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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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86화
혈하-第 186 章 혼백의 부탁
동굴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군보는 한쪽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나오는 것은 한숨이고 생각하면 할수록 서글퍼졌다.
‘아! 내가 묵혈방의 소종사로서 지금까지 묵혈방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고 강호에 나와서 한 일이 어떤 것인가?’
너무나 미약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원수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원수에게 화를 당했으니 어찌 그의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사군보가 이런저런 생각에 휘말리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문득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흔드는 것 같은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누구냐?”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는데?’
사군보는 뒤늦게 상대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고 얼른 말을 꺼냈다.
“노선배님이십니까?”
동굴 천정에서 혼백의 음성이 들려왔다.
[노부가 예견했던 대로 네놈이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구나. 이제 네놈에게는 한 번의 고비만 남았다.]
사군보는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몸에는 세 번의 액운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중 두 번을 넘겼고 한 번만 남았다는 말이다.]
“……”
[흐흐…… 그러나 염려치 말아라. 노부의 눈에 보이는 네놈은 하늘을 타고난 목숨이다.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의 액운이라고 해도 네놈은 절대 죽지는 않을 것이다.]
“……”
[녀석, 공력을 잃어버렸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선배님께 어떤 도움도 원하지를 않습니다.”
[어째서냐?]
“내 스스로……”
혼백의 음성이 얼른 가로챘다.
[네놈은 내공을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사군보는 대꾸할 말을 잃었다.
[흐흐흐…… 그럼 너는 언제 원수를 갚고 언제 묵혈방을 강호에 출문시키겠느냐?]
“노선배님……”
[왜 그러느냐? 벌써 생각을 바꾸었느냐?]
사군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노선배님 후배를 도와주십시오. 후배는 원수를 갚아야 하고 묵혈방을 강호에 출문시켜야 합니다.”
[노부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느냐?]
“잃어버린 공력을 되찾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혼백 쪽에서는 잠시 침묵이 있더니 엉뚱한 것을 불쑥 물었다.
[네놈은 노부가 100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믿느냐?]
사군보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저었다.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아?]
“그렇습니다. 노선배님께선 정말 혼백이시라면 혼령이 아니실 것입니다.”
[흐흐흐……]
혼백은 한차례 웃음을 꺼내고는 더 이상 말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런 때 사군보도 상대에게 더 이상 구차한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혼백의 음성이 다시 들려졌다.
[너는 어째서 노부가 이곳으로 불렀는지 아느냐?]
사군보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전혀……”
[그런데 어째서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느냐?]
“그 이유는 노선배님께서 말씀해 주시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흐흐흐…… 네 말이 맞다. 응당 노부가 말을 해 주어야지. 노부는 네게 한 사람을 부탁하고 싶어서이다.]
사군보의 눈살이 꿈틀했다.
“어느 사람입니까? 후배는 지금 폐인과 다름이 없는데……”
[너는 노부의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사군보는 잠시 망설이다가 힘들게 대답했다.
“후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흐흐…… 노부가 너를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노부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노부의 딸이다.]
사군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제제 말입니까?”
[그렇다. 노부의 하나뿐인 딸이다.]
“……”
사군보는 멍청해졌다.
혼백이 소제제를 어떻게 맡기려는 것인지 자세히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듣지 않아도 뻔 한 일이지 않은가?
100살이라고 하는 소제제.
그러나 몸이나 하는 행동 그리고 생각하는 것 등은 20세를 갓 넘은 여자다.
솔직히 사군보도 그녀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러느냐? 노부의 딸이 네게 실망을 주기라도 했느냐?]
“아, 아닙니다.”
[그럼 네게 다른 여인이 있느냐?]
“아닙니다.”
[그럼 노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냐?]
“……”
사군보가 무어라 대꾸를 못하는데 느닷없이 동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외침이 터졌다.
[죽일 놈, 이제 보니 네놈은 염치도 모르는 놈이구나. 지금 노부의 딸은 네놈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찢어 죽일 놈! 네놈이 노부 딸의 몸을 망쳐 놓고도 시치미를 떼려 하다니, 노부가 네놈을 찢어 죽여 딸의 한을 풀어줄 것이다!]
정말 사군보에게 무서운 살초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사군보는 다급히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흥! 그래도 죽기는 싫은 모양이구나. 노부는 네놈이 제제와 어떤 이유가 되었든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소식을 누구에겐가 듣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노부가 혼령이 되어 강호를 떠돌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네놈이……]
“……”
[어서 대답하여라. 노부는 제제를 위하여 너를 죽일 수 있다. 죽이지 않게 어서 그녀를 네가 맡겠다고 대답하여라.]
혼백의 음성은 어딘지 모르게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일이 공교롭게 되어도 되게 꼬인 모양이다.
“노선배님……”
천정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떨어졌다.
[죽어라!]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무형의 강기가 사방팔방에서 밀려와 사정없이 사군보를 후려쳤다.
펑! 퍽! 퍽!
사군보의 몸이 허공에서 몇 번 뒤척이는 것 같더니 땅으로 무디게 떨어졌다.
“으……”
숨이 넘어가고 있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입과 코에서 나온 검붉은 피로 보아 살기는 틀린 사군보다.
[이놈! 마지막 기회다. 어떻게 하겠느냐?]
사군보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아직은……묵혈방의 재건이 있기 전에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
[흥!]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또 다른 강기가 밀려와 사군보의 몸을 후려쳤다.
퍽!
“……”
사군보의 몸은 비명도 없이 힘없이 날아가 석벽에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축 늘어진 사군보.
천정에서 다시 거친 음성이 터졌다.
[지렁이 같은 놈! 묵혈사령공을 몸에 지녔다고 하더니 과연 숨이 길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 네놈의 몸을 찢어 죽일 테다!]
동시에,
휴류류륭-!
또 한 차례의 강기가 사군보의 몸으로 몰아쳐왔다.
펑! 펑!
동굴 전체를 뒤흔들 듯한 굉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혼백의 노성이 뒤를 따랐다.
“죽어랏-!”
꽈아앙-!
“크윽!”
사군보의 눈이 희번득 뒤집어졌다.
그의 몸이 한 차례 꿈뜰거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
사군보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칠흑 속에 들어와 있듯이 캄캄했다.
‘내가 염라에 와 있는 것인가?’
첫 생각이 그것이었다.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죽었나?’
그가 있는 이 캄캄한 곳이 염라의 세상이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져 갔다.
“……”
목청껏 소리를 질렀으나 음성은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눈만 뜨고 있는 영락없는 시신인 셈이다.
사군보가 눈만 껌뻑이고 있으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깨어났느냐?]
사군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혼백이……’
분명 혼백의 음성인 것이다.
‘혼백까지 염라의 세상에 올라왔단 말인가?’
이때 불빛이 번쩍이는 것 같더니 사방이 확 밝아지면서 주위의 어둠을 몰아냈다.
한눈에 드러나는 사군보.
사군보의 몸에는 옷조각 하나도 안 보였다.
마치 피를 몸 전체에 발라놓은 듯 새빨갛다.
몸 몇 곳 요혈에 굵고 큰 은침이 꽂혀 있었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잠시 후 사군보의 머리맡에서 혼백의 음성이 들려왔다.
[녀석, 움직이려고 하지 말아라. 지금 이 순간은 네게 전화위복이 되느냐, 아니면 영영 일어날 수 없는 폐인이 되느냐가 결정 지어질 때다.]
사군보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얼른 물었다.
“제가 죽은 것이 아닙니까?”
[녀석, 너는 죽었으면서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노선배님께서도 그런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혼백에게서는 잠시 아무런 대꾸가 없더니 긴 한숨이 들렸다.
[네가 끝내 노부의 말을 듣지 않나 보구나.]
사군보는 혼백이 바로 머리맡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대를 볼 수 없는 것에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노선배님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노부는 얼굴이 없다.]
“후배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혼백의 음성이 가로챘다.
[녀석, 입을 벌려라.]
사군보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입을 벌렸다.
무엇인가 조그만 물체가 날아와 사군보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혀에 닿자마자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뭐지?’
사군보가 입속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기도 전이었는데 그것은 저절로 스르르 녹아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삼키지 않으려고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목구멍을 찾아 넘어가는데 어쩌겠는가.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더니 그는 깊은 잠에 떨어졌다.
정말 그것이 죽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세상모르는 잠이었다.
얼마 후,
딱! 딱! 딱!
사군보는 잠결에 경쾌한 파공음을 들으면서 눈을 떴다.
캄캄했다.
그는 얼마 전에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몸에 침이 꽂혀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한데 뜻밖에도 그의 몸은 침상에서 세척이나 뛰어올랐다가 천천히 침상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었다.
“아!”
사군보의 입에서 저절로 경악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둠 속이지만 조심스레 몸을 살펴보고 만져보니 알몸이기는 하여도 침은 없었다.
운기를 해 보았다.
뜨거운 진력이 단전에서 전신으로 순식간에 쫙 퍼져나가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쾌감?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변화였다.
사군보는 잠시 멍청히 서 있다가 갑작스레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석실이 쩌렁쩌렁 울려지면서 구석에서는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