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9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9화
호현이 청경진인을 찾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죽대 선생의 편지 때문인가?”
“네.”
“휴! 알겠네. 일단 기다리게. 내가 청경 사숙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겠네.”
말과 함께 호불위가 무인들에게 다가가자 호현은 태청전 건물을 구경했다.
‘무당파 건물이라 현묘하게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건물에 현기가 있어 무당파가 현묘해 보이는 것인가?’
호현은 무당파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학사들은 학사들끼리, 속가무인들은 속가무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호현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 태청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위를 구경하던 호현이 태청전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청전의 뒤가 궁금했던 것이다.
‘뒤는 어떻게 생겼지?’
태청전 뒤로 걸어간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태청전의 뒤도 나름 운치가 있었던 것이다.
“평생 이런 곳에서 사는 것도 군자삼락에 견줄 만하겠구나.”
나직하게 중얼거리고 태청전 뒤를 거닐며 주위를 구경하던 호현의 눈에 한 젊은 도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상한 자세로 서 있는 도사의 모습을 보고 호현이 걸음을 멈췄다.
도사는 양손을 앞으로 내민 채 가만히 서 있었는데 두 눈에서 정광이 흐르는 것이 무척 비범해 보였다.
호현이 도사를 보고 있을 때 그가 두 손을 천천히 단전이 있는 곳으로 회수를 하고는 숨을 내쉬었다.
“후우!”
길게 숨을 토한 도사는 호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도사의 얼굴이 조금 이상했다.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빛이 왜 저렇지? 마치 죽은 사람 같잖아?’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낀 호현이 의문을 느낄 때 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들과 같이 오신 학사님이십니까?”
눈빛과 다르게 도사의 목소리에서는 호의가 깃들어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그렇습니다.”
“본문의 일을 도우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포권을 하며 감사의 표시를 하는 도사를 향해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감사 인사는 제가 드리고 싶습니다.”
“네? 그게 무슨…….”
“그동안 도경을 접하기가 어려워 보지를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도경을 실컷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경을 좋아하시는군요.”
“도경과 불경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도경과 불경을? 무슨 이유라도…….”
“제가 비록 학사 신분이지만, 유교 경전과 옛 성현들의 글만 보면 머리가 아프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도경만 보면 머리가 아프던데.”
“도사님도 사람이니까요. 아무튼 이거 재밌군요. 학사인 저는 성현들이 남긴 글을 보면 머리가 아프고, 도사님은 도경을 보면 머리가 아프니 말입니다.”
호현의 말에 도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도사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군요.”
도사가 태청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십니까? 다들 저쪽에 모여 계시는 듯한데.”
“태청전 뒤쪽이 궁금해서 왔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호현이 학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던 도사의 웃는 얼굴이 차츰 굳어졌다.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진 얼굴을 손가락을 들어 몇 번 찔러보는 도사의 눈빛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태청전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호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사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형제들이라고?”
태청전에 모여 있는 무당의 속가제자들은 모두 사십대 정도의 중년인들이다. 그중 가장 젊은 사람도 사십 초반이었다.
그런데 방금 대화를 나눈 젊은 도사가 그들에게 사형제라고 했으니…….
‘설마 저 젊은 도사가 호 국주와 같은 배분이라는 말인가?’
젊은 도사를 떠올리던 호현은 고개를 젓고는 태청전으로 향했다.
무당파 내부의 배분 문제야 호현이 신경 쓸 일이 아닌 것이다.
*
*
*
학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호현이 잠시 기다리자 태청전 연무장 안으로 중년 도사가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다.
“명백 사형을 뵙습니다.”
“명백 사형을 뵙습니다.”
중년 도사를 본 무당 속가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자 명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하시었네. 학사 선생들은 나를 따라 안으로 드시고, 사제들은 오랜만에 본산에 왔을 테니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시게.”
명백의 말에 호불위가 슬며시 호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형제, 부디 잘 하시게.”
“뭘 잘하라는 말입니까?”
“고용 시험 말이네.”
호불위의 말에 호현의 눈으로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시험을 본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습니까?”
“그러면 소형제는 대무당파에서 아무 학사나 데려다 일을 시킬 줄 알았나? 그럼 부탁이니 꼭 합격하시게.”
호불위가 속가제자들과 함께 태청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호현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거…… 잘못하면 스승님에게 크게 혼이 날 수도 있겠구나.’
무당파의 일을 도와주러 간 자신이 무당파에서 낸 시험에 불합격해 학관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죽대 선생에게 크게 혼이 날 것이었다.
‘반드시 붙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스승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호현은 긴장된 표정으로 학사들을 따라 태청전 안으로 들어갔다.
태청전 일 층.
일 층에는 수십 명의 학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명백과 백의를 입은 한 사람이 학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젊은 무당파 도인들이 줄을 선 채 서 있었다.
학사들을 보던 명백이 입을 열었다.
“먼저, 무당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명백의 모습에 학사들이 웅성거렸다.
“역시 무당파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니군. 명자 돌림이라면 무림의 명숙인데 우리 같은 백면서생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그러니 사람들이 무당, 무당 하는 것이 아니겠소.”
“하여튼 대단하군.”
학사들이 명백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호현은 백의 학사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분 같은데…… 누구더라?’
호현은 명백 옆에 있는 중년의 학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명백이 슬쩍 손을 들어 학사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옆에 있는 백의 학사를 가리켰다.
“이 분은 한림원 동진 학사님입니다.”
한림원 학사라는 말에 학사들이 놀란 얼굴로 동진을 바라보았다.
학사들에게 한림원은 동경의 대상이자 하늘 위의 하늘과 같은 곳이다.
“아! 저분이 이번 동원세시(童院歲試)를 감독하시는 동진 학사님이군.”
“한림원 학사라니…….”
학사들이 웅성거릴 때, 호현은 그제야 동진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호현이 죽대 선생을 따라 한림원에 있을 때, 동진을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예전 한림원에서 봤던 동진의 모습을 떠올린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동진 학사님은 신수가 많이 좋아지셨네. 사형들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동진을 보고 있자니 예전 한림원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한림원에 있을 죽대 선생의 다른 제자들, 호현에게는 사형이 되는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렸다.
하나둘씩 스치며 지나가는 사형들의 얼굴을 떠올리던 호현이 쓰게 웃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기는 했나보군. 사형들의 얼굴이 뿌옇게 보이는 것을 보니……. 사형들은 현이가 보고 싶지도 않으시오? 어찌 십 년 동안 한 번을 찾지 않으시오.’
속으로 사형들에 대한 원망 섞인 중얼거림을 하던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사형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죽대 선생에게서 파문을 당했으니 말이다.
호현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명백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경 서고를 정리하는 일에 고용될 인원은 총 열 분입니다.”
“열 명? 수가 너무 적은데?”
“그러게.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중 태반은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잖아.”
자신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본 명백이 말을 이었다.
“저희 무당파에 남아 서고를 정리해 주실 학사 선생들의 자격 제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무공을 익히신 분은 안 됩니다. 여기서 무공이란 내공심법을 익히신 분, 기체조 이상의 외공을 익히신 분이 포함됩니다.”
“헉! 말도 안 됩니다! 어찌 무공을 익혔다고 자격이 없다 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무당의 태극호신공도 안 되는 것입니까!”
무공을 익힌 듯한 학사들 몇이 명백의 말에 강하게 반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 문파인 무당에서 학사를 고용하는데 무공을 익혔다고 자격이 안 된다니, 이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 몇은 무당파에서 양민들의 건강을 위해 보급하고 있던 태극호신공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태극호신공은 무당의 절예인 태극권의 초식을 가지고 만든, 이를 테면 권법이었다.
하지만 권법이라고는 해도 살상력은 거의 없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양생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체조와 같은 권법이었다.
학사들의 말에 명백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고는 입을 열었다.
“도경 서고라 하나…… 그 안에 무공 비급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실수로라도 그 안에 무공 비급이 섞여 들어갔을 경우, 무공을 익히신 학사께서 그 비급을 발견하고 혹시라도 그것을 익히기라도 하신다면…….”
명백은 차마 그 뒷말을 잇지 못하고 학사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무당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백의 말에 무공을 익힌 학사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명백이 하지 않은 뒷말이 무언지 짐작을 한 것이다.
‘심하면 살인멸구, 아니라도 평생을 무당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꿀꺽! 실수로라도 기연을 얻는다면, 그것은 기연이 아니라 악연이 되겠구나.’
무공을 익힌 학사 일곱 명 정도가 명백에게 포권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보던 명백이 남은 학사들을 향해 말했다.
“혹시라도 무공을 익히신 분이 남아 계시다면 죄송한 말이지만 이제라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제가 직접 무공을 익히신 여부에 대해 확인을 할 것입니다. 그때 무공을 익히신 것이 밝혀지면…… 본 문의 무공에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명백의 말에 학사 둘이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 둘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던 명백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자격 제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도경 서고를 정리하는 일이기에 기본적인 도교에 대한 지식이 있으셔야 합니다.”
명백의 말에 이번에는 모든 학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공문에 적힌 사항이기에 속가제자들이 학사를 데리고 올 때 그것을 확인해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 학사들을 보던 명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시작하셔도 될 듯합니다.”
한림원 학사라도 무당파 일대 제자인 명백에게 하대를 하기 어려운지 동진이 정중하게 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명백과 함께 태청전 한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둘이 들어가자 무당파 도인들이 학사들을 둘씩 짝을 지어 명백 등이 들어간 방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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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호현의 차례가 되었다.
호현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 학사는 우연인지 아니면 인연인지 오태석과 함께 무당에 온 진만 학사였다.
“어흠!”
진만 학사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방에 들어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명백과 동진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둘이 들어오자 명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탁자를 가리켰다.
“편하게 앉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