신선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사람을 재우는 이능(異能)에 운학에 대한 존경심이 든 호현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자신에게 선학전으로 가라고 한 운학의 말이 생각난 호현이 물었다.
“신선 어르신께서 저에게 선학전으로 가라 하신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헤! 사형한테 보여 줄 것이 있어서요.”
“저한테요?”
“네! 잠시만요.”
스윽!
말과 함께 운학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라졌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이 마냥 신기한 호현은 운학이 있던 곳을 훑어보았다.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니고……. 신선들의 술법인…….”
“사형!”
“헉!”
중얼거리던 호현은 갑자기 눈앞에 운학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쿵!
호현이 놀라 뒤로 넘어지자 운학이 배를 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헤! 사형이 넘어졌다.”
“신선 어르신, 놀랬잖습니까?”
“근데 사형, 왜 나한테 어르신이라고 불러요?”
“그야 당연히 어르신이니…….”
“내가 왜 사형의 어른이에요?”
“그게…… 어른이시니 어른이시죠.”
“어른이니 어른? 헤, 그럼 내가 사형의 어른이에요?”
“그야 당연히…….”
호현의 말에 운학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사제는 사형의 밑인데. 그 말은 사형이 사제보다 높다는 말인데…….”
심각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듯 미간을 찡그리던 운학이 머리를 저었다.
“사형, 나 머리 아파요. 그냥 사형이 어른하세요.”
“그래도 어찌 제가…….”
“헤! 저는 그런 것 몰라요. 사형이 어른이에요. 아! 사형, 이거!”
운학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밀었다.
“이건…….”
“헤! 사형 보여 주려고 제가 숨겨 놨던 것예요. 어서 보세요.”
운학이 어서 보라는 듯 책을 내밀자 호현이 책을 받아들었다.
“꿀꺽!”
신선이 주는 책이라는 생각에 호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선께서 추천해 주시는 책이니 대단한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호현은 침을 삼키고는 책을 바라보았다.
<태극음양경>
제1-10장 태극권과 상선약수
“태극…… 음양경?”
“헤! 사형, 어서 보세요.”
운학의 재촉에 호현은 침을 삼키고는 책을 바라보았다.
‘태극과 음양에 대해 설명한 책인가?’
태극과 음양이라면 호현도 나름 가지고 있는 깨달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신선이 가져다 준 책에 있는 내용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호현은 기대심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태극음양경
본도의 이름은 운학이다.
‘운학? 아까 신선 어르신께서 자신을 운학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럼 이 책을 지으신 분이 신선 어르신?’
태극음양경을 지은 사람이 운학이라는 것을 안 호현은 그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극이란 음과 양의 조화를 뜻한다.
음이 양을 승하게 만들고 양이 음을 승하게 만든다. 음양이 서로에게 반발을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또한 무더운 여름 다음에는 추운 겨울이 있으니…….
“아! 사람 온다.”
“네?”
스윽!
운학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호현은 순간 손이 허전한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어?”
책은 없고 빈손만 있는 것에 호현은 운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신선 어르신도 사라지셨네.”
- 사형, 제 보물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네?”
- 제 보물요.
‘태극음양경을 말하시는 건가?’
“아,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을 하고 호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학의 목소리는 그것을 끝으로 더는 들리지 않았다.
‘가신 건가?’
호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가 한쪽에서 청묘진인이 걸어왔다.
“무량수불…….”
어제 본 청묘진인이 도호를 읊으며 다가오는 것에 호현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청묘진인을 뵙습니다.”
“호현 학사께서 이곳에 계신다고 해 들러 봤습니다. 그래, 선학전을 보니 어떠십니까?”
“이렇게 도경이 많은 곳은 처음 보는 듯합니다.”
호현의 말에 청묘진인이 웃으며 서가 한쪽에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 냈다.
후두둑! 후두둑!
먼지가 얼마나 쌓여 있었는지 흙덩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소리에 청묘진인이 민망한 듯 쓰게 웃었다.
“명색이 도관인 무당에서 도경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모습을 호현 학사에게 보이니 면목이 없습니다. 속으로 무당을 욕하시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제가 무당에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청묘진인이 말이 없자 주위에 있는 서가에서 책을 뽑아 보던 호현은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청묘진인의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에 호현은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혹시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호현의 말에 청묘진인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것이, 어제 나누던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듯해서 그런데…… 조용한 곳에서 도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진인처럼 도가 높으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니 좋지만, 진인의 시간을 뺏을까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제 호현 학사와 나눈 대화에서 제가 얻는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호현 학사, 어떻게…… 자리를 옮길까요?”
청묘진인의 청에 호현은 아쉽다는 듯 선학전 내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청묘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진인께 공대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호현의 말에 청묘진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흠, 호현 학사가 그리 원한다면 이제부터 편하게 대하겠네. 그럼 나가세나.”
청묘진인이 밖으로 나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
*
*
선학전 밖에 있는 소나무 아래에서 청묘진인과 함께 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호현은 문득 아까 본 태극음양경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다.
태극이란 음과 양의 조화를 뜻한다.
음이 양을 승하게 만들고 양이 음을 승하게 만든다. 음양이 서로에게 반발을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또한 무더운 여름 다음에는 추운 겨울이 있으니…….
‘태극이 조화를 의미한다는 구절은 내 생각과 같다. 허나…….’
호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음과 양이 서로를 승하게 만든다는 말인가? 음이 승하면 양이 약해지고, 양이 승해지면 음이 약해지는 것이 법칙인 것을…….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
태극음양경에 대한 생각으로 호현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자 청묘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호현 학사,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가?”
청묘진인의 말에 정신을 차린 호현은 태극에 대해 도가 깊은 그라면 뭐라도 알까 싶어 물었다.
“음과 양이 서로를 승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음과 양?”
“그렇습니다.”
청묘진인이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과 양은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라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음 없이 양이 없고, 양 없이 음도 있을 수가 없지요.”
“허나 음과 양은 하나이면서 서로 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네. 양은 따뜻하고 가벼우며, 음은 차가우며 무겁지. 흐흠,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음과 양이 서로를 승하게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가 없군.”
“제 생각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인가?”
청묘진인에게 운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기에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진인과 태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묘진인은 그 말에 살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호현 학사의 깨달음이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태극을 새롭게 해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이런 인재가 무당 사람이 아닌 학사라는 사실에 아쉬운 눈으로 호현을 보던 청묘진인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본 문에 있는 무공 하나가 생각나는군.”
무공을 이야기하는 청묘진인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태극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왜 무공을 말씀 하시는 건지요?”
의아한 눈을 하고 있는 호현을 보며 청묘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본 문의 무공은 태극과 밀접한 관계가 있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진지…….”
호현에게 태극과 무당의 관계를 설명하려던 청묘진인이 문득 물었다.
“유림(儒林)에도 체력을 기르기 위해 배우는 무공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익힌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흐흠, 그럼 무공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군. 혹시 태극권을 본 적은 있나?”
“태극권은 아니지만 방헌학관에서 수학하는 학사들이 아침마다 태극호신공을 익히는 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청묘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북 양민들 중 상당히 많은 수가 태극호신공을 익히고 있었다.
태극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태극호신공도 태극권의 초식을 가져다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외형적인 틀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태극호신공의 기본이 바로 태극이네.”
청묘진인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태극? 무공에 태극이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무공이라면 몸을 이용하는 것일 텐데 어찌 태극의 이치가…….”
호현의 물음에 청묘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양 다리를 가볍게 벌리며 손을 들어 보였다.
오른 손바닥으로 하늘을, 왼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킨 청묘진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른손과 왼 다리는 양과 하늘을 상징하고, 왼손과 오른 다리는 음과 땅을 상징하네.”
작게 중얼거린 청묘진인이 가볍게 손과 다리를 움직이며 양손을 교차시켰다.
무당의 자랑이자 무림의 일절로 꼽히는 태극권이 시전되는 것이다.
화아악!
청묘진인의 손발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움직이며 그 주위를 휘어 감기 시작했다.
청묘진인의 손길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바람의 모습에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어, 어찌 인간이 바람을!”
호현이 놀라고 있는 동안에도 청묘진인의 태극권 시전은 계속 되었다.
태극권을 시전하며 슬며시 호현의 눈치를 본 청묘진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호현의 얼굴에 어린 놀람과 경외심을 읽은 것이다.
천천히 태극권을 마무리한 청묘진인이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기대감이 깃든 눈빛으로 호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