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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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47화
혈하-第 147 章 여난도 유전이다.
아름다운 밤이 흐르고 있었다.
사군보는 밤이 깊어 가기를 기다리며 침상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천외전에 혼자 사는 여인은 누구일까?’
대체 누구이기에 외딴 숲 속의 누각에서 지내며, 또 신녀방 내에서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일까.
시간은 흐르고 밤은 삼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군.’
사군보는 느릿하게 침상에서 일어나며 방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막 방문을 열려는 순간.
사르륵.
옷자락이 스치는 듯한 미묘한 음향이 들려오더니 그 소리는 방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이곳에 사는 사람은 그와 배가영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무례하게 문을 열며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오는 여인은 배가영이었다.
“어머! 어디 가세요, 이 밤중에……”
‘하필이면 이때 나타나냐?’
사군보는 내심 못마땅했으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은 채 느릿하게 물었다.
“낭자야말로 어쩐 일이지? 이 밤중에……”
“잠 들었는지 보려고요.”
“무슨 소리요?”
다그치는 듯한 사군보의 말에 배가영은 손바닥을 두어 번 비비며 어색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응……. 그냥 자는지 보러왔어요.”
사군보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면 어떻고, 또 안자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요?”
“자면 그냥 돌아가고…… 자지 않으면 창문 꼭 닫으라고 일러주려구요. 밤바람이 차요.”
정말 눈물이 나도록 친절한 일이다.
“그러니까, 밤바람에 감기 걸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왔다는 얘기로군?”
“뭐 대충 그래요.”
배가영은 다른 곳을 슬쩍 보며 사군보의 눈길을 피했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잠이 안 오면 그냥 얘기나 하려고요.”
이제 슬슬 본론이 나오는가.
한데 여기까지 말하던 그녀는 갑자기 쿡! 하고 웃으며 맑은 눈으로 사군보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니까 이상해요. 얼굴이 자꾸 간지러운 것 같아서……”
배가영은 사군보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은 요…… 오늘밤 같이 자려고 왔어요.”
“같이 자?”
“어쩌면 좋죠? 낮에 치룬 사랑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요. 오늘밤에 다시 한 번……”
‘으악! 이, 이건 색녀다!’
걸려도 제대로 걸린 것이다.
이때 배가영은 사군보를 밀치고 방안으로 들어오며 침상에 가서 벌떡 드러 눕는 것이 아닌가.
“저는 오늘 여기에서 자겠어요.”
“그건 내 침상이야.”
“여기에 당신 물건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지금 여기를 자기 집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정신 차려요. 여긴 원래 내 집이었어요.”
사군보는 태연자약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내가 이 집에서 나가면 되겠군.”
말이 끝나는 순간 사군보는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이 휙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딜 나가요? 이 밤중에!”
침상에 있던 배가영이 어느새 몸을 날려 방문을 가로막으며 날카롭게 사군보를 째려보았다.
사군보는 말했다.
“방금 그랬지? 여기가 낭자 집이라고.”
“나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됐다. 여기 아니라도 갈 곳은 많아. 신녀방 한복판에 서서 누가 나 좀 재워주시오 하고 소리치면 모르긴 해도 10리 정도는 줄을 설걸?”
“잘났어, 정말……”
그러나 그녀는 참았다.
여기에서 신경질을 부린다던가,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악을 썼다가는 정말 아까운 보물덩어리 하나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고 말았다.
“알았어요. 주무세요. 그냥 가면 될 것 아니에요?”
오늘밤 사군보와 더불어 침상에서 날밤을 지샐 생각을 하며 기대에 왔던 배가영은 그만 풀이 죽은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이때 그녀보다 먼저 사군보가 밖으로 나갔다.
배가영은 흠칫하며 물었다.
“어디 가요?”
사군보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며 다분히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오줌 누러!”
***
부실부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가랑비에 젖고 있는 천외전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숲 속으로 들어서는 한 인영이 있었다.
사군보는 숲 속 저편 뿌연 가랑비에 잠겨 있는 누각을 바라보며 내심 생각에 잠겨 들었다.
‘아무튼 한 번쯤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사군보는 누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창밖의 달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여인이 하나 있다.
일신에는 백설처럼 새하얀 옷을 입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고결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눈은 흑과 백이 잘 조화된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창틀에 올린 있는 두 손은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다워 옥으로 빚어 놓은 것 같았다.
한데 어깨를 내리덮고 허리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괴이하게도 하얀 백발이 아닌가.
창가에 선 그녀는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
구슬프게 내리는 가랑비를 보면서 말이다.
이때였다.
방안의 공기가 흔들리는 듯하면서 하나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백발미녀의 등 뒤에 내려섰다.
그는 바로 사군보다.
“……!”
그가 나타나는 순간 백발의 미녀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을 본 사군보는 한 줄기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소소가 왜?’
백발미녀는 소소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토록 탐스럽던 검은 머리카락이 왜 갑자기 백발로 변했단 말인가?
너무 놀라운 일을 당하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된다.
지금 사군보가 그랬다.
“이건 도무지……”
소소는 고요한 눈으로 사군보를 보며 말했다.
“놀랐나요?”
“그럼 안 놀라겠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보다는……공자께 한 가지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공자도 들으면 놀랄 이야기……”
“네?”
“한 사람이 있어요.”
뜬금없이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는 소소였다.
“그 사람 이름은 사악……”
‘아버님……?!’
사군보는 혹시 했다.
조금 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분명 사악, 그의 선친 이름이다.
소소가 다시 꿈꾸듯 말한다.
“그 사람은 지금은 죽은지도 벌써 12년이 지났군요.”
‘맙소사! 아버지다!’
사군보는 크게 놀랬다.
또 크게 의아해 했다.
어찌하여 소소가 그의 선친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한 여자가 있었어요.”
‘이젠 여자?’
“그 여자는 우연히 한 사내를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 여자는 사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어요. 짝사랑한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내가 결혼을 했어요.”
사군보는 세차게 몸을 떨었다.
왠지 그 여자가 짝사랑한 사내가 돌아가신 부친일 것같은 예감이 든 것이다.
“그 아픔은 컸어요. 여자는 시름시름 앓았죠. 밥맛도 없었죠. 아니 살고 싶지 않았어요. 무려 일 년을 그렇게 큰 시름에 쌓여 있던 여자는 차츰 기력을 되찾았어요. 그것은 한 사내의 지극한 정성 덕분이었죠. 그 사내는 그녀를 사랑했어요. 그것도 오래 전부터 짝사랑해왔어요.”
“……”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내는 더 가슴이 아팠죠. 자신이 짝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짝사랑을 하는 사람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죠. 그렇게 바라만 보던 여인이 앓아 눕자 그 사내는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돌봤죠. 그녀가 일어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해도 그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을 거여요.”
“……”
“1년여의 지극 정성 탓인지 그녀는 일어났고,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사내와 결혼을 했어요. 참으로 다행한 일이죠. 그 사내라면 충분히 그 여인의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고, 그 사내는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았으니까요.”
“……”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그분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 여자는 강호에 나가게 되었고, 그분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소소는 눈을 감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입술을 떼었다.
“결국 그녀는 그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이 모종의 음모에 의한 것임을 알았어요. 그것을 알고 난 여인은 세상을 저주했고, 복수를 다짐했어요.”
“……”
“그녀의 남편은 그런 그녀를 멀리서만 바람만 보았을 뿐 말리지 못했어요. 그녀는 발버둥을 쳤어요. 어떻게 해서라도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몬 자를 응징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모든 것은 허사였어요.”
“……”
“그녀는 복수는커녕, 음모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어요. 그게 1년 전이에요.”
‘1년 전!’
사군보는 흠칫했다.
소소는 말을 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무덤 앞에 맹세를 했죠. 그녀가 못 다한 복수를 자신이 대신해주겠다고. 그것이 그 사내의 사랑이었죠.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아내가 죽은 슬픔과 복수심에 적도들을 찾아 나섰으나 힘이 부쳤지요.”
“돌아가셨습니까?”
“네. 결국 그 사내도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갔어요.”
“혹시……그 음모의 주동자라면?”
“궁금하신가요?”
소소의 물음에 사군보는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음모의 주동자가 바로 대하교라는 것을!
“그럼 죄송하지만 그 두 분……짝사랑했던 분과 그 분의 남편 되시는 분의 이름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소소는 희미하게 웃었다.
“공자께서 짐작하고 계시는 바로 그 분들입니다.”
“아!”
사군보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1년 전 만난 신녀방주 금노영.
그 부인이 선친을 짝사랑했던 부인이며 바로 신녀ㅑ방주 소비와 눈앞에 서 있는 소소의 어머니라는 것을.
1년 전 대하교에 의해 부모를 잃은 두 자매.
결국 첫째가 신녀방주로 승계되었고, 그녀는 태음신맥의 저주를 벗어나고자 무리를 하다 1년 전 주화입마에 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게 대하교에 의해 발생한 불행이다.