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4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4화
금부식의 말에 호불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뿐만이 아니지. 일만 잘 처리하면 본산에서 적당한 무공 하나를 더 가르쳐 줄 것이니 말이야. 잘 됐어. 이번 기회에 유운검법 후반을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어. 그렇게만 되면 팔성을 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유운검법은 무당이 속가제자에게 가르치는 무공 중 상위에 속해 있는 검법이다.
운 좋게 유운검법을 익힌 호불위는 그 덕에 일류 고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속가제자인 호불위는 유운검법의 모든 초식을 배울 수는 없었다. 전 삼식, 중 삼식, 후 삼식으로 나뉘는 초식 중 후 삼식의 마지막 초식인 만운을 익히지 못한 것이다.
만운만 익힐 수 있다면 절정의 경지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든 호불위가 금부식을 향해 급히 말했다.
“이 근처에 유명한 학관이 있던가?”
“한림원 학사를 지내셨던 죽대 선생의 방헌학관이 있습니다. 방헌학관에서 학사를 찾으시려는 것입니까?”
“그러네.”
“흐흠, 원시가 보름 후에 있을 예정이라 지금은 학사를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
원시(院試)를 준비하는 학사들이 표국을 통해 서적들을 구해 가기에 시험이 다가온 것을 알고 있던 금부식이 난감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호불위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가보세.”
호불위의 말에 금부식이 입맛을 다시고는 그를 데리고 방헌학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공문이 나한테만 오지는 않았을 터…… 다른 속가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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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총관과 함께 방헌학관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호불위는 빽빽하게 자리한 죽림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나무가 참 좋군.”
“저희 현에서 자랑하는 죽림이잖습니까.”
“그렇지. 흐흡! 하! 죽림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참 향기…… 응?”
죽림에서 싱그러운 대나무 향기가 풍길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음식 냄새가 맡아지자, 호불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코가 잘못 됐나? 웬 음식 냄새지?’
코를 벌렁거리며 다시 숨을 들이쉰 호불위는 역시 방금과 같은 음식 냄새를 맡았다.
“금 총관, 혹시 음식 냄새 안 나나?”
“음식 냄새가 나는군요. 죽림에서 웬 음식 냄새가 나죠?”
금 총관이 의아해 하는 것을 본 호불위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멀리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호불위가 보는 것을 금 총관도 보고는 그제야 영문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방헌학관에 수백의 학사들이 입관했다고 하더니, 학사들을 상대로 음식 장사를 하는 가판이 들어섰나 봅니다.”
“시장통도 아니고, 학관 앞에 어찌 가판을 연다는 말인가?”
“글쎄요.”
호불위와 금 총관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어느새 둘은 방헌학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 총관의 말대로 방헌학관 입구 양 옆으로는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간이 가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만두, 국수, 밥 등 각양각색의 음식 가판들과 함께 그 뒤로 천막이 쳐져 있고, 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방헌학관의 입관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제공합니다.
간판에 적힌 내용을 본 호불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천막이 숙소란 말인가?”
호불위와 금 총관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방헌학관에 잘 오셨습니다. 헌데, 묵으실 곳은 구하셨습니까?”
중년인의 물음에 호불위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학관 내부에는 잠을 잘 공간이 없습니다. 해서 학관에 입관을 하시면 숙식을 밖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수학하시기에도 바쁜 학사님들이 현(縣)에 있는 객잔에 갔다가 언제 다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래서 학관 바로 앞에 저렴한 가격으로 쉴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식사도 가능합니다.”
중년 남자의 말에 금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입관을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네.”
“그럼 무슨 일로……?”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금 총관이 중년인을 지나쳐 가려하자 그가 급히 앞을 막아섰다.
“저는 장사치가 아닙니다. 저는 방헌학관의 문지기를 하고 있는 오진이라고 합니다.”
“학관의 문지기?”
방금까지 호객 행위를 하던 오진이 방헌학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에 호불위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문지기라는 자가 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건가?”
“그것이…….”
우물쭈물하는 오진을 향해 호불위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이 열리며 학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배고프네. 오늘은 뭘 먹지?”
“어제 국수 괜찮던데.”
“그제도 국수를 먹었지 아마?”
“그럼 만두 먹지 뭐.”
학사들이 점심으로 뭘 먹을지 이야기하며 근처 음식 가판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호현이 걸어 나왔다. 점심때가 돼서 그런지 학관 앞에 자리 잡은 가판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흠! 냄새 좋다.’
방헌학관에서 동생(童生)들을 받아들인 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바로 학관 입구의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식사 때가 되면 동생(童生)들은 객잔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왔는데, 그 수가 꽤 되다보니 어느새 학관 앞에 음식 가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신성한 학관 앞에서 음식 냄새를 풍긴다하여 죽대 선생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하지만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자신들이 무료로 만들어 주겠다는 가판 주인들의 말에 죽대 선생이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 이후 죽대 선생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음식 가판에서 무료로 음식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맞는 듯, 요 근래 들어서 군것질을 즐기는 죽대 선생이었다.
오늘도 죽대 선생이 가지고 오라고 시킨 음식들을 떠올리며 호현은 오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진을 찾던 호현은 한쪽에서 낯선 사람 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오진 아저씨,”
“아, 부르셨습니까?”
호현의 부름에 오진이 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스승님께서 오늘은 만두탕을 드시겠답니다. 그리고 당과도요. 저는 국수하고 돼지고기 볶음으로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관주님을 찾아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진이 무단표국 사람들을 가리키자 호현은 그 둘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학사는 아닌 것 같은데?’
호현은 그들에게 다가가 포권을 했다.
“방헌학관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호현입니다. 원시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아닌 듯한데…… 무슨 일로 관주님을 찾으십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무단표국에서 온 국주 호불위와 총관 금부식이 관주님에게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네.”
“무슨 일인지 제가 먼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학사 한 명을 소개 받고 싶어서 왔네.”
“학사요?”
호현은 일단 그 둘을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스승을 찾아온 손님들이니 말이다.
호현을 따라 방헌학관에 들어온 금 총관이 문득 입을 열었다.
“문지기가 호객 행위를 하던데…….”
금 총관의 말에 호현이 걸음을 옮기며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었다는 호현의 반응에 호불위가 의아한 듯 말했다.
“나에게는 없지만…… 방헌학관에서 일을 하는 자가 사사로이 호객 행위를 하는데, 괜찮다는 말인가?”
“학관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이 남인 것보다는 낫습니다.”
“응? 그럼 문지기가 가판의 주인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아니라 오진 아저씨입니다.”
비록 오진이 학관에 고용된 자이기는 하지만 십 년을 같이 보낸 사람이다. 고용인이라기보다는 호현에게는 이제 가족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 오진을 계속 문지기, 문지기 하니 호현으로서는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호현의 모습에 금 총관이 입맛을 다셨다.
‘나이도 어린놈이 되게 빡빡하게 구는군.’
호현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것은 자신들이다.
게다가 나이가 어려도 방헌학관의 총관직을 맡고 있다는데 호현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금 총관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방헌학관에 이렇게 많은 학사들이 입관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금 총관과 더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호현은 짧은 대답과 함께 입을 다물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호현의 뒤를 따르던 금 총관의 머리에 문득 호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가만…… 호현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말이지. 어디서 들었더…… 아!’
호현에 관해 들은 것을 기억해낸 금 총관이 급히 호현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호현 학사가, 그 유명한 호현 학사요?”
난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금 총관을 향해 호현이 고개를 돌렸다.
“제가 호현 학사인 것은 맞지만, 유명한 호현 학사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질문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금 총관이 말했다.
“작년에 거인(擧人, 향시에 합격한 자를 칭하는 말)이 되신 호현 학사가 맞습니까?”
“작년에 거인이 된 것은 맞습니다.”
“아! 이거 거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금 총관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할 때, 호현이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에 댔다.
어느새 죽대 선생이 머물고 있는 내실에 도착한 것이다.
“스승님, 무단표국에서 호불위 국주와 금부식 총관이 뵙기를 청합니다.”
호현의 말에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죽대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이거라.”
손님이 왔다고 해서인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진중해진 죽대 선생이었다.
드르륵!
문을 연 호현이 그 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무단표국의 국주 호불위입니다.”
“무단표국의 총관 금부식입니다.”
두 사람의 인사에 죽대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시게.”
두 사람이 탁자에 앉자 죽대 선생이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현은 차를 내오거라.”
죽대 선생의 명에 호현이 내실 한쪽에 있는 주전자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쪼르르륵!
맑은 찻물 소리와 함께 그윽한 차향이 퍼졌다. 향을 맡은 금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
“대석학이 드시는 차라 그런지 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슬며시 아부를 하는 금 총관을 힐끗 본 호현이 입을 열었다.
“대나무 잎을 말려서 만든 죽엽차입니다. 씁쓸한 뒷맛이 있기는 하지만 정신을 맑게 해주고 구취를 없애는 효과가 있지요.”
“구취?”
“드셔보시면 효과를 좀 보실 겁니다.”
호현의 말에 금 총관이 눈을 찡그렸다.
지금 호현이 한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서 입 냄새가 난다는 말이 아닌가?
‘어린놈이 어른을 놀리다니!’
호불위가 차를 마시다 눈가를 찡그렸다.
“맛이 쓰군.”
“대체로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쓴 법이죠. 금 총관님, 어서 드십시오.”
“끄응!”
금 총관이 차를 마시는 것을 보며 죽대 선생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죽대 선생의 말에 금 총관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신들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
“……해서 방헌학관의 학식 있는 학사 한 분을 모셨으면 합니다.”
금 총관의 설명에 죽대 선생이 이마를 찡그렸다.
“말은 잘 들었네. 하지만 불가하네.”
죽대 선생이 거절을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금 총관이 급히 말했다.
“무당파의 일입니다. 무당파와 연을 맺는다는 것이 호북에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