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2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2화
그러다 진만의 행동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동진이 앞으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동진과 명백의 시선에 호현 주위에 있던 학사들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실망이군.”
학사들을 보던 동진이 낮게 중얼거리자 학사들보다 명백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학사들을 무당파에 추천하기 위해 데리고 온 자들은 다른 사람도 아닌 무당의 속가제자들이다.
‘사제들……, 학사를 데리고 오라 했더니 어디서 이런 소인배들만 골라서……. 허! 동진 학사 앞에서 무당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동진 학사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명백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싸늘한 눈으로 학사들을 보던 동진이 진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들으니, 진만 학사는 내가 호현 학사에게 한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동진의 말에 진만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어찌 동진 학사님의 행사에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자신에게는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진만의 모습에 동진이 눈가를 찡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비굴한 자가 학관을 운영하고 있다니…….’
잠시 진만을 바라보던 동진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못 본 사이 네가 얼마나 성장을 했는지 알고 싶어 여타 학사들과는 다른 질문을 했는데, 그것을 이자들이 오해를 했나보구나.”
동진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제가 미숙해 동진 학사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 듯싶습니다.”
“아니다. 어찌 보면 내가 너에게 다른 문제를 낸 것이 실수였다.”
미안해하는 동진에게 고개를 저어 보인 호현이 옆에서 눈치를 보는 진만과 학사들을 보고는 말했다.
“그럼, 저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저에게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너에게?”
“그렇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혹시 나 때문이라면 이자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말거라.”
동진의 말에 호현이 진만 등을 바라봤다.
“저도 이자들을 신경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나 제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저들은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호현을 잠시 바라보던 동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진만 등을 향해 말했다.
“내가 또 문제를 내면 이번에도 쉬운 문제를 냈다고 할 터이니, 진만 학사가 직접 호현 학사에게 질문을 하시게.”
동진의 말에 진만이 힐끗 호현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에게 시키신다면 제가 해야지요.”
마치 못마땅한 일을 자신이 시켜서 억지로 한다는 기색을 보이는 진만의 모습에 동진이 미간을 찡그렸다.
“불만이라도 있나?”
“그것이…….”
“말해보게.”
“하명하시니 말하겠습니다. 동진 학사님께서 저에게 하셨던 질문은 같이 있던 호현 학사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에 대해 제가 한 답을 호현 학사도 들었을 테니……. 그런 저에게 호현 학사에게 같은 문제를 내라는 것은…… 하아!”
진만이 더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학사들이 경멸어린 시선으로 동진과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 동진이 호현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일부러 문제와 답을 아는 진만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
“쳇! 한림원 학사도 어쩔 수 없군.”
“팔이 밖으로 꺾이는 것 봤나?”
“제기랄. 세상 참 더럽구만, 지닌 바 능력보다는 인맥이 중요하다니.”
학사들의 투덜거림에 동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림원 학사인 자신이 입관도 하지 못한 학사들에게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감히…….”
동진이 말을 하려는 순간 호현이 앞으로 나섰다.
“맞는 말입니다. 진만 학사가 시험을 볼 때 제가 같이 있었는데, 그가 문제를 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문제를 내도 된다는 말인가?”
진만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문제를 낼 사람을 뽑아도 되겠나?”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진만 학사께서는 향시에 합격하셨습니까?”
호현의 말에 진만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만은 향시를 합격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네.”
“향시를 합격한 거인(擧人)은 관인의 예를 받거늘, 저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법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향시에 합격을 하지 않아 그런 법도를 모르시는 것입니까?”
“으득!”
나이도 어린, 아니 자신이 산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호현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빨을 가는 진만을 보며 동진이 속으로 웃었다.
‘내가 호현을 오랜만에 봐서 저 녀석 성격을 잠시 잊고 있었군.’
죽대 선생을 닮아 빚지고는 살지 못했던 어릴 적 호현을 떠올린 동진이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문제를 낼 분은 나오시지요.”
호현이 손을 내밀며 청하자 진만이 그를 노려보다가 주위에 있는 학사 중 한 명을 가리켰다.
“태경 학사님이 하시지요.”
진만의 말에 태경이라고 불린 자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동진이 낸 물음의 수위자경이라는 책은 이곳에 있는 학사들 전원이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던 책이다.
‘아무리 방헌신사라고 해도 아직 어린 나이. 여기 있는 학사들 모두가 모른다는 책을 알 정도로 견문이 넓지는 않을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선 태경이 바로 문제를 내려다 포권을 취했다. 거인 대접을 해달라던 호현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초문현에서 온 태경이라고…… 합니다.”
제1-6장 구민(救民)의 답안
문제를 내겠다고 나온 태경을 향해 호현이 말했다.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제가 받은 물음은 수위자경입니다.”
‘죽대 선생의 후광이 이곳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진만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릿한 웃음을 지을 때, 호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위자경이라……. 생각보다 쉬운 문제를 받으셨군요.”
호현의 말에 태경과 주위에 있던 학사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쉽다?”
“수위자경은 호진자가 노자의 상선약수를 해석한 책입니다. 내용까지 설명해드릴까요?”
“아, 아니오.”
별것 아니라는 듯 답하는 호현을 태경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많은 학사들 중에도 수위자경이라는 책을 본 사람은 고사하고 이름을 들어본 자도 하나 없거늘, 어찌 이 어린 자가? 아니, 그 전에 이 답이 맞기는 한 것인가?’
수위자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호현의 답이 맞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진만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동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가 답한 내용이 맞습니까?”
“옳다.”
동진의 답에 진만이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진정 답이 맞습니까?”
“그럼 내가 호현 학사의 답이 틀렸는데 거짓으로 답이라 한다는 것인가?”
자신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 진만의 모습에 동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어이가 없군. 너희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다면 바로 알 수 있을 문제에 왜 내가 거짓을 말한다는 말인가? 도경을 취급하는 서점에 가서 삼 년 전에 집필이 된 수위자경에 대해 알아보면 호현 학사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진의 말에 학사들 중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진의 말대로 알아보려고만 한다면 수위자경에 대한 내용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동진의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물러나는 진만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문제 하나만 가지고는 당신들은 승복하지 못하시겠지요? 우연히 내가 알고 있던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문제를 더 받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진만이 말 잘했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호현 학사께서 원하신다면야…….”
“내가 원하니, 시작하시죠.”
진만이 옆에 서 있던 학사 한 명에게 눈짓을 주자 그가 바로 앞으로 나섰다.
“진현에서 온 고손기라 합니다. 태초본경에 대해 아십니까?”
고손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의 입에서 그에 대한 답이 흘러 나왔다.
“태초본경은 혼돈에서 시작된 음양과 태극, 그리고 사상과 팔괘에 대해 설명을 해놓은 서적입니다. 흠, 문제는 태초본경에 나온 내용 중 태극에 대한 내용은 약간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제가 생각하는 태극은 만물의 근원과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호현이 태초본경과 태극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옆에 있던 명백이 문득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태극은 음과 양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빛과 어둠, 남과 여, 물과 불, 선과 악을 뜻합니다. 태극 문양을 보면 두 기운, 쉽게 말해 음양이라 칭하겠습니다. 음과 양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말과 함께 호현이 명백의 소매에 그려져 있는 태극 문양을 가리켰다.
명백이 소매를 들어 보이자 학사들이 태극 문양을 바라보았다.
“즉, 태극이라는 문양 자체가 조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근원이라는 의미는?”
“사람이나 짐승, 초목 모두가 음양의 조화로 생존하는 것입니다. 그 음양의 조화가 깨어지면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음을 상징하는 여자에게도 양은 있고, 양을 상징하는 남자에게도 음은 있습니다. 또한.”
호현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 돌에도 태극이 있습니다. 낮에는 양기가 성한 듯하지만 밤에는 음기가 성합니다. 하루를 하나로 본다면 음과 양이 이 돌 안에서 돌고 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음과 양은 이 돌 안에서 돌고 돌아 태극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과 양이 돌고 돌아 태극을 이룬다?”
호현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명백이 순간 몸을 부르르 떨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화아악!
순간 명백의 몸에서 희미한 백색 기운이 흘러나오며 몸을 덮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그리고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도사들이 명백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섰다.
그리고 그중 도사 몇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학사들의 몸을 점혈하기 시작했다.
호현 역시 그들의 손에 점혈이 되어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뭐지?’
호현이 의아하게 생각을 할 때 점혈이 된 학사들을 도사들이 안고는 선인각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 동작들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호현이 의아해 할 때 그를 데리고 선인각에 들어온 도사가 점혈을 풀어 주었다.
호현의 점혈을 풀어 준 도사가 미안한 얼굴로 반장을 하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무량수불…… 학사님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무언가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무당파 도사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호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도사가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명백 사숙께서 방금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깨달음?”
“호현 학사님 덕입니다.”
다시 한 번 호현에게 고개를 숙인 도사가 선인각에 모인 학사들에게 나가지 말고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도사를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다른 학사들과 함께 점혈이 되어 선인각에 들어온 동진이 중얼거렸다.
“명백 도장이 기연을 만났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황궁 고수들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무림 고수들은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육체적 수련보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하더구나. 그 깨달음을 얻으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고. 아무래도 방금 명백 도장이 너와의 대화 중에 그 깨달음을 얻은 듯하구나.”
동진의 중얼거림을 들은 학사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학사가 도인에게 도에 대한 깨달음을 주다니.
그것도 도가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당파 일대 제자인 명백에게 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학사들이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이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냐?”
“그러게. 무당파 명숙인 명백 도장에게 깨달음을 줄 정도의 도교 지식이 있고, 도경에 대해서도 다 답을 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