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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5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6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52화

종리성학과 단혼객은 사마경이 갈대숲 속으로 사라지는 데도 쫓지 못했다.

바로 그때, 뒤에서 나타난 추산이 소리쳤다.

“성학! 뭐하는가! 소성주를 쫓게!”

‘이런, 빌어먹을!’

추산의 모습을 보고 눈이 커진 종리성학은 후회막급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소성주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종리성학이 아쉬워하며 이를 갈 때, 장천운이 먼저 땅을 힘껏 박차고 십여 장을 날아갔다.

단숨에 사람 키보다 더 큰 갈대숲으로 들어간 그의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놈을 쫓는다! 따라와!”

발악을 하듯 종리성학이 소리쳤다. 그는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게 죽기만큼 싫었다.

‘죽일 놈의 새끼! 그놈만큼은 반드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이고 말겠어!’

 

***

 

“헉, 헉, 헉…….”

저두심이 숨을 몰아쉬었다. 달리는 속도가 점점 떨어졌다.

“두심 형, 괜찮아?”

“나 두고 먼저 가, 조장.”

“그럴 순 없어.”

“빨리 가. 내가 옆으로 빠져서 흔적을 남기고 적을 유인하겠어.”

“두심 형…….”

“오래 유인하진 못해. 그래도 그 시간이면 놈들과의 거리를 더 벌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육 년 전에 죽었을 나를 구해준 사람이 너야. 그리고 소원대로 대문파의 정식 무사도 됐지. 길거리 굴러다니던 흑도 똘마니가 이만큼 컸으면 훌륭한 거잖아?”

저두심이 씩 웃고는 방향을 비스듬히 꺾었다.

“너는 소성주님과 저쪽으로 가. 곽산(藿山)은 산이 커서 숨으면 놈들도 못 찾을 거야.”

장천운도 더 이상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좋아, 갈게. 대신 두심 형도 끝까지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해.”

“알았어. 약속할게. 사실 나도 살고 싶어. 소철 형과 명후, 한이의 얼굴도 못 보고 죽는 건 싫거든.”

사마경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저렸다. 저린 가슴이 먹먹해져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저게 흑도 건달의 의리라는 건가?

이런저런 말 백 마디 하느니 그냥 묵묵히 보내주는 게 나을 듯했다.

그때 소연추가 나섰다.

“제가 함께 갈게요, 아가씨. 저들을 속이려면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유모가?”

“놈들의 눈을 열심히 속이고 꼭 살아남을 테니 걱정 마세요.”

사마경의 천하제일세의 소성주답게 감정을 억누를 줄 알았다.

냉정한 판단 역시.

“죽으면 두고두고 원망할 거야.”

“알았어요. 출발해, 저 무사.”

소연추는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저두심을 재촉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장천운과 사마경도 방향을 틀어서 곽산을 마주보며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도 이를 악다문 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독한 걸로 따지면 둘 다 막상막하였다.

 

***

 

흔적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며 삼십 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어느덧 석양이 붉은 그림자만 남긴 채 시커먼 곽산 뒤로 넘어가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장천운과 사마경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목뼈가 석회를 발라서 굳어버린 사람들처럼, 누가 더 독한지 내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뒤돌아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사이 곽산의 웅장하고 험준한 산세가 두 사람 앞에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대별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곽산은 동서남북으로 수백 리나 뻗어 있었다.

남동쪽으로 천주산까지 이어진 산세는 오백 리나 되었으며, 깊숙한 곳은 짐승조차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놈들의 추적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찾지 못할 듯했다.

“다행히 쫓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소성주.”

기암괴석이 즐비한 계곡 입구에 도착했을 때서야 장천운의 입이 열렸다.

참고 참았던 사마경도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유모와 저두심은 무사할까?”

“약속했잖습니까.”

“그게 뭐 약속한다고 지켜지는 일이야?”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그만큼 더 노력할 겁니다. 미리부터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희망을 버릴 순 없지. 그런데 천운.”

“예, 소성주.”

“솔직히 말해봐. 그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의 희생이 마음에 걸리는지 자꾸 묻는다.

장천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희망적으로 답했다.

“……반반입니다.”

“반반? 그래도 그 정도면 꽤 확률이 높은 편이네.”

“두심 형이 겉보기보다 독하거든요. 아마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긴 유모도 고집이 세고 악착같은 면이 있어서 쉽게 죽진 않을 거야.”

“다음에 만나면 정말 고집이 센지 물어봐야겠습니다.”

“꼭 물어봐. 나도 대답을 듣고 싶으니까.”

끝내 사마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다. 대답을 들으려면 그들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발 살아 있기를…….

 

***

 

소연추와 저두심은 사력을 다해서 달렸다.

삼십 리? 아니, 오십 리쯤 달렸나?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춤을 추는 강변을 따라 달리고, 가시덩굴이 우거진 숲을 지나 수만 년 동안 물길에 깎여서 미로를 형성한 황토 계곡을 통과하자 수풀이 우거진 골짜기가 나왔다.

“헉헉, 더는…… 더는…… 못 달리겠습니다. 헉헉헉, 이럴 줄 알았으면…… 살 좀…… 뺄 걸…… 먼저…… 가세요.”

얼마나 지쳤는지 입에서 거품이 나오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기운이 쭉 빠졌다.

“헛소리 말고 내 손을 잡아. 놈들이 곧 쫓아올 거야.”

소연추는 저두심의 손을 억지로 움켜쥐고 달렸다.

그녀도 내외상이 가볍지 않아서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단 몇 걸음이라도 멀어져야만 사마경이 무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아가씨, 반드시 사셔야 해요!’

그녀는 사마경의 무사함을 빌면서 골짜기 안쪽의 수풀 속을 내달렸다.

그녀의 키보다 더 높이 자란 풀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두 사람이 달릴 때마다 선이 그어진 듯했다.

“조금만 더 힘내.”

“그, 그냥…… 헉헉헉. 혼자…… 가시는 게…….”

“골짜기가 곧 끝나는 것 같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숨을 만한 곳이 있겠지. 숨어서 조금 쉬자.”

이제 수풀이 우거진 골짜기도 얼마 남지 않은 듯 앞쪽이 조금씩 훤해졌다.

소연추는 남은 힘을 모두 짜내서 환하게 비치는 골짜기 밖을 향해 달렸다.

백여 장을 달리자 수풀의 끝이 보였다.

그런데 전력을 다해서 수풀을 벗어난 그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다급히 멈춰 섰다.

“헛!”

수풀이 우거진 골짜기가 끝나는 곳은 절벽이었다.

대충 봐도 이십여 장 정도 되는 높이. 그 아래쪽은 시퍼런 물길이 출렁이는 강이었다.

그때 소연추의 공력을 빌려서 겨우 달리던 저두심이 앞으로 쓰러지듯이 비틀거렸다. 그 바람에 소연추의 손을 놓친 그는 기겁했다.

“허억!”

시퍼런 강을 본 그는 절벽 끝에 주저앉아서 겨우 아래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태를 면했다.

“헉헉헉, 후우우.”

안도한 것도 잠시, 우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흙으로 된 절벽 끝이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으헉!”

“조심해!”

소연추가 다급히 손을 뻗어서 밑으로 떨어지려는 저두심의 팔을 잡았다.

절벽 밑에 강이 있긴 하지만 바닥에서 강까지의 거리가 오 장은 될 듯했다. 그뿐이 아니다. 절벽과 강 사이에는 맹수의 이빨처럼 뾰족뾰족한 커다란 바위가 널려 있었다.

소연추는 힘껏 당겨서 저두심을 절벽 위로 끌어올렸다.

겨우 절벽 위로 올라온 저두심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공력도 바닥난 상태에서 바로 떨어졌다면?

‘십중팔구는 죽었겠지.’

죽을 각오를 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칼날 같은 바위투성이 위에 떨어졌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했다.

“잠깐 쉬었다가 절벽을 내려가도록 하자.”

겨우 한숨 돌린 소연추가 몸을 일으켰다.

“그게 저…… 저는 헤엄을…… 못 치는데…….”

저두심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소연추는 그를 강요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겨우 잡았군!”

냉랭한 고함과 함께 추산이 단혼객 넷과 함께 날아들었다.

하지만 추산은 절벽 끝에 있는 사람이 소연추와 저두심뿐인 걸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소성주는 어디에 있지?”

소연추가 멈칫하는 사이 저두심이 재빨리 둘러댔다.

“소성주께선 이미 밑으로 내려가셨다, 이 개새꺄!”

“이 돼지 같은 놈이……!”

치켜뜬 추산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때 종리성학이 또 다른 단혼객들과 함께 도착했다. 그 역시 사마경과 장천운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 했다.

“추 형, 소성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절벽 밑으로 내려갔다는군.”

“절벽 밑으로 내려갔다고요?”

“그렇다는군.”

하지만 종리성학은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에게 속았습니다!”

“무슨 소린가?”

“수풀을 가로지른 선이 두 줄기밖에 안 되었습니다. 이 두 연놈만 이곳으로 달려온 것 같습니다.”

“뭐? 이 죽일 놈들이 그럼……!”

추산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곧장 소연추를 공격했다.

단혼객도 그의 뒤를 따라서 몸을 날리며 공격에 가세했다.

지칠 대로 지친 소연추로선 추산 하나도 벅차서 저두심을 보호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다.

“조심해요!”

오히려 누워 있던 저두심이 소리치며 그녀의 좌측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소연추가 추산에게 밀리면서 물러서자, 단혼객 둘이 그녀의 좌측을 공격한 것이다.

쉬이익!

마지막 남은 표도 두 개가 저두심의 손을 떠났다.

단혼객들이 급히 몸을 틀었다. 표도는 그들의 심장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하나가 어깨를 스치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나머지 하나는 그나마도 허공을 갈랐고.

대신 표도를 피한 단혼객의 칼이 저두심의 다리를 가르며 지나갔다.

“크윽!”

소연추 옆에 쓰러진 저두심의 다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추산과 단혼객 둘을 상대하며 위기에 몰린 소연추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때 이를 악문 그녀가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추산의 검을 피하며 허리를 숙인 그녀는 저두심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전력을 다해서 저두심을 허공으로 던졌다.

이백 근이나 나가는 저두심이 공깃돌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동시에 추산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소연추의 팔을 스쳐갔다.

화아악!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면서 소연추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흐윽!”

외마디 비명, 부릅뜬 눈.

이를 악문 소연추는 찰나도 망설이지 않고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설마 그녀가 팔이 잘린 상태에서 절벽 아래 강물로 뛰어들 줄이야.

“저 독한 계집이!”

추산이 다급히 절벽 쪽으로 다가갔다.

소연추가 저두심을 따라서 강물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팔이 잘린 곳에서 피가 뿜어지며 허공에 피 무지개가 피어났다.

“추 형, 단봉선자와 돼지 같은 놈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소성주를 쫓아가야 합니다.”

추산도 그제야 분노를 가라앉히고 몸을 돌렸다.

“모두 돌아가서 소성주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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