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78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78화
혈하-第 178 章 썩어도 너무 썩었다.
“……”
사군보는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낭자의 말은 맞지 않다.”
황보경은 문득 그를 유심히 주시하며 말했다.
“제 생각에 당신은 어떤 계기로 인해 성격이 변했어요. 당신의 미간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고 눈빛에는 은은한 흑색기운이 있어요.”
“……”
“당신의 체내에는 지극히 사악하고 무서운 한 가닥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
사군보는 가슴이 진동했다.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묵혈사령신공!
저주의 마공을 익힌 이후 그는 점점 괴팍해지고 손속이 잔인해졌다.
평소엔 모르나 일단 피만 봤다 하면 살인귀가 되곤 했다.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안력을 가졌구나.’
황보경은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심각하게 말했다.
“인간의 잠재력이란 지극히 무한해요. 당신 몸에 어떤 사공이 들어가 당신의 심성을 변화시켰는지 모르나 그 사공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에요.”
“……”
“그렇다면 역시 인간의 의지로써 그 사공의 마성을 누를 수도 있어요.”
황보경의 말은 논리가 정연했다.
사군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의 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황보경은 계속 마와 정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관심 깊은 어조로 물었다.
“참! 공자의 상처는 어떤가요?”
사군보는 뜻밖의 물음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단치 않다. 무림인으로 이 정도의 상처쯤은…… 보통이다.”
어찌 그의 상처가 보통 예사로운 것이랴.
아직도 그의 복부와 옆구리에는 두 자루의 비검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신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처투성이였다.
단지 내색을 안 할 뿐 사군보의 상세는 극심했다.
황보경은 문득 달콤하게 물었다.
“공자, 당신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래.”
사군보는 엉겁결에 대답하고 나서 얼굴을 붉혔다.
그는 소제제를 떠올린 것이다.
“만약 그 사랑하는 분이 당신의 악독한 모습을 본다면 그래도 당신을 사랑할까요?”
“……”
사군보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나는 결코 상대를 먼저 죽인 적은 없다. 단 한번도……”
사군보는 음성을 약간 높였다.
“내가 무림에 나온 이래 정도 무림인들은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나를 악마로 몰아붙였고, 나를 죽음에 몰아넣어 자꾸만 핍박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정당방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황보경은 탄식하며 말했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했어요. 만약 당신이 그들의 행동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스스로의 정의로움을 드러낸다면 그들도 역시 사과를 했을 거예요.”
사군보는 안색이 변했다.
“낭자, 대체 당신의 의도는 무엇이냐?”
그는 약간 의심이 들었다.
황보경은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의 사부께서는 예언하셨어요. 앞으로 1년 뒤 무림에는 엄청난 대살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
“허나 그는 결코 당신이 아니에요. 아니, 당신보다 더욱 더 무섭고 잔인할 거예요.”
“……”
황보경은 기이한 눈으로 사군보를 응시하며 말했다.
“제가 나올 때 사부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어요. 그것은…… 비극이지만 정도의 힘으로는 그자를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천하에서 오직 탈명혈하만이 그를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사군보는 흠칫했다.
허나 곧 반문했다.
“당신들에게는 구천대제가 있지 않나?”
황보경은 문득 안타까운 듯 긴 탄식을 발했다.
“그는 믿을 수 없어요.”
사군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믿을 수 없다고!”
정녕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구천대제는 백도 무림의 전설이다.
아니 엄연히 따지고 보면 백도 무림의 전설이 아니라 구대문파의 전설이다.
구대문파의 비전신공들을 통해 만들어진 구대문파의 미래.
구천대제의 탄생은 구대문파의 명예요, 백도 무림에 있어선 영원한 강호정의를 뜻함이었다.
그러나 천년동안 이어져 오면서 그 누구도 구천대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대문파의 비전 신공은 워낙 정심한지라 그 중 하나만 대성하려 해도 평생수련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그러니 어찌 구대신공 전부를 득도할 수 있으랴?
하나 탄생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분명 구천대제의 출현을 말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듯 구천대제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대정구기가 강호에 그 모습을 보였다.
사군보는 물었다.
“대체 그 자는 누구지?”
황보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천기예요. 천기를 때를 기다리지 않고 발설하면 전 무림에 대참변이 발생해요. 저는 말할 수가 없어요.”
“……”
황보경은 문득 간절한 눈빛으로 사군보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정도 무림과 결코 등을 돌리지 말라고.”
“……”
황보경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사(邪)의 도(道)도 정(正)과 융합하면서 스스로의 그 일맥을 찾을 수가 있어요.”
“……”
사군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나 이때 그의 표정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콜록, 콜록……”
황보경은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해지고 입술은 새파랗게 물들었다.
또한 기력을 완전히 되찾기 전에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거의 탈진되고 말았다.
“낭자……”
사군보는 그녀를 가볍게 부축했다.
황보경은 희미하게 웃으며 스르르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사군보의 넓은 품에 안기자 그녀는 몹시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눈을 감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의 품은 무척이나 아늑하군요.”
사군보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실로 그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사군보의 얼굴은 천하제일의 영준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탈명혈하라는 선입견 때문에 무림인들은 차갑게 느끼고 있었다.
이 순간 그의 얼굴에 웃음이 나타나자 그 웃음은 실로 표현할 길이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
황보경은 그만 눈빛이 몽롱해졌다.
그녀는 설마 일대의 탈명혈하 사군보에게서 이토록 멋진 구석이 있으리라곤 몰랐다.
일단 그의 진귀한 웃음을 발견하자 그녀는 새삼 그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나직하게 물었다.
“저는 무척 추하지요?”
사군보는 그 말에 어리둥절했으나 곧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낭자는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그리고?”
황보경은 그의 말을 붙잡았다.
“그리고…… 고귀하군.”
황보경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위로하려 들지 마세요.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 아니까요.”
황보경의 커다란 두 눈에는 애수가 맺혔다.
“저는 부모가 누군지도 몰라요. 또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무척 약했어요. 이제까지 오직 사부님 슬하에서만 자랐어요.”
그녀는 문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 평생 남자와 이렇게 가까이 몸을 붙이고 있기는 처음이에요.”
“……”
“허나 왠지 기분이 몹시 포근해요.”
사군보는 그녀의 나직한 속삭임을 꿈결처럼 듣고 있었다.
그는 황보경이라는 기이한 소녀와 대화 하고 있는 동안에는 원한도, 증오도 또한 싸움도 정과 사의 관념도 잊어가고 있었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평화로움을 느꼈다.
황보경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
사군보는 품속에 안겨있는 황보경의 큰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서 이때 불꽃같은 것을 그는 보았다.
“저에게 입을 맞춰 주시겠어요?”
“……”
사군보는 너무나 뜻밖의 얘기에 그만 멍청해지고 말았다.
이때 황보경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사군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의 얼어붙은 가슴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아래로 숙여졌다.
황보경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사르르 눈을 감았다.
입맞춤!
두 남녀의 입술은 마주 붙은 채 서로의 더운 피와 호흡을 마음을 주고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은 자연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황보경의 얼굴은 완전히 도화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허나 이때, 사군보의 눈썹이 문득 위로 곤두섰다.
기이한 열류(熱流)!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열류가 갑자기 단전으로부터 치솟아 오른 것이다.
이어 그는 벌떡 일어섰다.
“비열한 놈들! 치사하게 춘약 따위를 비검에 발라 놓다니!”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느닷없는 열류가 바로 욕정이라는 것을.
**
“으으……”
춘약에 의해 광분하는 사군보.
그런 그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황보경의 맑고 신비로운 눈은 겁먹은 사슴마냥 떨렸다.
‘이렇게까지 비열할 수 있다니……백도무림이 이대로 썩는단 말인가?’
미처 몰랐다.
백도 무림이 썩어가고 있음을.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눈치 챈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은밀히 진정한 협의인들을 검은 손 모르게 규합하는 일일 뿐이다.
하나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뜻을 모았다 해도 그들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가 없었다.
그러한 때 만난 사군보.
비록 그가 묵혈의 후예이긴 하나 그의 본심이 누구 못지않게 착하다는 것을 안 황보경은 그의 길을 정도로 이끌 결심을 했다.
그때 사군보에게 일이 닥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게 닥친 운명일지도 모른다.
비검에 춘독을 발라놓은 것은 사군보가 만독불침의 초절정고수이기 때문이다.
일반 독으론 그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춘독은 독이 아니라 본능을 깨우는 것이기 때문에 만독불침이라 해도 춘독에는 여지없이 중독된다.
이것은 만약 사군보가 협곡에서 도망쳤을 때를 대비한 수단이라 황보경은 믿었다.
그러나……
‘너무 했어. 아무리 그가 살인귀라 해도 이런 수법을 쓰다니……이를 어쩌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춘약의 독은 오직 이성과의 정사만이 해독할 수 있다.
황보경은 입술을 물었다.
‘그래, 이것도 운명이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가 나와 인연을 맺는다면 그를 개과천선시킬 수 있다. 강호를 위해서 내 몸 하나쯤은……’
무서운 결심이었다.
또한 숭고한 희생의 결심이었다.
마음을 굳힌 그녀는 상의 옷고름에 손을 댔다.
부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